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CULTURE

다이아몬드, 샹들리에 등 다양한 애칭을 지닌 시애틀 중앙 도서관 © Photograph by Philippe Ruault, Courtesy of OMA

냉정과 열정, 시애틀 중앙 도서관 vs. 팝 컬처 박물관
시애틀에는 두 개의 유명한 건축물이 있다. 렘 콜하스의 시애틀 중앙 도서관과 프랭크 게리의 팝 컬처 박물관. 찬란한 첫인상은 같을지라도 각 건축물을 대한 두 건축가의 자세는 전혀 다르다.
시애틀에 대한 당신의 상식을 시험해보자. 스타벅스와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Pike Place Market)은 건너뛰어도 좋다.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에서 보았듯, 흐린 날씨가 많고 올림픽국립공원 같은 대자연의 광활함이 가까이 있는 곳. 그리고 그 중심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 같은 거대 IT 회사가 본사를 두고 세계적 인재들을 끌어들인다. 그뿐인가. 너바나, 펄 잼, 앨리스 인 체인스 등 그런지 록 밴드를 배출했으며 전설의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가 태어난 곳. 그렇게 첨단과 도발이 공존하는 시애틀. 이곳 주민들의 어깨를 한 번 더 으쓱하게 만드는 두 개의 랜드마크가 있으니, 바로 시애틀 중앙 도서관(Seattle Central Library)과 팝 컬처 박물관(Museum of Pop Culture)이다.

번화한 다운타운에 자리 잡은 시애틀 중앙 도서관 건물 © Photograph by Philippe Ruault, Courtesy of OMA

이론을 토대로 쌓은 건축물, 시애틀 중앙 도서관
시애틀 공립 도서관 중에서도 대표 격인 시애틀 중앙 도서관은 오피스 건물이 밀집한 다운타운에 자리 잡았다. 기존 공간이 비좁아지자 도서관 측은 1998년 ‘모두를 위한 도서관(Library for All)’이라는 슬로건 아래 새 건물을 짓기 위한 모금 활동을 벌였다. 그렇게 모인 천문학적 모금액 안에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가 기부한 200억 원도 포함돼 있었다. 주민들의 기대와 관심이 눈덩이처럼 커진 가운데 설계는 네덜란드 OMA(Office for Metropolitan Architecture) 건축 사무소의 렘 콜하스(Rem Koolhaas)가 맡았다. 건축계에서 가장 영예로운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그는 뉴욕에서 현재 가장 주목받는 차기 건축물 뉴 뮤지엄(New Museum)의 분관 설계를 진행 중이다. 그런 콜하스를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대표작이 바로 이 시애틀 중앙 도서관이다. 

예측 불허한 비정형 형태의 도서관 외관 © Shutterstock

다이아몬드 패턴의 외피는 실내에서 창 역할을 한다. © Shutterstock

먼저 건물의 외관을 보자. 속사정을 모르는 이는 ‘건축가가 튀어보려 꽤 안간힘을 썼구나’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렘 콜하스가 누군가. 기존의 빌딩 설계가 외형을 먼저 계획하고 그 안에 사람들의 활동을 구겨 넣는 것이었다면, 그는 안에서 일어날 활동을 먼저 상상하고 윤곽 잡은 후 그것을 보호하기 위해 외관을 입힌다. 그렇기에 도서관 건물의 울퉁불퉁 각지고 접힌 표면도 내부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질 사람들의 동선과 활동을 우선시한 결과인 것.

확 트인 개방감의 10층 ‘Betty Jane Narver Reading Room’ © Photograph by Philippe Ruault, Courtesy of OMA

“아마도 OMA의 건축이 많은 사람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거예요. 행복해지라고 명령해서가 아니라 여러 제약을 극복하게 해주니까 행복한 거죠.” 어느 인터뷰에서 콜하스가 말한 것처럼 사람들은 그 안에서 독특한 자유를 경험하게 된다.  
 

실내 정원과 식물 모티프 카펫 덕분에 야외 느낌이 나는 3층 ‘리빙 룸(Living Room)’ © Shutterstock

디지털 시대를 리드하는 도서관
새 도서관 건물이 계획되는 시점, 인류는 21세기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늘어나는 자료와 이용자 수에 대비한 솔루션도 필요했지만 디지털 시대에 임하는 도서관의 역할도 생각해볼 때였다. 렘 콜하스는 OMA에서 함께 일하는 조슈아 래머스(Joshua Ramus), 시애틀에 있는 건축 사무소 LMN과 손잡고 리서치부터 시작했다. 그들은 언제 어디서건 정보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디지털 시대에도 사람들이 여전히 인쇄된 종이 책에 반응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또한 모든 연령대가 공감할 수 있는 다양한 매체를 평등하게 다루고 손쉽게 이용하게 돕는 것, 잘 큐레이팅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향후 도서관의 중요한 역할로 보았다. 여기에 사람들을 만나고 교류하게 하며, 다양한 요구를 해결해주는 사회적 책임감도 인지했다.
 

