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CULTURE

© 전혜인

오직 도자기를 위한, 도자기에 의한, 도자기의 마을, 밧짱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베트남 도자기. 그 도자기들의 출처는 하노이 인근의 작은 마을, 밧짱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1만2,000년 전 인류는 흙으로 토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진흙으로 모양을 빚어 불에 구워 만든 그릇. 인류 문명의 발원이라 할 수 있는 토기는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도자기의 일종이자 원형으로, 도자기는 인류와 궤적을 같이해온 셈이다. 무수한 세월 문명의 발달을 거치며 도자기는 여러 모습으로 변모해왔지만, 도자기를 구성하는 본질에는 변함이 없다. 인류는 흙, 물, 불, 공기 등 자연의 기본 구성 요소를 손으로 빚어 그릇으로 만들었다. 이 단순함 안에 도자기의 미학과 철학이 모두 담겨 있다. 도자기는 인류 공작(공예, Craft)의 원형인 동시에 미래지향적이다. 자연에서 와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생태의 순환을 닮은 그릇이면서, 장인에 의해 한 점 한 점 핸드메이드로 생산하고, 슬로 메이킹 과정을 거쳐 시간이 완성해준다. 환경생태주의(Ecology), 소규모 크래프트 생산, 느림의 미학을 추구하는 최신 문화 운동의 흐름과 맞닿아 있다.
화려한 색과 무늬의 도자기들 © 전혜인

화려한 색과 무늬의 도자기들 © 전혜인

“그대여 나와 결혼해준다면 밧짱의 벽돌로 신혼집을 짓겠소.” 베트남의 오랜 민담은 예로부터 밧짱의 진흙과 그것으로 만든 가공품이 베트남에서 최고로 인정받았음을 짐작하게 한다.
도자기 마을 밧짱 © 전혜인

도자기 마을 밧짱 © 전혜인

1,000년의 역사를 간직한 도자기 마을 밧짱
하노이 시내에서 13km 남짓, 택시로 30분 정도 소요되는 외곽 지역에 아주 특별한 마을이 있다. 한 마을 전체가 도자기를 위해 움직이는 도자기 공예 마을 ‘밧짱(Bat Trang)’이다. 밧짱의 명성은 하노이를 비롯한 북베트남은 물론 베트남 전역에 자자하다. 오죽하면 베트남의 오랜 민담에 이런 구절이 있다고 전해진다. “그대여 나와 결혼해준다면 밧짱의 벽돌로 신혼집을 짓겠소.” 예로부터 밧짱의 진흙과 그것으로 만든 가공품이 베트남에서 최고로 인정받았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기록에 따르면 밧짱의 도자기 역사는 14세기, 15세기경 시작되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기록된 역사보다 훨씬 더 앞선 약 1,000년 전부터 밧짱 도자기의 전통이 이어졌다고 말한다. 베트남이 중국으로부터 독립해 최초의 영속 왕조를 세우고 하노이(당시 탕롱)를 수도로 선포한 11세기 초, 밧짱 도자기의 역사도 함께 개막했다는 것이다. 국가의 번영을 꾀하기 위해 수도를 중심으로 각종 수공업과 상업을 장려했고 그 과정에서 각 지역 기술자들이 하노이 근교, 즉 지금의 밧짱 부근으로 모여들면서 크래프트 빌리지가 형성되었다. 하얀 진흙이 풍부한 밧짱 지대는 도자기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훌륭한 정착지가 되어주었고, 밧짱은 해를 거듭할수록 인기를 얻으며 지금의 명성을 누리기에 이르렀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밧짱 도자기 © 전혜인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밧짱 도자기 © 전혜인

현재 밧짱의 도자기는 베트남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각 도자기 상점과 소규모 제작 공장마다 선보이는 고유의 디자인, 장인의 섬세한 손길과 오랜 노력이 묻어나는 완성도 높은 품질 덕분이다. 이곳에서 생산하는 도자기는 세계 곳곳으로 뻗어나가 식기류를 비롯한 생활용품, 장식품, 예술품 혹은 종교적 목적 등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밧짱 도자기

