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나라 도자 파편에 올린 이택수 작가의 그릇
우리 시대의 공예
전통의 미감을 유지하면서 현재의 쓸모도 생각한 서울의 대표 공예 갤러리 두 곳, 수수덤덤과 공예장생호를 찾았다.
공예가 순수 미술과 다른 점은 쓸모에 있다. 순수 미술은 작품 그 자체로 감상과 장식의 가치만 있으면 되지만, 공예의 임무는 미감과 사용성에 있다. 두 가지가 온전히 공존해야 공예 예술품의 소임을 다하는 셈이다.

이인진 작가의 종지

이세용 작가의 접시
사발과 다완 사이의 그릇
물론 그 쓸모는 세월이나 쓰는 사람에 따라 변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사발이다.
600여 년 전 일본의 막부와 그 뒤의 무사들이 열광했던 다완은 조선의 사발이었다. 천대받던 조선의 도공들이 만든 사발은, 큰 것에는 국을 담고 작은 것에는 밥을 담았다. 더 작은 것은 찬을 담아 썼다. 애당초 말차를 담을 이유가 없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아름다움에만 고개를 숙인다는 일본 다인의 전설 센 리큐는 화려하고 유려한 당나라 다기가 아닌 정제되고 소박한 사발에 고개를 숙였다. 이후 조선의 사발은 더 이상 밥이 아닌 차를, 그리고 일본 권력의 정신마저 담는 그릇이 되었다.
조선의 600년을 건너온 현재, 쓸모를 유지하면서도 오랜 전통의 미감을 계승하거나 응용하고 있는 공예 갤러리를 찾았다.
600여 년 전 일본의 막부와 그 뒤의 무사들이 열광했던 다완은 조선의 사발이었다. 천대받던 조선의 도공들이 만든 사발은, 큰 것에는 국을 담고 작은 것에는 밥을 담았다. 더 작은 것은 찬을 담아 썼다. 애당초 말차를 담을 이유가 없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아름다움에만 고개를 숙인다는 일본 다인의 전설 센 리큐는 화려하고 유려한 당나라 다기가 아닌 정제되고 소박한 사발에 고개를 숙였다. 이후 조선의 사발은 더 이상 밥이 아닌 차를, 그리고 일본 권력의 정신마저 담는 그릇이 되었다.
조선의 600년을 건너온 현재, 쓸모를 유지하면서도 오랜 전통의 미감을 계승하거나 응용하고 있는 공예 갤러리를 찾았다.

멀리 남산이 보이는 수수덤덤 전경
전통에 오늘이라는 시간을 더한, 수수덤덤
박여숙화랑의 박여숙 대표가 2015년 밀라노 트리엔날레 디자인 뮤지엄에서 한국 공예 전시관 감독을 맡을 당시 전시 제목은 <수수, 덤덤, 은은>이었다. 모든 이가 크고 화려한 것에 주목했지만 박여숙 대표는 우리 공예의 아름다움이 ‘수수하고 덤덤하며 은은한’ 것에 있다고 생각했다. 전시는 성공적이었다. 이후 청담동에 있던 박여숙화랑을 용산구 소월길로 이전하면서 순수 미술 갤러리뿐 아니라 우리 공예를 함께 소개하기로 계획했다. 건물을 지을 때 건물 지하 1층과 1층은 박여숙화랑으로, 2층은 공예 작품 갤러리 ‘수수덤덤’으로 꾸몄다. 그리고 3층은 다실과 전시실로 만들어 손님을 맞았다.

