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두까기 인형> © 마린스키 극장
마린스키 극장에서 펼쳐지는 한겨울 밤의 꿈, 호두까기 인형
올해도 어김없이 <호두까기 인형>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낼 당신을 위해 준비했다. 발레 <호두까기 인형>의 탄생 비하인드 스토리부터 올해 마린스키 극장의 무대 연출까지. 알고 보면 더 재미있다.
크리스마스 시즌마다 전 세계에서 인기리에 공연되는 발레극 <호두까기 인형>. 이 작품이 처음 무대에 오른 곳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마린스키 극장이다. 마린스키 극장은 작곡가 차이콥스키와도 끈끈한 인연을 자랑하는 유서 깊은 극장으로, 올해도 12월을 맞아 구관과 신관에서 서로 다른 버전의 <호두까기 인형>을 선보인다. 전통과 파격을 대표하는 두 버전의 <호두까기 인형>은 이 작품이 탄생하고 변화해온 역사를 돌아보게 한다.

마린스키 극장 구관 <호두까기 인형>의 ‘눈꽃 왈츠’ © 마린스키 극장


<호두까기 인형> © 마린스키 극장
드로셀마이어가 선물한 마법
<호두까기 인형>은 소녀 클라라가 크리스마스이브에 드로셀마이어 대부에게 호두까기 인형을 선물 받으면서 시작한다. 그날 밤 클라라는 호두까기 인형이 생쥐 왕과의 전투에서 승리하도록 도와주고, 멋진 왕자로 변신한 그를 따라 과자의 나라를 여행한다. 이 환상적인 발레의 원작은 1816년 독일 작가 E. T. A. 호프만이 쓴 동화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 왕>이다. 책 속에서 드로셀마이어는 고등법원 판사이지만 손재주가 좋아 아이들에게 신기한 선물을 잘 가져다주는 어딘가 미스터리한 인물로 등장한다. 사실 여기에는 호프만 자신의 모습이 투영돼 있다. 음악가가 되고 싶었으나 아버지의 뒤를 이어 법학을 공부한 그는 낮에는 법관으로 일하고, 밤에는 작곡을 하거나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이중생활을 했다. 호프만은 드로셀마이어처럼 친구의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만들어주고 동화를 들려주기를 즐겼다.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 왕>은 바로 이 아이들을 위해 쓴 동화로, 마리(발레에서는 클라라로 이름이 바뀌었다)와 프리츠 남매의 이름 또한 그들에게서 따왔다.
재미있게도 발레극 <호두까기 인형>의 작곡가 차이콥스키의 삶 역시 호프만과 묘하게 겹쳐진다. 차이콥스키는 법률학교를 졸업한 뒤 법무성 공무원으로 일하는 동시에,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서 작곡 공부에 열을 올렸다. 호프만과 다른 점은 결국 4년 뒤 사표를 던지고 본격적인 작곡가의 길을 걸었다는 것이다. 차이콥스키는 조카들에게 다정한 삼촌이기도 했다. 동성애자였던 그는 평생 자식을 두지 않은 대신 여동생 알렉산드라의 아이들을 몹시 아꼈다. 여동생네 집에서 가족 음악회가 열렸을 때, 차이콥스키는 어린 조카들을 위해 독일 작가 요한 카를 아우구스트 무제우스의 요정 동화 <빼앗긴 벨>을 소재로 단편 발레극을 작곡하기도 했다. 훗날 이 단편 발레극의 구상을 발전시킨 것이 그의 대표작 <백조의 호수>다.
