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CULTURE

건축사진가가 바라본 도시의 단면
건축사진가 최용준은 우리와 같은 거리에서 다른 것을 바라본다. 일상의 것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바로 여행의 출발이다.
우리 대부분은 주변 환경을 간과하고 산다.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도시에서 세부 요소들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그 안에서 명백한 모습으로 숨어 있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기도 한다. 건축사진가 최용준은 카메라를 통해 도시를 새롭게 프레이밍한다. 2019년 5월에 발행한 최용준의 첫 번째 사진집 <로케이션(Location)>에는 2015년에서 2018년 사이에 그가 포착한 서울, 부산, 인천, 도쿄, 오사카, 홍콩, 그리고 밀라노의 도시 이미지가 수록됐다. 그는 구글어스와 3D 맵 등 다양한 툴을 이용해 도시의 멋진 장면들을 찾고 이를 사진으로 옮겼다.
딱 떨어지는 수평과 수직, 파스텔 톤의 컬러로 이루어진 평온의 세계. 그가 촬영한 도시들은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작가는 복잡한 도시를 자신만의 프레임으로 증류해 보는 이로 하여금 매력적인 장면을 발견하게 한다. 그리하여 그의 사진은 장소를 찾기 위한 지도가 될 수는 없지만, 기꺼이 일상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구멍이 된다. "시는 지구에 있는 숱한 언어들의 차이를 초월해 우리 의식에 바람구멍을 뚫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라는 일본 시인 다니카와 슌타로의 말처럼 말이다. 작가를 따라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도시를, 건축물을 새롭게 바라본다.
최용준

“툴(지도)의 발전을 통해 확장된 시각으로 바라본 도시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최용준, 건축사진가
Q. 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했다고 들었어요. 사진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A. 학부 수업보다 흥미를 느낀 분야가 사진과 건축이었어요. 주로 도서관에서 사진집이나 건축 화보집, 외국에서 발행한 큰 판형의 책들을 보면서 새로운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건축도 하고 싶고 사진도 하고 싶고, 그런데 둘 다 할 수 없으니 상대적으로 조금 짧게 배워도 혼자서 뭐라도 해볼 수 있는 사진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Q. 사진을 시작한 뒤로는 줄곧 건축물을 피사체로 촬영해오고 있는데요, 건축물에서 어떤 매력을 느꼈나요?
A. 처음 사진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좋아하던 작가가 주로 건축물을 찍는 사진가들이었어요. 토마스 루프의 초창기 작업 중 독일 서민 주거 단지의 인테리어와 익스테리어를 찍은 사진들, 칸디다 회퍼의 사진들, 미국에서는 스테판 쇼어, 에드 루샤가 찍은 건축물이나 도시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최용준

최용준 작가

Q. 건축 사진을 촬영할 때 선호하는 방식이나 스타일이 있나요?
A. 특정 건물이 지니고 있는 미적 측면에 집중하기보다 주변 건물과의 관계나 도시 안에서의 맥락에 주목하는 편이에요. 주변과의 접점이나 건축가의 의도가 반영되지 않은 임의적 부분에서 사진으로 표현될 수 있는 지점들을 발견하려고 하죠. 이미 완결된 형태의 건축보다는 사진가로서 도시, 혹은 어떤 건물 내외부의 특정한 지점을 바라보았을 때 의외의 면을 발견해나가는 데에 재미를 느끼는 것 같고요.

Q. 작가님의 시선을 사로잡는 건축물은 어떤 건가요?
A. 물론 건축가의 설계가 잘된, 말끔한 건물이 좋기는 합니다. 하지만 사진가로서는 좀 멋대로 지어졌는데 의외의 재미나 자극을 주는 건물이 시선을 끌어요.
최용준

최용준

“사진가로서는 멋대로 지어졌는데 의외의 재미나 자극을 주는 건물이 시선을 끌어요.”
최용준, 건축사진가
최용준

Q. 이번 사진집의 제목이기도 한 ‘로케이션’ 시리즈는 어떻게 시작했나요?
A. 어릴 때부터 종이 지도 보는 것을 좋아했어요. 그냥 재미있잖아요. 웹에서 지도 서비스를 시작한 후로 기능이 하나씩 추가되는 것도 눈여겨보았고요. 그러다 2015년인가, 구글에서 3D 맵 서비스를 선보였어요. 처음에는 취미처럼 이용하다가 이를 사진 작업에 접목하기 시작했죠. 

