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CULTURE

이토록 세련된 어른의 놀이터
클럽과 카페, 맛집만 있는 줄 알았던 이태원에 멋진 만화방이 생겼다. 만화 전문 서점 ‘그래픽’에서 만화를 사랑하던 16세 소년이 깨어나고 있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더욱더 세밀한 주제와 소재를 담아낸 다양한 형식의 책들이 끊임없이 출판되는 중이다. 멸종이 아닌 일종의 진화를 하고 있달까?
책을 만나는 장소도 확장되고 있다. 소수 마니아나 덕후를 위한 책은 주로 독립 서점에서 소개하고 판매해왔는데, 7년 전만 해도 100여 개가 채 되지 않던 독립 서점이 5년 만에 거의 다섯 배 이상 그 수가 증가했다. 이렇게 다양한 책을 소개하고 읽고 살 수 있는 작은 공간들이 늘어나고 있음에도 만화책을 모아놓은 서점은 그리 눈에 띄지 않는다.

그래픽 서점의 외관 / 사진 제공 강민구 © design studio u.lab

책도 읽고 휴식도 함께 할 수 있는 공간

마블과 DC 코믹스의 다양한 코믹북 시리즈

특별한 공간을 만들기까지
그런데 멋진 의자에 눕듯이 앉아 맥주 한잔 옆에 두고 DC 코믹스의 ‘배트맨’ 시리즈를 쌓아놓고 읽고 싶은 어른들의 철없는 상상을 실현시켜주는 공간이 등장했다. 이태원 경리단길 부근에 문을 연 만화 전문 서점 ‘그래픽’이다.
요즘 시대에 누가 종이 만화책을 보러 갈까 싶은데 평일에도 늘 줄 서서 기다려야 한다. 주말은? 말할 것도 없이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조금 늦으면 두어 시간 대기쯤은 각오해야 한다.
그래픽을 찾았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건물 그 자체다. 별다른 간판이나 안내 문구가 없어 만화 전문 서점으로 추측하기 어려운 외관이다. 독특하고 거칠어 보이는 외벽 질감은 오래된 책에서 느껴지는 종이의 결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그 모티브를 건축적 질감으로 구현하고 싶었는데 이를 미술가인 문평 작가가 정확하게 만들어 보여줬고, 이를 기반으로 외벽을 제작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건물을 주의 깊게 살펴보니 세심한 종잇결이 보이는 것 같다.

종잇결이 느껴지는 그래픽 서점의 외부 질감 / 사진 제공 강민구 © design studio u.lab

각 층마다 공간의 느낌을 달리한 그래픽 서점

직원들의 추천 책들도 한 곳에서 소개하고 있다.

그래픽 공간을 디자인한 유랩 김종유 대표가 건축주와 함께 공간을 상상할 때 가장 많이 소환한 것은 어린 시절 추억이었다. 카펫이 깔린 대형 서점 바닥에 철퍼덕 앉아 마음껏 책을 읽던 기억이 두 사람의 머릿속에 깊게 각인돼 있던 모양이다.
그 추억을 발판 삼아 그래픽의 공간과 할 일을 구상하고 반영해갔다.
주택가라는 동네 특성상 바깥이 보이는 벽의 외부 창은 모두 없애는 대신 각 층 천장마다 창을 냈다. 그렇기에 외부와 단절되긴 했지만 빛이 자연스럽게 들어와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만화책을 즐기는 이들의 취향을 보호하고 존중하는 느낌이 든다. 의자와 테이블 하나도 의미 없이 그냥 배치하지 않았다. 방문자의 동선과 테이블 간 거리, 층마다 지닌 고유한 느낌에 따라 테이블이나 구성도 달리했다.

만화책과 그림책, 화보집 등 비주얼 좋은 책으로 가득하다.

