
The Two Degrees Celsius Series © Tom Hegen
흔적의 증언
사진작가 톰 헤겐의 항공사진은 그저 예쁘기만 한 풍경 사진이 아니다. 그는 사진작가인 동시에 끊임없이 자연환경을 탐구하는 연구자로, 인간에 의해 변형된 지구의 흔적을 쫓는다.
핑크, 오렌지, 민트 등의 선명하고 화려한 컬러와 반듯한 그리드. 몬드리안의 작품이나 20세기의 어느 추상화처럼 보이는 이 사진들은 독일 뮌헨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사진작가 톰 헤겐이 하늘에서 촬영한 ‘소금 시리즈(The Salt Series)’의 일부다. 익숙한 장소에서 추상적 이미지를 창조해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지닌 톰 헤겐은 이 항공사진 프로젝트를 통해 2017년 ‘DJI 드론 포트그래피 어워드(DJI Drone Photography Award)’의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독일과 영국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전공한 톰 헤겐이 항공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은 2014년. 자신이 직접 만든 쿼드콥터(Quadrocopter)를 이용해서다(현재 그는 쿼드콥터 외에도 열기구나 헬리콥터, 비행기 등을 활용해 항공사진을 촬영한다). 톰 헤겐의 사진 작업은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를 포착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가 관심을 둔 부분은 풍경 이면의 어두운 이야기. 톰 헤겐의 항공사진에는 자연환경에 관한 중대한 문제들이 담겨 있다. 톰 헤겐은 사진작업을 통해 인간이 지구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며, 그가 하늘에서 바라본 인간의 흔적에는 늘 깊은 사유가 있다.

The Tulip Series © Tom Hegen
“저는 제 자신을 프레임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 지구라는 캔버스에 프레임을 만드는 거죠.”
우리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 지구라는 캔버스에 프레임을 만드는 거죠.”

The Tulip Series © Tom Hegen

The Tulip Series © Tom Hegen
Q. 항공사진을 통해 당신이 보여주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A. 약 1만 년 전의 ‘신석기 혁명(Neolithic Revolution)’ 이후, 인류는 자연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어요. 저는 항공사진을 통해 인간이 지구에 남긴 발자취를 보여주고,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이 환경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인식하게 하고 싶어요. 그래서 늘 인간의 개입으로 변형된 풍경에 초점을 맞추고 있죠. 저는 제 자신을 프레임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 지구라는 캔버스에 프레임을 만드는 거죠.

The Salt Series © Tom Hegen
Q. 자연환경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있나요?
A.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라는 개념에 관심이 있어요. 과학자들이 쓰는 용어인데요, 최근 몇 세기 동안 인간이 지구에 생물학적으로나 지질학적, 환경학적 발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되었다는 내용을 집약하고 있죠. 몇몇 과학자는 우리가 더 이상 ‘홀로세(Holocene)’라고 불리는, 현재의 지질 시대에 살고 있지 않다고 주장하기도 해요. 새로운 지질학의 시대인 인류세로 넘어가는 끝에 서 있기 때문이라면서요. 인류세와 관련한 중요한 변화는 기후변화, 남극 오존홀, 지구 표면의 50% 이상을 인간이 쓰고 있다는 사실, 급격한 해수면 상승, 강류에 의한 지형 변화, 혹은 원자재 부족 같은 것이에요. 저는 제 사진 작업 안에서 인류세라는 개념의 기원과 규모를 탐구하려고 하죠. 자연에 대한 인간의 개입을 깨닫고 인간이 어떻게 그 책임을 지어야 하는지 관심을 기울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요.

The Salt Series © Tom Hegen

The Salt Series © Tom Hegen
Q. 사진 속 장소들이 특별해 보이는데, 장소는 어떻게 찾았나요?
A. 저의 프로젝트에는 아주 많은 사전 작업이 이뤄져요. 실제 사진을 찍기 전에 그 주제에 관해 다양한 리서치를 하죠. 프로젝트를 착수하기에 앞서 준비 단계를 모두 리서치하는 데 쓸 정도예요. 좋은 타이밍을 계획하기도 하고요. 항공사진에서 준비 과정은 정말로 중요한 부분이에요. 작업을 안전하고 성공적으로 완성하도록 도와주니까요. 저는 기본적으로 리서치, 구상, 실행 그리고 평가의 4단계를 거쳐요. 장소를 알아볼 때는 풍경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고해상도의 인공위성 소프트웨어를 이용하기도 하고요.
Q. 작업하면서 힘든 점은 없었나요?
A. 항공사진(Aerial Photography)을 하나의 항공 이미지(Aerial Image)로 전환하는 건 굉장히 까다로운 일이에요. 모든 사람이 기술을 이용할 수 있게 된 이후로 항공사진 촬영 자체는 더 이상 힘들지 않아요. 하지만 실행력과 구성력, 그 안에 담긴 스토리텔링으로 많은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킬 항공 이미지를 만드는 건 많은 상상력과 노력이 필요한 작업이죠.

The Salt Series © Tom Hegen

The Salt Series © Tom Hegen
Q.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요? 당신의 사진은 색감이 무척 아름다워요.
A.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주제와의 연결고리를 만들기 위해 시각적 언어로서 추상(Abstraction)과 심미화(Aestheticization)를 이용해요. 우리는 파괴된 풍경 사진을 너무 많이 봐왔어요. 하지만 그렇게는 더 이상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해요. 저는 아름다운 무언가가 등장하는데, 그것이 나중에 문제로 드러나는 방식으로 작업하려고 해요.