Q. 로케이션 장소를 리서치하는 방법이 신선한데요, 구체적으로 리서치부터 촬영까지 어떻게 진행하는지 궁금합니다.
A. 스트리트 뷰는 지상에서 걸으며 관찰하는 도시와 차별성이 없고, 위성 뷰는 하늘 위에서 바라본 평면도와 다를 바가 없어요. 하지만 3D 지도를 사용하면 도시를 비행하며 관찰하는 것처럼, 고도와 위치의 제약 없이 도시를 다각도로 뜯어볼 수 있습니다. 그중 마음에 드는 장면을 스크린 샷으로 저장하고 촬영이 가능한 장소와 불가능한 장소를 분류한 다음 가능한 장소를 다시 사진으로 촬영했어요.
최용준

Q. 촬영이 가능한 장소와 불가능한 장소는 어떻게 판단하나요?
A. 예를 들어 사진에서 보이는 이곳은 야구장과 테니스장, 소방서인데, 이 사진은 100% 찍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근처 건물 옥상에 전망대가 있거든요. 전망대에 올라가면 뭔가 되겠다 싶어 주변을 찾아본 후 어느 방향으로 찍을까 고민했죠. 북쪽에서 남쪽으로 바라보는 건 역광이어서 조금 힘들어요. 3D 맵을 돌려보다 이 사진의 각도를 찾은 거예요.
최용준

Q. 매우 철저하시네요. 촬영 시간은 길지 않겠어요. 
A. 촬영 시간대도 빛이 드는 시간을 계산해서 방문해요. 계획을 거의 다 세워놓고 시작하기 때문에 촬영 시간은 비교적 짧은 편이에요. 하지만 맑다고 생각한 날도 건물에 올라가면 뿌옇고, 기대했던 느낌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아 한 번 더 갈 때도 있어요. 

Q. 촬영 현장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많이 일어날 것 같은데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A. 경비원들에게 걸려서 크게 혼난 적이 부지기수예요. 다행히 경찰을 부른다거나 한 일은 없지만요. 알아서 잘 모면했어요. 허가를 얻지 않은 촬영이 있는 날에는 옷을 아주 평범하고 착한 사람처럼 보이게 입곤 합니다. 

Q. 사진집 <로케이션>이 작가님의 첫 사진집입니다. 어떤 사진집을 만들고 싶었나요? 
A. 일반적으로 도시나 건축물을 찍은 사진집은 큰 판형에 무겁고 딱딱한 책이 되는 경우가 많아요. 사실 그렇게 하는 이유가 있겠죠. 크고 선명하게 사진을 볼 수도 있고요. 개인적으로 책을 냈다면, 양장본에 좀 더 베이식한 사진집을 냈을 것도 같지만, ‘사월의눈’이라는 출판사에서 먼저 제안해주셔서 조금 다른 욕심이 생겼어요. 출판사에서 추구하는 방향도 사진과 함께 디자인과 텍스트가 조화를 이루는 책이었고요. 제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누군가가 제시해주기를 바랐던 면도 있어요. 그 덕분에 손에 들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작으면서도 디자인 면에서 차별화된 책이 나왔죠. 순수하게 사진집이라고만 생각하고 보면 조금 특이하다고 여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사진은 먼저 150장 정도를 선정한 다음 전체 흐름에 맞춰서 출판사와 함께 배열하며 하나씩 골라냈습니다.
최용준

