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 피노의 꿈, 부르스 드 코메르스

한 개인이 모을 수 있는 예술품은 과연 얼마나 될까? 그 한계가 궁금하다면 파리의 부르스 드 코메르스를 찾아보라. 케링 그룹 창업주이자 아트 컬렉터 프랑수아 피노의 새로운 현대미술관이 파리에 문을 열었다.

지난 5월부터 프랑스 파리는 오랫동안 시행해온 통행 제한을 풀고 레스토랑과 바의 테라스를 열며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6월에 찾은 파리 교통의 중심지 레알(Les Halles) 역시 많이 분주해졌다. 7년여의 리노베이션 기간을 거쳐 2018년 재탄생한 쇼핑몰 웨스트필드 포럼 데 알(Westfiled Forum des Halles) 옆의 넬슨 만델라 정원(옛 레알 정원)에서도 많은 사람이 여름 햇살을 즐기고 있다. 넬슨 만델라 정원 끝에는 이번 통행 제한 해제에 맞춰 5월 22일 문을 연 케링(Kering) 그룹 창업주이자 아트 컬렉터 프랑수아 피노(François Pinault)의 새로운 현대미술관 ‘부르스 드 코메르스(Bourse de Commerce)’가 자리 잡고 있다.

Bourse de Commerce — Pinault Collection © Tadao Ando Architect & Associates, Niney et Marca Architectes, Agence Pierre-Antoine Gatier. / Photo Vladimir Partalo

“처음에는 그저 도달할 수 없는 꿈과 같았다. 그러던 꿈이 더 큰 열망이 되었고, 이제 그 열망이 현실이 되었다. 언젠가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도시 파리에서 내 컬렉션을 보여줄 수 있기를 오랫동안 바랐다. 그런 점에서 이번 오프닝은 개인적으로 너무도 의미 있는 순간이다.”

프랑수아 피노

Drapeau, décembre 2020 © Studio Bouroullec, Courtesy Bourse de Commerce - Pinault Collection / Photo Studio Bouroullec

Bourse de Commerce — Pinault Collection © Tadao Ando Architect & Associates, Niney et Marca Architectes, Agence Pierre-Antoine Gatier / Photo Vladimir Partalo

여든넷 컬렉터의 꿈과 미술관

도시의 재오픈과 함께 그간 문을 닫았던 파리의 여러 뮤지엄과 미술관도 관람객을 다시 받기 시작했다. 그중 부르스 드 코메르스는 올여름 파리 예술계의 가장 핫한 미술관으로 떠올랐다. 파리 한복판의 랜드마크 건축물이라는 점 말고도, 1만여 점이 넘는 프랑수아 피노의 컬렉션을 볼 수 있는 공간으로 오픈 전부터 화제를 불러모았다. 그 덕분인지 코로나19로 관광객이 거의 없는 기간임에도 부르스 드 코메르스는 한 달 뒤까지 관람 예약이 모두 찼을 정도로 파리지앵의 높은 사랑을 받고 있다.

Bourse de Commerce — Pinault Collection © Tadao Ando Architect & Associates, Niney et Marca Architectes, Agence Pierre-Antoine Gatier / Photo Marc Domage

프랑수아 피노는 2000년에 파리 외곽 센강의 스갱섬에 자신의 이름으로 뮤지엄을 짓고자 했지만, 여러 이유로 결국 포기해야 했다. 그 대신 베니스에 2개의 피노 컬렉션 미술관 팔라초 그라시(Palazzo Grassi)와 푼타 델라 도가나(Punta Della Dogana)를 차례로 열며 예술적 역량을 과시해왔다. 하지만 그의 영원한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LVMH 그룹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이 2014년 먼저 파리의 불로뉴 숲에 퐁다시옹 루이 비통(Fondation Louis Vuitton) 미술관을 열고 환호받는 모습을 보며 더욱 자극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사업가인 두 사람은 비슷한 영역에서 사업을 운영해왔다. 럭셔리 비즈니스에 먼저 눈을 돌린 베르나르 아르노가 재력 면에서는 우세하지만, 경매사 크리스티 소유주이자 컬렉터로서의 감각으로는 한 수 위라는 평가를 받는 프랑수아 피노인지라 파리에 미술관을 오픈하는 일에 선수를 뺏긴 사실을 아쉬워한다는 후문도 들려왔다. 그러던 중 2016년 파리시로부터 부르스 드 코메르스 건물의 복원과 향후 50년간의 운영권을 제안받으며 파리에 미술관을 열고자 한 꿈을 여든넷의 나이에 이루게 된 것이다.

) Bourse de Commerce — Pinault Collection © Tadao Ando Architect & Associates, Niney et Marca Architectes, Agence Pierre-Antoine Gatier / Photo Maxime Tétard, Studio Les Graphiquants, Paris

Bourse de Commerce — Pinault Collection © Tadao Ando Architect & Associates, Niney et Marca Architectes, Agence Pierre-Antoine Gatier / Photo Maxime Tétard, Studio Les Graphiquants, Paris

“건축가의 일은 과거, 현재, 미래를 잇는 것이다. 부르스 드 코메르스 안에 담긴 옛 파리의 기억을 되새기고 그 과거와 새로운 현재의 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새로운 구조물을 더하고자 했다.”

