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CULTURE

ⓒ Fernando Gurerra_Courtesy EDP Foundation

21세기 바로크의 재현, MAAT
포르투갈 리스본의 강변에 시민들이 사랑하는 새로운 공간이 생겼다. 예술과 건축, 기술 관련 작품을 전시하는 MAAT는 리스본과 시민들의 접점이기도 하다. 강가의 둔덕을 닮은 이곳에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15세기 르네상스 시대에 일어난 사건 중 일안원근법 혹은 일점투시의 발견은 문자나 화약의 발명에 비견될 만큼 인류 문명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건축에서는 3차원적 깊이를 가장 잘 느낄 수 있고, 공간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지평선상의 한 점으로 모이는 효과를 우선시했다. 공간은 질서정연하게 분할된 수직 수평의 그리드를 따랐다. 이후 도래하는 17세기는 감각의 과잉 시대였다. 바로크라 구분되는 이 시기에는 종교개혁과 왕권 강화로 인한 세력 저하를 극복하고자 하는 가톨릭의 열망이 건축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입면은 파도가 넘실거리듯 요동치고, 평면에는 타원을 즐겨 사용했다. 형태와 감정은 하나로 녹아 뒤엉켰다. 마치 바로크라는 용어가 ‘일그러진 진주’를 뜻하는 포르투갈어에서 온 것처럼 건축은 어떠한 외부 힘에 변형된 모습처럼 보였다.

©Hufton+Crow_Courtesy AL_A

고향으로 돌아온 21세기 바로크
2018년 초, 포르투갈 리스본에 세간의 주목을 받는 건물이 들어섰다. 이름은 MAAT(Museum of Art, Architecture and Technology), 이름 그대로 예술과 건축 그리고 기술을 위한 전시장이다. MAAT는 2007년부터 3년마다 열리는 건축 행사인 리스본 트리에날레(Lisbon Architecture Triennale)를 위한 전시장으로 바로크라는 용어가 다시 고향 땅으로 돌아온 것처럼 형태적인 특징이 두드러진다. 우선 강변의 모래가 사구를 이룬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완만한 둔덕을 닮은 가운데, 강과 마주하는 정면으로는 파도가 덮치기 직전처럼 역동적인 자세로 멈추었다. 앞으로 뻗은 캐노피는 한여름의 강한 햇살 아래 그늘을 선사하고 이를 따라 리본의 매듭처럼 활 모양으로 굽은 경사면에 몸을 맡기면 자연스럽게 내부로 입장할 수 있다.

(Left)© Hufton+Crow_Courtesy AL_A / (Right) © FG+SG

그 내부에서 제일 먼저 맞이하는 전시장은 언덕과 같은 지붕 아래 넉넉하게 자리 잡았다. 바로크 성당의 평면과 같이 실내는 타원형이다. 70m X 40m 규모로 어떠한 전시라도 소화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타원은 지진에 잘 견딜 수 있는 형태라는 건축가의 해석은 18세기 전대미문의 대지진을 겪은 리스본 시민의 근원적 공포를 잠재운다. 외부 경사면을 따라 지붕에 오르면 강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전망이 펼쳐진다. 동시에 등 뒤로는 역사적인 도심을 감상할 수 있다. 그간 한 번도 이 위치에서 도시를 바라본 적이 없었기에 오히려 시민들에게는 이쪽이 더 신선한 경험일지도 모른다.

© Fernando Guerra_Courtesy EDP Foundation

MAAT는 260억 원 비용을 들여 신축 건물을 완성하면서 전시장 4개를 더해 확장했다. 기존의 MAAT는 이웃한 발전소 건물을 사용하고 있었다. 1909년부터 1972년까지 인근 6,000가구에 전기를 공급하던 근대의 유산은 유럽의 산업 단지들이 대개 그러하듯 문화 시설로 용도를 전환했다. 뮤지엄을 관장하는 에너지 생산업체 EDP는 새로운 건물이 건축과 기술에 관한 전시관인 만큼 전통적 벽돌 건물과 일견 대비되는 형태를 원했다. 미디어 아트 전시가 이루어지거나 대형 조형물을 둘 수 있는 전시관은 전형적인 화이트 큐브와는 달라야 했다. 