여동생의 집에서 보낸 시간은 <호두까기 인형>에도 영감을 주었다. 처음 마린스키 극장으로부터 이 작품을 의뢰받았을 때 차이콥스키는 그리 내키지 않아 했다. 호프만의 동화를 발레로 옮기기에는 다소 유치하다 여겼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당시 그는 높은 명성만큼 바빠진 생활, 후원자 폰 메크 부인과의 이별, 동성애에 대한 비난 여론 때문에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극장과의 의리 때문에 작곡을 수락했지만 악상이 떠오르지 않아 고심하던 어느 날, 사랑하는 여동생 알렉산드라의 사망 소식이 날아든다. 슬픔에 잠긴 차이콥스키는 여동생에 대한 그리움을 <호두까기 인형>의 음악에 고스란히 녹여냈다. 그는 과자의 나라에서 안식처이던 여동생의 집을, 사탕 요정에게서 여동생을, 클라라와 프리츠에게서 조카들을, 드로셀마이어에게서 자신을 떠올린 것이다. 그리하여 일가의 행복한 한때는 차이콥스키의 마법 같은 음악 속에 영원히 살아 숨 쉬게 되었다.
재미있게도 발레극 <호두까기 인형>의 작곡가 차이콥스키의 삶 역시 호프만과 묘하게 겹쳐진다. 차이콥스키는 법률학교를 졸업한 뒤 법무성 공무원으로 일하는 동시에,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서 작곡 공부에 열을 올렸다. 호프만과 다른 점은 결국 4년 뒤 사표를 던지고 본격적인 작곡가의 길을 걸었다는 것이다. 차이콥스키는 조카들에게 다정한 삼촌이기도 했다. 동성애자였던 그는 평생 자식을 두지 않은 대신 여동생 알렉산드라의 아이들을 몹시 아꼈다. 여동생네 집에서 가족 음악회가 열렸을 때, 차이콥스키는 어린 조카들을 위해 독일 작가 요한 카를 아우구스트 무제우스의 요정 동화 <빼앗긴 벨>을 소재로 단편 발레극을 작곡하기도 했다. 훗날 이 단편 발레극의 구상을 발전시킨 것이 그의 대표작 <백조의 호수>다.
여동생의 집에서 보낸 시간은 <호두까기 인형>에도 영감을 주었다. 처음 마린스키 극장으로부터 이 작품을 의뢰받았을 때 차이콥스키는 그리 내키지 않아 했다. 호프만의 동화를 발레로 옮기기에는 다소 유치하다 여겼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당시 그는 높은 명성만큼 바빠진 생활, 후원자 폰 메크 부인과의 이별, 동성애에 대한 비난 여론 때문에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극장과의 의리 때문에 작곡을 수락했지만 악상이 떠오르지 않아 고심하던 어느 날, 사랑하는 여동생 알렉산드라의 사망 소식이 날아든다. 슬픔에 잠긴 차이콥스키는 여동생에 대한 그리움을 <호두까기 인형>의 음악에 고스란히 녹여냈다. 그는 과자의 나라에서 안식처이던 여동생의 집을, 사탕 요정에게서 여동생을, 클라라와 프리츠에게서 조카들을, 드로셀마이어에게서 자신을 떠올린 것이다. 그리하여 일가의 행복한 한때는 차이콥스키의 마법 같은 음악 속에 영원히 살아 숨 쉬게 되었다.