권대섭 작가의 사발 3종. 상은 고가구

권대섭 작가의 사발. 정상길 작가의 생칠 두레반

이인진 작가의 주전자와 숙우, 다기
공예품은 감상을 넘어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수수덤덤에서는 직접 손님을 초대하기 위해 긴 테이블과 큰 주방을 두었다. 갤러리 작품들을 사용해 손님상을 차리고 대접한다. 이는 공예품의 본질이기도 하다.
수수덤덤에서 전시·판매하는 작품들은 단순히 실용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우리 공예가 지닌 전통적 미감과 제작 방식을 온전히 계승해 작품을 만드는 작가들의 작품이 주를 이룬다.
화랑을 이태원으로 이전하고 첫 번째 개관전이 달항아리로 유명한 도예가 권대섭 작가의 전시였다는 사실은 이곳의 지향점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준다. 참고로 최고 팝스타인 방탄소년단의 RM이 권대섭 작가의 달항아리를 구입해 SNS에 올리면서 큰 화제를 모았다. RM은 얼마 전 권대섭 작가의 ‘사발’ 전시에서도 사발을 구매했다. 권대섭 작가를 비롯해 박성욱, 안시성, 이경노, 이헌정, 이인진, 이택수 작가 등의 작품이 수수덤덤을 통해 소개됐다.
수수덤덤에서 전시·판매하는 작품들은 단순히 실용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우리 공예가 지닌 전통적 미감과 제작 방식을 온전히 계승해 작품을 만드는 작가들의 작품이 주를 이룬다.
화랑을 이태원으로 이전하고 첫 번째 개관전이 달항아리로 유명한 도예가 권대섭 작가의 전시였다는 사실은 이곳의 지향점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준다. 참고로 최고 팝스타인 방탄소년단의 RM이 권대섭 작가의 달항아리를 구입해 SNS에 올리면서 큰 화제를 모았다. RM은 얼마 전 권대섭 작가의 ‘사발’ 전시에서도 사발을 구매했다. 권대섭 작가를 비롯해 박성욱, 안시성, 이경노, 이헌정, 이인진, 이택수 작가 등의 작품이 수수덤덤을 통해 소개됐다.

이경노 작가의 작품들이 전시된 진열대

이경노 작가의 은입사 화로와 사각 합

이경노 작가의 백동 3단 원형 합
“조선의 미감은 수수하고 덤덤하죠. 단순하지만 해학이 있고 아름다워요. 그래서 처음엔 눈에 띄지 않지만 볼수록 정이 가고 따뜻하고 친밀감이 느껴지는 것이 우리식 예술성이에요.” 그래서 수수덤덤의 작품들은 화려하기보단 대체로 소박해 보이지만, 언뜻 비치는 그 아름다움이 단단하고 농밀하게 느껴진다.
박여숙 대표는 최근 국가지정 은입사장 이경노 작가와 협업하는 것이 즐겁다. 기술은 충분했지만 작가가 전통과 현재 사이에서 고민할 때 디자인과 용도 등 작업의 방향을 함께 세웠다. 그 결과물이 만족스러워서 보람을 느끼고 있다. 이경노 작가와의 결과물은 2021년에 있을 청주공예비엔날레에서 소개할 계획이다.
물론 수수덤덤에 방문하면 틈틈이 확인할 수 있다.
박여숙 대표는 최근 국가지정 은입사장 이경노 작가와 협업하는 것이 즐겁다. 기술은 충분했지만 작가가 전통과 현재 사이에서 고민할 때 디자인과 용도 등 작업의 방향을 함께 세웠다. 그 결과물이 만족스러워서 보람을 느끼고 있다. 이경노 작가와의 결과물은 2021년에 있을 청주공예비엔날레에서 소개할 계획이다.
물론 수수덤덤에 방문하면 틈틈이 확인할 수 있다.

