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CULTURE

Dale Chihuly, Glasshouse Sculpture, 2012, 8.2 x 30.5 x 7 m, Chihuly Garden and Glass, Seattle © Chihuly Studio Photo by Nathaniel Willson

컬러와 빛이 전하는 힐링, 치훌리 가든 앤 글라스
빛을 따라 아름답게 일렁이는 유리 조각 그리고 이에 매혹된 인간의 놀라운 도전과 상상력! 일상의 경이로 가득한 시애틀 최고의 예술 명소. 바로 치훌리 가든 앤 글라스다.
치훌리 가든 앤 글라스(Chihuly Garden and Glass, 이하 치훌리 가든). 아무 설명 없이 이곳의 명칭만 들으면 ‘치훌리’가 어떤 의미인지 조금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치훌리는 유대인 계통의 미국인 아티스트 데일 치훌리(Dale Chihuly, 1941~)의 성이다. 그는 뉴욕 보태니컬 가든을 포함한 미국 주요 도시는 물론이고 베니스의 운하와 광장, 런던 큐왕립식물원, 핀란드 누타예르비(Nuutajärvi) 강가, 예루살렘의 데이비드 타워 박물관, 네덜란드 흐로닝어르 미술관 등 세계의 수많은 매력적인 장소를 무대로 작품을 선보여왔다.
시애틀

외부에서 바라본 치훌리 가든 & 글라스. Dale Chihuly, Chihuly Garden and Glass, 2012, Seattle © Chihuly Studio

왜 치훌리일까?
바로 그 데일 치훌리가 50년 넘게 펼쳐온 작품 세계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곳이 치훌리 가든이다. 이곳은 1962년 세계박람회 개최지이자 지금은 시애틀에서 가장 유명한 종합문화센터 ‘시애틀 센터(Seattle Center)’ 내에 자리한다. 이곳의 대표적 아이콘 ‘스페이스 니들’을 소유한 라이트 패밀리(Wright Family)가 장소를 활성화하는 방안으로 예술 공간을 구상했을 때, 그 적임자로 떠올린 인물이 이 지역을 대표하는 아티스트 치훌리였던 것.

미국 태평양 연안 북서부의 대표 아티스트 치훌리. 그는 누구에게나 쉽고 접근이 용이한 예술을 지향해왔다. 차갑고 고고하여 일상을 하찮은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것이 아닌, 일상 속에서 새로운 영감을 발견하게 하는 예술. 그게 치훌리의 작품인 것이다. 여느 미술관과 달리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예술 공간을 원했던 라이트 패밀리의 기대에 이보다 잘 부합하는 작가가 또 있었을까?   
무려 6,070㎡(1,836평)의 대지가 주어졌고, 치훌리가 원한 것은 실내와 야외를 아우르는 전시 환경이었다. 그는 어릴 때 본 어머니의 정원을 떠올리며 조경 건축가와 협업해 ‘가든(Garden)’을 조성했고, 그 중심에 장소 특정적 조각 작품을 설치할 ‘글라스하우스(Glasshouse)’를 지었다. 치훌리는 평생 ‘유리 건물’에 대한 환상을 지니고 있었다. 유리 온실은 물론이고 유리로 만든 기차역, 인더스트리얼 빌딩 등 유리 건물이 담긴 엽서와 사진을 오랫동안 수집해왔다. 그런 의미에서 글라스하우스는 그 꿈의 결정체인 셈이다. 그는 평소 좋아하던 파리의 생트샤펠(Sainte-Chapelle)과 런던의 수정궁(Crystal Palace)에서 영감을 받아 이곳을 디자인했다. 또한 메인 건물인 ‘엑시비션 홀(Exhibition Hall)’에는 여덟 개의 전시실과 극장, 카페를 배치했다. 2012년 5월, 그렇게 장기 전시 개념의 치훌리 가든이 탄생했다.
 
시애틀

수족관의 해저 터널을 연상시키는 페르시안 실링. Dale Chihuly, Persian Ceiling, 1999, 10.7 x 4.4 m, Chihuly Garden and Glass, Seattle, installed 2012 © Chihuly Studio Photo by Terry Rishel

