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화문, 캔버스에 유채, 60 x 40cm (15호), 2014
심슨 가족이 안내하는 서울 여행
호머와 마지, 바트와 리사, 매기 등 심슨 가족이 한국을 찾는다면 어느 곳으로 안내할까? 광화문 일대를 비롯해 전주와 부산, 대구와 안동에 이르기까지 심슨 가족과 함께 전국을 여행했다.
화가 이종기는 해외 만화 속 주인공을 한국의 고유한 배경과 이미지로 끌어들여 하나의 일관된 그림 세계를 그려내는 팝아트 작가다. 그의 작품 속 주인공 심슨 가족의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국내 곳곳을 유쾌하게 여행하게 된다.

계동 이모네분식, 캔버스에 유채, 150 x 150cm (120호), 2018

가회동 31번지, 캔버스에 유채, 52 x 72cm (20호), 2015

서촌, 캔버스에 아크릴 채색, 73 x 118cm (50호), 2019년
북촌과 서촌 여행
심슨 가족이 한국에서 여행하는 동안 머무는 숙소는 우리가 북촌이라 부르는 가회동 31 골목 안 한옥이다. 서울 관광의 시작은 역시 광화문이다.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한 심슨 가족은 경복궁을 배경으로 캐딜락을 몰며 유유히 관광을 즐긴다. 서촌 골목길을 누비고, 경복궁 동문인 건춘문을 지나 계동 이모네 분식 앞에서 하루를 마무리한다.

광안대교 3, 캔버스에 아크릴, 50 x 117cm (변형 30호), 2020

오륙도 1,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73 x 100cm (40호), 2017
부산 바다 위를 소리 없이 날아가는 슈퍼맨
슈퍼맨은 이종기 작가 작품 중 주요 캐릭터 중 하나다. 그림 속 슈퍼맨은 부산 광안대교와 오륙도 일대에 출몰해 날아가고 있다. 악당으로부터 지구를 지킬 일이 많지 않은지, 슈퍼맨은 배경 속에서 유심히 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게 그려졌다. 슈퍼맨은 모험에서 벗어나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듯 소리 없이 평화롭게 부산 바다 위를 날아간다.

대구 광거당, 캔버스에 아크릴, 91 x 91cm (50호), 2017

안동 긍구당, 캔버스에 아크릴, 91 x 91cm (50호), 2017
안동 대구 여행
대구 경북 지역 그림에는 바트와 리사, 매기 등 심슨의 자녀들이 주로 등장한다. 리사가 매기와 자전거를 타며 노는 광거당은 대구 민속문화재 제3호로 지정된 남평문씨본리세거지 속 한옥이다. 안동의 긍구당에서는 바트가 경비행기를 몰고 18세기로 날아가 그림 속을 날아다니는데, 긍구당 뒤 수묵화 배경은 단원 김홍도의 단원화첩(檀園畵帖)에 등장한 배경을 차용한 것이다.

전주 한옥마을, 캔버스에 아크릴 채색, 65 x 100cm (40호), 2020

오목대, 캔버스에 아크릴 채색, 100 x 100cm (60호), 2020
전주 한옥마을 가족여행
전주는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이 꼭 한 번 가보고 싶어 하는 장소다. 조선 시대 초기의 흔적과 한옥이 빽빽이 들어선 한옥마을, 그리고 맛의 고장이기 때문이다. 심슨 가족 역시 눈 덮인 겨울의 전주를 방문해, 한옥마을뿐 아니라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고려 말 연회를 열었던 오목대에서도 기념 촬영을 했다.

직접 지은 한옥에서 발견한 그림 소재
시작은 이렇다. 이종기 작가는 2004년 가회동 31번지 골목에서 직접 살 한옥을 짓고 있었다. 당시 젊은 학생 무리가 한옥 모습을 신기해하며 사진을 찍었다. 우리 전통 가옥임에도 한옥은 사람들에게서 잊히고 젊은 층에게는 낯섦과 구경거리로만 남아 있었다. 이종기 작가는 한옥과 옛 골목길이 젊은 세대에게 이질감이 느껴지거나 낯선 문화로 남은 상황을 미술 작품으로 구성하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당시 텔레비전 케이블에서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The Simsons)>을 방영했다. 애니메이션을 보며 이종기 작가는 한옥 앞에서 마주쳤던 청년들이 떠올랐다. 심슨 가족을 젊은 세대나 한국의 전통문화에 낯선 여행자들로 투영해 가회동 31번지를 비롯한 북촌 일대를 구경하는 작품을 구상했다. 이종기 작가의 인기 연작 ‘가회동 31번지’ 시리즈의 출발이다.
당시 텔레비전 케이블에서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The Simsons)>을 방영했다. 애니메이션을 보며 이종기 작가는 한옥 앞에서 마주쳤던 청년들이 떠올랐다. 심슨 가족을 젊은 세대나 한국의 전통문화에 낯선 여행자들로 투영해 가회동 31번지를 비롯한 북촌 일대를 구경하는 작품을 구상했다. 이종기 작가의 인기 연작 ‘가회동 31번지’ 시리즈의 출발이다.

유머와 패러디가 즐거운 그림 속 여행
비교적 늦은 나이에 미술을 다시 시작한 이종기 작가에게 2020년은 또 다른 의미에서 출발의 해였다. 그는 국내 대표 미술 경매 회사 서울옥션에서 진행한 ‘제로베이스(시작가를 0원에서 출발하는 미술 경매 방식)’, 4번째 시즌에서 작품이 가장 많이 팔린 작가였다. 또 최고가에 낙찰되는 기록을 세웠다. 덕분에 2021년도 서울옥션 기념 달력에 제로베이스 작가 중 유일하게 그의 작품이 소개되었다.
그의 작품이 인기를 얻는 이유는 누구나 잘 아는 심슨이라는 만화 캐릭터와 한옥과 궁궐, 산수화라는 가장 한국적인 풍경 같은 이질적 요소가 섞여 있음에도, 묘하게 재미있고 유쾌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고 대중적이라는 점에서다.
그의 작품이 인기를 얻는 이유는 누구나 잘 아는 심슨이라는 만화 캐릭터와 한옥과 궁궐, 산수화라는 가장 한국적인 풍경 같은 이질적 요소가 섞여 있음에도, 묘하게 재미있고 유쾌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고 대중적이라는 점에서다.



팝아트의 길을 걷는 그의 작품에는 때로는 오마주와 패러디와 유명 인물이 등장한다. 서촌의 좁은 도로를 걷고 있는 심슨 가족을 보면 비틀스의 <애비 로드> 앨범이 자연스럽게 연상된다. 또 슈퍼맨이 뜬금없이 등장해 부산의 광안대교와 오륙도 바다 위를 묵묵히 날아가고, 단원 김홍도의 화첩 속 배경 하늘에서는 빨간 프로펠러 비행기가 유유히 날아다닌다. 경복궁 정문 천장화를 <반지의 제왕> 패러디 배경으로 끌어들인 작품도 있다. 작가가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자개장 무늬 속에서 바트 심슨이 잔디를 깎거나, 공주가 사용하던 방석의 문양 안에서 아버지 호머 심슨이 여유 있게 맥주 캔을 들이켜는 위트가 그림에서 돋보이는 것도 대중문화와 전통의 교집합을 세심하게 찾아낸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