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CULTURE

되새김의 장소,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최근 서울의 가장 핫한 ‘인스타그래머블 플레이스’로 꼽히고 있는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하지만 이곳은 그저 사진 찍기 좋은 공간으로만 놓아두기엔 아쉬운 곳이다. 건축가 이상래와 박종민이 카메라를 들고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이 위치한 서소문역사공원을 찾았다. 건축가의 안내로 이 장소의 의미를 들여다보았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던 서소문 밖 네거리
조선 시대 한성(서울)은 여타 동아시아 지역 도시와 구별되는 특징이 있다. 당대 인문학적 개념을 유연하게 해석해 주어진 환경과 맞서지 않는 형태로 도시 공간 구조를 조성한 것이다. 예를 들면 사대문은 한성의 물리적 방향에 따라 설치되었음에도 남대문은 실제 방향과 크게 어긋난 서대문 쪽으로 치우쳐 있는데, 그 이유가 바로 남산이라는 자연적 제약 때문이다. 
사대문 사이에는 4개의 작은 문을 두어 도성 안의 물리적 경계를 완성하고 외부 세계와의 관계를 확장해나갔다. 남대문과 서대문 사이에 서소문을 만들다 보니, 짧은 거리에 세 곳의 문이 자리하게 되었다. 서소문 밖 네거리는 조선 시대 만초천을 따라 북쪽에서 내려오는 의주로(한성-의주를 연결한 간선로, 현재 통일로)와 서강, 용산, 마포 쪽 포구들을 통해 들어오는 교통의 요충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성곽의 경계를 따라 남대문시장, 칠패시장, 서소문시장이 연이어 생겨나 한성의 가장 번잡스러운 장소 중 하나가 되었다. 

조선 시대 국사범에 대한 처형은 백성들에게 경각심을 일으킬 목적으로 사람이 많이 모이는 번잡한 장소에서 거행했다. 홍경래의 난, 신유 · 기해 · 병인 등의 천주교 박해, 갑신정변, 동학농민운동의 주요 인물들이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참수되었다. 서소문은 ‘시구문’이라고도 불리던 도성 안 죽은 몸이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두 곳(한 곳은 동소문이다) 중 하나이니 이 장소의 운명은 도시가 만들어질 때부터 그리 정해진 것이다. 
하지만 차마 죽음을 목도(目睹)할 수 없는 삶이 지속되던 곳이기도 하다. 기차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고 물건을 주고받는 시장이 있었고, 실직한 아비들이 배회하고 아이들이 참새처럼 재잘대며 지나가던 삶의 터전이자 휴식처이기도 했다.
서소문역사공원

서소문역사공원

서소문역사공원의 현양탑(위)과 티머시 슈말츠의 작품 ‘노숙자 예수 2013’(아래 오른쪽)

서소문역사공원의 현양탑(위)과 티머시 슈말츠의 작품 ‘노숙자 예수 2013’(아래 오른쪽)

도심의 공원 그리고 추모의 공간, 서소문역사공원
서소문역사공원은 2011년 7월 24일 천주교가 주축이 되어 사업을 제안한 지 8년 만인 2019년 6월 1일 개장했다. 정동이나 서대문 쪽에서 서소문 고가 차도를 따라오는 길과, 수제화 거리를 따라 염천교를 건너오는 길이나 서울역, 중림동 방향에서도 걸어서 갈 만한 거리다. 기존 지상의 서소문공원과 지하 4층 규모의 꽃시장과 지하 주차장, 재활용센터로 사용하던 곳 중 일부를 리노베이션해 만든 서소문역사공원은 지상의 공원과 지하의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으로 나뉜다. 

서소문역사공원은 신유 · 기해 · 병인 등의 천주교 박해 때 이곳에서 참수된 순교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현양탑과 거리를 배회하고 노숙하던 모든 가난한 자를 위로하는 티머시 슈말츠(Timothy Schmalz)의 ‘노숙자 예수 2013’ 같은 기념비와 조각상이 있고, 의주로를 따라 한강으로 흘러가던 만초천과 참수 후 망나니가 칼을 씻었다고 전해지는 두께우물 등 역사적 장소들을 재현한 추모 역사 공원이다. 

