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CULTURE

전시대 중앙에 놓인 양병용 작가의 베이지색 소반들

목공예가 양병용의 모던 소반
좌식과 독상 문화를 상징하는 전통 공예품 소반. 목공예가이자 소반 작가 양병용은 전통 기술을 활용해 모던하면서도 공예품의 소박하고 우아한 멋을 잃지 않는 소반을 만든다. 그 안에는 장인들에 대한 존경, 사용하는 이를 향한 정성과 마음을 담는다.
양병용은 열아홉 살에 자신이 평생 나무를 다루게 될 거라는 사실을 알았다.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물으면 늘 유년기에 관한 이야기를 합니다. 어릴 적 산에서 뛰놀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해요. 나무껍질의 촉감, 냄새, 잎사귀의 하늘거림, 그리고 겨울 즈음이면 형과 땔감으로 오리나무를 베던 추억. 그런 기억 덕분인지 나무가 너무 좋았어요. 그 후 고등학생 때 처음 목공 수업을 듣고 제가 평생 목공을 할 거라는 걸 알았죠.” 나무를 다루는 데 재능이 있지도, 스스로 ‘더딘’ 사람이라고 표현할 만큼 배움이 빠르지도 않던 그는 그저 나무가 좋아 목공을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는 2015년 프랑스에서 열린 생테티엔 국제 디자인 비엔날레(Biennale International Design Saint-Étienne)에서 현대 건축가 대니얼 리베스킨드와 함께 협업한 소반을 선보여 호평받았으며, 두 달 전에는 일본 가나자와에서 전시를 마쳤다. 느리지만 언젠가 될 거라는 확고한 믿음, 나무와 소반에 대한 애정이 그를 현대의 대표적인 소반 작가로 이끌었다.
양병용

반김 Craft 쇼룸에서 양병용 작가

삶과 가장 가까운 가구, 소반
소반은 한국의 좌식 문화를 상징하는 전통 공예품이다. 생산지와 형태, 용도 등에 따라 명칭이 붙는데, 종류만 60여 종에 이른다. 예를 들어 지역색이 두드러지는 통영반과 나주반이 있고, 소반의 형태에 따라 8각, 12각, 원형 등으로 분류되며, 다리 모양에 따라 개 다리 모양의 구족반(狗足盤), 호랑이 다리 모양의 호족반(虎足盤), 말 다리 모양의 마족반(馬足盤) 등으로 불린다. 과거 소반은 우리 삶과 가까운 소가구였다. 부엌에서 조리한 음식을 옮기던 쟁반이자 식사를 위한 밥상으로 주로 사용했다. 좌식과 독상 문화가 발달하던 조선 시대에는 집마다 여러 개의 소반을 두고 사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좌식 문화가 사라지고 겸상 문화가 퍼지며 소반 또한 가정에서 자연스레 자취를 감췄다.
현대에서 소반은 원래의 용도와 목적을 잃어버린 듯했다. 하지만 목공예가 양병용은 꾸준히 현대의 생활 공간에도 잘 어울리는 소반을 만들어왔다. 그 자체로 아름다운 공예품일 뿐 아니라 찻상이나 1인 밥상으로도 어색함이 없는 소반. 그의 소반은 형태가 간결한 것이 특징이다. 화려한 장식과 투박한 크기, 과한 옻칠을 덜어내 자연스럽게 아름답다. 전통적 디자인을 현대에 맞게 정제하되, 전통 수공예에서만 느낄 수 있는, 사람의 손길이 만들어낸 따뜻함과 편안함은 그대로 가져왔다. 잘 다듬어진 나무의 단단함과 매끄러움, 균형감도 돋보인다. 갖고 싶은 소반, 양병용의 소반을 보면 드는 생각이다.
양병용은 현재 파주에 ‘반김 Craft’라는 이름의 작업실 겸 쇼룸을 두고 있다. 손님에게 정성껏 만든 음식이나 다과를 소반에 내어주듯, 당신을 ‘반긴다’는 의미를 담았다. 쇼룸에서 소반이 현대의 생활 공간과 얼마나 잘 어우러지는지 확인할 수 있다. 쇼룸은 작가의 소반, 그리고 소반과 함께하면 좋은 백자 다기로 채워졌다. 정돈되고 세련된 공간 구성은 작가의 아내 솜씨다. 파주 쇼룸에서 전통과 현대의 교차점에 있는 소반 작가 양병용을 만났다. 넓은 창에서 들어온 빛이 공간을 아름답게 비추고, 소반이 있는 풍경은 조용하고 편안했다.
양병용

