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CULTURE

뮤지엄 산 전경 © 뮤지엄 산

산속 외딴섬, 뮤지엄 산
해가 지자 미술관도 어두워졌다. 최소한의 간접등만으로 불을 밝히고 큰 창을 통해 들어온 자연광을 조명으로 사용하는 이곳은 시간의 흐름에 정직하게 반응했다. 도시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스스로 고립을 택한 섬 같은 곳. 뮤지엄 산(Museum SAN)은 자연과 예술품 속에서 휴식과 자유, 아름다움에 관한 내밀한 경험을 선사하는 장소다.
뮤지엄 산을 찾아가는 여정은 고대의 유적지를 찾아 헤매는 마음과 같다. 당신이 자동차를 타고 이곳을 방문한다면, 차는 계속해서 산으로 향할 것이다. 그리고 미술관의 존재에 관해 의문이 들 때쯤 ‘뮤지엄 산’이라고 쓰인 입구가 나타난다. 서울에서 자동차로 1시간 30여 분 거리, 강원도 원주의 해발 275m 산중에 위치한 미술관이 바로 뮤지엄 산이다.
뮤지엄산

뮤지엄 본관 전경. 겨울 시즌에는 물이 없는 워터 가든이 관람객을 맞는다.

안도다다오

건축가 안도 다다오 © 뮤지엄 산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풍경
뮤지엄 산의 시작은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솔문화재단은 1997년부터 운영하던 종이박물관과 결합한 새로운 종합 미술관 건립을 추진했고,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에게 설계를 의뢰했다. “처음 부지를 봤을 때 가늘고 길게 이어진, 산 정상을 깎아놓은 듯한 아주 보기 드문 땅이어서 이곳에 주위와 동떨어진 별천지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라는 그의 말은 8년 뒤인 2013년 현실이 되었다. 2만 평이 조금 넘는 부지에 ‘빛의 건축가’, ‘자연의 건축가’로 불리는 그다운 정원이 만들어지고 건물이 들어섰다. 그리고 ‘서울에서 꽤 떨어진 외곽에 위치한 이곳까지 사람들이 과연 찾아올까’ 하는 안도 다다오의 우려와 달리, 그가 설계를 맡았다는 사실과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의 작품을 볼 수 있다는 소식에 뮤지엄 산은 개관 전부터 많은 이가 기다리는 장소였고, 2013년 미술관이 문을 열린 후 곧바로 원주의 명소가 되었다.
뮤지엄산

붉은 패랭이꽃이 만발한 봄의 플라워 가든 © 뮤지엄 산

미술관으로 통하는 두 개의 정원
뮤지엄 산은 산의 지형에 따라 오르막과 내리막을 오가며 웰컴 센터, 플라워 가든, 워터 가든, 뮤지엄 본관, 명상관, 스톤 가든, 제임스터렐관이 선처럼 이어진다. 먼저 플라워 가든과 워터 가든을 산책하듯 천천히 걸으며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을 만나고 작품을 감상할 준비를 한다. 티켓 발권소와 안내 데스크가 있는 웰컴 센터를 지나 가장 먼저 만나는 플라워 가든에는 5월부터 만개하는 붉은 패랭이꽃 80만 본이 심겨 있는 꽃밭과 180그루로 이루어진 하얀 자작나무 숲이 있다. 겨울에는 꽃을 볼 수 없는 대신 꽃밭 가운데 설치된 마크 디 수베로의 ‘제라드 맨리 홉킨스를 위하여(For Gerard Manley Hopkins)’의 붉은색이 더욱 강렬하게 방문객을 맞이한다.
뮤지엄산

워터 가든. 맑은 날에는 수면에 아름다운 주변 풍경이 담긴다. © 뮤지엄 산

자작나무 숲과 작은 담을 지나면 마지막 정원인 워터 가든과 뮤지엄 본관에 다다른다. 얕은 호수 같은 워터 가든의 수면 위로 주변 풍경과 뮤지엄 본관이 담긴다. 마치 본관이 물에 떠 있는 듯해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겨울 시즌에는 안전을 위해 워터 가든의 물을 빼니 방문 시 참고할 것). 워터 가든을 가로지르는 길에는 뮤지엄 산의 사진 명소이기도 한, 알렉산더 리버만의 붉은색 설치미술 작품인 ‘아치웨이(Archway)’가 웅장하게 서 있다. 뮤지엄 산에서 가장 인위적이고 이질적인 존재처럼 보이는 이 기하학적 형태의 작품을 눈앞에 두고 나서야 비로소 미술관에 왔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뮤지엄산

뮤지엄산

뮤지엄산

노출 콘크리트와 넓은 창으로 이루어진 뮤지엄 본관 내부

작품 속에서 작품 관찰하기
파주석으로 둘러싸인 단조로운 회색 건물의 뮤지엄 본관으로 들어서면 자연을 적극적으로 품으려 한 안도 다다오의 의도를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본관 내부는 파주석 박스 안에 노출 콘크리트 박스가 놓인 ‘Box in Box’ 콘셉트로 구성되어 있는데, 파주석 담과 처마 사이의 작은 창에서 들어오는 햇빛이 회색 복도를 따뜻하게 비추며 창밖으로는 자연의 아름다움이 담긴다. 파주석과 노출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단순하고 간결한 건물은 자연과 긴밀하게 이어져 있어 사계절 다른 시각적 즐거움을 안겨준다. 큰 창이 있는 곳에는 대부분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가 있다. 그곳에서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다. 이는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작품을 즐기는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청조갤러리

