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Photographer Mika Ruusunen, Visit Finland
도서관의 재정의, 헬싱키 오디 중앙도서관
디지털 시대의 도서관은 조금 달라져도 괜찮지 않을까. 지금 오디 헬싱키 중앙도서관에서 아이들은 뛰어 놀고, 학생들은 3D 프린터를 체험하며, 유튜브 크리에이터는 요리 콘텐츠를 촬영한다. 당연히, 책도 있다.
헬싱키 오디 중앙도서관(Oodi Central Library, 이하 오디)을 도서관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국립국어원은 도서관을 “온갖 종류의 도서, 문서, 기록, 출판물 따위의 자료를 모아두고 일반이 볼 수 있도록 한 시설”이라고 정의한다. 이에 따르면 오디를 도서관이라고 부르는 것에 의아할 수도 있다. 구글 검색창에 키워드를 입력하는 것만큼 유튜브 검색이 친숙한 시대에, 오디는 핀란드가 제시하는 미래형 도서관이다.

헬싱키 오디 중앙도서관 © Photographer Tuomas Uusheimo, Visit Finland
지난해 12월 헬싱키 시내 중심지에 새롭게 문을 연 오디는 핀란드에서 730번째, 헬싱키에선 37번째로 탄생한 공공 도서관이다. 핀란드 독립 100주년 기념 사업의 가장 큰 프로젝트로, 20년간 추진한 계획의 결과물이다. 오디는 크게 3개 층으로 구성된다. 로비인 1층에는 카페와 레스토랑, 다목적 홀, 영화관이 있는데 모임과 만남을 위한 장소로 유용하다. 2층은 다양한 창작 활동을 위한 공간이다. 2층으로 향하기 전, 지하의 화장실을 들러보자. 기발한 소셜 컨트롤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화장실에 사람이 들어가면 안에 불이 켜짐과 동시에 불투명한 화장실 문에 사람의 실루엣이 그대로 드러난다. 덕분에 남녀 공용 화장실임에도 불쾌하거나 불안함이 없다.

1층 로비 © Photographer Tuomas Uusheimo, Visit Finland

재봉틀을 사용하는 시민들 © 김혜원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계단 © 김혜원
2층에는 컴퓨터실, 쿠킹 스튜디오, 레코딩실, 회의실 등을 갖췄다. 그뿐 아니라 3D 프린터, 재봉틀 등 디자인을 위한 다양한 장비가 구비돼 있다. 오늘날 지식을 축적하고 정보를 접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그리고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게 도서관의 역할이라면, 디지털 시대의 도서관은 빈부에 상관없이 누구나 디지털 문화를 배우고 경험하는 공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오디는 책과 함께 다양한 혁신적 서비스를 제공한다. 2층이 이에 충실한 공간으로, 새로운 정보를 접하고 아이디어를 나누며 이를 직접 구현해볼 수 있다. 이곳에선 게임을 즐기는 아이와 재봉틀을 돌리는 학생, 미팅하는 젊은이들을 마주치는 게 어색하지 않다.

2층 휴식 공간 © Photographer Tuomas Uusheimo, Visit Finland
3층은 오디의 최고층으로 전통적 도서관의 역할을 한다. 약 10만 권의 책이 이곳에 비치돼 있는데, 음악∙예술∙디자인∙여행 등 섹션에 따라 다양한 책을 구비해놓았다. 책장의 높이는 대부분 성인 키보다 낮게, 아동용 도서 코너의 경우 아이들 눈높이를 고려해 좀 더 낮게 설계했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자유롭게 웃고 떠든다. 아이와 어른의 공간을 따로 구분하지 않았지만, 누구 하나 인상을 찌푸리지 않는다.

3층 창가에는 편안한 의자들이 놓여 있다. © Photographer Tuomas Uusheimo, Visit Finland
빛은 공간의 분위기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다. 오디는 전면이 유리로 되어 있다. 유리 벽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더없이 아늑한 분위기를 만든다. 또한 건물의 양쪽 끝으로 갈수록 바닥이 점점 올라오는 형태인데, 이 위에 앉아 있으면 마치 야외의 언덕에 앉은 기분이 든다. 시간이 충분하다면 중앙의 카페에서 커피를 들고 테라스로 나가도 좋다. 핀란드 국회의사당, 키아스마 현대미술관, 헬싱키 음악센터, 핀란디아 홀 등 주변 풍경을 바라보며 커피와 함께 여유를 만끽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오디 중앙도서관 전경 © Photographer Tuomas Uusheimo, Visit Finland
오디는 여행자들에게도 열려 있다. 그리고 도서관은 분명 여행자들에게 매력적인 장소다. 동시대의 기술적 성취와 미적 가치를 만족시키는 건축물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볼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오디의 건축 디자인은 2013년 국제 공모에서 당선된 ALA 아키텍츠가 담당했다. 유리와 핀란드산 전나무를 활용해 외관이 인상적인 물결 형태의 도서관을 완성했다. 오디 또한 건축물 자체로 방문할 가치가 있다. 하지만 아름다운 디자인은 그 쓰임을 다할 때 더욱 아름다워진다. 책과 도서관을 사랑하는 핀란드 사람들이 보여준 이 근사한 미래는 지금 반드시 경험해봐야 한다.

2층과 3층을 연결하는 에스컬레이터 © Photographer Tuomas Uusheimo, Visit Finland

3층에서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 © Photographer Tuomas Uusheimo, Visit Finland

오디 중앙도서관 © Photographer Tuomas Uusheimo, Visit Finl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