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CULTURE

New York, New York, 1981, Acrylic, oil stick, spray paint, silver spray paint, and paper collage on canvas, 128.3×226.1cm © Estate of Jean-Michel Basquiat. Licensed by Artestar, New York

장 미쉘 바스키아, 제임스 딘이거나 피카소이거나
천재, 낙서 그림, 요절로 상징되는 장 미쉘 바스키아의 작품이 한국에 온다. 국내 최초의 대규모 기획 전시다. 이보다 더 많은 바스키아의 작품을 볼 기회는 당분간 없을 것이다.
“작업의 주제는 무엇입니까?
왕족(특권), 영웅주의 그리고 거리입니다.”

바스키아와 미술비평가 헨리 겔트잘러의 인터뷰 중에서
2017년 소더비 경매에 바스키아의 1982년 작품 ‘무제(Untitled)’가 출품됐다. 경매 참가자들은 미친 듯이 번호표를 들어 올리며 가격을 불러댔다. 최종 낙찰가는 1억1,050만 달러. 우리 돈 1,300억 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첫 문장부터 경매가를 들먹이니 속물로 보이는가? 그렇지 않다. 미술 분야에서 작품 가격은 작가를 규정하는 숙명이자 포장지니까.
그런 점에서 장 미쉘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란 이름은 그 자체로 최고의 상징이자 브랜드다. 그는 가장 비싼 그림을 파는 작가이고, 그의 전시는 여전히 많은 관람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기 때문이다.

© Dmitri Kasterine. All Rights Reserved

누구라고? 바스키아?
바스키아에 대해 흔히 오해하는 부분 중 하나가 그가 불우하고 가난한 환경에서 성장했을 거라는 것이다. 아마 그가 흑인인 데다 ‘거리의 미술’이라 부르는 그라피티를 주로 작업했기 때문일 텐데, 사실 그는 회계사 아버지와 미술과 예술에 관심이 많은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중산층 가정의 소년이었다.
바스키아는 1960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어린 그를 미술관에 데리고 다니며 예술에 대한 경험을 탄탄하게 쌓도록 교육했다. 바스키아에게 어머니와 그림은 강한 연결 고리였다. 어머니와 함께 간 뉴욕현대미술관에서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처음 보고 화가를 결심했을 때도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Old Cars, 1981, Acrylic, oil stick, and paper collage on canvas, 121.9×120.3cm © Estate of Jean-Michel Basquiat. Licensed by Artestar, New York

Untitled (Bracco di Ferro), 1983, Acrylic and oil stick on canvas mounted on wood supports, 182.9×182.9cm © Estate of Jean-Michel Basquiat. Licensed by Artestar, New York

바스키아가 본격적으로 자신의 그림을 외부에 표현하기 시작한 것은 ‘시티 애즈 스쿨’에서 알 디아즈를 만나면서다. 그는 디아즈와 함께 그 유명한 낙서 크루 ‘세이모©(SAMO©)’를 결성했다. 이는 ‘Same Old Shit’의 약자로, ‘흔해 빠진 개똥 같다’는 의미다. 바스키아와 알 디아즈, 그리고 몇몇 친구는 뉴욕 소호 거리를 캔버스 삼아 스프레이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거리 곳곳에 그린 낙서들은 단숨에 유명해졌다.
어려서부터 이름을 알리고 싶어 하던 바스키아는 이를 이용해 더 저명하고 성공한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 그에겐 색소폰 연주자 찰리 파커나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 같은 유명인이 동경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알 디아즈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유명세 때문에 작업에 제약이 있을 거라 생각했고, 익명성을 보장받고 싶었다. 결국 세이모는 해체했다. “세이모는 죽었다(SAMO is Dead)”라는 유명한 낙서가 당시 뉴욕 곳곳에 새겨진 이유도 그래서다. 
이후 바스키아는 자퇴를 한다.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그가 굳이 거리로 나앉아야 할 필요는 없었지만 그는 학교를 그만두고 거리에서 노숙을 한다.