상설전이 진행 중인 청조갤러리

뮤지엄산

상설전 <한국 미술의 산책 V: 추상화> 전시 전경

백남준

백남준의 ‘커뮤니케이션 타워’

뮤지엄 본관은 2층 규모이며, 국내 최초의 종이 전문 박물관으로 개관한 한솔종이박물관을 전신으로 하는 페이퍼갤러리와 기획전 및 상설전이 열리는 청조갤러리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 상설전으로는 한국 추상미술을 대표하는 주요 작가인 김환기, 남관, 류경채, 문신, 유영국, 이성자 등의 작품을 볼 수 있는 <한국 미술의 산책 V: 추상화> 전이 진행 중이다. 뮤지엄 산의 소장품도 곳곳에서 접할 수 있는데, 백남준의 TV 작업인 ‘커뮤니케이션 타워’가 그중 하나다. ‘커뮤니케이션 타워’는 별도의 공간에 따로 설치되어 있으니 놓치지 말자.
뮤지엄산스톤가든

스톤 가든 © 뮤지엄 산

뮤지엄산명상관

명상관 © 뮤지엄 산

본관 뒤로는 안도 다다오가 경주의 신라 고분에서 영감을 받아 완성한 것으로 알려진 스톤 마운드를 만날 수 있는 스톤 가든이 자리한다. 개관 5주년을 기념해 만든 명상관 역시 스톤 마운드의 형태를 띠는데, 내부에 들어서면 반원 중앙의 갈라진 틈으로 비치는 햇빛과 풍성하게 울리는 소리에 자연스레 경건한 마음이 든다. 명상관에서는 매일 다양한 상시 프로그램과 스페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제임스터렐

James Turrell ⓒ Skyspace-TWILIGHT RESPLENDENCE, 2012. Photo by Florian Holzherr

제임스터렐

James Turrell ⓒ Wedgework-Cimarron, 2014. Photo by Florian Holzherr

제임스터렐

James Turrell ⓒ Ganzfeld-Aamdo, 2013. Photo by Florian Holzherr

제임스 터렐만을 위한 전시장
스톤 가든을 지나면 뮤지엄 산의 마지막 전시관인 제임스터렐관이 나온다. 제임스 터렐만을 위한 전시장인 이곳에서는 세계적인 설치미술가로서 ‘빛과 공간의 마술사’로 불리는 제임스 터렐의 다섯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제임스터렐관은 관람객이 작가의 작품에 온전히 몰입하게 하기 위해 입장 시간과 인원을 제한한다.
제임스터렐관에서 가장 먼저 마주하는 작품은 돔 형태의 타원 공간 ‘스카이스페이스(Skyspace)’. 천장에 난 구멍을 통해 시간과 날씨에 따라 달리 보이는 하늘이 자연스럽게 하나의 작품이 된다. 이어서 ‘호라이즌룸(Horizon Room)’, ‘간츠펠트(Ganzfeld)’, ‘웨지워크(Wedgework)’를 볼 수 있다. 모든 것이 통제된 공간에서 제임스 터렐이 만들어낸 빛을 경험하고 나면 '본다'는 행위가 어떤 것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제임스터렐관을 나오면 이곳에서 보낸 시간이 마치 꿈결 속 장면처럼 느껴진다.
뮤지엄산카페테라스

황홀한 뷰의 카페 테라스 © 뮤지엄 산

살아갈 힘을 되찾는 장소
제임스터렐관까지 관람을 마치면 관람객은 웰컴 센터로 가기 위해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간다. 스톤 가든, 뮤지엄 본관, 워터 가든, 플라워 가든으로. 그러면서 조금 더 여유로운 마음을 갖고 주변을 둘러보게 된다. 전망 좋은 카페 테라스에서 커피를 마시며 일행과 감상을 나눠도 좋고, 홀로 이곳을 찾는다면 더더욱 좋다. 일상에서 떠나와 깊게 사고하며 자신과 대화할 수 있는 장소와 시간이 주어지기 때문. 이를 통해 사람들은 자신의 새로운 창조성을 발견하고 삶의 에너지를 얻는다. 안도 다다오는 뮤지엄 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저는 건물 본체뿐 아니라 부지 전체를 하나의 뮤지엄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어른, 아이 모두 여기에 와서 하루를 보내면 자연과 예술에 대한 감성이 풍부해져서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고 ‘살아갈 힘’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곳 말이죠. 제 시도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요.” 그의 물음에 답하자면, 스스로 고립을 택하거나 산에 걸어 들어가는 것, 그러니까 뮤지엄 산을 찾는 것은 단연코 ‘살아갈 힘’을 되찾을 장소를 찾는 최고의 방법이다.
뮤지엄산

산중에 위치해 해가 지면 주변도, 뮤지엄도 금세 어두워진다.

뮤지엄 산
주소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오크밸리2길 260
전화 +82-33-730-9000
홈페이지 www.museumsan.org
2020. 2 에디터:김혜원
포토그래퍼:안가람 자료제공: 뮤지엄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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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2
  • 에디터: 김혜원
  • 포토그래퍼: 안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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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엄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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