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YTRIP] 티무르 제국의 위대한 유산, 사마르칸트
14세기 유라시아를 평정한 위대한 정복자 아미르 티무르는 실크로드의 중심에 자리한 사마르칸트를 제국의 수도로 삼았다. 한때 세상의 중심이던 천년 고도 사마르칸트에서 찬란했던 옛 영광과 마주했다.
타슈켄트가 우즈베키스탄 정치와 경제의 중심이라면, 고대 건축물로 가득한 사마르칸트는 문화의 자부심이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고, 세계관광기구는 이곳을 ‘동방의 로마’라고 표현했다. 사마르칸트가 이토록 풍부한 유적을 보유한 이유는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바로 ‘대륙의 마지막 정복자’라고 불리는 아미르 티무르의 업적이다.
기원전 5세기경 문명이 시작된 사마르칸트는 동서양을 잇는 입지 탓에 여러 민족으로부터 침략을 받았다. 그러던 14세기 후반, 탁월한 전략가이자 리더인 티무르의 등장으로 사마르칸트의 지위는 단숨에 피지배국에서 지배국으로 바뀌게 된다. 중앙아시아를 통일한 그는 1370년 티무르 제국을 세우고 사마르칸트를 수도로 지정했다.
기원전 5세기경 문명이 시작된 사마르칸트는 동서양을 잇는 입지 탓에 여러 민족으로부터 침략을 받았다. 그러던 14세기 후반, 탁월한 전략가이자 리더인 티무르의 등장으로 사마르칸트의 지위는 단숨에 피지배국에서 지배국으로 바뀌게 된다. 중앙아시아를 통일한 그는 1370년 티무르 제국을 세우고 사마르칸트를 수도로 지정했다.


사마르칸트 거리 풍경
그 후 티무르의 군대는 중앙아시아를 넘어 오늘날의 러시아와 북인도, 중국에까지 세력을 떨쳤으며, 그 과정에서 얻은 부귀영화를 사마르칸트 부흥에 쏟아부었다. 나아가 학문에 조예가 깊었던 티무르의 손자 미르조 울루그베그는 선대에 축적한 부를 기반으로 15세기에 가장 진보한 학교와 천문대를 지었다. 당대 최고의 문화 예술과 기술, 학문은 실크로드의 허브이자 제국의 심장인 사마르칸트에 집결해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티무르 제국은 130여 년 만에 자취를 감추었지만, 사마르칸트에 보존된 수많은 유적이 수백 년 전의 영광을 들려준다.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에서 고속 열차를 타고 약 두 시간. 티무르의 기병이 누볐을지도 모르는 광활한 벌판을 달려 도시의 황금기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비록 티무르 제국은 130여 년 만에 자취를 감추었지만, 사마르칸트에 보존된 수많은 유적이 수백 년 전의 영광을 들려준다.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에서 고속 열차를 타고 약 두 시간. 티무르의 기병이 누볐을지도 모르는 광활한 벌판을 달려 도시의 황금기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레기스탄 전경
[10 AM] 레기스탄과 세 개의 마드라사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처럼, 과거 실크로드를 지나는 금은보화는 레기스탄을 거쳐야만 했다. ‘모래의 땅’이라는 의미를 지닌 레기스탄(Registan)은 원래 중앙아시아 도시 중심에 있는 광장을 통칭하는 말이었지만, 현존하는 곳 중에서는 사마르칸트의 레기스탄이 상징적으로나 심미적으로나 가장 독보적인 존재다.
광장 입구에 다다라 정면을 바라보면, ‘ㄷ’자 형태로 배치된 세 개의 이슬람 신학교 마드라사(madrasah)가 위용을 드러낸다. 티무르는 레기스탄을 실크로드에서 가장 번성한 시장으로 만들었지만, 그의 후손들은 이곳에 마드라사를 세우며 학문의 중심으로 탈바꿈했다.
광장 입구에 다다라 정면을 바라보면, ‘ㄷ’자 형태로 배치된 세 개의 이슬람 신학교 마드라사(madrasah)가 위용을 드러낸다. 티무르는 레기스탄을 실크로드에서 가장 번성한 시장으로 만들었지만, 그의 후손들은 이곳에 마드라사를 세우며 학문의 중심으로 탈바꿈했다.

