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CULTURE

© Shutterstock

‘시간’이 ‘공간’으로 변하는 순간
해외 작가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작가의 작품을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을 하는 이, 바로 번역가일 것이다. 러시아 문학 전문 번역가 연진희에게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의 흔적을 따라가는 모스크바 문학 기행을 요청했다. 그녀의 글을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갈수록 톨스토이의 호흡이 느껴지고, 거장의 뒷모습이 흐릿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번역의 채도를 높이기 위해 떠난 모스크바
2009년 5월부터 2015년 4월까지 6년에 걸쳐 <전쟁과 평화>를 번역했다. 번역을 마친 후에는 다시 처음부터 원서와 원고를 대조하며 오역이나 누락된 문장을 확인해나갔다. 그 과정에서 러시아에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이 점점 더 절실해졌다.
톨스토이는 마치 <창세기> 속 신처럼 자신의 작품 세계를 창조한다. 자연, 인간, 그리고 인간을 둘러싼 모든 사물에 언어로 정교하고 구체적인 형상을 입힌다. 세부를 통해 진실과 본질을 꿰뚫어볼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일까? 그의 등장인물들은 관념적인 문제로 고뇌하고 논쟁하기도 하지만, 그들의 육체와 그들이 속한 세계는 손으로 만질 수 있을 것처럼 물질적이고 감각적이다.
이런 톨스토이의 문체적 특징은 번역자에게 대단히 무거운 짐을 안긴다. 의상, 가구, 주택 구조, 거리 풍경, 문방구, 무기, 지형, 마차, 극장, 농기구 등 150~200여 년 전 러시아 문물과 풍습을 세세히 파악해야 번역 중인 장면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지고 그것을 우리말로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인터넷과 톨스토이 작품을 원작으로 제작한 여러 러시아 영화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전쟁과 평화>는 워낙 방대한 작품이어서 그런 자료들만으로는 소설 전체 장면을 명확하게 떠올리기가 쉽지 않았다. 창에 김이 서려 부옇게 얼룩진 것처럼 군데군데 흐릿해 보이는 풍경들, 나는 그 풍경들의 채도를 높이기 위해 러시아에 직접 가서 가능한 한 모든 자료를 눈으로 보고 사진으로 찍고 머릿속에 새겨 오리라 결심했다.
국립역사박물관

국립 역사 박물관 © Youn Jinhi

그래서 2015년 5월 13일, 한 달 일정으로 러시아를 향해 출발했다. 톨스토이의 삶의 흔적이며 1812년 ‘조국전쟁’(<전쟁과 평화>의 배경이 되는 사건으로, 역사학계에서는 ‘나폴레옹 전쟁’으로도 칭한다)과 관련한 자료가 풍부한 모스크바에서 3주, <전쟁과 평화> 속 또 다른 주요 배경인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1주를 머물렀다. 이 글에서는 모스크바의 박물관들, 특히 돌고-하모브니키(Dolgo-Khamovnichesky Street) 골목에 위치한 톨스토이의 생가 박물관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하모브니키골목교회

하모브니키 골목 생가 근처에 있는 교회 © Youn Jinhi

박물관에서 사물들이 말을 걸어오다
“아침의 빛은 마법 같았다. 포클론나야 언덕에서 내려다본 모스크바는 강과 정원과 교회와 더불어 드넓게 펼쳐져 있었고, 둥근 교회 지붕들이 햇살 속에 별처럼 아른거리며 자신의 생을 사는 것처럼 보였다.
이제껏 본 적 없는 색다른 건축물들을 품은 기묘한 도시를 바라보면서 나폴레옹은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전혀 모르는 이국의 생활양식을 볼 때 느낄 법한 다소 질투 어린 불안한 호기심을 맛보았다. 분명 이 도시는 자신의 생명력을 온전히 발하며 살고 있었다.”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중에서

