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CULTURE

마당놀이가 온다
한때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지만 기억 속에서 잊힌 마당놀이가 다시 인기를 얻고 있다. 공연의 구성도, 질도 모두 업그레이드됐다.
판소리, 소리, 사설과 소설
한글이 문학으로 정착하기 이전인 조선 후기, 대중문학의 유통 통로는 주로 판소리와 판소리가 펼쳐지는 마당이었다. 부채를 든 소리꾼이 장단에 맞춰 노래하고 이야기하듯 말을 풀어가다 보면, 소리꾼 옆 고수는 추임새를 떠벌리며 북으로 리듬을 맞춘다. 이를 보는 군중들은 판소리로 생생한 소리 문학을 경험했다.
판소리가 지닌 재미있는 이야기들은 주로 입에서 입, 그러니까 구전으로 전해졌다. 전국 곳곳에서 공연하는 저잣거리 광대들은 이 방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이들은 넓은 마당에 판을 펴놓고 질펀한 입담과 풍자로 대중을 불러모았다. 각 지역과 시대마다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들은 그들 입에 넉넉히 풀칠할 수 있을 정도로 폭넓고 풍부했다.
이 중 몇몇 작품은 따로 글로 엮어 가사나 대본처럼 볼 수 있도록 정리되어 있는데, 이것이 판소리 사설이다. 판소리 사설 중 일부는 문학 장르인 소설 형식으로 다시 정리되어 규방과 노변 술집에서 널리 읽혔다. 이를 판소리계 소설이라고 부른다. 지금도 ‘춘향가’, ‘심청가’, ‘적벽가’, ‘홍보가’ 등 판소리다섯마당을 사람들이 알고 있고 이것에 익숙한 이유도 판소리 사설을 통해 판소리가 꾸준히 전수되어왔을 뿐 아니라, 판소리계 소설이라는 문학 장르로도 함께 정리된 덕분이다.

마당놀이

풍자와 해학은 마당놀이의 매력이다

마당에서 한바탕
판소리 형식의 공연이 정확하게 언제부터 시작했는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17세기 중반부터 서민층을 기반으로 자리 잡았다는 의견이 많다. 이 공연은 원래 넓은 공터나 마당에서 하는 놀이 중 하나로 시작했다. ‘판’은 마당을 말한다. 마당에서 한바탕 신나게 놀거나 행사를 치를 때는 으레 ‘판’을 붙였다. 광대들은 장날 넓은 공터에서 혹은 부잣집 잔칫날 마당에서 판을 벌였다. 백성에게 인기를 얻으며 17세기 이후 세 번의 백 년이 지나면서 판소리는 사람 대 사람, 전수의 과정을 거치면서 복원되고 변화했다. 판소리라는 명칭이 자리 잡은 것은 20세기에 들어서였다.
판소리계 소설을 기반으로 수백 년 전 마당에서 판을 벌이던 흥겨운 놀이가 현대에 다시 재현되어 인기를 끌었다. 그 시작은 1981년 <허생전>이었다. 공연 장르로서 ‘마당놀이’라는 명칭이 처음 등장한 것도 이때부터다. 마당놀이는 야외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놀이를 포괄적으로 일컫지만, <허생전>의 경우 판소리와 국악, 풍물 등으로 구성된 한국형 뮤지컬이라 할 수 있다. 내용은 잘 알려진 판소리나 설화 등을 현실에 맞게 각색하고 다듬었다.
마당놀이