공예를 예술로 확장시킨 유리 아트의 선구자
치훌리가 처음부터 ‘유리’에 매료된 것은 아니다.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창의적 재능이 뛰어나던 치훌리는 워싱턴주립대학에서 인테리어 디자인을 전공했다. 이때 패브릭과 네온 같은 다양한 재료에 눈을 떴고, 자신이 만든 작품과 이를 둘러싼 환경이 맺는 상호 관계에도 흥미를 발견하게 되었다. 1961년, 유리를 녹이고 융합하는 방법을 배운 그는 집에서 혼자 스테인드글라스를 녹여 유리 불기를 시도한다. 생애 첫 ’버블’이었다.
그 순간부터 유리는 그의 운명이 된다. 1966년, 그는 미국 최초로 아티스트 대상의 유리 수업을 개설한 위스콘신 대학에 등록해 정식으로 유리 불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듬해에는 로드아일랜드 스쿨 오브 디자인(Rhode Island of School of Design, 이하 RISD)에 등록했으며 순수미술 세라믹 과정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때 장학금을 받고 해외에 나갈 기회가 생겼는데, 베니스의 베니니(Venini) 유리 팩토리로 가 견습생을 자원했다. 그는 그곳에서 유리를 분 최초의 미국인이다. 고국으로 돌아온 그는 RISD에 유리 프로그램을 신설하고 10년 넘게 학생들에게 유리 작업의 매력을 전수했다.   
조각가로서 브론즈와 세라믹 등의 재료도 시도했지만 유리만큼 치훌리를 만족시키는 재료는 없었다. 그에게 유리는 ‘빛을 영혼처럼 간직하는’ 특별한 영감의 대상이었으니까. 그는 유리 소재에 대한 일반적 선입견을 깨고 형태와 표현력의 가능성을 거침없이 실험해왔다.     
 

아티스트 데일 치훌리(Dale Chihuly) © Chihuly Studio

“유리는 그 어떤 재료보다 신비롭다. 특별한 방식으로 빛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데일 치훌리
소규모 오브제에서 환경을 바꾸는 대형 설치 작품까지
미술관에는 오디오 가이드가 준비되어 있다. 첫머리는 이 지역 출신의 영화배우 카일 매클라클런(Kyle Maclachlan)이 연다. 데이비드 린치 영화에 많이 등장했던 그는 이 지역의 독특한 문화적 배경이 자신에게도 좋은 영양분이 되었다고 설명한다. <트윈 픽스> 시리즈의 그를 떠올리니 어쩐지 묘하게 이해가 된다. 이윽고 치훌리와 동료 작가, 큐레이터, 함께 작업한 건축가 등이 차례차례 작품 설명을 이어간다.

인디언의 늘어진 바구니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 Dale Chihuly, Tabac Baskets (detail), 2008, Chihuly Garden and Glass, Seattle, installed 2012 © Chihuly Studio Photo by Nathaniel Willson

작품은 커리어 초반부터 시기별 대표작, 오직 이 장소를 위해 제작한 최신작까지 포함하고 있다. 전시 홀의 ‘노스웨스트 룸(Northwest Room)’에는 1977년 미국 원주민의 바스켓에 영감을 얻어 제작한 바스켓(Baskets) 시리즈가 있다. 바구니의 느슨한 비대칭 형태를 표현하기 위해 작가는 유리에 숨을 최대한 불어넣었고, 두께가 아주 얇고 푹 꺼지기 직전의 자연스러운 형태를 얻을 수 있었다. 여러 번의 실험 결과, 인위적 도구를 가미하지 않고 불과 뜨거운 열, 중력과 원심력만으로 모양을 만드는 방법을 터득했는데, 이 경험을 통해 그는 오가닉한 작업 방식을 선호하게 된다. 
 
시애틀

마치 스스로 움직이듯 오가닉한 형태를 지녔다. Dale Chihuly, Mille Fiori (detail), 2012, 3 x 17.7 x 6.1 m, Chihuly Garden and Glass, Seattle © Chihuly Studio Photo by Scott Mitchell L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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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저 생명체 혹은 식물을 연상시키는 조각. Dale Chihuly, Tiger Marlins (detail), 2012, Chihuly Garden and Glass, Seattle © Chihuly Studio Photo by Nathaniel Willson

핀란드의 강가에 처음 띄운 보트 콘셉트의 작품. Dale Chihuly, Float and Ikebana Boats, 2012, Chihuly Garden and Glass, Seattle © Chihuly Studio Photo by Terry Rishel

치훌리와 다른 조각가가 유리를 다루는 방식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다른 예술가가 유리를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기 위해 조종하는 것과 달리, 치훌리는 중력과 원심력만을 이용하는 것. 유리의 자유 의지에 맡겨 스스로 오가닉한 형태를 찾게 하는 것이다. 똑바르고 규칙적인 형태는 없지만, 그의 작품에서 생명체처럼 자연스러움이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태평양 연안에서 자라난 그가 물을 사랑하는 건 당연한 일. ‘물처럼 투명하고 반사되는’ 성질은 유리의 또 다른 매력이었다. 이 콘셉트를 반영한 것이 전시장의 ‘페르시안 실링(Persian Ceiling)’이다. 이는 상상의 해저 생물을 떠올리며 만든 페르시안 시리즈를 바탕으로 한다. 조개처럼 섬세한 패턴, 황홀하고 에너제틱한 컬러는 조각에 살아 있는 듯한 느낌을 부여한다. 관객에게 독특한 경험을 안겨주고 싶던 치훌리는 담쟁이덩굴로 지붕을 만든 정자의 형태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렇게 수족관의 해저 터널을 지나는 듯한 환상적인 공간이 완성되었다.
 