The River Veins Series © Tom Hegen
Q. 대표작 중 하나인 ‘소금 시리즈’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어떻게 소금 연못에서 그렇게 화려한 컬러가 나올 수 있나요?
A. 바다 소금 작업장은 지중해 근처 어디서든 찾아볼 수 있어요. 보통은 얕은 해안가 근처에 위치하죠. 시리즈 속 인공 연못들이 ‘소금 시리즈’의 중심 요소이긴 해요. 염전 작업자들은 바다에서 소금물을 길어 오고, 이렇게 형성된 연못은 저마다 독특한 염도를 지니고 있어요. 물의 색깔은 연못의 염도를 나타낸다고 생각하면 돼요. 염도에 따라 서식하는 미생물에 의해 색이 변하는데, 조금 어두운 그린 컬러부터 진한 레드까지 컬러가 아주 다양하죠.
Q. 개인적으로 당신의 ‘튤립 시리즈(The Tulip Series)’를 가장 좋아하는데요, 그 프로젝트는 인간의 환경 개입과 어떤 연관이 있나요?
A. ‘튤립 시리즈’도 변형된 풍경의 한 예라고 볼 수 있어요. 경제적 이유로 식물을 키우잖아요. 네덜란드의 튤립 농부들은 매년 20억 개 정도의 튤립을 생산해요. 꽃이 완전히 개화하는 건 1년에 약 3~4주 정도, 4월에서 5월 사이죠. 일단 튤립이 완전히 개화하고 나면 농부들은 절단기로 화려한 튤립의 머리, 즉 꽃송이만 잘라내요. 꽃의 남은 에너지가 곧바로 구근에 저장될 수 있게 하는 건데요, 나중에 꽃이 더 강하고 오래 피어 있도록 하기 위한 거죠. 주로 튤립의 머리 부분이 아닌 튤립의 구근을 판매해요. 실제로 네덜란드의 원예는 꽃과 식물, 구근에 관해 세계적인 시장을 가졌어요. 전 세계적으로 거래되는 꽃 구근의 77%가 바로 네덜란드산이죠.

The River Veins Series © Tom Hegen

The River Veins Series © Tom Hegen
Q. 당신은 어떤 프로젝트를 가장 좋아하는지 궁금해요.
A.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프로젝트는 없어요. 모든 주제가 다르고 또 중요하니까요. 그렇지만 지금은 저의 가장 최근 프로젝트에 마음이 쓰이네요. ‘섭씨 2도 시리즈(The Two Degrees Celsius Series)’라고 부르는데, 지구온난화가 북극의 빙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프로젝트예요.

The Quarry Series © Tom Hegen
Q. 당신이 생각하는 가장 심각한 환경문제는 무엇인가요?
A. 가장 심각한 환경문제는 인류 그 자체예요. 성장이라는 명목 아래, 우리는 경제적, 정치적 이익을 위해 지구를 변형시키고 있어요. 현재 75억 명이 지구에 살고 있는데, 금세기 말까지 세계 인구는 110억 명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해요. 과연 지구의 한정된 자원으로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을 어떻게 수용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스스로 이러한 질문을 던지고 조금 더 책임감 있게 행동해야 해요.

The Quarry Series © Tom Hegen
Q. 항공사진 프로젝트가 당신의 인식에도 어떤 변화를 가져왔나요?
A. 제가 작업한 프로젝트들의 풍경을 떠올려보면, 우리의 행동이 얼마나 무지했는지 알 수 있어서 슬퍼져요. 그리고 변화를 만드는 일은 정말 힘들어 보이죠. 우리는 지구에서 우리 스스로를 지워버리지 않도록 노력해야 해요. 환경과 관련한 항공사진 프로젝트에 집중한 이후로, 저는 인간이 책임을 져야 할 문제들을 더 깊이 인지하게 됐어요. 가장 큰 변화라면, 무언가를 바꾸고자 하는 동기를 갖게 되었다는 거예요.

The Two Degrees Celsius Series © Tom Hegen

The Two Degrees Celsius Series © Tom Hegen
Q. 얼마 전 당신의 첫 번째 사진집 <서식지(HABITAT)>가 출간됐는데요, 어떤 책인지 소개해주세요.
A. <서식지>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항공사진으로 기록한 거예요. 인간의 영향력이 언제 지구에 미치기 시작했는지, 인간의 문명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죠. 다섯 챕터, 90장의 사진이 지구상에 있는 인간 존재의 흔적을 보여줘요. 각 챕터에는 인간이 자신들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자연에 어느 정도로 요구해왔는지, 인포그래픽과 대표적인 팩트들을 덧붙였고요. 조금 다른 관점으로 지구를 바라보고, 인간이 자연을 다루는 방식에 좀 더 관심을 갖게 되길 바라요.

The Two Degrees Celsius Series © Tom Hegen
Q.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A. 이야기해야 할 환경문제가 매우 많아요. 2019년에도 추진하고 싶은 몇 가지 프로젝트가 있는데, 아직은 계획 단계예요. 저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환경 사진 프로젝트에 계속 집중할 거예요. 희망이 있다면, 우리 후손들이 살아갈 세상에 작은 변화를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톰 헤겐의 사진집<서식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