박여숙화랑의 전시 전경. 이우환 작가의 그림과 권대섭 작가의 달항아리가 보인다.
전통의 소박한 멋이 현재의 취향과 만날 때, 공예장생호

해인요의 백자 매화문 다관(찻주전자)
종로구 인사동10길에 위치한 공예장생호는 축적된 경험에서 비롯된 안목과 개인적 취향이 만나 잉태된 공예 갤러리다. 어머니가 인사동에서 40년간 고미술을 소개하는 고미술 장생호를 운영하면서 자연스럽게 우리 고미술과 전통에 대한 안목을 쌓은 정현주 대표가 차린 공간이다. 인사동 보도블록 아래 깊숙이 고미술 장생호와 공예장생호는 시간의 뿌리가 연결된 셈이다.
“이런 콘셉트를 지닌 갤러리는 별로 없어요. 공예품을 전시하는 큰 갤러리나 미술관이 많으니 한정적으로 내 취향에 맞는 소규모 갤러리 하나쯤 있어도 되겠다 싶었어요.”
변화와 부침을 많이 겪곤 있지만 그래도 인사동은 인사동이다. 문을 열면 무슨 무슨 갤러리와 표구사가 눈에 들어온다.
“이런 콘셉트를 지닌 갤러리는 별로 없어요. 공예품을 전시하는 큰 갤러리나 미술관이 많으니 한정적으로 내 취향에 맞는 소규모 갤러리 하나쯤 있어도 되겠다 싶었어요.”
변화와 부침을 많이 겪곤 있지만 그래도 인사동은 인사동이다. 문을 열면 무슨 무슨 갤러리와 표구사가 눈에 들어온다.

공예장생호 매장 전경

해인요의 백자 각면 화병, 머그

이재원 작가의 흑유 사각접시
공예장생호에는 도자, 생활자기가 많다. 그 기본에 다양한 오브제나 여러 작품을 더해 함께 소개하는데, 뜻과 취향이 잘 맞는 젊은 공예가들의 작품이 주를 이룬다. 백자 위주의 작업을 하는 해인요 김상인, 뜨개를 이용해 장식용 오브제를 만드는 오수, 유리공예를 하는 김은주 등 취향과 안목이 잘 맞는 작가들의 작품이 소개된다.
작당하고 싶은 일도 많다. 얼마 전 우리 차 문화를 알리는 옥인다실, 옛 활판을 이용해 인쇄하는 긷, 그리고 다양한 아티스트와 함께 ‘여항 공예’라는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2020 공예주간의 모퉁이 행사였다.
조선 시대 후기 경제적으로 살 만해진 중인 계급의 취미이자 문화 활동이던 여항 문화에서 착안한 것이다. 당시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중인들 사이에선 서로 모여 좋아하는 시를 읊거나 그림을 사들여서 자랑하고 기악이나 가무를 즐기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다. 요즘 인스타그램에서 여행이나 소비 활동을 자랑하는 일들이 18세기에도 있었던 건데, 중인들의 플렉스였던 셈이다.
작당하고 싶은 일도 많다. 얼마 전 우리 차 문화를 알리는 옥인다실, 옛 활판을 이용해 인쇄하는 긷, 그리고 다양한 아티스트와 함께 ‘여항 공예’라는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2020 공예주간의 모퉁이 행사였다.
조선 시대 후기 경제적으로 살 만해진 중인 계급의 취미이자 문화 활동이던 여항 문화에서 착안한 것이다. 당시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중인들 사이에선 서로 모여 좋아하는 시를 읊거나 그림을 사들여서 자랑하고 기악이나 가무를 즐기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다. 요즘 인스타그램에서 여행이나 소비 활동을 자랑하는 일들이 18세기에도 있었던 건데, 중인들의 플렉스였던 셈이다.

해인요의 백자 발우
1월 즈음에는 ‘노천 소성’이라 불리는 과거에 야외에서 가마 없이 굽는 도자 제작 방식을 그대로 재현해 만든 현 시대의 작품들을 삼국시대 토기와 함께 전시할 예정이다. 과거 무형의 전통이 현재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어떤 결과물이 나올 수 있는지 시도하는 것도 정현주 대표에게는 즐거운 일이다. 공예장생호에서는 과거의 우리 공예와 현재의 쓸모와 감각이 만나 제3의 작품으로 완성되는 좋은 예를 확인하게 된다.

고려청자 사발과 조선백자 항아리, 김은주 작가의 유리새 등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져 진열되어 있다.

석상 사이로 보이는 공예장생호의 한자 제호

해인요의 백자 달항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