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시장에서 양혜규 작가 © 사진 안천호, 제공 국제갤러리
작가 양혜규의 별세계
양혜규식 추상언어로 발현된 하나의 세계. 양혜규의 개인전 <서기 2000년이 오면>은 그가 지난 25여 년 동안 몰두해온 다양한 시공간에 대한 사유와 방대한 관심사가 응축된 전시다.
서울 삼청동 한가운데, 양혜규의 별세계(別世界)가 탄생했다. 오는 11월 17일까지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개인전 <서기 2000년이 오면>은 양혜규가 지난 25여 년 동안 몰두해온 다양한 시공간에 대한 사유를 역사, 문화, 사회 등 전 분야를 아우르는 작가의 방대한 관심사를 응축한 전시다. 시간과 공간, 고대와 현대, 민속과 문명 등 상반된 개념들이 자유롭게 수렴되는 이 하이브리드적 상상의 공간에서는 일상의 규칙을 깨는 무엇이든 가능하다. 과거를 통해 미래를 느끼고, 선형적인 시간대를 뒤집어보거나, 중력의 지배를 벗어나 부유하는 사물들을 목격할 수도 있다. 무질서가 곧 질서로 승화되는 순간, 양혜규의 이 문제적 공간은 대폭발 직전의 우주처럼 다가온다.
이번 개인전은 국적과 시대를 넘나드는 양혜규 작업 중에서도 특히 다감각적 요소를 패치워크해 완성한 전시다. 전시장으로 향하는 길, 가수 민해경의 노래 ‘서기 2000년’(1982)이 관객들을 환대한다. 2000년을 ‘모든 꿈이 이뤄지는 행복한 해’로 상정하는 가사는 대책 없이 희망차다. “서기 2000년이 오면 우주로 향하는 시대/ 우리는 로켓트를 타고 멀리 저 별 사이로 날으리/ 전쟁도 없고 끝없이 즐거운 세상/ 사바(사바) 사바(사바) (중략)” 일견 순진무구한 가사 안에는 실은 다채로운 시간, 시제의 층위가 존재한다. 과거(1982년)와 미래(2000년) 그리고 현재(2019)의 뒤엉킨 방향, 1980년대 당시 ‘사바사바’로 축약해버린 현실-희망의 충돌, 과학적으로는 ‘웜홀’로 설명될 수밖에 없는 비껴간 시공간의 간극에서 작가는 전시의 명분을 발견한다. 절대적이라 믿어온 시간이 상대적, 사변적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번 개인전은 국적과 시대를 넘나드는 양혜규 작업 중에서도 특히 다감각적 요소를 패치워크해 완성한 전시다. 전시장으로 향하는 길, 가수 민해경의 노래 ‘서기 2000년’(1982)이 관객들을 환대한다. 2000년을 ‘모든 꿈이 이뤄지는 행복한 해’로 상정하는 가사는 대책 없이 희망차다. “서기 2000년이 오면 우주로 향하는 시대/ 우리는 로켓트를 타고 멀리 저 별 사이로 날으리/ 전쟁도 없고 끝없이 즐거운 세상/ 사바(사바) 사바(사바) (중략)” 일견 순진무구한 가사 안에는 실은 다채로운 시간, 시제의 층위가 존재한다. 과거(1982년)와 미래(2000년) 그리고 현재(2019)의 뒤엉킨 방향, 1980년대 당시 ‘사바사바’로 축약해버린 현실-희망의 충돌, 과학적으로는 ‘웜홀’로 설명될 수밖에 없는 비껴간 시공간의 간극에서 작가는 전시의 명분을 발견한다. 절대적이라 믿어온 시간이 상대적, 사변적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국제갤러리 3관(K3) 양혜규 개인전 <서기 2000년이 오면> 설치 전경 © 사진 안천호, 제공 국제갤러리
전시장에 들어서면 ‘양혜규의 오늘’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오감을 자극하며 공간의 밀도를 최대치로 올린다. 4년 전 삼성미술관 리움의 개인전을 통해 선보인 대형 블라인드 조각 ‘솔 르윗 뒤집기’(2015~)에 사람이 옷처럼 입고 조종할 수 있는 조각 ‘의상 동차動車’(2011~) 시리즈를 접목, 움직이도록 진화한 ‘솔 르윗 동차動車’(2018) 2점이 서 있다. ‘소리 나는 운동’(2019)이라는 공통 제목의 방울 조각 4점은 곳곳에 매달려 울림과 소리를 만들어낸다. 신묘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연무를 헤치며 향을 내뿜는 짐볼 사이를 다니는 동안, 시종일관 어떤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남북정상회담 때 두 정상이 다리 끝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전 세계에 전파되며 일명 ‘도보다리 회담’이라 불렸는데, 작가는 카메라 셔터 소리, 새소리 등의 요소만 추출해 음향 작업을 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단순히 ‘남북평화’에 대한 게 아니다. “달 착륙 이후 가장 많은 사람이 실시간 시청한 이 방송을 나 역시 베를린에서 보며 압도되었다. 그때 카메라가 보던 시간과 내가 보던 시간은 같지만 다른 시간이었다. 구체적 장소와 시간을 뛰어넘는 엄청난 국면처럼 다가왔다.”