<호두까기 인형> © 마린스키 극장
차이콥스키와 마린스키 극장
오늘날 차이콥스키는 춤을 위한 반주에 불과하던 발레 음악의 지위를 격상시킨 작곡가로 인정받는다. 그의 발레 음악은 매 순간 드라마와 인물을 생생하게 묘사하면서도 전체적인 통일성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차이콥스키의 3대 발레곡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속의 공주>, <호두까기 인형> 모두 처음에는 관객에게 환영받지 못했다. 지금은 고전 발레극의 대명사가 된 <백조의 호수>는 1877년 모스크바 황실 볼쇼이 극장에서 초연했을 때만 해도 혹평을 받았다. 실패에는 안무와 무대 연출, 무용수의 미흡함을 비롯한 여러 요인이 작용했지만 차이콥스키의 음악이 기존 발레 음악에 익숙한 관객에게 너무 중후하게 느껴졌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이 일로 크게 상심한 차이콥스키는 다시는 발레 음악을 작곡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1881년 황실 극장인 마린스키 극장의 감독관이 된 이반 프세볼로즈스키는 차이콥스키야말로 단순한 오락거리로 전락해가는 러시아 발레에 혁신을 일으킬 인물임을 알아보았다. 그는 극장의 종신 발레 작곡가를 해고하고 차이콥스키에게 끈질기게 작곡을 의뢰했다. 결국 차이콥스키도 마음을 열고 마린스키 극장 수석 발레 안무가인 마리우스 페티파와 힘을 합쳐 1890년 <잠자는 숲속의 공주>, 1892년 <호두까기 인형>을 선보였다. 프세볼로즈스키와 페티파는 차이콥스키 사후 <백조의 호수>를 다시 무대에 올려 빛을 보게 한 일등 공신이기도 하다.
차이콥스키의 3대 발레곡 가운데 가장 마지막 작품인 <호두까기 인형>은 애상적인 분위기의 전작들과 달리 밝고 부드러운 선율로 넘쳐흐른다. ‘눈꽃 왈츠’에서 발레 음악 최초로 어린이 합창단을 등장시키고, ‘사탕 요정의 춤’에서 첼레스타라는 새로운 악기를 사용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건반악기 첼레스타는 1886년 발명되어 당시만 해도 유럽에 거의 보급되지 않은 악기였다. 파리에서 첼레스타를 발견하고 그 영롱한 음색에 반한 차이콥스키는 다른 러시아 작곡가에게 선수를 뺏기는 일이 없도록 악기 구입 사실을 꽁꽁 숨겼다고 한다. 이 첼레스타 덕분에 그는 사탕 요정에게 딱 맞는 사랑스럽고 달콤한 음악을 완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1881년 황실 극장인 마린스키 극장의 감독관이 된 이반 프세볼로즈스키는 차이콥스키야말로 단순한 오락거리로 전락해가는 러시아 발레에 혁신을 일으킬 인물임을 알아보았다. 그는 극장의 종신 발레 작곡가를 해고하고 차이콥스키에게 끈질기게 작곡을 의뢰했다. 결국 차이콥스키도 마음을 열고 마린스키 극장 수석 발레 안무가인 마리우스 페티파와 힘을 합쳐 1890년 <잠자는 숲속의 공주>, 1892년 <호두까기 인형>을 선보였다. 프세볼로즈스키와 페티파는 차이콥스키 사후 <백조의 호수>를 다시 무대에 올려 빛을 보게 한 일등 공신이기도 하다.
차이콥스키의 3대 발레곡 가운데 가장 마지막 작품인 <호두까기 인형>은 애상적인 분위기의 전작들과 달리 밝고 부드러운 선율로 넘쳐흐른다. ‘눈꽃 왈츠’에서 발레 음악 최초로 어린이 합창단을 등장시키고, ‘사탕 요정의 춤’에서 첼레스타라는 새로운 악기를 사용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건반악기 첼레스타는 1886년 발명되어 당시만 해도 유럽에 거의 보급되지 않은 악기였다. 파리에서 첼레스타를 발견하고 그 영롱한 음색에 반한 차이콥스키는 다른 러시아 작곡가에게 선수를 뺏기는 일이 없도록 악기 구입 사실을 꽁꽁 숨겼다고 한다. 이 첼레스타 덕분에 그는 사탕 요정에게 딱 맞는 사랑스럽고 달콤한 음악을 완성할 수 있었다.