부르스 드 코메르스의 건축가 안도 타다오

피노 컬렉션의 파트너 건축가 안도 타다오

부르스 드 코메르스는 기품 있는 네오클래식 양식과 중앙의 넓은 로툰다(원형의 평면을 지닌 건물) 위의 화려한 돔으로 잘 알려져 있는 건물로, 이전까지는 파리의 상공회의소가 사용해왔다. 원래 1763년 곡물 저장소로 지은 것인데, 1889년 상품거래소로 변신하며 당시의 새로운 기술을 이용한 메탈과 유리로 된 돔과 함께 두 세기의 역사를 담은 건축물로 다시 태어났다.
그런 부르스 드 코메르스를 21세기의 건축을 더해 새롭게 탄생시킨 주인공은 일본 건축가 안도 타다오다. 그는 이미 베니스에 오픈한 피노 컬렉션의 미술관인 팔라초 그라시와 푼타 델라 도가나를 성공적으로 완성한 바 있다.

Bourse de Commerce — Pinault Collection © Tadao Ando Architect & Associates, Niney et Marca Architectes, Agence Pierre-Antoine Gatier / Photo Patrick Tourneboeuf

부르스 드 코메르스에는 로마의 판테온에서 영감을 얻은 높이 9m, 지름 30m의 실린더형 콘크리트 벽을 로툰다에 세워 특유의 간결하면서도 시적인 건축 스타일을 불어넣었다. 건물은 외관부터 내부의 기계실에 이르기까지 옛 모습 그대로를 재현하도록 장인들의 전통 기술과 최신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복원 작업을 거쳤다. 새로운 기법의 글레이징을 통해 자연광으로부터 작품을 보호하고 열효율성을 높인 돔의 특수 유리를 통해 보이는 하늘은 구름과 빛의 변화만으로도 한 편의 작품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유리 돔 밑에는 세계 무역의 발달을 묘사한 프레스코가 천장을 메우고 있다. 제국주의를 묘사한다는 평가도 있지만 이 역시 원형대로 복원해 현대적 전시 공간과 대비를 극대화한다.

Ronan et Erwan Bouroullec, Luminaire, escalier 19e © Studio Bouroullec / Courtesy Bourse de Commerce - Pinault Collection

건물 1층과 2층에는 전시 공간과 아틀리에가 자리한다. 지하 2층에는 다양한 행사를 진행할 수 있는 오디토리움과 비디오와 사운드 인스톨레이션을 위한 스튜디오를, 3층에는 레스토랑과 카페를 포함한 휴식 공간을 만들었다. 건물 내·외부와 레스토랑, 카페를 장식하는 가구 및 조명은 프랑수아 피노와 같은 브르타뉴 출신의 형제 디자이너 로낭 & 에르방 부룰레크(Ronan & Erwan Bouroullec)가 맡았다.

Sherrie Levine, After Russell Lee, 2016 / Courtesy Sherrie LevineRichard Prince, Untitled (Cowboy), 2015 © Richard Prince / Courtesy Gagosian and the artist.Michel Journiac, 24 heures de la vie d'une femme ordinaire, 1974 © Michel Journiac / ADAGP, Paris 2020 / Courtesy Galerie Christophe GaillardPhoto : Aurélien Mole / Bourse de Commerce — Pinault Collection © Tadao Ando Architect & Associates, Niney et Marca Architectes, Agence Pierre-Antoine Gatier

전시 오프닝

부르스 드 코메르스의 오프닝 전시 타이틀은 이름 그대로 ‘오프닝’이다. 지하 2층에서 지상 2층까지 이어지는 전시 공간에는 조각, 사진, 회화, 설치 작품들이 공간별로 배치돼 있다. 로툰다에서 전시하는 우르스 피셔(Urs Fischer)의 ‘사비네 여인의 납치’와 의자 시리즈를 비롯해 피에르 위그(Pierre Huyghe), 베르트랑 라비에(Bertrand Lavier), 데이비드 해먼스(David Hammons) 등 프랑수아 피노와 깊은 인연을 맺어온 아티스트 32명의 작품을 기존에 소개되지 않은 컬렉션을 중심으로 전시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앞으로도 방대한 피노 컬렉션을 소개할 예정이다. 작은 관심을 내비치는 것만으로도 무명 아티스트의 주가가 급상승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프랑수아 피노. 그런 만큼 이곳이 여러 신인 아티스트를 소개하는 새로운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다.

Maurizio Cattelan, Others, 2018 © Maurizio Cattelan / Courtesy de l'artiste et de Bourse de Commerce - Pinault Collection. Photo Marc Domage

Ryan Gander, I... I... I…, 2019 © Ryan Gander / ADAGP, Paris 2021 Exhibition view: Ouverture, Bourse de Commerce - Pinault Collection, Paris, 2021 / Courtesy the artist and Bourse de Commerce - Pinault Collection / Photo: Aurélien Mole

주소 2 Rue de Viarmes, 75001 Paris
전화 +33 1 55 04 60 60
운영시간 매일 11:00~19:00 (화요일 휴무)
홈페이지 부르스 드 코메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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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9	에디터:정재욱 글: 정재훈
자료제공: 부르스 드 코메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