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CULTURE

웜그레이테일이 그려낸 자연
웜그레이테일은 그들만의 시선으로 동식물을 해석해 그림으로 그린 뒤, 이를 집 안으로 들여놓을 수 있는 물건들로 치환한다.
아이 방에 붙인 토끼 그림 포스터, 거실에 걸린 곰 그림 액자, 테이블 위에 놓인 악어 그림 컵. 이들의 공통점은 웜그레이테일의 손에서 탄생한 물건이라는 것이다. 웜그레이테일은 자연을 소재로 한 일러스트레이션을 기반으로 다양한 상품을 만드는 디자인 브랜드다. 2015년 일러스트레이터 김한걸과 아트디렉터 이현아 부부가 서울의 작은 스튜디오에서 시작했다.
Seoul

블랙 베어(Black Bear) 패브릭 포스터 © 웜그레이테일

머그컵

푸르트(Fruit) 머그 컵 © 웜그레이테일

유리컵

트리 앤 베어(Trees & Bears) 골드 컵 © 웜그레이테일

나무 뒤에 숨은 동물의 꼬리가 인상적인 웜그레이테일 로고

“일러스트레이션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제품을 만들려고 해요.”

웜그레이테일 일러스트레이터, 김한걸
대학 졸업 후 프리랜스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던 김한걸 작가는 광고 회사에서 아트디렉터로 일하던 이현아 디렉터를 ‘설득해’ 함께 웜그레이테일을 론칭했다. “작가 한 명이 그려낸 일러스트레이션만으로 브랜드가 성립할 수 있을까? 정말 우리의 제품이 팔리기는 할까? 그리고 싶은 것을 그려서 대중의 호응을 얻는다면 잘된 일이지만, 그렇지 않아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론칭 전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었지만, 5년 차에 접어든 지금 이들은 차근차근 그들의 길을 가고 있다.
지난해에는 망원동에 웜그레이테일의 상품을 직접 보고 만질 수 있는 쇼룸을 오픈했다. 포스터와 패브릭, 유리잔과 양말, 엽서 등 쇼룸에는 웜그레이테일의 사랑스러운 동물이 가득하다. 동화 속 한 장면을 포착한 것처럼 보이는 웜그레이테일의 그림은 사람을 무장해제시키는 힘이 있다. 집과 사무실, 그곳이 어디든, 어떤 형태든 이들의 그림이 있는 곳에서는 마음이 평온해진다. 쇼룸에 빛이 가장 잘 들어오는 시간이라는 오후 2시. 그림에 자주 등장하던 초록색과 똑 닮은 색의 재킷을 입은 김한걸 작가를 만났다.
Q. 웜그레이테일은 어떤 의미인가요?
A. 저희와 함께 살고 있는 고양이 두 마리가 있어요. 각각 러시안블루와 샴고양이인데요, 둘 다 꼬리가 따뜻한 느낌의 회색이라 ‘웜그레이’라고 부르곤 했죠. 브랜드명을 1년 넘게 고민했는데, 결국 저희가 애정을 쏟는 존재로부터 이름을 가져오게 됐네요.

Q.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하나요?
A. 물감이나 연필 등을 이용해 스케치한 다음 컴퓨터로 후반 작업을 해요. 패브릭, 도자기, 유리 등 다양한 소재에 다양한 크기로 적용하는 과정에서 이미지의 품질이 유지되도록 하려면 컴퓨터 작업 과정이 꼭 필요하거든요.

웜그레이테일의 망원동 쇼룸은 김한걸 작가의 작업실이기도 하다.

Q. 선이 없고 면으로 이루어진 그림이어서 쉽게 그린 것처럼 보이기도 해요. 하지만 그 과정이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그려야 할 것을 선택하고 제거하는 데 어떤 과정을 거치나요?
A. 테두리 선이 있는 그림과 비교하면 테두리 선이 없는 그림이 계산할 게 더 많은 것 같아요. 선의 도움 없이 색만으로 형태를 구분해야 하니까요. 그림을 그리기 전 머릿속으로 제가 원하는 방식으로 대상을 표현할 수 있을지 많이 생각해봐요. 초안이 나오면 시간을 두고 보면서 넣을 것과 뺄 것을 따져보고요. 초안은 비교적 빠르게 그리지만, 완성이라는 판단을 하기까지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리는 듯해요.

Q. 동식물 같은 대자연을 주 소재로 삼은 이유가 있나요?
A. 질리지 않는 소재인 것 같아요. 아직까지는.(웃음)

Q. 일러스트레이션에 등장하는 동물의 표정과 포즈는 어떻게 포착하고 선택하나요?
A. 어떤 동물을 그려야겠다 마음먹고 그 동물의 사진이나 영상을 다양하게 찾아보면, 어떻게 연출할지 자연스럽게 선택지가 좁혀져요. 사냥감이 눈치채지 못하게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검은 표범, 앉은 것도 아니고 선 것도 아닌 어정쩡한 자세의 북극곰 같은 식으로요.