마린스키 극장

마린스키 극장 신관
다양한 버전의 <호두까기 인형>
<호두까기 인형>은 그랑 파 드 되(클라이맥스에서 남녀 주인공이 추는 2인무)를 누가 추느냐에 따라 크게 두 가지 형식의 연출로 나뉜다. 초연의 대본과 안무를 맡은 페티파는 주인공이지만 어린 소녀인 클라라 대신 사탕 요정과 기사에게 그랑 파 드 되를 맡겼다. 그런데 이 초연은 실패를 맛보았다. 1막이 어린 무용수 위주로 흘러가고, 최고의 볼거리인 그랑 파 드 되가 2막 끝에야 나오는 등 당시 발레로서는 낯선 형식 탓이었다. <호두까기 인형>이 지금처럼 인기를 끌게 된 건 바실리 바이노넨이 새로운 안무를 선보이면서부터다. 1934년 키로프 극장(소련 시대 마린스키 극장의 이름) 무대에 오른 공연에서 바이노넨은 클라라의 이름을 러시아식 이름 마샤로 바꾸고, 꿈속에서 성인이 된 마샤가 왕자로 변신한 호두까기 인형과 함께 그랑 파 드 되를 추게 했다. 또 마지막에 마샤가 꿈에서 깨어나는 장면을 더해 페티파 버전보다 현실적으로 끝맺었다. 현재 마린스키 극장 구관에서 공연하는 <호두까기 인형>은 이 바이노넨 버전을 따른다. 12월 31일 저녁, 올해의 마지막 공연에는 마린스키 발레단 최초의 동양인 발레리노로 입단해 수석무용수가 된 김기민이 왕자로 무대에 설 예정이다.

마린스키 극장 구관 <호두까기 인형>, 오른쪽 김기민 발레리노 © 마린스키 극장
한편 마린스키 극장 신관에서는 한층 파격적인 해석의 <호두까기 인형>을 만날 수 있다. 전위예술가 미하일 체미아킨이 각색하고 키릴 시모노프가 안무를 짠 이 버전은 2001년 마린스키 극장에서 첫선을 보였다. ‘크리스마스의 악몽’이라 할 만한 그로테스크한 분위기가 특징으로, 주인공 마샤는 프리츠만 예뻐하는 가족 사이에서 차별받는 외로운 소녀로 묘사된다. 미하일 체미아킨이 디자인한 세트와 의상은 그런 마샤의 불안하고 우울한 심리를 잘 표현한다. 원래대로라면 1막 끝을 아름답게 장식해야 할 ‘눈꽃 왈츠’는 폐허가 된 교회 묘지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무용수들은 새하얀 튀튀 대신 검은 옷에 눈 알갱이를 매단 기괴한 차림새다. 그들은 흩날리는 눈송이가 아닌 휘몰아치는 눈보라가 되어 과자의 나라로 떠나는 마샤의 목숨을 노린다. 이 잔혹 동화의 결말은 마샤가 고통스러운 현실로 돌아오기를 거부하고 영영 꿈에서 깨어나지 않는 것이다. 초연 당시 객석에 앉은 아이들을 충격에 빠뜨린 이 버전은 지금 보아도 독특한 매력을 지녔다. 올겨울 마린스키 극장에서 호두까기 인형과 함께 낭만적이고 행복한 꿈을 꿀 것인지, 어둡고 기묘한 꿈을 꿀 것인지는 관객의 선택에 달렸다.

마린스키 극장 신관 <호두까기 인형>의 그랑 파 드 되 © 마린스키 극장


마린스키 극장 신관 <호두까기 인형>의 ‘눈꽃 왈츠’ © 마린스키 극장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머물 곳: 롯데호텔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에 있는 롯데호텔상트페테르부르크는 미국의 첫 러시아 대사인 존 퀸시 애덤스가 한때 집무실로 사용했던 유서 깊은 건축물을 리모델링해 개관한 것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 명소인 성 이삭 성당 맞은편에 위치해 전망이 매우 아름다우며, 예르미타시 미술관, 마린스키 궁정 등 주요 관광지와도 가깝다. 2개의 레스토랑과 루프톱 바, 만다라 스파와 피트니스 클럽 등 세계적인 수준의 다이닝과 최고급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어 여행자들에게 인기가 많다. 150개의 객실은 인테리어에 따라 클래식과 모던으로 나뉘며 취향대로 객실 유형을 선택할 수 있다.



주소 2, Antonenko lane, Saint-Petersburg, Russia, LOTTE HOTEL ST. PETERSBURG
전화 +7-812-336-10-00
홈페이지 www.lottehotel.com/stpetersburg-hot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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