환영하는 듯한 분위기를 내는 연노랑색 에스컬레이터 © Photograph by Philippe Ruault, Courtesy of OMA

6층부터 9층까지, 4개 층을 연결하는 경사로 ‘Books Spiral’ © Photograph by Philippe Ruault, Courtesy of OMA

총 11층으로 구성된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면 주요 기능을 품은 다섯 덩어리와 그 사이를 흐르는 4개의 평면이 서로 쌓이고 중첩되는 형태를 띠고 있다. 그중에서도 도서관의 최고 자랑거리는 6층부터 9층까지 이어지는 논픽션 서적 코너 ‘북스 스파이럴(Books Spiral)’. 살짝 기울어진 경사로가 나선을 그리면서 4개 층을 하나로 연결해주는데, 덕분에 방문객은 도서관 분류 시스템에 따라 정리된 도서들을 끊김 없이 훑게 된다. 도서를 층층으로 나눌 수밖에 없었던 기존 도서관의 고질적 문제점을 해결한 것이다. 새 도서관에서는 스태프들의 역할도 더욱 중요해졌다. 사서들은 방문객과 더욱 인간적 교류를 주고받으면서 자신들의 전문성을 살린 서비스를 제공하길 원했다. 건축가는 1층 입구 대신 건물의 심장인 5층 ‘믹싱 체임버(Mixing Chamber)’실에 스태프 자리를 내주었다. 방문자들은 참신한 분위기에서 사서에게 전문적인 도움을 요청할 수 있고, 스태프 역시 건물에서 오가는 시간을 절약하게 된다. 그 밖에 공유 오피스처럼 사용할 수 있는 라운지와 그룹 작업실, 예약 후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 랩, 자동화된 도서 분류 및 운반 시스템, 건물의 어느 방향에 서 있는지에 따라 다른 도시의 전망, 드라마틱한 컷이 절로 나오는 완벽한 포토 존 역할까지. 이곳이 시애틀의 보석이라 불리는 이유는 밖에만 있는 게 아니다.

10층에서 아트리움을 바라본 모습 © Shutterstock

주소 1000 Fourth Ave. Seattle, WA 98104-1109
문의 +1-206-386-4636
홈페이지 www.spl.org
 

일렉트릭 기타를 연상시키는 팝 컬처 박물관 © Shutterstock

순수한 직관에 내맡긴 건축물, 팝 컬처 박물관
그런가 하면 캐나다 출생 미국 건축가 프랭크 게리는 직관을 우선시하는 예술가의 태도로 건축물을 짓는다. 게리가 디자인한 팝 컬처 박물관은 스페이스 니들과 함께 각종 문화 시설을 한데 모아둔 시애틀 센터(Seattle Center)에 자리하고 있다. 역시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세계적 건축가 프랭크 게리는 빌바오 구겐하임 뮤지엄(1997년)과 L.A. 월트디즈니 콘서트홀(2003년)을 설계한 인물로 유명하며, 지난해 가을에는 한국을 위한 첫 건축물로 루이 비통 메종 서울을 선보인 바 있다. 게리의 건축물은 밋밋한 도시 환경에 강렬한 환기를 불러일으키는 조각품이라 불릴 만하다. 심장을 뛰게 만드는 역동적인 조각 말이다.

다양한 텍스처와 컬러를 품은 외피 © Courtesy of The Museum of Pop Culture

2층부터 3층까지 관통하는 기타 조각 ‘IF VI WAS IX’ © Shutterstock

박물관의 설계를 의뢰한 건 빌 게이츠와 마이크로소프트를 공동 창업한 폴 앨런(Paul Allen)이다. 시애틀에서 나고 자란 그는 마이크로소프트를 떠난 후 기부와 개인 사업에 몰두했는데, 이 비영리 박물관도 그중 하나였다. 지미 헨드릭스의 열렬한 팬이었던 앨런은 초기에 이곳을 지미 헨드릭스 박물관으로 계획할 정도였다. 현재는 동시대 대중문화 박물관을 지향하며 박물관 이름에 ‘팝 컬처(대중문화)’를 넣었지만, 처음엔 음악에만 집중한 ‘EMP(Experience Music Project) 박물관’이었다. 박물관에서는 여전히 헨드릭스의 다양한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지미 헨드릭스를 오마주하는 의미로 만들어진 콘서트홀 ‘Sky Church’ © Courtesy of The Museum of Pop Culture