밧짱 도자기

밧짱 도자기

밧짱 도자기가 만들어지는 과정. 도자기 하나하나에 장인들의 땀과 노력이 담겼다. © 전혜인

밧짱 도자기가 만들어지는 과정. 하나하나에 장인들의 땀과 노력이 담겼다. © 전혜인

한 덩이 진흙이 밧짱 도자기가 되기까지
아무리 화려한 도자기라도 시작은 한 덩이의 진흙이다. 형체 없던 흙이 번듯한 밧짱 도자기로 재탄생하기까지 크게 세 단계를 거친다. 먼저 도자기의 형태를 만드는 프레이밍 작업이 필요하다. 양질의 진흙을 선택해 반죽을 하고 모양을 가공한다. ‘도자기’를 떠올릴 때 흔히 연상하는 영화 <사랑과 영혼>의 회전 물레 작업도 이 과정에 해당한다. 실제로는 물레 방식 외에도 거푸집에 진흙을 부어 굳히는 등 모양과 크기, 도자기의 목적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프레이밍이 이루어진다. 모양이 완성되었다면 이제 옷을 입힐 차례다. 조색과 장식을 하는 단계로, 문양을 그려 넣거나 조각도로 표면에 무늬를 새기기도 한다. 장식이 완성되면 유약을 입혀 내구성을 높인다. 최종 관문은 ‘굽기’다. 1,200℃에서 1,300℃ 사이 고온의 불가마에서 구워 도자기를 완성한다. 굽는 시간은 제품에 따라 한나절 걸리는 것부터 닷새가량 소요되는 것까지 다양하다.
철저히 사람의 손을 거쳐 하나씩 수공예로 생산하기 때문에 밧짱의 도자기 하나가 탄생하는 데에는 적어도 일주일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밧짱 도자기 시장에서 흔히 접하는 손바닥만 한 그릇 하나까지 이 지난한 과정을 거친 귀한 공예품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나면, 도자기 안에 담긴 제작자의 땀과 시간이 묵직하게 느껴지는 듯하다.
닷휴엔 도자기

세계로 수출되는 닷휴엔 도자기의 고급 도자기 © 전혜인

세계로 수출되는 닷휴엔 도자기의 고급 도자기 © 전혜인

밧짱 도자기의 현재와 미래
한국인에게 유독 익숙한 베트남 자기 그릇이 있다. 베트남 음식을 좋아하는 한국인이라면 분명 그 특수한 문양을 보는 순간 알아차릴 것이다. 한국의 한 유명 베트남 음식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일괄적으로 사용하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화려한 무늬로 베트남 음식의 맛을 돋워주던 일등 공신 식기류가 바로 이곳 밧짱에서 탄생했다. 빨강, 파랑, 노랑 등 원색을 과감히 사용하고 꽃과 식물을 형상화한 디자인으로 동양적이고 베트남스러운 색채를 잘 살려 세계에 밧짱 그릇의 진가를 알린 주인공, 바로 ‘닷휴엔 도자기 상점(Gom Su Dat Huyen)’을 운영하는 도예가 풍닷(Phung Dat, 남편), 쩐휴엔(Tran Huyen, 부인) 씨 부부와 그 일가족이다.
한국의 유명 베트남 식당에서 사용하는 닷휴엔 도자기의 그릇 © 전혜인

한국의 유명 베트남 식당에서 사용하는 닷휴엔 도자기의 그릇 © 전혜인

닷 씨와 휴엔 씨는 조상 대대로 밧짱에서 도자기를 만들어온 밧짱 토박이 도예가 가문의 후예다. 현재까지 양가 부모님을 비롯해 3대가 밧짱에 거주하며 도자기를 직접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닷휴엔 가문에서 만드는 도자기는 식기류부터 거대한 예술 장식품에 이르기까지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하며, 가족 구성원을 포함해 숙련된 기술자들이 모두 수작업으로 제작한다. 밧짱을 대표하는 최고 수준의 도자기로 현재 한국, 일본, 유럽 등지에 활발히 수출되고 있다.
도자기에 밑그림을 그리는 닷휴엔 도자기의 기술자 © 전혜인

도자기에 밑그림을 그리는 닷휴엔 도자기의 기술자 © 전혜인

닷휴엔 도자기 상점 내부 © 전혜인

닷휴엔 도자기 상점 내부 © 전혜인

일곱 살 때부터 도자기를 손에 잡았다는 휴엔 씨는 천 년의 전통을 이어가는 밧짱 도자기의 진가는 ‘늘 변화함’에 있다고 말한다. “밧짱 도자기는 과거의 명성에 안주하지 않습니다. 날마다 변화하는 현대사회에서 우리 도자기 역시 새로운 기술을 흡수하고 받아들이는 데 두려움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 가족을 비롯한 밧짱의 도예가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작업 방식과 디자인을 연구하고 시도합니다. 그것이 밧짱 도자기의 성공 비결이자 앞으로 나아갈 방향입니다.”
닷휴엔 도자기 상점 외부 전경 © 전혜인

닷휴엔 도자기 상점 외부 전경 © 전혜인

밧짱의 자랑인 닷휴엔 도자기 © 전혜인

밧짱의 자랑인 닷휴엔 도자기 © 전혜인

역사를 이어온 장인 정신과 현대사회에 걸맞은 신경영 철학의 융합으로 시너지를 얻은 현재의 밧짱 도자기는 명실상부 세계 최고 수준의 도자기로 도약 중이다. 전통과 현대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는 닷휴엔 부부를 비롯한 밧짱의 젊은 세대 도예가들의 노력을 통해 오늘도 밧짱의 도자기는 힘차게 진화하고 있다.