셰르도르 마드라사 정문에 그려진 사자 그림

틸리아 코리 마드라사의 천장 장식
왼쪽에 있는 울루그베그 마드라사(1417~1421)는 울루그베그가 세운 명문 학교다. 종교뿐 아니라 수학과 천문학, 철학 등 다양한 학문을 가르쳤으며, 그에 어울리는 별과 기하학적인 패턴이 특징이다. 맞은편에 대칭을 이루는 건물은 셰르도르 마드라사(1619~1636)다. 정문에 그려진 사자는 동물 문양을 금하는 이슬람법에 반하는 탓에 큰 반발을 초래했지만, 현재는 우즈베키스탄 지폐에 사용될 만큼 인기다. 가운데에 있는 틸리아 코리 마드라사(1641~1660)는 사자 그림에 따른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지어졌는데, 그래서인지 유독 호사스럽다. 특히 사원 천장과 벽면을 수놓는 정교한 금박 장식에는 누구나 넋을 잃고 만다.
이슬람 교육의 중심지로 명성이 자자했던 레기스탄은 지금 전통 공예품 시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섬세한 수작업으로 만든 의상과 장식품이 세월에 마모되지 않은 사마르칸트인의 미적 감각을 보여준다.
이슬람 교육의 중심지로 명성이 자자했던 레기스탄은 지금 전통 공예품 시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섬세한 수작업으로 만든 의상과 장식품이 세월에 마모되지 않은 사마르칸트인의 미적 감각을 보여준다.

비비하눔 모스크
[11 AM] 티무르의 사랑, 비비하눔 모스크
티무르는 무려 8명의 왕비를 거느렸지만, 오늘날 여행자에게 기억되는 이름은 비비하눔이 유일할 것이다. ‘귀부인’을 뜻하는 비비하눔(Bibi-Khanum)은 티무르가 가장 총애한 아내 사라이 물크하늠의 별명이다. 그녀를 위한 비비하눔 모스크(1399~1404)를 짓기 위해 최고의 건축가는 물론 약 200명의 석공과 500명의 일꾼, 100마리의 코끼리가 동원됐다. 높이 40m에 달하는 사원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모스크였으며, 금과 대리석, 모자이크를 입힌 풍성한 장식도 화려함의 극치였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둘의 사랑은 모스크가 완공되면서 비극적인 결말로 치닫는다. 전설에 따르면, 티무르가 원정을 떠난 사이 한 건축가가 왕비의 미모에 매료되어 끈질긴 구애를 펼쳤다. 어쩔 수 없이 한 번의 키스를 허락한 왕비는 그 사실을 숨기려 하지만, 정열적인 입맞춤의 흔적까지는 지울 수 없었다. 이에 분노한 티무르가 건축가를 처형하고 사랑했던 아내까지 첨탑에서 떨어뜨려 죽였다는 것이다. 이야기의 진위는 알 수 없지만, 과거의 명성이 무색할 정도로 황량한 모스크를 걷다 보면 비참하게 죽은 비비하눔의 저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둘의 사랑은 모스크가 완공되면서 비극적인 결말로 치닫는다. 전설에 따르면, 티무르가 원정을 떠난 사이 한 건축가가 왕비의 미모에 매료되어 끈질긴 구애를 펼쳤다. 어쩔 수 없이 한 번의 키스를 허락한 왕비는 그 사실을 숨기려 하지만, 정열적인 입맞춤의 흔적까지는 지울 수 없었다. 이에 분노한 티무르가 건축가를 처형하고 사랑했던 아내까지 첨탑에서 떨어뜨려 죽였다는 것이다. 이야기의 진위는 알 수 없지만, 과거의 명성이 무색할 정도로 황량한 모스크를 걷다 보면 비참하게 죽은 비비하눔의 저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천국으로 가는 계단