“조금 더 손맛이 남고 견고하게 만드는 것에 중점을 둡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수백 번의 칼질과 대패질을 합니다.”
양병용, 목공예가
Q. 다양한 목가구 중 전통 소반에 빠지게 된 계기가 있나요?
A. 나무를 회전해가며 깎는 목선반(갈이틀, Woodturning) 작업에 빠진 게 먼저였습니다. 목선반 기술을 습득하는 과정에서 서적과 실물 자료를 보며 원반(막소반)이라는 것에 매료되었고, 그러면서 전통 소반에 관심을 두게 되었죠.

Q. 하나의 소반은 어떤 과정을 거쳐 완성되나요?
A. 나무를 건조하고 마름질한 다음에는 대패질과 칼질 작업의 연속입니다. 그러고 나서 조립을 한 후 최종적으로 옻칠을 하죠.

Q. 만드는 과정에서 작가님이 특별히 주의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A. 중점을 두는 것은 조금 더 손맛이 남게, 견고하게 만드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 수백 번의 칼질과 대패질을 하죠. 만든 이의 따뜻한 손길을 느낄 수 있도록 사포질은 하지 않고요. 그게 바로 제가 옛 공예품에서 느낀 좋은 점이거든요. 많은 작가가 마지막에 사포질을 합니다. 표면을 갈아서 매끄럽게요. 그런데 정말 아름다운 공예품의 경우, 물론 미려하고 예리하게 가공된 것도 있지만, 그마저도 사포가 아닌 대패나 칼로 마무리 짓는 게 대부분이에요. 멀리서 보면 균형미가 있고 가까이에서 보면 사람의 손길이 자연스럽게 느껴지죠. 날카로운 부분도 편안하게 칼질이 되어 있고요. 처음에는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우린 늘 정확한 대칭을 이뤄야 하고, 조금 더 섬세하게 작업해야 한다고 배우잖아요. 그런데 옛 공예품은 그렇지 않거든요. 깎을 때는 과감하고 편안하게 했어요. 공예품은 이런 느낌을 줘야 해요. 그것이 만든 사람의 흔적이고, 손길이고, 손맛인 거죠.
반김 쇼룸

반김 Craft 쇼룸에서 소반과 함께 소개하고 있는 백자 다기들

반김 쇼룸

차와 다과가 올려진 양병용 작가의 소반 트레이와 원반

Q. 작가님의 소반은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입니다. 디자이너의 자아를 갖고 계신 것 같기도 하고요.(웃음)
A. 디자인의 기본은 시대의 환경에 맞추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현대의 삶은 단순하고 가벼운데, 실생활에 쓰이는 것에 옛것의 투박함을 지속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아 보여요. 이 휴대폰을 보세요. 심플하죠. 얇고 가벼워요. 이런 걸 매일 만지고 다루는 사람들에게 나의 투박한 게 좋다고 계속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작가도 어느 정도는 변해야 해요. 사람들이 어떤 걸 아름답다고 느끼는지, 왜 그것을 선호하는지, 그래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가끔은 이렇게 기계를 보면서 배우기도 합니다.

Q. 소반의 크기와 색깔도 조금씩 달라요.
A. 저는 똑같이 여러 개를 만드는 게 더 어려워요.(웃음) 나무를 보면 ‘이 정도 크기의 소반으로 적당하겠다’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어요. 재단해놓은 나무를 보면 아시겠지만, 크기가 제각기 달라요. 아주 특별한 일이 있지 않은 이상 10개의 크기가 모두 다르다고 해도 그렇게 진행합니다. 또한 손맛을 느낄 수 있게 크기가 같더라도 각각의 모양은 조금씩 다르길 원하고요.

Q. 나무를 보면 소반의 형태가 자연스럽게 떠오르나요?
A. 그럼요. 소반은 나무의 성질을 그대로 사용하는 게 많습니다. 나무의 성질과 결을 보고 연상해보죠. 그런 다음 머릿속에서 3차원의 형태를 만들어봅니다. 만족스러운 형태가 나왔을 때 나무에 표시를 해둬요. 스케치는 잘 하지 않지만,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싶은 게 있다면 나무에 스케치도 하고 특징을 적어두기도 합니다.
반김 쇼룸

벽에 걸어 보관하는 소반들. 소반이 마치 오브제 같다.

