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리예프 수도원으로도 알려진 성 조지 수도원을 배경으로 한 모녀 © 루이 비통 / Louis Vuitton Malletier
상트페테르부르크, 21일간의 기록
뉴욕에서 패션 일러스트레이터로 유명한 켈리 비맨이 루이 비통 <트래블 북> 컬렉션의 새로운 에디션을 위해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떠났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21일. 익숙한 것들을 이방인의 시선으로 재발견하고 해석하기 위해서다. 낯섦 그 자체이던 도시가 켈리 비맨에게 선물한 풍경은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그는 그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익숙함과 낯섦 사이의 풍경
이방인이 된 예술가의 눈에 낯선 도시는 어떻게 비칠까? 루이 비통은 일러스트 작가와 수채화가가 도시를 유영하며 자신의 고유한 시선으로 완성한 작업을 한 권의 책으로 만들었다. 2013년부터 바르셀로나, 로스앤젤레스, 서울, 파리 등 다양한 지역에 머물며 작가들이 재발견한 풍경을 한 폭의 기록물로 남긴 것이다. 이들은 일러스트, 현대미술, 콜라주 같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경험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었고, 그렇게 <루이 비통 트래블 북> 안에는 다채로운 창작 세계와 낯선 도시의 감상이 함께 담기게 되었다.
루이 비통 트래블 북 상트페테르부르크 편 © 루이 비통 / Louis Vuitton Malletier
미국의 패션 일러스트레이터로 유명한 켈리 비맨(Kelly Beeman)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3주간의 여정을 보내게 된 것도 <루이 비통 트래블 북 상트페테르부르크 편> 프로젝트에 함께하면서다. 독학으로 수채화를 터득한 그는 날렵하고 당당한 선과 개성 넘치는 인물 묘사로 많은 이에게 사랑받고 있다. 직접 방문해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 비맨에게 상트페테르부르크는 그저 미지의 세계에 불과했다. 상상 속 신비롭고 오묘한 기운을 품은 도시, 화려하고 웅장한 장식으로 가득한 곳, 세련된 모습의 사람들. 이러한 수식만이 상트페테르부르크를 향한 그의 호기심을 채우고 있었다. 오랫동안 간직한 상상이 현실로 전환되는 날, 비맨을 제일 먼저 맞이한 건 세차게 내리는 비바람이었다.
“처음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왔는데 장대비가 쏟아지고 바람이 불었거든요. 그런데 그때 도시의 색감에 완전히 빠져버렸어요. 사람들은 밝은색 우산을 들고 다니고, 강한 바람 때문에 그 우산들이 이리저리 휘날리고 흔들리는데 그 장면이 제 마음에 딱 꽂히는 거예요.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이 도시의 색깔은 조금 다르구나, 하고 느끼는 순간이었어요.”
그래서일까. 비맨의 그림 속에선 우산을 들거나 우비를 입고 유유히 길을 거니는 사람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익숙하고 평범한 장면이었겠지만, 비맨에겐 관찰하고 탐색하고 싶은 순간이었던 것이다.
“처음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왔는데 장대비가 쏟아지고 바람이 불었거든요. 그런데 그때 도시의 색감에 완전히 빠져버렸어요. 사람들은 밝은색 우산을 들고 다니고, 강한 바람 때문에 그 우산들이 이리저리 휘날리고 흔들리는데 그 장면이 제 마음에 딱 꽂히는 거예요.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이 도시의 색깔은 조금 다르구나, 하고 느끼는 순간이었어요.”
그래서일까. 비맨의 그림 속에선 우산을 들거나 우비를 입고 유유히 길을 거니는 사람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익숙하고 평범한 장면이었겠지만, 비맨에겐 관찰하고 탐색하고 싶은 순간이었던 것이다.

겨울 궁전을 활보하는 모습 © 루이 비통 / Louis Vuitton Malletier

네바 강에서 바라본 바실리옙스키섬 © 루이 비통 / Louis Vuitton Malletier

성 니콜라이 해군 성당과 피칼로브 다리를 배경으로 한 모녀 © 루이 비통 / Louis Vuitton Malletier
여행을 기록하는 방식
금빛의 뾰족한 탑과 아름다운 조각상, 도심을 가로지르는 네바강과 신고전주의의 웅장한 성당들, 그리고 무수히 많은 문학가와 음악가가 남긴 발자취까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떠올릴 때 보편적으로 연상되는 이미지다. 이는 ‘러시아 제2의 도시’라는 별칭과 함께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로 부상하는 동안 다양한 문화 흐름이 혼재한 결과이기도 하다.
비맨은 빠르게 성장하고 변화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조용히 되짚어보는 여행 방식을 택했다. “이곳엔 이분법이 그대로 남아 있어요. 한편에 화려하고 웅장한 겨울궁전이 있어 제국주의, 낭만주의, 바로크, 네오클래식의 모습을 볼 수 있죠. 그리고 반대편에는 구소련의 거대한 조립식 아파트 단지가 존재해요. 상반된 이데올로기를 품은 두 장소가 꼭 닮은 모습이 너무 흥미롭고, 그 자체에 압도되었습니다.”
비맨이 완성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분위기는 생동감이 느껴지고 고혹적이다. 도시의 진홍색 건물들과 잘 어우러지는데, 이러한 대비를 통해 건축물 사이의 각기 다른 이데올로기까지 함께 담아낸 것만 같다. 실제로 그는 어떤 ‘시대’로부터 주로 영감을 받는다고 말했다. 혹은 ‘시대의 전환’ 같은 것으로부터. 흑백의 강렬한 대비나 곡선의 단순화처럼 과도기 특유의 그래픽디자인이 큰 자극을 주기 때문이다.
비맨은 빠르게 성장하고 변화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조용히 되짚어보는 여행 방식을 택했다. “이곳엔 이분법이 그대로 남아 있어요. 한편에 화려하고 웅장한 겨울궁전이 있어 제국주의, 낭만주의, 바로크, 네오클래식의 모습을 볼 수 있죠. 그리고 반대편에는 구소련의 거대한 조립식 아파트 단지가 존재해요. 상반된 이데올로기를 품은 두 장소가 꼭 닮은 모습이 너무 흥미롭고, 그 자체에 압도되었습니다.”
비맨이 완성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분위기는 생동감이 느껴지고 고혹적이다. 도시의 진홍색 건물들과 잘 어우러지는데, 이러한 대비를 통해 건축물 사이의 각기 다른 이데올로기까지 함께 담아낸 것만 같다. 실제로 그는 어떤 ‘시대’로부터 주로 영감을 받는다고 말했다. 혹은 ‘시대의 전환’ 같은 것으로부터. 흑백의 강렬한 대비나 곡선의 단순화처럼 과도기 특유의 그래픽디자인이 큰 자극을 주기 때문이다.