양혜규, ‘소리 나는 운동 지도’, 2019, 분체도장 스테인리스강 프레임, 분체도장 격자망, 분체도장 손잡이, 강선, 검정 놋쇠 도금된 방울, 니켈 도금된 방울, 금속 고리, 122 x 70 x 70 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 사진 양혜규 스튜디오, 제공 국제갤러리

(좌) 양혜규, ‘솔 르윗 동차動車 — 입방체 하나 빠진 입방체 위에 6 단위 입방체’, 2018, 알루미늄 블라인드, 분체도장 알루미늄 프레임, 분체도장 손잡이, 바퀴, 362 x 225 x 225 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 (우) 양혜규, ‘솔 르윗 동차動車 — 열린 기하학적 구조물 2-2, 1-1 위에 5 단위 십자’, 2018, 알루미늄 블라인드, 분체도장 알루미늄 프레임, 분체도장 손잡이, 바퀴, 292 x 222 x 222 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 사진 안천호, 제공 국제갤러리
일견 어울리지 않거나 연관 없는 요소를 배열 및 병치하는 이형조합 등의 양혜규식 추상언어는 이번에도 발현된다. 전시장 전면에 배치되어, 소리와 움직임 등의 동적 요소를 감싸는 벽지 작업 ‘배양과 소진’(2018)은 프랑스 옥시타니아 지방에서 영감을 받은 작업이다. 이교도적 전통과 하이테크 산업이 공존하는, 현 프로방스 지역의 특징들이 콜라주 형식으로 배치되어 있다. 흥미로운 건 멕시코산 고추, 독일산 마늘, 수술용 로봇, 무지개, 번개, 방울, 쿠션 팩트 등 온갖 사물이 뒤섞인 채 부유하는 광경이 지금, 서울에서도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인데, 이것이 ‘독특한 사상가’로 알려진 양혜규 작업의 강력한 보편성이 발휘되는 지점이다. 한편 눈에 잘 띄진 않지만 놓쳐서는 안 되는 텍스트 묶음 ‘융합과 분산의 연대기 — 뒤라스와 윤’(2018)은 전시의 맥락을 더욱 풍부하게 만드는 작업이다. 한국 작곡가 윤이상과 프랑스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를 각각 연구해온 작가는 급기야 성별도, 배경도 다른 데다 역사적으로 연관 없는 두 인물의 연대기를 교차편집하기에 이른다. “한 개인의 예술적 삶과 역사적 삶이 만났을 때 생기는 일종의 엮임 현상”을 발견한 양혜규라는 후대 예술가를 통해 생전 만난 적 없는 윤이상과 뒤라스는 드디어 조우한다.

양혜규, 양돌규, 양솔규, ‘보물선’, 1977, 종이, 수채물감, 크레파스, 액자, 54.5 x 69.5 cm, 개인 소장품, 서울 © 제공 국제갤러리
노래 ‘서기 2000년’이 전시의 청각적 길잡이였다면, 입구이자 출구에 걸린 ‘보물선’ 그림은 시각적 이정표 역할을 한다. 만 여섯 살인 작가가 동생들과 함께 그렸다는 그림에는 우리 집, 가족, 꽃 대신 시조새와 뿔 달린 도깨비가 출몰한다. 양혜규는 개인사의 편린을 통해 ‘기이한 존재’들의 원시적‧신화적 요소에 몰두한다. 생각해보면 그의 작업 세계에서도 고대와 현대를 단숨에 오가는 축지법이 발휘되곤 했는데, 이는 결국 생각의 전환과 다름없다. 이질적이고 상반된 것, 세상이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대상을 같은 자리에 놓고 이야기함으로써 경계를 허무는 것이 그녀의 전매특허이며, 양혜규가 꿈꾸는 ‘공동체’의 본질이다. 이는 작가가 밝힌바 “이번 개인전은 양혜규라는 작가가 어디까지 와 있는지, 양혜규의 리얼리티에 관한 솔직한 이야기”라는 점과도 일맥상통한다.
※ 4년 만에 한국에서 선보이는 양혜규의 개인전 <서기 2000년이 오면>은 오는 11월 17일까지 서울 국제갤러리에서 열린다.
국제갤러리
주소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54
문의 02-735-8449
홈페이지 www.kukjegallery.com
※ 4년 만에 한국에서 선보이는 양혜규의 개인전 <서기 2000년이 오면>은 오는 11월 17일까지 서울 국제갤러리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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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 02-735-8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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