Q. 소반의 쓰임에 대해서도 생각하나요?
A. ‘어디에 놓일까’, ‘누가 어떻게 쓸까’는 제 몫이 아닌 것 같아요. 하지만 고려는 합니다. 그리고 ‘이 소반을 보고 쓰면서 무엇을 느낄까’를 계속 생각하고 스스로 질문하죠. 사실 저는 제 소반이 작품으로 불리기보다 따뜻한 공예품이기를 바라요. 과거 자식을 위해 소반을 만들었던, 아버지 같은 장인(匠人)의 손길이 되길 원하는가 봅니다.(웃음) 그래서 수작업의 흔적을 남기는 일에 중점을 두는 것 같기도 하고요.

Q. 작가님은 일상에서 소반을 어떻게 사용하나요?
A. 큰 12각 구족반 하나와 작은 원반 하나가 거실에 있어요. 침실에는 직사각 구족반이 있는데, 사이드 테이블로 사용합니다.

Q. 지역에 따라, 다리 모양에 따라 소반의 종류가 다양해요. 작가님은 어떤 소반을 좋아하나요?
A. 간결한 멋이 있는 강원반과 나주반, 그리고 화려한 듯 절제되고, 소반으로서 절정의 형태라고 생각하는 마족반을 좋아합니다. 목선반으로 시작과 끝을 볼 수 있는 원반도 좋아하고요.

Q. 마족반 다리의 곡선이 정말 아름다워요.
A. 그렇죠? 호족반과 구족반이 결합한 게 마족반입니다. 구족반도 무척 아름다운데 거기에 호족의 형태까지 갖추고 있는 거죠. 마족반은 둘의 장점을 취하면서 기술적으로도 한 단계 나아갔어요. 개인적으로 절정의 소반이 아닌가 생각하는 것도 그래서죠. 호족반과 구족반은 현재까지 남아 있는 게 무척 많지만, 마족반은 국내에 다섯 점도 채 남지 않았어요.

Q. 해외 전시에도 자주 참여하시죠? 그곳에서는 소반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궁금합니다.
A. 좌식 문화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다소 생소하게 느끼기도 하지만, 삶의 패턴은 비슷하기에 용도를 달리하며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마 한국의 단아한 멋이 느껴져 관심을 갖는 것 같아요.
반김 쇼룸

반김 쇼룸

반김 Craft 쇼룸 내부는 다양한 식물과 다기로 꾸며졌다.

“‘저 소반이 왜 아름답지?’ 생각만 하면 안 돼요. 손으로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표현했을 때, 조금 더 나아지는 거예요. 아름다운 노동이 계속되어야 좋은 작품이 나오죠.”
양병용, 목공예가
반김 쇼룸

빛이 잘 드는 반김 Craft 쇼룸 내부

Q. 여기가 쇼룸 겸 작업실이죠? 보통 언제 작업하나요?
A. 패턴이 조금씩 변하고 있어요. 새벽 일찍부터 시작할 때도 있고, 저녁 늦게까지 작업할 때도 있죠. 그래도 해야 할 때는 쉬지 않고 나무를 만지고 있습니다. 음, 그냥 멋만 내려고 하면 발전이 없습니다. 아름다운 노동이 계속되어야 좋은 작품이 나오죠. 이 점은 확신해요. 그래서 끊임없이 노력해야 해요. 좋은 소반을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것만 계속 본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요. ‘저게 왜 아름답지?’ 계속 생각만 하면 안 돼요. 손으로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표현했을 때, 조금 더 나아지는 거예요. 도구와 나의 기술이 발전해야 좋은 소반이 만들어집니다. 생각과 손이 함께 훈련되어야 하죠.