비닐에 쌓인 책이 없다
그래픽을 이용하려면 입장료를 내야 한다. 입장료는 1만5,000원. 시간 제한 없이 머물 수 있으며, 커피와 탄산 등 음료 역시 무제한이다. 게다가 입장 당일 서점 안에 있는 책을 구매하는 경우 1만 원 할인까지 받을 수 있다. 입장료가 전혀 비싸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서점 입구에 안내된 QR코드로 입장료를 결제한 후 직원 안내에 따라 안으로 들어간다. 총 3층으로 이루어진 공간 구석구석 책이 진열되어 있다. 장르별로 층을 구분해놓았는데 1층에는 일본 만화의 신으로 추앙받는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를 비롯해 마블과 DC 코믹스, 판타지와 호러, SF 등의 장르 만화가 비치되어 있다. 2층엔 음식이나 일상, 범죄와 스릴러, 스포츠 등을 주제로 한 책이, 3층에는 사진과 패션, 음악 관련 화보집 등이 자리한다.

내부 어디에서든 다양한 종류의 만화책을 만날 수 있다.

일본 비즈니스 만화의 상징인 시마 시리즈

영화 관련 책들도 볼 수 있다.

전체적으로 만화책과 그래픽 노블이 중심이긴 하나 다양한 장르의 사진이나 아트북, 그림책도 상당수 있다. 또 아트북 전문 출판사 타셴과 계약해 미술은 물론 건축이나 화보집 등 다양한 아트북을 갖추고 있다. 일반 서점에서는 비닐에 쌓여 있어 구입하지 않는 한 읽을 길 없는 만화책, 아트북이나 화집을 마음껏 볼 수 있는 점은 특별한 경험과 해방감을 안겨준다. 3층에는 술을 주문할 수 있는 바가 마련되어 있다. 주로 몰트위스키와 와인, 맥주류 등이 있다. 하단에 QR코드가 있는 책은 모두 구입 가능하다는 표시다.
대체로 장르별로 구분하고 있지만 ‘봄에 읽고 싶은 책’, ‘바쁘다 바빠 직장생활’, ‘끝까지 읽어야만 진가를 알 수 있는 책’ 등 자체적으로 주제별로 묶어 추천작을 소개하기도 한다. 바쁘다 바빠 직장생활 코너에는 일본 비즈니스 만화의 신화로 일컫는, 시마 사원부터 시마 회장까지의 일대기를 담은 <시마 과장>이 전권 비치되어 있다.  

천장에 창을 내어 밝은 빛이 자연스럽게 들어온다.

어른이의 취향이 모인 곳
주말이면 문을 여는 순간부터 만석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웨이팅 리스트에 이름을 적어놓고 기다림의 시간을 즐겨야 한다. 웨이팅 어플을 통해 등록하면 알림으로 호출을 해주니 인근에서 볼일 보며 여유를 갖고 기다려보자.

음악이나 패션, 디자인 관련 서적 중심인 3층

그래픽에서는 희소성 있는 책들도 볼 수 있다.

그래픽은 술과 음료를 즐길 수 있는 만화책방이다.

그래픽은 어른이의 분명한 취향을 위해 만든 공간이다. 건축과 공간, 진열된 책과 알코올 음료, 여기에 공기처럼 흐르는 음악까지. 힙합이나 라운지, 올드스쿨 등 다양한 음악이 공간 사이사이 스며들어 맴돈다. 드라마나 시트콤에서처럼 다 큰 어른이 낄낄거리며 만화책을 읽는 일이 그래픽에서만큼은 더 이상 부끄러울 필요 없는, 온전히 존중받는 취향으로 남는다. 이렇게 개인의 취향과 취미를 위한 공간이 얼마나 해방감을 주는지, 경험해본 사람은 안다.
나 스스로를 존중하고 만족시키기 위해 하루의 반나절쯤 기꺼이 보낼 수 있는 공간이 이태원에 생겼다.

주소 서울시 용산구 회나무로39길 33
전화 +82-070-4070-0204
운영시간 화~금 16:00~23:00 / 토·일 13:00~23:00 (월요일 휴무)
인스타그램 www.instagram.com/graphic.fan
2022. 6 에디터:정재욱
포토그래퍼:김준 자료제공: 디자인스튜디오 유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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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6
  • 에디터: 정재욱
  • 포토그래퍼: 김준
  • 자료제공:
    디자인스튜디오 유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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