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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을 넘은 인류의 문화유산, 제주 해녀의 역사
제주도의 상징을 사람에서 찾는다면 정답은 해녀가 아닐까?
우리만의 잠수 문화? 흑조권의 공통 문화!
누구나 알다시피 해녀는 기계장치의 도움 없이 바다로 잠수해 전복 같은 해산물을 채취하는 여성을 가리킨다. 이 행위를 ‘물질’이라고 부른다. 물질은 우리나라에서 흔한 행위가 아니었다. 삼면이 바다라곤 하지만 농업을 국가 경영의 근본으로 삼은 탓이다. 농업 이외의 산업 성장을 억누르는 것이 당시 조선의 국가 시책이었다. 신숙주가 상업의 육성을 주장했고, 정약전이 <자산어보>를 집필했으나 이는 아주 예외적 관심에 불과했다. 본말의 전도는 금기시되었다. 어업이나 수산업을 기술적으로 혁신하려는 시도도 거의 없었다. 낚시나 투망 또는 어전(서해안에서 밀물과 썰물의 물때를 이용해 물고기를 포획하던 전통 어로 방식)이 대부분이었다. 제주도의 물질도 삼국시대부터 이어진 방식을 그대로 이어왔을 뿐 아니라 제주도 이외 지역에 접목하려는 노력도 없었다. 물질은 조선 후기에나 한반도의 다른 해역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물질을 위한 잠수 © Shutterstock
한반도에서 물질은 제주도만의 잠수 어법이었다. 한반도를 벗어나면 아시아 곳곳에서 물질 문화를 확인할 수 있다. 일본의 소설가 시바 료타로는 제주도 여행기인 <탐라 기행>에서 아시아의 잠수 어법을 ‘흑조권’ 문화라고 설명한다.

물질 준비하는 해녀들 © 해녀박물관

힘겹게 작업하는 해녀 © 해녀박물관
물질은 제주도만의 잠수 어법이었다. 하지만 한반도를 벗어나면 아시아 곳곳에서 물질 문화를 확인할 수 있다. 일본의 소설가인 시바 료타로는 제주도 여행기인 <탐라 기행>에서 아시아의 잠수 어법을 ‘흑조권’ 문화라고 설명한다. 북위 적도에서 데워진 바닷물은 필리핀 동부 해역, 남중국해 연안, 대만 동부 해역을 거쳐 일본으로 흘러간다. 이를 구로시오 해류 또는 흑조라고 부른다. 구로시오 난류는 일본을 끼고 태평양으로 흘러가지만 지류는 북상해서 쓰시마 난류와 대한 난류가 된다. 구로시오 난류는 수온이 너무 차가워지지 않도록 방지하기 때문에 사람이 잠수할 수 있게 해준다. 그 결과 흑조권을 둘러싼 베트남, 태국 민족의 조상인 월과 백월, 제주도, 오키나와, 규슈, 세토나이카이는 잠수 어법 문화를 공유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해녀 교육을 받은 연예인이 오키나와의 아마(해남, 海男)와 물질을 겨루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바다로 향하는 해녀들 © 해녀박물관
그녀들이 바다로 간 이유는?
흑조권에서도 해녀 문화는 일반적이지 않다. 여성 잠수부 문화를 갖춘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뿐이다. 일본에는 남성 잠수부도 적지 않다. 물질을 여성에게 전담시키는 문화는 우리만의 것인 셈이다. 우리도 처음부터 물질이 해녀 중심으로 이루어진 건 아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는 "섭라(제주)에서 야명주(진주)를 진상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당시 진주를 채취하는 방법은 물질밖에 없었을 것이므로 우리나라의 물질은 삼국시대 또는 그 이전에 시작된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그때는 남녀 가운데 누가 물질을 했는지 알 수 없다. 고려의 태조 왕건은 즉위 21년(938년)에 탐라국의 자견왕을 폐하고 제주도를 고려의 영토로 병합했다. 고려 숙종 10년(1105년)에는 제주도를 탐라군으로 개편해 지배력을 강화했다. 당시 구당사로 파견된 윤응균은 제주도의 남녀가 모두 알몸으로 물질하는 것을 괴이하고 야만적으로 여겨 나체 조업 금지령을 내렸다. 고려 시대에 제주도에는 여성 잠수부가 존재했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조선 시대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제주도의 남성 잠수부를 ‘포작’이라고 했는데, 제주도에서 배를 젓는 노잡이 ‘격군’도 물질을 겸했다. 여성 잠수부인 ‘잠녀’는 포작 또는 격군과 결혼해서 가정을 꾸렸다. 그런데 조정에서 이들에게 너무 많은 해산물을 징수했다. 포작과 격군은 깊은 바다에서 해삼과 전복을 잡고, 잠녀는 주로 우뭇가사리와 미역 채취를 담당했다. 전복을 채취하는 여성도 있긴 했다. 그러나 1694년 제주목사 이익태의 저작인 <지영록>에 따르면 미역 잠녀는 800명이나 되는 데 비해 전복 해녀는 90명에 불과했다. 그런데 진상할 전복의 양이 계속 늘어나자 더 이상 역을 감당할 수 없는 포작과 격군이 뭍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1629년 인조는 제주도민이 뭍으로 이주하는 것을 금하는 출륙금지령을 내렸고, 이 법안은 순조 23년인 1923년에 해제될 때까지 거의 200년간 유지되었다. 포작과 격군은 계속 감소했다. 관리들은 진상품을 채우기 위해 도주한 포작의 아내를 닦달했고, 연좌 처벌을 피하기 위해 물질은 잠녀의 몫이 되었다.
“저승의 돈 벌어 이승의 자식 먹여 살린다”는 속담은 해녀 물질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보여준다. “쇠로 못 나난 여자루 낫주(소로 못 태어나니까 여자로 태어났다)” 하는 한탄은 제주 여성 삶의 서글픔을 담고 있다.