Q. 노동이라는 표현이 인상적이네요.
A. 옛 어르신들이 한 것이 아름다운 노동이었거든요. 나무를 얻기 위해 산에 오르고, 나무를 잘라 짊어지고 산을 내려왔죠. 그런 게 고통스러운 노동이 아니라 기물을 만들기 위한 과정 중 하나였어요. 저는 열아홉 살 때 목공을 시작해 거의 30년가량 이 일을 하고 있어요. 지겹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Q. 앞으로는 어떤 작업을 하고 싶나요?
A. 지금 많은 분이 원하는데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소반이 있어요. 그 소반을 만들 예정입니다. 제가 제시하고 싶은 소반이기도 해요. 조금 더 현대적인 것이기도 하고, 크기나 형태감에서 조형적으로도 충분한 소반입니다. 그리고 옛 어르신이 세심하게 표현한 것 중 제가 아직은 하지 못하는 표현이 있어요. 앞으로 1~2년 더 노력하면 될 것 같은데, 그 작업을 할 것 같습니다.

Q. 몇 년 뒤면 이런 능력을 갖출 수 있겠다, 이런 작품을 할 수 있겠다, 모든 계획을 세우셨나 보네요.
A. 그렇습니다.(웃음) 제가 처음 마족반 다리를 만들기 위해 10년을 기다렸어요. 2002년 처음 형태를 재단해보고 안 되겠다 싶어 멈췄다가 그 후 많이 보고 느끼고, 또 재단해보며 몇 년을 보냈어요. 그렇게 2012년이 되어서야 조은숙 아트앤라이프스타일 갤러리에서 마족반을 선보이게 됐지요.
치마상

치마상

마족 화형반

마족 화형반

원반

원반

나주반

나주반

Q. 끊임없이 계속하게 하는 확신은 어디에서 나오나요?
A. 제가 좀 더딥니다. 더딘데, 더딘 걸 그냥 기다리고 있으면 안 돼요. 계속 노력은 해봐야죠. 금방 되지는 않지만 충분히 될 거라는 건 알거든요. 제가 목선반을 3년 만에 독학으로 해냈어요. 혼자 3년 동안 끌고 갔습니다. 10년 정도가 지나니 스스로 기술자가 됐다고 느꼈어요. 꽤 어려운 의뢰가 들어왔는데, 제가 보자마자 거침없이 해내는 거예요. 제 자신이 기술자가 됐구나 싶었죠.(웃음) 그런데 100년, 200년, 그 이상의 시간이 집약돼 만들어진 것을 제가 감히 한 달 만에 어찌하겠어요. 약간이라도 표현하고 싶다면 계속 파고드는 거죠. 그렇게 반복하면서 실수도 하고, 그러다 보면 몇 년이 지나고, 그럼 언제쯤이면 되겠구나, 예상하는 거죠. 쉽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Q. 제 삶의 태도를 돌아보게 되네요.
A. 나무를 가공해둔 걸 보면 몇 년이 훅 지나가 있더군요. 1차 작업을 해놓고 나중에 나무를 보면 2014년이라고 적혀 있어요. 그런 거예요. 그냥도 시간은 가거든요. 가는데, 제가 이렇게 조금씩 노력하고 있는 것들은 틀림없이 나중에 좋은 결과로 나타난다는 거예요.

Q. 문득 작가님은 현재 자신이 만든 소반에 어느 정도 만족하는지 궁금합니다.
A. 한 90% 정도 일까요.(웃음) 그렇지만 늘 소반을 만들 땐 고객님이 가져 가서 잘 쓰셨으면 좋겠고, 쓸 때마다 기분이 좋기를 바랍니다. 사용하는 분도 작업자가 이런 마음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기쁠 것 같아요. 전 공예품을 감정 없이 만드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보다 기술이 뛰어난 분도 물론 있을 거예요. 그렇지만 나무를 좋아하고, 소반을 좋아하는 면에서는 제가 경쟁력 있지 않나 생각해요.

Q. 소반을 만드는 일이 즐거워 보입니다, 작가님.
A. 그래야 쓰는 분도 행복하다고, 저는 틀림없이 그렇게 믿어요.
반김 쇼룸

반김 Craft 쇼룸 전경

반김 craft
주소
경기도 파주시 돌곶이길 74-29
전화 +82-31-944-0776
인스타그램 www.instagram.com/bangim.craft
2019. 11 에디터:김혜원
포토그래퍼:안가람

Where to stay?

LOTTE HOTELS & RESORTS
  • 2019. 11
  • 에디터: 김혜원
  • 포토그래퍼: 안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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