추모의 기능과 동시에 주변과 장소가 지닌 의미들을 도시의 일상적 문맥 안으로 통합하려는 도심 근린공원으로서의 기능도 이 프로젝트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다. 바람에 살랑이는 핑크뮬리, 홍띠, 붖꽃류, 모닝라이트 억새, 은쑥 등의 지피 식물과 자작나무, 회화나무, 소나무, 마가목 등 다채로운 수종의 나무들이 붉은 벽돌과 토목용 문양 거푸집을 거칠게 가공한 노출 콘크리트, 내후성 강판 등 건축물의 물성과 대비되어 서로를 빛나게 해주고 있다. 건축물이 은유와 환유의 방법을 통해 장소를 기억하게 한다면, 조경은 색감이나 의미를 가진 나무와 만초천 변의 식생 풍경을 재현하는 등 좀 더 직접적인 방법으로 장소의 의미를 환기시켜준다.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하늘광장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하늘광장

기억의 무대,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공원 지하의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은 기존 건물의 일부인 재활용센터와 지하 주차장은 그대로 둔 채 지하 4층 규모로 구성되어 있다. 박물관은 성지의 종교적 의미와 이 땅에 새겨진 역사적 기록과 유물들을 전시하고 입체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상설, 기획 전시 공간을 갖추고 있으며, 정보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닌 종교적 의미와 역사적 사건들을 해체해 방문자가 공간을 통해 본질적 의미를 체감할 수 있게 구현한 ‘성 정하상 기념 경당’과 ‘콘솔레이션 홀’, ‘하늘광장’ 등으로 이어지는 은유적 공간으로 구성된다. 그래서 이 공간들은 건축의 언어라기보다는 폴란드의 연출가 '타데우스 칸토르’식의 무대와 배우의 경계를 허물어버린 연극적 공간에 가깝다.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진입 광장의 조형물(위)과 전시실 내부(아래)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진입 광장의 조형물(위)과 전시실 내부(아래)

박물관 진입부는 방문자를 위축시키는 낮고 깊은 공간이다. 입구 좌측으로 늘어서 있는 선큰(sunken, 지하에 자연광을 유도하기 위해 대지를 파내고 조성한 곳)의 조형물과 각각의 물성과 빛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다채로운 상(像)이 압박감을 덜어주어 종교적 공간으로 나아가게 해준다. 기존 건물의 단면 한계로 인해 입구 광장에서의 머뭇거림과 진입 공간의 압박감은 다가올 이 배회의 피날레를 극적으로 만든다. 

처음 마주하면 방향을 잃고 위치를 가늠하기 어렵지만 동선은 의외로 명료하다. 중앙 계단을 이용해 공간의 단면을 수직적이고 기능적으로 경험하거나 성 정하상 기념 경당으로 향하는 경사로를 따라 콘솔레이션 홀을 우회하는 것이다. 이 우회 혹은 배회의 길이 공간의 핵심적인 드라마를 탄생시킨다.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성 정하상 기념 경당으로 향하는 경사로와 경당 내부

성 정하상 기념 경당으로 향하는 경사로와 경당 내부

무신론자이며 모든 종교에 관대했던 무굴제국의 위대한 왕 악바르의 아그라에서의 영적 체험으로 만들어진 기도자들을 위한 성소인 ‘이바다트 카나(Ibadat khana, 예배의 집)’처럼 상징이나 권위로 종교성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이 전하는 아우라를 통해 방문자들을 침묵하게 만들고 겸허히 내면의 갈등과 마주서게 한다. 건축가(윤승현, 인터커드)의 의도대로 가톨릭 성지라는 중압감 없이 공간을 배회하다 보면 어느 순간 종교적 의미들을 묵도(默禱)하게 될 것이다. 

내면으로 침잠하는 하강의 기운이 느껴지는 경사로와 성 정하상 기념 경당의 불빛과 성가 소리를 따라 가다 보면 반중력 상태로 매달려 있는 거대한 정육면체의 콘솔레이션 홀(Consolation Hall)과 마주한다. 세밀하게 맞춰진 열연의 흔적이 남아 있는 열연강판의 무늬들은 마치 흘러내리는 위안의 눈물처럼 보인다.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콘솔레이션 홀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콘솔레이션 홀

사람이 겨우 드나들 정도로 바닥에서 살짝 떠 있는 정육면체가 따뜻하게 감싸 안아 늦은 오후의 배회를 나른하게 풀어주는 편안함을 선사한다. 만초천을 상징하는 바닥의 희미한 빛을 따라 2m가 조금 넘는 24개의 문을 따라 나서면 드라마틱하게 하늘광장과 마주 선다. 지상에서 보던 붉은 벽돌 구조물은 배회의 끝 무렵에야 온전한 모양과 쓰임새를 드러낸다. 건축가가 이 장소에서 의도했던 건축적 시나리오는 순교 성인들과 ‘때’에 앞서 있거나 어긋나 있던 의로운 이들의 죽음이 천상으로 승화되는 듯한 공간적 해방감이 아닐까? 붉은 벽돌과 순교 성인 44인을 상징하는 정인 작가의 설치미술 작품 ‘서 있는 사람들’이 어울려 묘하게 감정을 끓어오르게 한다. 효수된 채 서 있는 사람들의 붉은 기운들이 순수한 사각형 공간과 바닥까지 일관되게 포장된 벽돌에 담긴 가을 하늘이 겹쳐 감정의 전환과 정화를 맛보게 해준다. 