깊은 잠수 © Shutterstock
그녀들의 숨비 소리
한 번에 10~15m씩, 하루 7시간 안팎을 잠수하다 보면 잠수병을 앓거나 목숨을 잃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저승의 돈 벌어 이승의 자식 먹여 살린다”는 속담은 해녀 물질의 위험함을 보여준다. “쇠로 못 나난 여자루 낫주(소로 못 태어나니까 여자로 태어났다)” 하는 한탄은 제주 여성 삶의 서글픔과 고달픔을 담고 있다. 일이 힘들고 위험하니 해녀들은 혼자가 아니라 단체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해녀는 물질 능력에 따라 상군, 중군, 하군, 똥군으로 나뉜다. 깊은 바당(물질하기 적합한 바다를 가리키는 제주 방언) 물질은 상군이 떠맡고, 어린 해녀는 안전한 바당에서 작업하도록 했다. 할망바당을 따로 두어 늙은 해녀들의 생활도 배려했다. 상군 해녀들은 어린 해녀에게 미역을 한 주먹씩 나눠주는데, 이를 ‘게석’ 이라고 한다. 서로 도와서 고된 삶을 이겨내려는 마음이 담긴 풍습이다. 물질에 들어간 해녀들은 1~2분간 숨을 참았다가 물에 떠오른 후 ‘숨비 소리’라는 독특한 호흡을 한다. 체내의 이산화탄소를 빠르게 배출하고 산소를 보충하기 위해 휘파람 비슷한 소리를 내는 것인데, 30~40명의 해녀가 동시에 내는 숨비 소리는 장엄한 느낌까지 준다.

