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불빛이 수놓은 도시의 밤. 호수의 물결은 빛으로 일렁이고, 거리는 여름밤의 낭만을 찾아 나선 이들로 붐빈다. 습기를 잔뜩 머금은 열대야가 극성을 부리는 6월의 하노이는 이열치열 열정을 불태우는 시민들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활기가 넘친다. 가슴을 뻥 뚫어줄 시원한 맥주 한 잔에 청량한 음악이 곁들여진다면 천국이 부럽지 않다. 그중에서도 영혼을 울리는 라이브 재즈 공연이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 귓가를 촉촉이 적시는 감미로운 재즈 선율은 도시의 밤에 내리는 축복이다.

흔히 재즈를 살아 있는 음악이라고 한다. 즉흥성이 매력인 재즈는 연주하는 사람, 관객과 상황에 따라 음악이 확연히 달라진다. 똑같은 악보를 연주할지언정 세상 어디에도 똑같은 재즈 연주는 없다. 이를 두고 재즈 색소포니스트 오넷 콜먼은 “재즈는 매일 밤 연주되지만 결코 같은 연주가 없는 유일한 음악”이라고 말한 바 있다. 따라서 재즈는 현재를 만끽하기 위한 최고의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에도 없었고 미래에도 없을 오늘 밤만의 고유한 연주. 여행지에서는 그 매력이 배가된다. 각 도시의 색을 투영한 재즈를 만나는 일은 낯선 도시에서 꼭 경험해봄 직한 여행 투두 리스트(To-do List) 중 하나다. 하노이에도 주옥같은 재즈 클럽이 곳곳에 숨어 있다. 최근 젊은 세대와 외국인을 중심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서호(West Lake)의 어번 젠트리(Urban Gentry)와 화려한 인테리어에 격조 높은 서비스를 자랑하는 쿨캣 재즈 클럽(Cool Cat Jazz Club) 등. 그중 빈민 재즈 클럽(Binh Minh Jazz Club)은 명실상부 하노이 재즈의 심장이다. 이곳은 하노이에서 가장 오래된 재즈 클럽으로서 살아 있는 전설을 이어가고 있다.

빈민 재즈 클럽은 베트남 재즈의 선구자 꾸옌 반 민(Quyen Van Minh)이 운영하는 라이브 클럽이다. 은빛의 파마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은 노신사, 한눈에도 예술가적 풍모가 넘치는 그는 저명한 색소폰 연주자로, 1990년대 초반부터 베트남의 재즈 문화 확산을 주도한 인물이다. 현재 하노이 국립 음악학교에서 재즈 이론을 가르치며 자가 소유의 라이브 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그에게는 남다른 포부가 있다. 베트남 재즈 음악가들이 국제 수준으로 도약할 수 있게 후학 양성에 힘쓰는 것, 그리고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하노이 시민에게 수준 높은 재즈를 선보이는 것이다.

평소 재즈를 좋아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재즈를 접한 적이 없는 사람도 부담 없이 빈민 재즈 클럽에 방문할 수 있다. 재즈가 뮤지션의 색채를 강하게 드러내는 음악 장르인 만큼 이곳에서 음악을 느끼다 보면 자연스레 베트남 사람과 문화에 대한 이해도 늘어날 것이다. 입장료는 따로 받지 않고 음료를 주문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는 깊은 밤, 운이 좋으면 색소폰 대가인 꾸옌 반 민의 연주를 들을 수 있다. 연주가 시작되면 청중은 모두 넋을 놓고 그의 음악 속에 빨려 들어간다. 그의 색소폰 소리가 너무도 특별하기 때문이다.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있고 다정하면서도 끝이 보이지 않는 깊은 음색이다. 그는 종종 베트남 음악을 재즈 스타일로 연주하는데, 곡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무한 외국인조차 자신도 모르게 감정 이입이 되어 눈시울을 붉힌다. 마치 가사가 있는 노래에 공감하듯 그가 음악에 담아 보낸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이다. 왜 음악을 만국 공통의 언어라고 하는지, 재즈를 관객과 연주자의 대화라고 하는지 깨닫게 되는 귀한 순간이다.

빈민 재즈 클럽
주소 1 Trang Tien, Phan Chu Trinh, Hoan Kiem District, Hanoi
전화 +84-24-3933-6555
영업시간 17:00~24:00(라이브 연주 21:00)
홈페이지 minhjazzvietn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