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CULTURE

도시의 패턴을 그리는 포토그래퍼
서울에서 뉴욕으로 터전을 옮긴 사진가 이경준은 여전히 빌딩의 높은 곳에 올라 사람과 도시의 일상을 그려내고 있다.
거대한 메트로폴리탄 뉴욕은 다양성의 최전방에 서 있는 도시다. 세계 각국에서 많은 이들이 꿈과 미래를 찾아 뉴욕의 문을 두드린다. 국적과 인종, 정체성, 정치 노선, 계급 등 모든 차이가 다름으로 인정받는다. 뉴욕에는 이른바 다양성이 존재한다. 그것은 뉴욕이란 도시가 태생적으로 이민자의 도시기 때문이다. 뉴욕은 이방인을 받아들임으로써 성장했다.
가수 스팅의 솔로 데뷔 초기 히트곡 ‘잉글리쉬맨 인 뉴욕(Englishman in New York)’ 가사에는 뉴욕에 온 영국인이 도시 속에서 당당함을 잃지 않으려는 어떤 태도가 엿보인다. 하지만 스스로 자신 있게 이방인이라고 부르는 노랫말에서 뉴욕에선 누구나 이방인이 된다는 역설과 마주하게 된다.
이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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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준이 뉴욕에서 만들어내는 패턴들
사진가 이경준은 2년 전 서울을 떠나 뉴욕에 정착한, 뉴욕의 이방인이다. 그는 전업 사진가는 아니다. 뉴욕에서 물리치료사로 일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사진가라는 수식이 전혀 불편하지 않은 것은 그의 작업이 보여준 일관되고 끈끈한 결과물 덕분이다.
이경준은 도시를 검색·관찰하고 적절한 순간에 카메라에 담아내는 도시 관찰자이자,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하나의 패턴으로 담아내는 패턴 창작자다. 두 가지 명제가 교집합을 이룰 때 그의 작업은 더욱 빛이 난다. 이경준이 자신의 SNS에서 그런 빛을 보여준 작품은 제법 많다. 서울에서도 그랬고, 뉴욕에서도 여전히 빛나는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코로나19로 전 세계에 팬데믹이 선포된 올해, 가장 피해가 극심하다는 미국에서 그는 뉴욕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패턴을 발견해 연작으로 작업하고 있다. 시리즈 이름은 ‘State of Emergency(비상사태)’다.
이경준

Q. ‘State of Emergency’라는 연작을 진행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요?
A. 2020년 3월 13일 뉴욕 시장이 ‘A State of Emergency’를 선포했죠. 그로 인해 변해가는 뉴욕의 일상을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문을 닫은 동네의 거리부터 그랜드센트럴과 타임스퀘어, 맨해튼의 주요 장소와 공원 등을 비롯해 사람들이 2m 간격으로 길게 줄을 선 마켓과 약국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Q. 작가님 사진은 주로 고층 빌딩과 눈높이가 같거나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앵글이라 볼 때마다 작업 방식이 궁금했어요.
A. 보통은 도시 속 전망대, 오픈된 루프톱이나 창문, 다리 위, 혹은 헬기를 타고 촬영해요. 제가 보고 싶은 것들은 멀리 있기 때문에 그런 제약을 해결하기 위해 망원 줌렌즈를 사용하고, 그것으로도 부족한 경우에는 후작업으로 크롭을 하거나 수직 수평을 맞추기도 합니다.
이경준

이경준

Q. 사진을 촬영하고자 하는 대상은 어떻게 결정하나요?
A. 우연에 많이 의존하는 편이에요. 길을 걷거나 어떤 장소를 물색하면서 촬영을 계획하기도 하지만, 그냥 돌아다니면서 마주하는 우연적 순간을 잡아내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Q. 인스타그램 프로필 문구가 ‘Urban Pattern(도시 패턴)’이에요. 어떤 의미인가요?
A. Urban Pattern 작업을 구체화한 것은 제대하고 대학원에 복학하던 시기부터였어요. 새로운 연구실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는데 때마침 프리랜서로 사진 일을 제안받았어요. 그러면서 제 삶이 좀 더 다채로워졌는데, 한편으로는 방향성과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 차버린 것 같았어요. 그러다가 촬영 중에 위에서 내려다본 도심의 모습이 저를 사로잡았죠. 도로의 차선, 교통 표지선, 횡단보도와 신호가 변함에 따라 분주하게 어딘가로 이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하나의 패턴으로 인식되었습니다.
Q. 작가님께 피사체로서 도시는 어떤 의미인가요?
A. 제가 친해지고 싶고 계속해서 친해져야 할 대상이에요. 그래야 도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제가 이 도시에서 살아가는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작년 이맘때쯤 건축가 친구가 제가 사는 동네로 이사 온 이후로 이 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누곤 하는데, 그런 대화들이 제 생각과 도시를 바라보는 태도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이경준