최용준

Q. 정교한 그리드, 산뜻한 컬러. 작가님이 ‘로케이션’ 시리즈를 통해 보여주고 싶은 건 무엇이었나요? 
A. 툴(지도)의 발전을 통해 확장된 시각으로 바라본 도시.

Q. 사실 건물에 부착된 간판이 아니면 그곳이 서울인지 도쿄인지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작가님은 보는 이의 사진을 통해 그곳이 어디인지 알아차리길 바라나요? 
A. 상관없어요. 어딘지 알면 공감이 가서 좋고, 몰라도 그 나름대로 재미있으니까요. 
최용준

Q. ‘로케이션’ 시리즈를 진행하며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새롭게 발견한 점이 있나요?
A. 아쉬운 이야기지만, 중심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동네 모습이 고만고만합니다. 비슷한 모습들을 복사하고 붙여넣기를 한 것 같죠. 아파트 단지, 상가, 지하철역 주변의 상권, 이런 것들로 도시가 꽉 채워져 있어요.

Q. 그렇다면 작가님께 ‘서울’이라는 도시는 어떤 이미지인가요?
A. 서울은 전체 도시 개발에 대한 방향성 없이 다양한 미감과 조건에서 나온 수많은 유형의 건축물이 랜덤하게 배열된 도시라고 생각해요. 이 점이 서울의 장점이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다소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맥락과 질서 없이 배열된 건축물들의 아이러니함, 때로 황당하게 배치된 부분들에서 재미가 있기도 하거든요. 예를 들어 가산디지털단지의 한 창고형 공장 건물 사진을 보면 앞쪽에 증축된 부분은 전혀 다른 클래식한 양식으로 마감됐어요. 이런 장면은 서울이 아니면 쉽게 볼 수 없는 모습이라 생각해요. 
최용준

Q. 작가님이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건축물은 무엇인가요?
A. 건축가 김중업의 ‘삼일빌딩’요. 지금의 모습도 좋지만, 사실 건축할 당시인 1970년대의 삼일빌딩을 찍은 사진을 더 좋아해요.

Q. 삼일빌딩도 <로케이션>에 담겼나요?
A. 촬영한 사진은 있지만 책에서는 빠졌어요. 유명한 건축물을 찍은 사진은 거의 뺐거든요.

Q. <로케이션>에는 밀라노를 제외하고, 동아시아로 도시가 한정되었는데요, 앞으로 촬영해보고 싶은 도시나 건축물이 있다면요?
A. 처음부터 동아시아로 한정한 건 아니었어요. 굳이 이유를 찾자면 가까워서? 이동하기 편하니까요. 하지만 결정적으로 동아시아에 찍을 대상이 많기 때문이기도 해요. 서울이나 도쿄나 대부분이 현대식 건축물로 구성되어 있거든요. 가령 파리나 바르셀로나 같은 유럽 도시는 이미 1800년대에 도시계획이 완성되었고, 그 계획하에 지은 건물들은 하나의 도시라는 아이덴티티를 형성하고 있어요. 사진가로서 해석할 부분이 별로 없죠. 어떻게 찍어도 그곳은 파리인 거예요. 하지만 동아시아의 도시들은 대부분 계획보다 급격하게 도시화가 이루어졌고, 현대의 건축물로 제멋대로 지어서 특별한 포인트를 찾아낼 여지가 많아요.
최용준

최용준

Q. 영감은 주로 어디에서 얻나요?
A. 사진을 처음 시작할 때도 그랬는데, 지금도 사진책에서 영감을 가장 많이 받아요.

Q. 저처럼 평범한 사람이 도시나 건축물의 새로운 모습을 잘 포착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요?
A. 저 역시 마찬가지지만 인터넷으로 도시에 관한 많은 정보를 찾아보는 것, 그리고 좀 더 넓고 높게 돌아다니는 것이 어떨까 싶어요.
2019. 8 에디터:김혜원
포토그래퍼:해란 자료제공: 최용준

Where to stay?

LOTTE HOTELS & RESORTS
  • 2019. 8
  • 에디터: 김혜원
  • 포토그래퍼: 해란
  • 자료제공:
    최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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