1812년 9월 2일 모스크바에 진입하기 전, 햇빛에 반짝이는 교회의 황금빛 둥근 지붕과 십자가를 바라보며 나폴레옹이 느꼈을 심경에 대해 톨스토이는 이렇게 묘사했다. 물론 모스크바의 풍경은 소련 시대부터 지금까지 러시아 내 다른 어떤 도시보다 현대화되었으며, 나폴레옹이 보던 그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변화했다. 무수한 교회 역시 소련 시대에 많이 파괴되어 사라졌다. 그럼에도 다른 유럽 국가, 심지어 제정러시아의 수도였던 상트페테르부르크와도 현저히 다른 건축양식과 색감을 띤 교회와 수도원 때문인지, 혹은 과거의 유산을 잘 보존한 숱한 박물관 덕분인지 모스크바는 여전히 기묘한 매력을 풍기며 자신의 생을 사는 것처럼 보였다.
우선 국립 역사박물관, 1812년 조국전쟁기념관, 보로디노 전투 파노라마관을 죽 둘러보았다. 기대한 대로 19세기 초 러시아 사회와 조국전쟁 당시의 전투 장면에 대한 자료가 풍부했다. 사전에서 다소 모호하고 간단하게 정의된 사물들, 몇 번을 거듭 읽고 그림으로 그려보려 해도 이미지가 잡히지 않던 사물들과 지형과 여러 상황이 갑자기 안개가 걷히듯 또렷한 풍경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국립톨스토이박물관

국립 톨스토이 박물관의 실내 © Shutterstock

국립 푸시킨 박물관, 국립 톨스토이 박물관, 푸시킨 생가, 레르몬토프 생가, 고골 박물관, 투르게네프 생가, 게르첸 생가, 체호프 생가, 작곡가 스크랴빈 생가 등을 돌며 푸시킨부터 체호프까지 19세기 러시아 문학의 황금시대를 이끈 작가를 비롯해 톨스토이와 교류한 예술가들의 삶을 살피기도 했다. 그동안 읽어온 작가들의 평전과 러시아 문예에 관한 책들이 머릿속에서 무질서하게 혹은 파편적으로 흩어져 있었는데, 그 모든 글이 박물관 자료와 조우하면서 생생한 생명력으로 깨어나 합성물의 분자 모델처럼 서로 견고하게 결합하며 이야기를 이루기 시작했다.
오르한 파묵은 소설 <순수박물관 2>에서 “진정한 박물관이란 ‘시간’이 ‘공간’으로 변하는 곳이다. (……) 아리스토텔레스가 순간들로 이루어진 선이 시간이라고 한 것처럼, 물건들이 모여 선을 이루면 하나의 이야기가 됨을 깨달았다”라고 말했다.
그랬다. 박물관에서 박물관으로 향하는 힘겨운 여정 속에서 초상화와 흑백사진 속 작가들이 이차원 평면에서 하나둘 걸어 나오더니 내 여정에 동행하며 자신들의 삶에 대해, 자신들이 만난 톨스토이에 대해, 자신들이 살아간 시대에 대해 소란스레 떠들기 시작했다. 그들의 목소리와 그들의 이야기는 그처럼 찬란한 기쁨과 함께 내 가슴속에 스며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공간’으로 변하는 순간이 가슴 저미게 아플 때도 있다는 사실을 톨스토이의 생가에서 경험했다.
전쟁과평화

국립 톨스토이 박물관에 전시된 <전쟁과 평화> 원고 중 일부 © Shutterstock

“어쩌면 우리에게 남은 것이 몇 날 며칠이 될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살아 있는 동안이라도 가치 있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오.”
가출한 톨스토이가 아내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하모브니키생가

하모브니키 생가의 정원 © Youn Jinhi

하모브니키생가

하모브니키 생가 정면 © Youn Jinhi

하모브니키 생가에서 톨스토이의 슬픔을 듣다
크렘린의 남서쪽 파르크 쿨투리 지하철역에서 주택과 낮은 빌딩들이 늘어선 고즈넉한 가로수 길을 따라 잠시 걷다 보면 소박해 보이는 목조 주택이 나온다. 톨스토이는 이 집을 1882년(54세)에 구입해 부부, 당시 여덟 명의 아이(톨스토이의 아내 소피야는 15차례 임신해 13명의 아이를 출산했고 그중 4명은 병으로 잃었다), 가정교사, 하인들을 위해 증축한 뒤 1909년까지 18년 동안 거주했다. 아마 큰 자녀들이 모스크바에서 교육받을 수 있도록 마련한 듯하며, 여름엔 야스나야 폴랴나 영지에서, 겨울엔 모스크바에서 지냈다고 한다. 톨소토이는 <안나 카레니나> 이후 대부분의 주요 작품을 이곳에서 창작했다.
초록색 지붕과 초록색 빗물 홈통이 황토색 목조 건물을 감싼 듯한 정갈한 이층집 주위에는 차를 마시기 위한 별관과 여러 작은 부속 건물이 있다. 그 앞에는 도심에서 찾아보기 힘든 2만㎡에 달하는 꽤 넓은 정원이 펼쳐져 있다. 작은 현관에 들어서면 아래층에는 아이들의 놀이방, 작은 응접실, 식당 등 생활 공간이 있고, 계단을 따라 이층으로 올라가면 야회를 베풀거나 많은 손님을 응대하던 넓은 홀이 있다. 이 홀에서 스크랴빈, 라흐마니노프와 림스키코르사코프, 타네예프가 피아노를 연주했고 샬랴핀이 노래를 불렀다.
톨스토이서재