샤히 진다 전경
[12 PM] 이슬람교도의 푸른 염원, 샤히 진다
이슬람 신자에게 사마르칸트 제일의 명소는 샤히 진다다. 티무르 왕족뿐 아니라 유명한 이슬람 지도자와 선교자가 잠들어 있기에 순례자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영묘를 만나기 전, 순례객은 먼저 ‘천국으로 가는 계단’을 오른다. 올라갈 때와 내려갈 때 센 계단 수가 같으면 천국에 간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다. 만일 계단 수가 다르다면 그 차이만큼의 죄를 용서받아야 한다.
계단을 지나면 20여 개의 묘가 좁은 통로를 사이에 두고 200m가량 늘어서 있다. 입구를 장식하는 채유 타일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푸른빛을 조화롭게 품는다. 햇빛에 따라 색을 바꾸는 표면과 끝없이 반복되는 정밀한 문양을 보고 있으면, 옛 장인의 숭고한 예술혼이 느껴진다. 샤히 진다의 건축가들은 형태나 패턴이 동일한 영묘는 한 채도 짓지 않았다. 그래서 혹자는 이곳을 ‘중앙아시아 건축 예술의 전시장’이라고도 표현한다.
계단을 지나면 20여 개의 묘가 좁은 통로를 사이에 두고 200m가량 늘어서 있다. 입구를 장식하는 채유 타일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푸른빛을 조화롭게 품는다. 햇빛에 따라 색을 바꾸는 표면과 끝없이 반복되는 정밀한 문양을 보고 있으면, 옛 장인의 숭고한 예술혼이 느껴진다. 샤히 진다의 건축가들은 형태나 패턴이 동일한 영묘는 한 채도 짓지 않았다. 그래서 혹자는 이곳을 ‘중앙아시아 건축 예술의 전시장’이라고도 표현한다.

울루그베그 천문대 전경
[2 PM] 사막에 꽃핀 과학의 보고, 울루그베그 천문대
사마르칸트 건축의 진수를 확인했다면, 이번에는 학문의 성지를 탐방할 차례다. 영토 확장에 일생을 바친 티무르와 달리 울루그베그는 과학을 통해 지식의 폭을 넓히려 했다. 그는 왕이기 전에 천문학자로서 자연의 이치에 관심이 많았다.
울루그베그 천문대(1419~1429)는 천문학을 향한 그의 집념이 응축된 결과다. 현재 복원된 천문대는 기본 골격과 지하에 있는 6각형 천체 관측기 일부에 불과하다. 본래 울루그베그는 40m 높이의 관측 돔에서 천체채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지구의 위치와 시간을 가늠했다고 한다. 그가 망원경도 없이 계산한 1년의 길이는 실제와 1분밖에 차이 나지 않을 정도로 정확했다.
그러나 지칠 줄 모르는 왕의 학구열은 과학의 발전을 경계한 종교 세력에겐 눈엣가시였을 터. 결국 울루그베그는 반대파의 사주를 받은 아들에 의해 암살당하고 만다. 모순적이게도, 후에 사마르칸트의 자랑이 될 그의 천재성 때문에 참혹하게 목숨을 잃은 것이다.
울루그베그 천문대(1419~1429)는 천문학을 향한 그의 집념이 응축된 결과다. 현재 복원된 천문대는 기본 골격과 지하에 있는 6각형 천체 관측기 일부에 불과하다. 본래 울루그베그는 40m 높이의 관측 돔에서 천체채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지구의 위치와 시간을 가늠했다고 한다. 그가 망원경도 없이 계산한 1년의 길이는 실제와 1분밖에 차이 나지 않을 정도로 정확했다.
그러나 지칠 줄 모르는 왕의 학구열은 과학의 발전을 경계한 종교 세력에겐 눈엣가시였을 터. 결국 울루그베그는 반대파의 사주를 받은 아들에 의해 암살당하고 만다. 모순적이게도, 후에 사마르칸트의 자랑이 될 그의 천재성 때문에 참혹하게 목숨을 잃은 것이다.