“멀리에서 바라보면 대상이 평면화됨으로써 도시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익명성을 얻게 된다고 생각했어요. 위에서 바라보면 사람들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고, 사람들은 당연히 저를 의식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모습이 숨김 없이 드러납니다. 사람들 사이의 물리적 거리가 그 사람들의 관계를 설명해주기도 하고요.”
이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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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어떤 것으로부터 영감을 받나요?
A. 제가 경험하는 모든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편이에요.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 첼시 갤러리에서 우연히 알게 된 작가의 작품, 인스타그램의 피드, 구름과 빛, 공원 산책 등 정말 제가 경험하는 많은 것에서 영감을 받습니다. 
Q. 뉴욕과 서울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요?
A. 2018년 1월에 뉴욕으로 왔어요. 도시와 저의 관계에 따라 도시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기에 단정적으로 말하긴 힘들지만, 서울과 뉴욕의 가장 큰 차이는 다양성에 있고 그 다양성을 자연스럽게 인정해주는 분위기에 있다고 생각해요. 
Q. 작업 환경은 어떤 점이 다른가요?
A. 뉴욕의 작업 환경이 좀 더 자유분방한 것은 사실이에요. 다른 이의 행동에 별반 신경 쓰지 않아서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과감하고 새롭게 도전할 수 있어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저는 이곳 사람도, 저곳 사람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더라고요. 예전에는 소속감이 없다는 것에 어떤 자유로움을 느꼈는데, 지금은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이방인으로서의 외로움이 큰 것 같아요. 그런 감정적 부분이 작업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우선 카메라를 잡는 시간이 줄었고, 카메라를 들고 다녀도 셔터를 누르는 데 좀 더 신중해진 것 같아요.
Q. 뉴욕에서 가장 좋아하는 풍경이나 장소는요?
A. 맨해튼의 스카이라인을 바라보거나 아이코닉한 건물들에 둘러싸여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찰 때가 있어요. 센트럴파크와 워싱턴 스퀘어 파크 산책하는 걸 제일 좋아합니다. 공원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여가를 즐기는 이들을 바라보는 일 자체로 기분이 좋아지고 또 다른 에너지를 얻게 되는 것 같아요. 
이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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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예전에 한 인터뷰에서 “빌딩 사이 각각의 창문에서 각기 다른 삶이 보였다. 개개인의 라이프스타일이 서로 다른 패턴을 만들어내는 것이 흥미로웠다”란 글을 보았습니다. 사람이 만들어내는 패턴이란 말은 어떤 의미인가요?
A. 창문은 모두 같을지언정 창문 안 내용은 조금씩 다르고 그 공간의 아이덴티티를 드러내기에 그 다양성이 또 하나의 패턴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했어요. 건축물과 사람은 언제나 유기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지요. 
Q. 코로나19로 모두들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는데, 요즘 뉴욕은 어떤가요?
A. 지난봄에 무척이나 힘든 시간을 보내서인지 마스크에 대한 인식도 많이 변한 것 같고, 이제는 대체적으로 사람들이 마스크 쓰기와 사회적 거리 두기를 잘 지키려고 하는 것 같아요. 야외 테라스만 운영하던 레스토랑과 카페들이 내부에서도 운영하기 시작했고, 거리도 활기를 되찾아가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Q. 코로나19 시대의 풍경이 작가님 사진과 묘하게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코로나19로 작업 방식이나 환경이 달라졌나요?
A. 상황이 한창 안 좋았을 때는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해 희생하는 분이 많다는 것을 알기에 여러모로 조심스러웠어요. 그래서 작업을 계획하고는 생필품을 구하러 나설 때마다 한 번씩 작업했는데, 한번 밖에 다녀오고 나면 긴장이 풀려서인지 며칠씩 집에서 뻗곤 했답니다. 코로나19 시대 이전에는 마음에 드는 순간을 잡아내려고 기다리는 일이 많았다면, 지금은 오히려 텅 빈 거리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이 많아졌어요.
이경준

“창문은 모두 같을지언정 창문 안의 내용은 조금씩 다르고 그 공간의 정체성을 드러내기에 그 다양성이 또 하나의 패턴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했어요. 건축물과 사람은 언제나 유기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지요.”
Q. 팬데믹 시대에 뉴욕의 어떤 부분을 담고 싶나요?
A. 예전과 달라진 모습을 잡아내고 싶어요. 초기에는 텅 빈 거리나 장소였다면, 지금은 팬데믹 시대에 적응해가는 사람들과 도시의 유기적 관계를 보고자 해요. 
이경준

이경준

Q. 하고 싶은 촬영이 있나요?
A. 뉴욕에서 화가 인터뷰를 담거나 아티스트 작업을 기록한 적이 있어요. 앞으로 기회가 되거나 상황이 나아지면 뉴욕 내 아티스트와 그들의 작업 공간을 담아보고 싶어요.
Q. 전업 포토그래퍼로 활동하고 싶은 마음은 없나요?
A. 예전보다 카메라를 손에 쥐고 있는 시간은 줄었지만 그래서 작업하는 시간이 더 즐거운 것 같아요. 제게 사진은 저의 내면을 표출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해요. 셔터를 누르는 행위 자체로 답답하던 감정이 풀리기도 하고, 어떤 위로를 받기도 하죠. 뉴욕으로 오면서 사진 작업은 제가 좋아하는 일로 남겨두자고 결심했어요. 삶에 탈출구가 하나쯤 있으면 좋으니까요.
Q. 화보집이나 전시를 보고 싶습니다.
A. 아직은 없지만, 언젠가 재밌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계획해보고 싶습니다. 

LEE KYUNG JUN IN NEW YORK

2020. 12 에디터:정재욱
자료제공: 이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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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12
  • 에디터: 정재욱
  • 자료제공:
    이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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