뉴욕 브루클린 거리에 그려진 앤디 워홀과 바스키아의 벽화 © shutterstock

바스키아가 워홀을 만났을 때
잘 알려진 것처럼, 바스키아 연대기를 쓸 때 앤디 워홀은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다. 마케팅의 천재인 워홀은 어린 바스키아의 천재성과 대중성을 일찌감치 알아보았다. 그는 자신의 작품 이상으로 바스키아에게 투자했다. 덕분에 화가 바스키아의 몸값은 껑충 뛰어올랐다. 원하던 대로 스타가 된 것이다.
동시에 두 사람을 둘러싼 여러 소문도 함께 입방아에 오르며 바스키아를 괴롭힌다. 1985년에 바스키아와 워홀이 함께 기획한 전시가 미술계의 혹평과 함께 처참히 실패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에는 커다란 금이 간다.
바스키아는 앤디 워홀 없이 홀로서기를 시도한다.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성찰로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에서 대형 전시도 개최한다. 그러던 중 워홀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된다. 이로 인해 약물중독에 빠진 바스키아는 워홀의 사망 1년 후인 1988년 8월 결국 세상을 등지고 만다. 코트디부아르의 최대 도시 아비장으로 이주하기 엿새 전이었다. 그가 그토록 동경하던 지미 헨드릭스와 같은 나이인 만 27세였다.
“내 작품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건 마치 마일스 데이비스에게 ‘당신의 악기는 어떻게 소리가 나나요?’라고 묻는 것과 같아요.”

장 미쉘 바스키아

Untitled (Yellow Tar and Feathers), 1982, Acrylic, oil stick, crayon, paper collage, and feathers on joined wood panels, 245.1×229.2cm © Estate of Jean-Michel Basquiat. Licensed by Artestar, New York

Victor 25448, 1987, Acrylic, oil stick, wax, and crayon on paper laid on canvas, 182.9×332.7cm © Estate of Jean-Michel Basquiat. Licensed by Artestar, New York

해골과 왕관이 가득한 그림
1980년 초 뉴욕 화단에 데뷔했으니 바스키아가 작품 활동을 한 기간은 8년 남짓, 그리 길지 않다. 하지만 그는 3,000여 점이라는 적지 않은 작품을 우리에게 남겼다. 바스키아의 작품에는 몇 가지 공통적 특징이 있다. 해골이나 인체의 구조, 왕관, 그리고 단어의 조합으로 된 메시지 같은 것들이다. 거기엔 이유가 있다.
8세가 되던 해, 바스키아는 끔찍한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한다. 어머니는 그에게 <그레이의 해부학(Gray’s Anatomy)>이란 책을 선물한다. 인체의 장기와 뼈 그림이 가득하던 해부학 교과서다. 이 책에 매료된 바스키아는 자신의 작품에 해골과 인체 구조, 다양한 기호를 그려 넣기 시작했다. 또 인종과 계급 간 불평등이 만연하던 미국 사회에서 자신의 길을 개척해 성공한 유색인종을 캐릭터로 만들고 머리 위에는 존경과 권위의 의미를 담아 왕관도 함께 그려넣었다. 그런 해골과 왕관이 가득한 바스키아의 작품들을 서울에서 만나게 되었다.

바스키아 전시장 전경 ©롯데뮤지엄

바스키아 전시장 전경 ©롯데뮤지엄

서울에서 만나는 150여 점의 그림
10월 8일부터 롯데뮤지엄에서 <장 미쉘 바스키아-거리, 영웅, 예술>전이 열리고 있다. 2021년 2월 7일까지 진행하는 이번 전시에서는 지금까지 국내에서 있었던 바스키아의 전시 규모를 뛰어넘는 최대 규모인 150여 점의 작품을 소개한다.
전시는 바스키아 개인과 작품을 대변할 수 있는 세 가지 키워드 ‘거리’, ‘영웅’, ‘예술’로 구성했다. 뉴욕 거리에서 시작한 SAMO 시기부터 작가의 예술 세계에 드러나는 대중문화와 산업화의 방식, 영웅을 모티브로 작가가 창조한 다양한 아이콘에 이르기까지 여러 방식과 시선으로 작업한 회화, 조각, 드로잉, 세라믹 작품 등이 전시된다. 인생 파트너인 앤디 워홀과 함께 작업한 대형 작품도 볼 수 있다.
불꽃 같은 삶을 살다 간 바스키아의 작품 세계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그 흐름을 모두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그의 작품은 미술과 음악, 패션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확대 재생산되며 새롭게 해석되고 있다. 비록 28세라는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지만, 바스키아는 여전히 신화이자 거리의 영웅으로 살아가고 있다.

<JEAN-MICHEL BASQUIAT-ROYALTY, HEROISM, AND THE STREETS>

<장 미쉘 바스키아-거리, 영웅, 예술>전
전시 기간 2021년 2월 7일까지
장소 서울시 송파구 올림픽로 300 롯데월드타워 7층 
홈페이지 롯데뮤지엄 
 
2020. 11 에디터:정재욱
자료제공: LOTTE Museum of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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