해녀 할망 © 해녀박물관

해녀 할망 © 해녀박물관
해녀들은 그들만의 독자적인 잠수복과 작업 도구를 지녔다. 해녀의 전통 잠수복(물옷)은 하의인 ‘물소중이’와 상의인 ‘물적삼’으로 구성되는데, 1970년대 이후 고무 잠수복이 보급되면서 사라졌다. 제주 해녀의 작업 노래인 '이어도 사나'에는 "혼백상자 등에 지고 가슴 앞에 두렁박 차고"라는 가사가 나온다. 가슴 앞의 두렁박은 ‘테왁’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박을 말려서 만든 테왁은 물의 부력을 이용해 물질할 곳까지 이동하거나, 물질 도중에 쉬도록 돕는 일종의 ‘튜브’인 셈이다. 테왁은 전체적으론 둥글지만 앞뒤론 편평해야 해녀가 가슴에 차기 편하므로 테왁용 박은 인공적으로 모양을 잡아가면서 키웠다. 해녀들은 돌과 납덩어리를 허리에 착용해 부력에 맞서기도 했다. 혼백상자와 두렁박 외에도 해녀는 전복을 떼기 위한 빗창과 물 밑을 헤집기 위한 까꾸리(갈퀴)를 휴대했다. 1931년, 제주도의 해녀들은 세화, 구좌, 성산에서 수천 명이 빗창을 들고 일어서 일제에 맞섰다. 이 사건으로 100명이 넘는 관련자가 투옥됐다. 1998년 구좌읍에는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탑’이 세워졌고, 2006년에는 탑 주변으로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공원이 조성되었다.
체내의 이산화탄소를 빠르게 배출하고 산소를 보충하기 위해 휘파람 비슷한 소리를 내는 것인데, 30~40명의 해녀가 동시에 내는 숨비 소리는 장엄한 느낌까지 준다.

깊은 물 속의 해녀 © Shutterstock
제주도에서 한반도로, 세계 문화유산으로
제주도가 아닌 부산 등 뭍에서 물질하는 해녀를 본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한반도의 해녀 문화는 1823년 출륙금지령이 해제된 후 제주도 이주민들에 의해 형성되었다. 19세기 초‧중반에 시작된 한반도로의 이주는 19세기 후반으로 넘어가면서 본격화했다. 특히 1910년대부터는 한두 명이 아닌 집단 이주가 이어졌다. 1910년대에는 일본인 무역상들이 매년 음력 12월에 제주도 각지의 해녀를 모집해 부산으로 데려갔다. 부산에서 제주해녀들은 한반도의 여러 어촌으로 이주한다. 제주도민 두세 가구가 공동으로 어선을 매입해 육지로 떠나기도 했다. 전자와 후자의 비율은 6 대 4 정도로 추정된다.

천초 작업을 위해 물가로 나선 해녀들. 천초는 한천의 원료다. © 해녀박물관


물질로 걷어 올린 해산물을 파는 해녀 할망. 물질 도구들이 걸려 있다. © Shutterstock
물질은 장소에 따라, 배를 타고 멀리 나가서 하는 배물질과 바닷가에서 하는 갓물질로 나뉜다. 배물질은 크고 작은 섬이 많은 남해나 서해에서 성행하고, 제주도나 동해안에선 갓물질이 주를 이룬다. 배물질과 갓물질 모두 제주도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제 해녀의 물질은 고통과 슬픔의 역사를 넘어 우리 전통의 한 줄기가 되었다. 해녀의 노래는 제주특별자치도 무형문화재 1호, 제주해녀의 물옷과 물질 도구는 제주도 민속문화재 제10호, 제주해녀어업은 국가중요어업유산 제1호로 지정되었다. 해녀는 국가무형문화재 제132호가 되었고, 유네스코 역시 제주해녀 문화를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 목록으로 인정했다.

제주에서 머물 곳: 롯데호텔제주
제주도 중문단지에 위치한 롯데호텔제주는 객실 500개를 갖춘 리조트 호텔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팔라스 오브 더 로스트 시티’를 모델로, 천혜의 제주 자연과 잘 어우러져 이국적인 분위기가 가득하다. 8개의 레스토랑과 라운지, 사계절 온수풀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춰 가족과 연인들에게 인기가 많다.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중문관광로 72번길 35
전화 +82-64-731-1000
홈페이지 www.lottehotel.com/jeju-hotel/ko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중문관광로 72번길 35
전화 +82-64-731-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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