톨스토이의 서재 © Youn Jinhi

이 응접실을 지나 작고 좁은 복도와 계단 몇 개를 통과하면 톨스토이가 주로 머물던 서재와 작업실이 나온다. 빅토르 시클롭스키는 톨스토이의 전기 <레프 톨스토이>에서 레닌이 1920년 4월 6일 이 저택의 국유화 법령에 서명하면서 집 형태를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썼다. “집 안의 모든 것을 원형대로 유지해야 합니다. 톨스토이가 이 ‘이층집’에서 어떻게 살고 있었는지 사람들이 알도록 말입니다.”
그의 호두나무 책상 주위에는 원고나 필사본이 떨어지지 않도록 얕은 칸막이가 둘려 있고 그 위에 촛대와 문방구들이 놓여 있었다. 전해오는 말에 따르면, 톨스토이는 책상 앞에 놓은 안락의자의 다리 밑동을 잘랐다. 그는 심한 근시인데도 안경을 쓰지 않은 채 원고에 눈을 바짝 들이대고 글을 썼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청각을 잃은 베토벤이 교향곡을 쓴 것 못지않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마치 망원경과 현미경을 하나씩 눈에 장착한 듯 원경과 근경을 그토록 세밀하게 그려내던 톨스토이가 코앞에 놓인 것만 보일 정도로 눈이 나빴다니, 그러면서도 매일같이 그 불편한 자세로 쉬지 않고 원고를 써댔다니... 무엇보다 이 책상은 보르헤스가 최고의 단편소설로 꼽은 <이반 일리이치의 죽음>과 내가 톨스토이의 작품 중 가장 신비하다고 생각하는 <부활>의 탄생 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본 목격자였다.
톨스토이작업실

톨스토이가 신발을 만들던 작업실 © Youn Jinhi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발을 억지로 떼고 서재를 나오자 복도 끝 자투리 공간을 활용한 작은 작업실이 나온다. 1.5㎡ 정도 될까? 이곳에서 톨스토이는 가죽 구두를 만들곤 했다. 그는 백작이라는 귀족 신분임에도 이곳에 사는 동안 집 안에 필요한 물을 혼자 다 길어 왔고, 장작을 팼으며, 구두를 만들었다. 야스나야 폴랴나 영지에서는 늘 농민들 옷을 입고서 <안나 카레니나>의 레빈처럼 풀베기나 밭갈이를 직접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그런 모습은 영지 내 농민뿐 아니라 가장 친한 친구인 시인 아파나시 페트에게도 조롱을 받았다. 그들의 눈에는 거대한 영지에서 나오는 수입과 많은 인세로 풍족한 삶을 살아가는 귀족이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 방식 몇 가지를 흉내 내며 양심적 지식인인 양 위선을 떠는 것처럼 보였을 테다.
당시 이 집은 여러 작은 공장에 둘러싸여 있었고, 노동자들은 아침 다섯 시부터 저녁 여덟 시까지 일했다. 밥벌이가 있는 노동자는 그나마 다행이었다. 모스크바에는 농노해방 부작용으로 농토에서 이탈한 농민들이 일거리를 찾아 몰려들면서 엄청난 수의 빈민이 형성되어 있었다. 톨스토이는 모스크바 거리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비참하고 거친 생활과 늘 맞닥뜨렸다. 톨스토이는 자신이 누리는 풍족함이 부끄러워 단순하고 검소한 삶으로나마 그 죄책감을 덜고 싶어 했지만 그에겐 힘이 없었다.
작가 톨스토이와 인간 톨스토이 사이
1885년부터 톨스토이의 저작과 관련된 모든 업무를 아내 소피야가 도맡았고(사실 그녀의 도움이 없었다면 톨스토이는 매일 그렇게 왕성한 집필을 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1892년 톨스토이와 가족 사이에 재산 문제로 다툼이 생긴 후에는 모든 부동산 소유권이 아내 소피야와 자식들에게 있다는 문서가 작성되었다. 아내는 “이 많은 자식을 어떻게 먹여 살린단 말이에요!”라는 말을 무기로 톨스토이의 재산이 밖으로 새지 않도록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톨스토이의 자식 중 생계를 위해 일을 한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첫째 아들의 전처와 자식들뿐 아니라 재혼한 아내가 데려온 여섯 아이가 모두 톨스토이의 인세와 영지에서 얻은 수입에 의지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톨스토이가 누릴 수 있는 권리는 자신의 저작에 대한 소유권을 결정하는 일뿐이었지만 그마저 아내와 아들들의 반대와 감시로 쉽지 않았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여러 매체에 사회 문제를 비판하는 글을 보내는 것, 그리고 다른 가족들과 떨어진 골방 같은 좁은 공간에서 속죄하는 마음으로 소박한 구두를 지으며 가치 있는 삶을 숙고하는 것밖에 없었다. 소설 안에서는 전능한 글 솜씨로 등장인물과 그들을 위한 세상을 창조하던 조물주였지만, 소설 밖에서는 무엇 하나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없는, 관계의 덫에 갇힌 무기력한 인간이었다.
비 내리는 회색빛 오후, 천장이 낮고 폭이 좁은 복도에 홀로 앉아 서재와 작업실을 가만히 응시하노라니 가슴이 저릿하게 조여왔다. 이 자그마한 외딴 공간에서, 그가 가까스로 얻어낸 고독 속에서 느꼈을 평온, 슬픔, 분노, 기쁨, 두려움 등이 한 겹 한 겹 손에 만져졌다. 서재 창문 너머로 보이는 고목의 무성한 푸른 잎사귀들이 빗방울과 바람에 흔들리며 춤을 추었다. 폐관을 알리려 직원이 올 때까지 난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앉아 있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톨스토이집박물관