크라포비스키 다리에서 바라본 뉴홀랜드섬 © 루이 비통 / Louis Vuitton Malletier
무용학교, 원색의 궁전, 황금색 교회, 그리고 이유 모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폰탄카의 산책로까지. 도시의 구석구석을 탐험하면서 비맨은 이방인의 시선과 해석을 즐겼다. 흠결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이 순진무구한 여행 방식은 어디에서 온 걸까. 그는 일부러 이 도시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지 않았다. 어떤 이미지나 생각을 미리 정리해서 오기보다는 이곳에서 즉흥적으로 벌어지는 독특한 경험을 하고 싶었다.
“저는 평소에도 여행을 떠나면 완전히 마음을 여는 것을 좋아해요. 주변 환경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내 안에서 벌어지는 변화를 더 들여다보려고 하죠. 그러면 예술가로서도 도시의 일면, 우연히 마주한 풍경, 일상적인 장면을 포착하는 게 흥미롭게 느껴져요.”
“저는 평소에도 여행을 떠나면 완전히 마음을 여는 것을 좋아해요. 주변 환경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내 안에서 벌어지는 변화를 더 들여다보려고 하죠. 그러면 예술가로서도 도시의 일면, 우연히 마주한 풍경, 일상적인 장면을 포착하는 게 흥미롭게 느껴져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켈리 비맨 © 루이 비통 / Louis Vuitton Malletier
사랑과 경험, 영감의 도시
비맨에게 가장 큰 자극을 주는 것이 패션인 만큼, 그의 작품 속에서 패션을 보는 재미도 빠질 수 없다. 그림 속 상트페테르부르크 사람들의 세련된 의복에서 눈을 떼기 어렵고, 실제로 그곳에서 일상을 누리고 있을 누군가를 상상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의 여행과 작품 속에서 사람이 빠질 수 없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저에게 패션은 제가 그리는 어떤 인물의 성격을 강조하는 도구기도 해요. 그 사람의 성격을 나타낼 수 있거든요. 그 사람의 이야기, 선호, 생각, 그리고 문맥까지 연결해주죠. 또 제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 중 대부분은 눈을 마주치며 시선을 보내요. 이건 저에게 아주 중요한 의미예요. 무언가에 혹은 누군가에게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뜻이거든요.”
“저에게 패션은 제가 그리는 어떤 인물의 성격을 강조하는 도구기도 해요. 그 사람의 성격을 나타낼 수 있거든요. 그 사람의 이야기, 선호, 생각, 그리고 문맥까지 연결해주죠. 또 제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 중 대부분은 눈을 마주치며 시선을 보내요. 이건 저에게 아주 중요한 의미예요. 무언가에 혹은 누군가에게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뜻이거든요.”

넵스키 대로의 길거리 꽃상인 © 루이 비통 / Louis Vuitton Malletier

러시안 마사지 © 루이 비통 / Louis Vuitton Malletier
비맨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마주친 무수한 눈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들과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을 느끼면서 한편으로는 완전히 이방인이 된 것처럼 보였다. 이곳의 어떤 것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비맨이 선택한 것은 날것 그대로의 감상을 간직하는 것이었다. 3주 동안 상트페테르부르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쉼 없이 많은 것을 스케치하고 기록했다. 금세 휘발될지도 모르는 생각들, 보고 좋았던 것, 나중에 그림으로 다시 그리고 싶은 것들, 시간순으로 방문한 장소들까지 섬세하게 담았다.
“이 도시가 저만의 작업을 위한 극장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비맨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끝내 사랑하게 됐다. 예술가로서, 여행자로서, 이방인으로서. 그리고 도시를 사랑한 경험 자체가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원천이 되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둘러싼 짧고도 긴 21일간의 시간은 그렇게 트래블 북으로 우리 곁에 다가왔다. 기록은 결국 시선이다. 기록자를 관통한 관점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비맨이 모으고 엮은 도시의 조각을 들여다볼 차례다.
“이 도시가 저만의 작업을 위한 극장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비맨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끝내 사랑하게 됐다. 예술가로서, 여행자로서, 이방인으로서. 그리고 도시를 사랑한 경험 자체가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원천이 되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둘러싼 짧고도 긴 21일간의 시간은 그렇게 트래블 북으로 우리 곁에 다가왔다. 기록은 결국 시선이다. 기록자를 관통한 관점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비맨이 모으고 엮은 도시의 조각을 들여다볼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