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우리 종이 컬렉션, 한지문화산업센터
한지가 이렇게 아름다웠나? 한지문화산업센터를 다녀온 뒤, 한지에 관해 다른 시선을 갖게 되었다.
한지(韓紙). 이름 그대로 한국의 고유 기법으로 한국에서 만든 종이를 뜻한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알고 있는 한지에 관한 정보는 이게 전부일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만 알고 넘겨버리기엔 너무 아쉽다. 조금 더 이야기해보자. 한지는 닥나무 껍질로 만든다. 닥나무 껍질을 삶아 생긴 닥 섬유에 ‘닥풀’이라고 불리는 끈적끈적한 물을 잘 섞어 발(簾)로 이 물을 거른 다음 한 장 한 장 종이를 뜨는 것이다. 그 과정에 100번의 손길이 닿아 한지를 ‘백지’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지가 언제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는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역사가 1,000년이 훌쩍 넘은 것은 분명하다. 8세기경 한지에 찍은 불경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1,2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옛 모습 그대로 보존돼 이를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고려지의 원산지로 유명한 전북 완주군에 조성된 대승한지마을. 이곳에서 전통 한지 제조 체험을 할 수 있다. © 사진 최형락,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전주전통한지원 © 사진 최형락,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충북 무형문화재 안치용 한지장이 이끄는 신풍한지의 아름다운 한지들 © 사진 최형락,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자라면서 한 번쯤 한지를 접하게 된다. 학창 시절 미술 시간에는 서화용 한지에 붓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수업이 꼭 있었다. 하지만 한지는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에서 쓰임이 그치지 않는다. 벽에 붙이는 벽지, 문에 바르는 창호지, 부채와 우산의 재료 등 일상 곳곳에서 한지를 사용했다. 1,000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이토록 실용적이기까지 한 종이. 한지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서 접고, 이제 진짜 한지를 만나러 가자. 거의 모든 종류의 한지를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곳. 한지문화산업센터는 한지에 관한 모든 것을 모아놓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지 관련 문화 공간이다. 이보다 더 다양한 한지에 관한 정보와 역사를 알게 되는 것은 물론, 전통적인 것은 고루하다는 편견에 갇혀 보이지 않던 한지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한지문화센터 지하 1층 ‘한지 소통공간’. 벽 한쪽에는 전통 한지 공방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북촌에 생긴 우리 종이 전시실
서울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으로 대표되는 북촌, 이곳에 한지문화산업센터가 있다. 지하 1층, 지상 1층, 총 2층 규모로, 한지를 중심으로 꾸며놓았다. 1층은 ‘한지 전시공간’. 이곳에는 전국 19개의 전통 한지 공방에서 제작한 400여 종의 한지와 이를 활용한 상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물이끼를 섞어서 만든 ‘물태지’, 꽃잔디를 압축한 ‘꽃잔디지’, 홀치기염색을 한 ‘공예지’ 등 다양한 한지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한쪽 벽을 채운 ‘한지 벽장’과 중앙에 놓인 ‘한지 탁자’에는 이 400여 종의 한지가 지역별·용도별·지종별로 분류되어 있다. 두 곳의 차이라면, 한지 탁자 서랍에 들어 있는 한지는 재단되지 않은 지종이라는 것.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재단되지 않은 한지를 이곳에서 처음 보게 될 것이다. 재단되지 않은 한지는 생각보다 더 크고, 닥 섬유의 결이 그대로 드러난 가장자리가 생경하다. 지역별·용도별로 분류된 한지를 직접 만져보며 촉감에 집중하다 보면, 종이를 감상하는 것이 단순히 시각적인 것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400여 종의 한지를 지역별·용도별·지종별로 분류해놓은 1층 ‘한지 전시공간’의 ‘한지 벽장’.

쇼윈도 겸 전시 공간인 ‘한지 마루’

흑백사진관 물나무 사진관의 사진 작품과 최수봉 부채 장인과 컬래버레이션한 부채
1층 뒤편은 한지를 활용한 새로운 상품과 디자인 콘텐츠를 발굴해 소개하는 쇼윈도 겸 전시 공간인 ‘한지 마루’다. 현재 흑백사진관 물나무 사진관이 한지에 인쇄한 사진, 최수봉 부채 장인과 컬래버레이션한 부채 등이 전시되어 있다. 지하 1층은 ‘한지 소통공간’으로, 한지 관련 자료들을 저장하고 전시하며, 강연이나 세미나, 한지 체험 워크숍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곳이다. 현재 한지문화산업센터를 찾는 이들은 종이 애호가, 공예가, 그래픽 디자이너, 패키지 디자이너 등 한지를 궁금해하고 필요로 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한지를 한 곳에서 보고 비교할 수 있는 최초이자 유일한 장소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껏 한지에 관심이 없던 이도 분명 충분히 흥미로울 것이다.

19개의 전통 한지 공방에서 제작한 400여 종의 한지를 보고 만질 수 있다.

한지에 관한 모든 것을 모아놓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지 관련 문화 공간이다.

지하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천장에는 한지 조명 오브제가 걸려 있다.

각 공방의 특성이 반영된 19개의 공방 인장을 한지에 직접 찍어볼 수 있다.
북촌과 한지가 가진 전통적 이미지를 떠올리고 한지문화산업센터를 찾는다면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인 외관에 사뭇 놀랄 수도 있다. 한지문화산업센터의 공간 디자인은 건축가이자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임태희 디자이너의 작품이다. 소박하면서도 격이 느껴지는 한지만큼 단정하고 아름답다. 공간에 놓인 가구도 모두 그가 직접 디자인했다. 지하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천장에는 한지 조명 오브제가 걸려 있고, 한국 전통 건물인 ‘정자’와 ‘평상’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한지 마루’의 천장에도 한지로 만든 지붕이 걸렸다. 1층, 영상이 재생되는 스크린 또한 한지다. 한지가 현대의 집, 현대의 건축에 어떻게 녹아들 수 있는지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한지문화산업센터를 모두 둘러보고 나면 “이 한지 지금 살 수 있나요?”라는 물음이 절로 나온다. 물론, 당장 한지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무용한 것, 오로지 아름다움으로만 기능하는 것이 마음을 풍요롭게 하기도 한다. 그 아름다운 것에 한지가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전통 한지 공방에서 한지가 만들어지는 모습. 1층 한지 전시공간에서 전체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 영상제작 스튜디오 펩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한지문화산업센터 외관
한지문화산업센터
주소 서울시 종로구 북촌로 31-9
전화 +82-2-741-6600
운영시간 월~금요일 09:00~18:00(17:30 입장 마감), 주말 및 기타 공휴일 휴관
인스타그램 www.instagram.com/hanjicenter
전화 +82-2-741-6600
운영시간 월~금요일 09:00~18:00(17:30 입장 마감), 주말 및 기타 공휴일 휴관
인스타그램 www.instagram.com/hanjice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