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CULTURE

예르미타시의 고양이들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아’는 러시아 예르미타시미술관이 자랑하는 걸작이다. 이 작품을 지키는 주인공은 뜻밖에도 250년 역사의 고양이 근위병이었다!
고양이,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상륙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예르미타시미술관은 전 세계 예술 애호가의 사랑을 받고 있는 곳으로, 300여만 점의 미술 작품을 소장한 역사적인 장소다. 흥미롭게도 예르미타시미술관에서 예술품의 안전을 관리하는 건 고양이 근위병들이다. 그 역사가 250년을 넘어선다.
예르미타시

예르미타시

미술 작품이 전시된 예르미타시미술관 © Shutterstock

1700년대 초반까지 지금의 러시아 북서부는 스웨덴의 영토였다. 해양 진출을 꿈꾼 표트르 대제는 1703년, 네바 강변에 있는 스웨덴의 작은 요새를 공격해 점령했다. 그는 요새 주변 늪지대를 메워 신도시를 건설하려 했다. 도시가 발트해와 연결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지역에는 돌이 많지 않았다. 도시를 지나가는 이들에게 돌을 세금으로 걷었지만 부족한 양을 채우기엔 턱없이 모자랐다. 나중에는 지반 공사 과정에서 죽어간 이들의 시체까지 늪에 던졌다. 이렇게 건설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뼈 위에 세운 도시’라는 으스스한 별명을 가지게 되었다.
표트르 대제 사후 복잡한 권력 다툼 끝에 그의 딸 옐리자베타 페트로브나 여제가 왕좌를 차지했다. 1754년, 그녀는 건축가 라스트렐리에게 황실의 관저로 사용할 겨울 궁전을 짓도록 명령했다. 1762년에 왕위를 계승한 예카테리나 여제는 겨울 궁전에 ‘예르미타시’라는 이름의 별궁을 증축했다. 예르미타시는 ‘은신처’라는 뜻이다. 예카테리나 여제는 별궁을 자신이 소장한 예술품과 보석으로 치장하고 외국 사신의 접대처로 활용했다. 궁전을 이용해 러시아의 영광을 과시하려는 의도였다. 현재의 상트페테르부르크 궁전은 화재와 전쟁 등으로 소실되거나 파괴된 건물을 후에 벽돌과 석재로 재건한 것이지만, 1700년대 건축 당시에는 주로 나무를 이용해 만들었다. 습한 곳에 나무로 지어놓은 궁전에는 자연스레 쥐 떼가 출몰했다. 예카테리나 여제는 고양이 근위대를 조직해 쥐 떼가 예술품을 손상하는 일이 없도록 했다. 이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져 고양이 근위대를 예르미타시미술관의 일부로 만들었다.
예르미타시

미술품을 감상 중인 관람객들 © Shutterstock

제1호 근위병 바실리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처음으로 고양이를 데려온 건 예카테리나가 아니라 표트르 대제였다고 한다. 러시아 사람들은 예르미타시의 첫 번째 고양이 근위병이 ‘바실리’라고 믿는데, 바실리는 표트르 대제가 입양한 네덜란드산 고양이라는 것이다. 젊은 시절 표트르 대제는 네덜란드의 조선소에서 일하며 선진 기술을 배웠는데, 이때 키우던 고양이를 여름 궁전으로 데리고 왔다는 설도 있고, 사망 직전인 1724년에 네덜란드 상인에게서 구입했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이 흥미로운 이야기는 떠도는 설에 불과한 것 같다. 명확한 근거를 갖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고양이는 옐리자베타 집권기에 등장한다. 1745년, 옐리자베타는 카잔 총독에게 쥐를 잘 잡는 고양이 30마리를 보내라는 칙령을 내렸다. 아직 예르미타시가 완공되기 전이긴 하지만,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했다는 공식 기록이라 의미가 있다. 옐리자베타 시대부터 황실 고양이는 의무적으로 중성화 수술과 건강관리를 받는 등 특별 대접을 받았다. 새로 조성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습한 목조 도시였으니, 고양이를 풀어놓을 생각을 하게 된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예술품을 정열적으로 수집한 예카테리나 여제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고양이는 궁전을 적당히 유랑하는 존재가 아닌 공식적으로 그곳을 지키는 근위대로 임명되었다.
예르미타시 고양이