구르 에미르 전경
[4 PM] 왕이 잠든 곳, 구르 에미르
수도의 번영에 아낌없이 투자한 티무르였지만, 정작 자신은 사마르칸트를 포함한 그 어느 곳에도 안주하는 법이 없었다. 원정길이 곧 집이었고, 전쟁에서의 승리만이 살아가는 이유였다. 그리고 1405년, 티무르는 69세의 나이에 군사를 이끌고 명나라로 향하던 중 병사하고 만다. 가히 유목민다운 죽음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시신이 안치된 구르 에미르(1404)는 사실 티무르가 요절한 손자를 위해 지은 무덤이었다. 이듬해 자신도 이곳에 함께 묻히게 될 줄은 상상조차 못 했으리라. ‘왕의 무덤’을 뜻하는 이름답게 구르 에미르는 금과 터키옥, 대리석, 모자이크 등으로 호화롭게 장식되어 있으며, 64겹으로 주름진 돔이 권위를 더한다.
그의 시신이 안치된 구르 에미르(1404)는 사실 티무르가 요절한 손자를 위해 지은 무덤이었다. 이듬해 자신도 이곳에 함께 묻히게 될 줄은 상상조차 못 했으리라. ‘왕의 무덤’을 뜻하는 이름답게 구르 에미르는 금과 터키옥, 대리석, 모자이크 등으로 호화롭게 장식되어 있으며, 64겹으로 주름진 돔이 권위를 더한다.

구르 에미르의 돔 장식
지상에는 옥색 판으로 표시된 티무르의 모조 관이, 그리고 지하에 실제 관이 놓여 있다. 그의 무덤에는 “나의 평온함을 어지럽히는 자는 누구든 피할 수 없는 징벌과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라는 비문이 새겨 있다고 한다. 실제로 구소련 학자들이 1941년에 무덤을 발굴한 후 독일의 갑작스러운 침공을 받았으니, 그 이후로 감히 관을 열어보는 자는 없었을 것이다.
단 한 번도 영구적인 거처를 마련하지 않았던 티무르는 폐허에서 일군 도시, 사마르칸트에서 영원히 잠들었다. 찬란하던 티무르 제국의 영광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지만, 전성기 시절의 유산은 지금도 전 세계 여행자의 발걸음을 사마르칸트로 이끌고 있다.
단 한 번도 영구적인 거처를 마련하지 않았던 티무르는 폐허에서 일군 도시, 사마르칸트에서 영원히 잠들었다. 찬란하던 티무르 제국의 영광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지만, 전성기 시절의 유산은 지금도 전 세계 여행자의 발걸음을 사마르칸트로 이끌고 있다.



타슈켄트에서 머물 곳: 롯데시티호텔 타슈켄트팰리스
롯데시티호텔 타슈켄트팰리스는 우즈베키스탄에서 가장 현대적인 타슈켄트의 중심지에 자리한다. 국가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건물 안에는 특1급 호텔 수준의 세련된 객실과 다채로운 부대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우즈베키스탄 전통 요리부터 한식까지 다채로운 메뉴 제공하는 레스토랑, 최고의 휴식을 선사할 스파와 야외 수영장, 그리고 롯데호텔만의 세심한 서비스와 함께 여행을 마무리해보자.
주소: 56, Buyuk Turon Street, Tashkent, 100029, Uzbekistan
전화: +998-71-120-58-00
홈페이지: www.lottehotel.com/tashkentpalace-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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