너바나를 비롯한 시애틀 그런지 록 그룹들의 악기와 무대 소품을 만나볼 수 있다. © Shutterstock

음악도 건물도 직관으로 느끼는 것, 영감이 폭발하는 경험
건축물의 목표는 로큰롤의 짜릿한 에너지를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디자인을 구상하면서 프랭크 게리는 여러 대의 일렉트릭 기타를 구입했고 그것을 조각으로 잘라 빌딩 블록으로 대입시키며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발전시켜갔다. 그렇게 기타의 형태에서 모티프를 얻은 뮤지엄은 마치 자신의 연주에 취한 뮤지션이 콘서트장에서 기타를 내팽개칠 때와 같은 폭발적 감각을 담고 있다. <시애틀 위클리>에서는 건물이 위에서 바라봤을 때 박살 난 전자 기타를 닮았다며 혹평했고, <포브스>는 세계에서 가장 못생긴 10개의 빌딩 중 하나라고 빈정댔다. 그러나 무엇을 느낄 것인지는 전적으로 방문객의 몫이다.

박물관까지 닿는 시애틀 센터의 모노레일 © Shutterstock

건물 외관의 물결치는 듯한 곡선 구조는 각기 다른 모양으로 자르고 형태 잡은 2만1,000개 메탈 판자를 3,300개의 패널로 만들어서 입힌 결과다. 참여한 엔지니어의 말에 따르면 어느 한 개의 패널도 같은 방식으로 조립하지 않은, 이제껏 그가 경험한 건축 중 가장 복잡한 건물 외관이었다. 골드와 실버, 레드, 블루, 보는 각도에 따라 톤이 바뀌는 퍼플까지 건물을 구성하는 색도 화려하다. 소재 역시 스테인리스스틸, 컬러 코팅 스테인리스스틸, 플루오린화 탄소 코팅 알루미늄 등을 다양하게 적용한 결과로 다양한 재질을 지니게 되었다.

외관의 오가닉 형태를 이어받은 실내 © Courtesy of The Museum of Pop Culture

실내에서도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짜릿함은 이어진다. 콘서트홀 ‘스카이 처치(Sky Church)’는 지미 헨드릭스를 오마주하기 위해 완성한 곳으로, 그가 생전에 언급한 것처럼 문화와 연령이 다른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음악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계획됐다. 26m 높이의 천장, 거대한 HD LED 스크린과 환상적 조명, 사운드를 지니며, 음악뿐 아니라 영화, 퍼포먼스 등의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방문객이 친구들과 함께 드럼과 기타, 키보드 등의 여러 악기를 사용하며 노래를 녹음할 수 있게 장비를 제공해주는 ‘사운드 랩(Sound Lab)’, 악기를 다룰 줄 모르는 이도 흥겹게 즐길 수 있는 테이블톱 연주 기기, 시애틀 출신 뮤지션의 소품과 음악 여정을 따라가는 전시 등이 준비되어 있다. 프로그램 역시 새로움을 추구하는데, 21세 이하의 뮤지션을 지원하는 ‘사운드 오프(Sound Off)’ 경연대회, ‘팝 콘퍼런스(Pop Conference)’ 등이 그 증거다.
 

모노레일과 만나는 건물의 서쪽 측면 © Shutterstock

박물관 앞에 설치된 기념 조형물 © Shutterstock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프랭크 게리는 “내면에서 소재를 끌어올려 죽지 않는 감정을 구현하는 것이야말로 가치 있는 일”이라고 예술의 역할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밝힌 바 있다. 비록 팝 컬처 박물관 건축물을 둘러싼 평은 엇갈리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건축가가 세간의 평가를 두려워했더라면 결코 이런 결과물은 나오지 못했으리라는 것. 그런 의미에서 건물은 직관에 충실함으로써 감히 누구도 상상하기 어려운 실험적 음악 세계를 펼쳐나간 지미 헨드릭스의 정신과 상통한다.   

주소 325 5th Avenue N Seattle, WA 98109
문의 +1-206-770-2700
홈페이지 www.mopop.org
 

SEATTLE CENTRAL LIBRARY

2020. 4 에디터:정재욱
글: 한예준
자료제공: OMA / 시애틀 중앙 도서관 / 팝 컬처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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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4
  • 에디터: 정재욱
    글: 한예준
  • 자료제공:
    OMA / 시애틀 중앙 도서관 / 팝 컬처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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