미술관을 지키는 고양이

소련의 고양이, 삶은 고되다
1917년 혁명 직후 볼셰비키는 러시아의 주요 궁전과 고급 맨션을 국유화하고 미술관으로 바꾸어 일반에 개방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인근에선 겨울 궁전, 알렉산드르 궁전, 스트로가노프 궁전, 유수포프 궁전이 미술관으로 바뀌었다.
1941년, 독소불가침조약을 파기한 독일군은 레닌그라드로 이름을 바꾼 상트페테르부르크를 포위했다. 3년에 걸친 농성전이 벌어졌다. 도시 안에 봉쇄된 러시아인들은 먹을 수 있는 모든 걸 먹었다. 겨울 궁전의 근위병들도 예외가 될 순 없었다. 900여 일 동안 수십만 명이 굶어 죽었다. 더 큰 문제는 고양이의 씨가 마르면서 쥐 떼까지 창궐했다는 사실이다. 1944년, 포위는 풀렸지만 위생상의 문제는 여전했고, 가뜩이나 부족한 곡식과 채소까지 쥐 떼에게 빼앗기고 있었다. 일단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300km 이내 남쪽 도시의 고양이를 긴급 수급했다. 나치 독일이 패망하면서 소련은 점점 안정을 찾아갔다.
1945년 11월 예르미타시미술관이 다시 개관했다. 하지만 박물관과 도시에는 아직 쥐가 많았다. 1950년대 초반, 소련 정부는 고양이 총동원령을 발효했다. 수천km 떨어진 시베리아에서 5,000마리의 고양이를 모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수송했다. 일부 고양이는 예르미타시미술관으로 자대 배치받아 쥐를 잡는 근위병으로 활약하게 된다. 이후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영광과 평화, 그리고 안정을 상징하는 고양이 동상을 도시 곳곳에 세우며 대조국전쟁의 승리를 축하했다. 시간이 흐르자 이번에는 쥐가 아닌 고양이가 문제로 부상했다. 고양이가 너무 많이 늘어난 것이다. 1960년대에는 고양이 근위병들이 금단의 구역이던 갤러리 안쪽까지 활보하자 고양이 대신 화학약품으로 박물관을 지키자는 의견이 나왔다. 하지만 한동안 실험을 거친 결과, 약품보다 고양이가 쥐를 제거하는 데 효과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양이 근위병은 잠시 은퇴했다가 복귀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들의 처우는 열악했다. 제정러시아 시대처럼 건강을 관리해주지도 않았고, 별도의 먹이를 공급해주지도 않았다.
고양이