(Left) © Fernando Guerra_Courtesy EDP Foundation / (Right) © Francisco Nogueira_Courtesy AL_A

©Hufton+Crow_Courtesy AL_A

타일 제작에만 무려 4년이 걸려
EDP 재단의 대표가 이렇다 할 공모전이나 경쟁 과정을 거치지 않고 건축사무소 AL_A를 선택한 것도 무엇보다 참신한 외관에 대한 기대가 컸음을 반증한다. AL_A의 대표인 어맨다 레베트(Amanda Levete)는 영국의 하이테크 건축을 대표하는 퓨터 시스템스(Future Systems)를 이끈 경력으로 유명하다. 어맨다 레베트가 설계한 로드스 미이더 센터(Lord’s Media Centre)는 눈을 부라리고 있는 그리스 신화의 외눈박이 거신 키클로페스를 떠올리게 한다. 배나 항공기를 제작하는 기술을 적용한 알루미늄 외피의 공간은 건축이라기보다는 공기역학에 최적화된 하나의 차체에 가깝다. 특히 MAAT 외부 중정의 바닥을 자기(瓷器) 타일로 마감하겠다는 어맨다 레베트의 야심 찬 계획 덕분에 MAAT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관광객이 리스본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이 자기 타일로 벽면을 구성한 건물인 만큼, 과감한 형태와 전통 공법이라는 두 가지 상이한 매력을 모두 보여줄 수 있는 기회라 확신했다.

©Hufton+Crow_Courtesy AL_A

AL_A는 리스본의 기후와 특히 강바람에도 거뜬한 타일을 위해 타일 전문 업체인 세라미카 쿠메야(Ceramica Cumella)와 협업했다. 바르셀로나에 본사를 둔 세라미카 쿠메야는 안토니 가우디의 구엘 공원과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타일을 납품한 것으로 유명한 가족 기업이다. 3세대에 걸쳐 가업을 이어온 이들에게도 MAAT에 사용된 타일 제작은 쉽지 않았다. 타일의 위아래 두께가 다른 3차원 형상인 데다가 건축용 접착제인 모르타르를 사용하지 않고 철물을 이용해 고정하는 방식을 썼기 때문에 그 방식을 연구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17세기 바로크는 천편일률적인 일안원근법적인 세계관에서 벗어나
몸의 감응과 감각을 중요시했다. MAAT의 새로운 전시장 건축이 오늘날의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과감한 형태는 단순히 기술력의 자랑이나 이슈 몰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보통의 삶 속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위해서다.”

©Fernando Guerra_Courtesy EDP Foundation

타일 개발에만 무려 4년이 걸렸으나 결과적으로 그만한 수고를 들인 효과는 충분하다. 촘촘하게 맞물린 1만5,000여 개의 타일은 시각적인 경이로움을 선사한다. 유약을 발라 광택이 어른거리는 표면은 때로는 하늘을, 때로는 강물을 반사하며 풍광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타일의 각도가 조금씩 다른 기하학적 특성으로 인해 빛은 수면 위에서 반짝이듯 산개하며, 한층 그윽해진 반사광은 지하의 전시장까지 닿는다. 타일의 묘미는 하늘이 금빛으로 물들었을 때다. 타일 아래로 살짝 드리운 음영과 시시각각 변모하는 노을의 조합은 건축이 순간 살아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Photo © Fernando Guerra_Courtesy EDP Foundation / Video © Facebook @maatmuseum

단조로운 삶에 활력을 주는 건축
현대의 도시는 모더니즘의 질서에 따라 조성되었다. 저렴하게, 빠르게, 많이 지어야 하는 조건하에 공간은 x, y, z의 직교 좌표를 충실히 따른다. 단조로운 반복에 불과한 현재의 터전에는 감각이 살아 있을 구석이 없다. 삶의 다양성은 제한되고 일상은 가난해진다. 17세기 바로크는 천편일률적인 일안원근법적인 세계관에서 벗어나 몸의 감응과 감각을 중요시했다. MAAT의 새로운 전시장 건축이 오늘날의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과감한 형태는 단순히 기술력의 자랑이나 이슈 몰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보통의 삶 속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위해서다. 역동적인 점잖음, 새로운 기술과 전통 공예, 무질서의 패턴, 움직임과 응시, 이렇게 사뭇 모순되는 특성이 서로 엎치락뒤치락 혼재하며 한동안 소원하던 지역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는다. MAAT는 예측 불가능한 사건을 위한 촉매가 되는 것은 자연이나 예술뿐 아니라 건축의 영역이기도 하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2018. 12 에디터:정재욱
글: 배윤경
자료제공: MA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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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12
  • 에디터: 정재욱
    글: 배윤경
  • 자료제공:
    MA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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