이춘풍전을 각색한 <춘풍이 온다>

마당놀이의 시초인 <허생전>은 대중에게 무료로 선보였다. 공중파 방송국이 제작과 방송을 책임졌기 때문이다. 반응은 성공적이었다. 이후 4년 동안 무료로 진행하던 공연은 5년 차부터 유료로 바뀌었다. 이전까지 공짜로 보던 공연을 갑자기 돈을 내고 봐야 한다면 표를 사는 이가 많지 않을 거라는 우려도 있었지만, 객석은 늘 관객으로 넘쳐났다. ‘심청전’, ‘춘향전’, ‘흥부전’, ‘배비장전’ 등 매년 다른 작품이 마당놀이로 각색되어 무대에 펼쳐졌다. 그 시대에 걸맞은 풍자와 유머 그리고 춤과 노래, 판소리가 가득했다. 공연 내내 관객들은 박장대소를 했다. 당시 공연을 주도하던 인물은 극단 ‘미추’의 연출자 손진책 그리고 익살맞은 연기와 노래로 ‘마당놀이 3인방’으로 불리던 배우 윤문식, 김성녀, 김종엽이었다.
하지만 시대는 흐르고 세상은 빠르게 변해갔다. 20여 년 가까이 인기를 얻어온 마당놀이의 인기도 조금씩 시들어갔다. 어느새 연말이나 새해가 되어도 관객은 더 이상 마당놀이를 찾지 않았고, 결국 2010년을 끝으로 마당놀이는 관객을 찾아가지 않았다.
국립극장다운 마당놀이
4년이 지난 2014년부터 마당놀이는 ‘국립극장 기획 공연’이란 외피를 입고 다시 무대에 섰다. 극단 ‘미추’ 시절 마당놀이 전성기를 이끌었던 손진책이 다시 연출을 맡았다. 국립극장이라는 장점도 십분 살렸다. 국립창극단, 국립무용단, 국립국악관현악단 등 극장 내 소속 단체가 함께 공연에 참여했다. 더 전문적이고 스케일도 커진 무대가 만들어진 셈이다.
국립극장에서의 첫 공연은 효녀 심청으로 잘 알려진 <심청이 온다>. 마당놀이를 기억하는 옛 세대 관객들은 여전히 신나는 판소리, 춤과 해학이 어우러지는 공연에 반가워했다. 마당놀이를 처음 접하는 신세대 관객들은 시대를 유쾌하게 뒤틀고 풍자하는 공연을 보며 마당놀이가 마냥 촌스럽거나 고루하다는 편견에서 벗어났다. 특히 당시 항공기 회항 사건을 비꼬듯, “청이야. 땅콩은 접시에 담아왔느냐~” 등 뼈 있는 대사들은 객석을 뒤집어버리기도 했다.
<심청이 온다> 이후 <춘향이 온다>, <놀보가 온다> 등 매년 다른 공연이 무대에 올랐고, 큰 호흥을 얻었다. 경험이 붙은 데다 창극 및 판소리계의 몇몇 스타 배우들이 공연에 참가하면서 국립극장에서 마당놀이를 제작한다는 사실 자체가 큰 화제를 불러모았다. 창극단이나 무용단, 관현악단 등 마당놀이가 처음인 단원들이 대부분이어서 어색했다는 지적이 공연 초기에 있었지만, 몇 년이 지나니 전문가들답게 충분히 공연에 녹아들었다.  

<춘풍이 온다>는 국립극장 산하 단체가 함께 모여 작품을 완성했다.

2018년에 이어 2019년에도 <춘풍이 온다>를 공연한다. 지난해 공연은 판소리계 아이돌로 알려진 국립창극단의 김준수가 참여해 큰 인기를 끌었다. <춘풍이 온다>는 판소리계 소설 <이춘풍전>에서 모티프를 얻어 마당놀이로 각색되었다. 공부는 뒷전이고 가산을 탕진한 춘풍과 그를 유혹했던 기생 추월을 아내 김씨 부인과 몸종 오목이가 혼쭐을 내고 가정을 되살린다는 원작의 내용은 시대에 맞게 좀 더 젊어지고 신선해졌다. 마당놀이가 인기를 끈 이유 중 하나는 당대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데 있었다. 작품이나 상황에 따라 비틀기의 수위를 조절했지만, 사람들은 어느 시대든 마당놀이를 통해 속 시원한 풍자와 웃음을 원했다.
<춘풍이 온다>에서도 시대 읽기를 지나치지 않는다. 현재의 뉴스를 반영한 애드리브가 즐겁게 넘쳐난다. 올해 공연에서도 재기 넘치는 어떤 애드리브가 관객을 들썩이게 할지 기대된다. 특히 춘풍과 추월을 골리고 혼내는 아내 김씨 부인과 오목이의 ‘걸크래시’가 관객들에게 큰 호응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시대에 상관없이 관객을 웃고 울리는 공연은 항상 매력이 있다. 12월이면 그 공연을 확인할 수 있다.

마당극 <춘풍이 온다>
공연 일시 2019년 12월 12일~2020년 1월 26일
장소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문의 +82-2-2280-4114
홈페이지 www.ntok.go.kr
 
2019. 12 에디터:정재욱
자료제공: 국립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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