고양이

곳곳에 설치된 고양이 안내 표지 © Shutterstock

고양이 근위병, 인기가 폭발하다
1990년대 초반, 소련이 붕괴하면서 예르미타시미술관에도 거의 모든 지원이 끊겼다. 미하일 표트롭스키 예르미타시미술관 관장은 지붕을 수리할 예산도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현재 공보비서관으로 근무 중인 마리아 할투넨은 1995년, 미술관 지하에 내려갔다가 굶주린 고양이 떼를 발견하고 충격을 받는다. 그녀는 ‘고양이를 위한 1루블’ 운동을 벌여 고양이의 사료와 의료 기금을 마련했다. 표트롭스키 관장도 그녀의 열의에 동참한다. 온수 파이프가 복잡하게 흐르는 미술관 지하를 고양이 전용 공간으로 할애한 것이다.
소련 몰락의 상흔이 점점 해소되면서 러시아의 가장 번화한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안정을 찾아갔고, 전 세계에서 관광객이 몰려들었다. 덕분에 예르미타시미술관의 예산에도 여유가 생겼다. 미술관은 고양이 근위병의 전통을 되살렸다. 이들이 미술관의 일부라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고양이들에게 신분증과 건강 수첩까지 발급해 정식으로 관리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박물관을 자유롭게 드나들며 네바 강변에서 기지개를 켜는 고양이에 매료되었다. 예르미타시미술관을 사람이 점점 더 많아졌는데, 아예 고양이를 만나려는 예술가까지 생겼다. 네덜란드 작가 에리크 판 리스하우트는 9개월간 예르미타시미술관 지하에서 고양이 근위병들과 생활하며 영상 예술 작품을 제작해 여러 비엔날레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고양이 근위병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자, 2015년 예르미타시미술관은 ‘예르미타시의 고양이들’ 컬렉션의 상표권까지 등록했다. ‘예르미타시의 고양이들’은 미술관 내 고양이 관련 작품의 모음집으로, 기원전 5세기 이집트의 바스테트 고양이 여신상, 12세기 이란의 고양이 청동상, 그리고 19세기 중반의 일본 목판화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더불어 현대 작가인 엘다르 자키로브가 그린 황실 근위병의 복장을 한 고양이 연작도 큰 인기를 얻었다. 현재 미술관의 온라인 쇼핑몰에는 반려용품, 사무용품, 식료품 등 다양한 예르미타시의 고양이 관련 상품이 입점한 상태다.
예르미타시

화려한 미술관의 실내 © Shutterstock

역사를 지키는 고양이들
현재 예르미타시미술관에는 고양이 60~70마리가 근위병으로 근무하고 있다. 겨울 궁전이 250주년을 맞이한 2014년부터 미술관은 고양이 숫자를 50마리로 제한하는 계획을 세웠다. 그 이상은 원하는 사람들에게 입양을 보내기로 했지만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사실 미술관과 고양이의 조합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1759년에 문을 연 대영박물관도 쥐를 잡기 위해 고양이를 키운 적이 있다. 1960년 이전부터 런던의 도둑고양이들이 박물관 지하로 숨어들어 살고 있었는데, 1970년대에는 100마리가 넘게 불어나면서 문제가 되었다. 골머리를 앓던 박물관은 여섯 마리의 쥐잡이 고양이만 남기고 쫓아내기로 결정했다. 대영박물관의 고양이는 네 마리에서 일곱 마리 사이를 오가다가 1990년대 이후 쥐잡이 정책이 바뀌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베이징 최초의 사설 박물관인 관푸박물관도 여섯 마리의 고양이로 화제를 모았다. 관푸박물관의 고양이 관련 서적은 서점에서 번역서를 구할 수 있다. 하지만 고양이 근위대의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곳은 역시 예르미타시미술관이다. 고양이를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연결 고리로 활용하면서, 동시대의 삶과 문화를 예술의 한 부분으로 포섭한 미술관의 시도는 칭찬받아 마땅하다. 예르미타시의 고양이들이 누리는 인기는 앞으로 더 뜨거워질 듯하다.
예르미타시 고양이

© Shutterstock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머물 곳: 롯데호텔상트페테르부르크
롯데호텔상트페테르부르크

롯데호텔상트페테르부르크

롯데호텔상트페테르부르크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가장 유명한 곳인 성 이삭 광장 맞은편에 자리 잡고 있다. 호텔은 1851년에 지은 역사 깊은 건물을 리모델링해 사용하고 있으며, 인근에는 넵스키 프로스펙트 주요 거리와 예르미타시미술관, 마린스키 극장 등이 자리한다. 지하 1층, 지상 6층 규모로 총 10개 타입의 객실 150실을 갖춘 호텔 내부에는 다양한 레스토랑과 시설이 들어서 있다.

주소  2, Antonenko Lane, Saint-petersburg, Russia, LOTTE HOTEL ST. PETERSBURG
전화 +7-812-336-10-00
홈페이지 www.lottehotel.com/stpetersburg-hotel
2019. 10 에디터:정재욱
글: 이중한
자료제공: 이동혁(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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