패브릭 상품으로 만들어진 웜그레이테일 그림

웜그레이테일 포스터

Q. 동물 다큐멘터리가 도움이 되겠네요.
A. 동물 다큐멘터리를 방영하는 TV 프로그램도 좋아하고, 유튜브의 짧은 동물 영상, 인스타그램의 동식물 사진도 일상적으로 자주 접하는 편이에요. 고개를 돌리면 보이는 저희 집 고양이 역시 도움이 많이 되고요.

Q. 동식물을 그리면서 이전과 달리 새롭게 보이거나 알게 된 점도 있을 것 같아요.
A. 예전에 새는 다 비슷하다고 뭉뚱그려 생각하는 습관이 있었다면, 지금은 각각의 종이 모두 다르게 느껴져요. 예를 들어 새 중에는 멀리 날 수 있는 게 있고 그렇지 않은 새가 있어요. 큰뒷부리도요는 알래스카부터 뉴질랜드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1만km를 날아가요. 반면 까치는 멀리 날지 못하죠.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제주도에는 까치가 없었어요. 바다 건너 제주도까지 날아갈 수 없었거든요. 지금 제주도에 사는 까치는 사람의 손에 이끌려 비행기를 타고 건너간 까치의 후손이에요.

웜그레이테일 그림 엽서

Q. 상품군은 어떻게 정하나요? 웜그레이테일의 상품은 작가의 작품을 소장하는 기분이 들게 하거든요.
A. 일러스트레이션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제품을 만들려고 해요. 다양한 상품 후보 중에 제작이 가능한 상품을 선별하고 나서 일러스트레이션이 잘 표현되는지 검토하죠. 저희가 특허나 독특한 제조 기술을 보유한 회사가 아니잖아요. 일러스트레이션 자체가 부가가치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하고 그런 자세를 유지하려 해요.

Q. 인쇄소를 거치지 않고 자체적으로 포스터를 출력하고 액자나 우드 스틱을 함께 판매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인가요?
A. 처음부터 자체 출력을 고수한 건 아니에요. 저희가 출력하다 주문량이 늘어나면 인쇄소에 맡기려는 계획도 있었죠. 그런데 막상 인쇄소를 통하면 저희가 원하는 색을 정확히 구현하기가 어려웠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자체 출력 방식으로 포스터를 제작하고 있죠. 자체 출력 공정을 유지하다 보면 골치 아픈 일도 종종 있지만, 이제는 운명이려니 생각합니다.(웃음) 그 밖에 소량 생산이 가능하도록 해서 재고 부담을 줄이려는 목적과 기획에서 출시까지 전 과정을 빠르게 하려는 목적도 있어요. 액자를 직접 제작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로 볼 수 있겠네요.

웜그레이테일 그림 액자

얇고 가벼운 웜그레이테일 그림 컵

Q. 독일과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등에서도 웜그레이테일을 만날 수 있어요. 해외 진출은 어떤 계기로 이루어졌나요?
A. 해외시장에 진출하고 싶은 마음과 별개로 저희가 직접 해외 숍에 연락한 적은 없어요. 다행히 몇몇 숍에서 먼저 연락을 해왔고 조금씩 거래가 늘고 있죠. 저희 인스타그램 팔로어가 현재 7만6,000명 정도인데요(2019년 5월 기준), 그중 26%인 2만 명 정도는 해외 팔로어예요. 그분들 중에는 숍을 운영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아요.

Q. 이곳 망원동 쇼룸에 대해서도 소개해주세요.
A. 2018년 가을에 쇼룸을 오픈했어요. 원래 저희가 3년여간 작업실로 사용하던 공간인데요, 쇼룸으로 열면서 작업 공간을 많이 축소했죠. 지금은 벽을 사이에 두고 쇼룸과 작업 공간으로 나뉘어 있어요. 고객과 대면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저희에겐 매우 중요한 공간이에요. 공간 자체는 튀지 않고 차분한 느낌을 주도록 설계했습니다. 그림이 돋보여야 하니까요. 또 햇빛이 쇼룸 전체에 잘 들어왔으면 해서 진열대를 낮게 배치했어요. 채광이 좋은 편이라 맑은 날 오후에는 쇼룸에 가만히 앉아 시간을 보내고 싶어져요.

Q.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A. 일러스트레이션을 출발점으로 삼았지만 온∙오프라인 숍을 운영하다 보니 가끔은 유통업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제조업을 하는 것 같기도 해요. 본업은 일러스트레이터인데, 급하면서도 사소한 일상 업무에 쫓기다 보면 그림 그리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편이에요. 브랜드 운영적인 면에서 좀 더 체계를 갖추고, 덜어낼 것은 덜어내서 본업에 다시 힘을 쏟고 싶어요. 그게 당면한 과제이고요. 너무 먼 목표는 세우지 않으려고 해요.

웜그레이테일 망원동 쇼룸

웜그레이테일
주소 서울시 마포구 포은로 94, 2층
전화 +82-2-337-3719
홈페이지 warmgreytail.com
2019. 7 에디터:김혜원
포토그래퍼:안가람

Where to stay?

LOTTE HOTELS & RESORTS
  • 2019. 7
  • 에디터: 김혜원
  • 포토그래퍼: 안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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