현양탑에서 본 마태복음 5장 6절의 ‘복 되어라 외로움에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이 되살아나 천상의 세계로 솟아오르는 것 같다. 그래서 이것은 장소를 기억하는 묵시론적 지옥도의 풍경이 아니라 연극이 끝나면 삶의 의미와 살아 있음의 설렘이 밀려오는 한 편의 잘 만들어진 비극에 가깝다. 모두가 파멸에 이르는 셰익스피어적 비극이 아니라 파국에 이르러서야 인생의 의미와 삶의 지혜를 깨우치는 소포클레스적 그리스 비극에 가깝다.
순교 성인 44인을 상징하는 정인 작가의 설치미술 작품 ‘서 있는 사람들’

순교 성인 44인을 상징하는 정인 작가의 설치미술 작품 ‘서 있는 사람들’

서소문역사공원에서 약현성당으로
약현성당은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지와 함께 2014년 교황청이 공식 승인한 천주교 서울 순례길 제2코스 생명의 길 중 한 곳이다.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진입 광장에서 남쪽을 향해 있는 경사로를 따라가면 약현성당에 이른다. 약현은 약초밭이 많아 ‘약현전’이라 불리던 곳을 줄여 부르기 시작하면서 탄생한 지명이다. 고산자 김정호 선생의 생가가 있던 곳이기도 하다. 1886년(고종 23년) 천주교가 공인된 후, 한국인 최초의 세례자인 이승훈 베드로의 집과 가깝고 박해로 순교한 서소문 밖 참형 터가 내려다보인다는 종교적 이유로 이곳에 들어선 약현성당은 명동성당을 설계한 프랑스인 코스트 신부가 1892년 한국 최초의 서양식 고딕 성당에 가깝게 세운 것이다. 

서소문역사공원의 서쪽 언덕에 위치해 칠패로와 청파로가 만나는 삼거리 횡단보도를 건너면 입구와 마주 선다. 입구 왼편에 있는 오솔길인 기도동산의 순교자의 길(십자가의 길)을 오르다 보면 성당이 나무 사이로 옛 모습을 수줍게 드러낸다. 나무는 자랐으나 건물은 그대로이니 신자가 아니더라도 정겹고 따뜻하다. 서쪽을 향해 자리 잡고 있어 서향 빛이 좋은 느지막한 오후엔 스테인드글라스가 만들어낸 가장 아름다운 빛의 향연을 감상할 수 있다. 올라온 길을 뒤돌아보면 나무와 건물들이 높아져 순교 성지는 잘 보이지 않으나, 서소문역사공원의 남쪽 끝자락은 눈에 잡힌다. 약현성당 건립 100주년을 기념해 들어선 서소문 순교자 기념성당과 기념관, 1971년에 신도와 수사들을 위해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주상 복합 아파트인 성요셉아파트 등이 있어 함께 둘러봐도 좋다. 
오르는 길은 조금 힘들지만 내려가는 길은 순교자의 길이든, 서소문역사공원 쪽으로 가는 길이든, 중림동 방향으로 넘어가는 길이든 어느 길로 들어서든 상쾌한 내리막이다.
약현성당

약현성당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진입 광장에서 남쪽 경사로를 따라 내려가면 마주치는 약현성당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진입 광장에서 남쪽 경사로를 따라 내려가면 마주치는 약현성당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이용 시간
화요일, 목~일요일 9:30-17:30 / 수요일 9:30-20:30 / 월요일 휴무
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칠패로 5(중림동)
문의 +82-2-3147-2401
 
PROFILE
글을 쓴 건축가 이상래는 낙동강 상류 시골마을에서 나고 자라 건축을 업으로 삼고 있으며, 소외된 장소에서 일어나는 함축적이고 초월적인 날것의 생동감, 그 묘한 몸의 반응이 주는 경이로움을 즐긴다. 접점과 혼용이 만들어낸 지난 문명, 특히 아랍-이슬람과 그 중심의 오래된 도시들이 지닌 현재적 의미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사진을 찍은 건축가 박종민은 스튜디오모프 건축연구소를 운영하며 틈틈이 도시의 오래된 풍경을 담는 사진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2015년 삼청동 더스튜디오에서 사진전을 열었으며, 공저로 <건축 사진의 비밀>(디북)이 있다.
2019. 12 에디터:하재경
글: 이상래
포토그래퍼:박종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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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12
  • 에디터: 하재경
    글: 이상래
  • 포토그래퍼: 박종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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