시애틀

여느 조각가와는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진 치훌리의 유리 작품. Dale Chihuly, Macchia Forest (detail), 2012, Chihuly Garden and Glass, Seattle © Chihuly Studio Photo by Nathaniel Willson

미술관 한쪽에서는 로컬 아티스트들의 유리 불기 실연도 감상할 수 있다. 로컬 아티스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워싱턴주에는 세계적 유리 아티스트의 3분의 1이 거주한다고 한다. 치훌리 가든과 그의 작업실이 있는 시애틀을 중심으로, 북쪽으로 차로 한 시간을 달리면 치훌리가 공동 설립한 ‘필척 유리 학교(Pilchuck Glass School)’가, 남쪽으로 40분을 달리면 터코마의 유리 뮤지엄(Museum of Glass)이 나온다. 여기에 더해 지난해 론칭한 유리 아트 페어 ‘Refract: The Seattle Glass Experience’도 있다. 이렇게 화려한 유리 예술의 문화 인프라가 세계의 예술가들을 불러모으는 것이다. 물론 그 핵심에는 유리 마스터 치훌리가 있다.
시애틀

유리 건물이 캔버스가 되어 행잉 조각과 주변 경관을 함께 담는다. © Shutterstock

낮에 보는 유리 온실과 작품들은 보다 자연스럽고 영롱한 느낌이 든다. © Shutterstock

왜 정원일까?
최근 들어 그가 활발히 선보이고 있는 대형 설치미술 작품들은 거의 미술관의 야외 무대로 나와 있다. 그 배경이 되는 정원은 무려 350여 종의 식물과 4만2,000가지 구근을 갖추었다. 나무와 관목, 고사리류, 다년생식물과 일년생식물 등을 세심하게 계획해 심었기 때문에 어느 계절에 방문해도 만개한 꽃들이 반긴다. 
노랑과 주황색의 유리가 불꽃처럼 파열하는 ‘퍼시픽 선(Pacific Sun)’, 나무들 사이에서 유독 하늘로 높이 치솟은 ‘시트론 아이시클 타워(Citron Icicle Tower)’, 식물과 또렷한 컬러 대비를 이루며 독특한 풍경을 연출하는 ‘리즈(Leeds)' 시리즈까지. 그중에서도 하이라이트는 유리 온실 ‘글라스하우스’의 대형 조각이다. 오직 이 공간을 위해 제작한 조각은 다양한 톤의 오렌지, 옐로, 레드 컬러 조각들을 하나로 연결하여 이은 것이다. 그 길이만 무려 30m. 치훌리의 공중 설치 조각 중 가장 큰 편에 속한다. 건물의 내부에는 조각을 제외하고 일부러 많은 여백을 남겨두었는데, 이는 허공에 걸린 조각이 유리 너머의 하늘 배경과 한눈에 들어오기를 원했던 작가의 배려다. 덕분에 누가 찍어도 스페이스 니들과 행잉 조각이 한 프레임에 담기는 환상적인 인증샷이 나온다.  
 

유니크한 컬러 표현을 위해 핀란드에서 제작한 갈대 시리즈. Dale Chihuly, Neodymium Reeds (detail), 2012, Chihuly Garden and Glass, Seattle © Chihuly Studio Photo by Scott Mitchell Leen

“예전에 경험하지 못한 방식으로 빛과 컬러에 압도되는 경험을 제공하고 싶었다.”
데일 치훌리
그럼에도 한 번 더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그 ‘정원’이다. 단지 작품을 위한 배경으로 동원되었다기엔 여기에 쏟아부은 노력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보다 온전한 존재 이유를 찾고 싶어 갖은 지식을 동원하고 있자니, 문득 시애틀에서 만난 친구 삼촌의 말이 떠오른다. 미국으로 오래전 이민을 오신 그분이 가족과 함께 시애틀에 정착한 이유는 ‘자연이 가까워서’였단다. 평범하지만 이보다 더 이 지역 사람들의 자연 사랑을 잘 설명해줄 말이 또 있을까 싶다. 태평양 바다는 물론이고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도 숲과 산, 폭포, 국립공원이 있는 이곳. 자연을 빼고는 이야기가 안 되는 곳이 바로 이 미국 태평양 연안 북서부인 것이다. 그러니 시애틀의 자랑인 치훌리 가든이 사시사철 아름다운 정원을 품을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주소 305 Harrison St., Seattle, WA 98109
전화 +1-206-753-4940
홈페이지 chihulygardenandglass.com
2020. 6 에디터:정재욱
글: 한예준
자료제공: 시애틀 관광청 / 치훌리 가든 앤 글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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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6
  • 에디터: 정재욱
    글: 한예준
  • 자료제공:
    시애틀 관광청 / 치훌리 가든 앤 글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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