© Shutterstock

톨스토이의 집 박물관
주소 11/8, Prechistenka Street, Moscow, Russia
전화 +7-495-637-74-10
운영 시간 오전 10시~ 오후 6시
PROFILE
연진희는 노어노문학을 전공한 러시아 문학 전문 번역가다. 특히 민음사의 유명한 세계문학전집 시리즈에 소개된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리나>, <부활> 등 톨스토이의 모든 장편소설이 그녀의 손끝에서 옮겨지고 버무려졌다. 늘어지고 어려운 문어체가 아니라 산뜻하고 가독성이 좋은 구어체 문장, 생생한 인물 묘사로 21세기 감수성에 어울리는 새로운 번역을 선보인다는 평가를 받는다. 톨스토이의 대표 작품 외에도 <검은 말>, <마지막 목격자들>, <러시아 단편집> 등 다양한 러시아 문학을 소개한 바 있다.
롯데호텔모스크바

롯데호텔모스크바

롯데호텔모스크바

모스크바에서 머물 곳: 롯데호텔 모스크바
롯데호텔의 첫 해외 체인 호텔이자, 국내 체인 호텔 사상 해외로 진출한 최초의 호텔인 롯데호텔 모스크바는 여행 매거진 <콘테나스트 트래블러>가 선정한 ‘러시아 베스트 시티 호텔’을 2년 연속 수상한 바 있다. 크렘린 궁전과 볼쇼이 궁전이 인접한 금융과 쇼핑의 중심지 뉴 아르바트 거리에 자리하며, 총면적 7,117㎡에 지하 4층·지상 10층 규모로 300개의 객실을 갖추고 있다. 이탈리아 미쉐린 2스타 셰프 카를로 크라코의 ‘OVO by Carlo Cracco’를 비롯해 뉴욕 스타일의 퓨전 일식당 메구미, 최고급 만다라 스파, 아트리움 가든 등에서 환상적인 미식과 스파 체험을 즐길 수 있다.

주소 2 Bld., 8 Novinskiy Blvd., Moscow, Russia, LOTTE HOTEL MOSCOW
전화 +7-495-745-1000
홈페이지 www.lottehotel.com/moscow-hotel
2020. 8 에디터:정재욱
글: 연진희

Where to stay?

LOTTE HOTELS & RESORTS
  • 2020. 8
  • 에디터: 정재욱
    글: 연진희
  • 트위터로 공유
  • 페이스북으로 공유
  • 핀터레스트로 공유
  • 링크URL 공유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