닷휴엔 도자기
주소
10, Thon 5 Lang Co, Bat Trang, Hanoi
전화 +84–91-273-3606
도자기 체험 참가자가 직접 만든 도자기 © 전혜인

도자기 체험 참가자가 직접 만든 도자기 © 전혜인

누구나 도자기를 만들 수 있다
“누구나 도자기를 만들 수 있다(Everyone can make ceramic).” 마을의 슬로건대로 밧짱에서는 누구나 쉽게 도자기 만드는 체험을 할 수 있다. 마을의 중심이자 수백 년 전통을 간직한 가마 로바우코 마당에서 연중 상시 도자기 체험장이 열린다. 비용은 체험 내용에 따라 1인당 1,500원에서 1만 원 선.
숙련된 도자기 제작자가 도자기용 점토를 한 덩이 가져와 시범을 보인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날로그 방식의 핸드메이드 제작이다. 물레조차 전기를 사용하지 않는 손 물레다. 뭉툭한 진흙을 물레 중심부에 올리고 한 손으로는 물레를 돌리며 다른 한 손으로 그릇의 형태를 잡는다. 물레가 회전함에 따라 신기하게도 금세 오목한 그릇의 모양이 완성되어간다. 한 번의 터치로도 도자기의 모양과 크기가 바뀌기 때문에 같은 재료로 동시에 만들어도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형태의 그릇이 된다. 세계 유일의 ‘나만의 도자기’가 탄생하는 것이다.
밧짱의 도자기 체험장 © 전혜인

밧짱의 도자기 체험장 © 전혜인

도자기 체험 참가자가 손물레를 이용해 도자기를 만들고 있다. © 전혜인

도자기 체험 참가자가 손물레를 이용해 도자기를 만들고 있다. © 전혜인

손에 진흙을 잡고 도자기를 빚는 경험은 남녀노소 모두 밧짱에서 꼭 해야 할 특별한 체험이다. 손끝을 적시는 촉촉하고 차가운 촉감, 손바닥에 닿는 말랑한 듯 탄탄한 점토의 질감 때문에 어린이에게는 즐거운 놀이 시간이 되고, 어른에게는 이색 힐링 테라피가 된다.
체험만을 목적으로 한다면 물레로 그릇을 만들고 색을 입히는 단계까지 현장에서 바로 가능하며, 도자기를 구워 실제 사용 가능한 그릇으로 완성하기를 원한다면 4~5일 기다려야 한다. 구운 도자기는 체험자가 지정한 장소로 배송받을 수 있다.

밧짱 도자기 체험
주소
Xom3, Bat Trang, Gia Lam, Hanoi
전화 +84 –97-923-6326
수백 년 된 가마 로바우코 © 전혜인

수백 년 된 가마 로바우코 © 전혜인

로바우코로 가는 입구 © 전혜인

로바우코로 가는 입구 © 전혜인

밧짱의 유산, 수백 년 전통의 불가마 로바우코
마을의 중심부에는 귀한 전통이 보존되어 있다. 설치된 지 무려 500년가량 된 것으로 추정되는 가마 ‘로바우코(Lo Bau Co)’다. 나무를 때서 불을 지펴 도자기를 구워내는 벽돌 화덕으로, 길이가 무려 15m에 달한다. 밧짱 도자기를 구워온 가장 원초적이고 기본적인 방식이다. 과거에는 마을에 약 20개의 전통 방식 가마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까지 보존된 것은 로바우코가 유일하다. 지금은 가동되지 않지만 밧짱의 자긍심으로서 그 자리를 지키며 방문객에게 오랜 전통과 명성을 알리는 터줏대감 역할을 하고 있다.
롯데호텔 하노이

롯데호텔 하노이

롯데호텔 하노이

하노이에서 머물 곳: 롯데호텔 하노이
롯데호텔 하노이는 하노이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한 롯데센터 하노이의 상층부에 위치한다. 도시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수려한 전망을 자랑하며, 318실의 객실은 베트남 전통 문양을 차용한 디자인으로 아름답다. 베트남 특산물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공수한 신선한 식자재로 만든 환상적인 요리를 제공하는 레스토랑과 하노이의 스카이라인을 조망할 수 있는 루프톱 바 등 여행자의 입을 즐겁게 하는 요소도 가득하다.
주소 54, Lieu Giai St. Cong Vi Ward. Ba Dinh, Hanoi
문의 +84-24-3333-1000
홈페이지 www.lottehotel.com/hanoi-hotel
2020. 7 에디터:김혜원
글: 전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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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7
  • 에디터: 김혜원
    글: 전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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