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CULTURE

아트사이드 갤러리에서 진행한 조은 작가의 전시

조은이 그려가는 도시 일상과 여행의 풍경
얼마 전 전시회를 마친 아티스트 조은과 여행 지역과 도시, 작품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수묵화의 농담처럼 그의 답변들은 옅게 문장 곳곳에 번져 스며들었다.
“저는 자연을 바라보면 안정감을 느끼는데, 그건 자연의 모습이 균일하거나 반듯해서가 아니에요. 저마다의 고유한 형태를 지닌 자연물들이 말 그대로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모습에서 어떤 편안함을 느끼죠. 다양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 제 안에 이상적인 내러티브들을 쌓아나가고, 이를 작품으로 시각화하고 있어요.”

집이 낮고 나무가 높은 길_2020_한지에 수묵 채색_90×198㎝

대상의 실재 풍경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다는 의미의 조선 시대 진경산수화가 실제로 그 장소를 닮았는지를 연구한 명지대 미술사학과 이태호 교수는 자신의 책 <옛 화가들은 우리 땅을 어떻게 그렸나>에서 대부분의 실재 풍경과 그림들이 그리 닮아 있지 않았다고 말한다. 오히려 정선을 비롯한 많은 화가가 눈에 보이는 경치 그대로가 아닌, 작가의 머릿속에 담긴 대상의 이상적인 모습을 실재 모습과 함께 재구성한 것에 가깝다고 한다. 그래서 인왕산을 그린 ‘인왕제색도’를 비롯해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를 보면 실재 장소와 무척 닮아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이상향의 모습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Beads in the Green_2021_한지에 수묵 채색_126×126㎝

Beads in the Green_2022_한지에 수묵 채색_126×126㎝

서울 경복궁 인근에 위치한 아트사이드 갤러리에서 지난여름, 조은 작가의 전시가 있었다. 좋은 평을 받은 첫 개인전이었다. 앞으로도 그리고 전시하고 또 그리기를 반복해도 된다는 일종의 ‘라이선스’를 받은 셈이다.

조은 작가의 작품을 보면서 가장 먼저 느낀 점도 진경산수화를 보았을 때의 느낌과 같았다. 하지만 그의 작품이 진경산수화라는 의미는 아니다. 아름답고 빽빽한 나무숲 사이마다 집들이 있고 그 앞에는 해변과 사람들이 있다. 여유로움이 가득 묻어나는 풍경의 그림. 나무와 숲, 바다와 물결이 수묵화의 농담처럼 자연스럽게 표현되어 있는 것을 보니 나도 모르게 편안한 웃음이 나온다. 그리고 함께 드는 생각. 저곳은 어떤 곳일까?
조은 작가에게 전시와 여행에 대해 물었다.

작업실에서 작업 중인 작가

동양화 같은, 여행 풍경 일러스트 같은

Q. 안녕하세요, 조은 작가님. 간략하게 본인 소개를 해주세요.
A. 현재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진 풍경 그림을 통해 다양성과 조화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동양화 재료를 주로 사용합니다.

Q. 아트사이드 갤러리에서 첫 전시를 열었죠.
A. 제가 품고 있는 이야기와 질문을 가장 나다운 형식으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러다 보니 개인전을 열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네요. 작업의 내용과 조형이 정리된 시점에 운 좋게 갤러리에서 연락이 왔고, 제가 원하던 모습으로 첫 개인전을 잘 마쳤습니다.

대화_2022_한지에 수묵 채색_62×50㎝

Beads in the Green_2022_한지에 수묵 채색_117×91㎝

Q. 우리가 알고 있는 동양화의 느낌과는 사뭇 다릅니다. 현대풍 산수화 같기도 하고, 여행 풍경을 담은 일러스트 같기도 해요.
A. 동양화를 그리면서 재료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한지와 먹은 분명 섬세하고 매력적인 전통 재료지만 고루하다는 인식이 있는 것도 사실인데요, 재료의 특징을 잘 살리면서도 현대적인 화면을 그려내고 싶었어요. 평소 공간의 구조적 힘이나 밀도감에 매력을 느껴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전통 산수화의 여백이나 선묘를 제한적으로 활용하게 되었고, 여러 기법과 재료를 작품 분위기에 맞게 믹스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트사이드 갤러리 전시 전경

Q. 갤러리 홈페이지 전시 소개 글에서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자연은”이란 문구를 보았습니다. 어느 특정한 공간이 아니라는 의미로 읽히네요.
A. 대부분 작품에서 제가 그리는 자연은 현실의 풍경을 조각조각 이어 붙인 가상의 공간에 가까워요. 일상이나 여행지에서 마음이 동하는 풍경을 드로잉하거나 촬영해 화면 안에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작업이죠. 특히 큰 작업은 작은 마을의 형태를 만들고 그 안의 나무와 집, 구성원을 모두 다르게 그리려고 노력해요.

Q. 아름다운 풍경은 굉장히 빽빽한 반면 사람들은 작게 그려져 있는데요, 마치 풍경에 둘러싸인 것 같은 느낌이에요. 작가님이 생각하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가 궁금합니다.
A. 자연이 풍기는 과묵한 위엄 같은 것을 작품에 표현하려고 노력하는데, ‘먹’이라는 재료와도 잘 맞는 것 같아요. 경외심이 느껴지는 다양한 모습의 자연에 둘러싸여 살아가다 보면 그와 닮아가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서 이번 작업을 시작하게 됐어요.

fireworks_2022_한지에 수묵 채색_62×50㎝

“라디오에서 ‘사람은 서로가 서로를 비추며 빛이 나는 구슬’이라는 시구를 들은 적이 있어요. 하나의 컬러로 규정할 수 없는, 여러 빛깔을 가진 구슬들이 자연 속에서 반짝거리는 풍경이 제 머릿속에 그려졌어요. 자연을 비추기도 하고 타인을 비추기도 하면서 고유하고 다채로운 존재로 서로 연결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작품으로 나타내고 싶었죠.”
작가 조은
Q. 도심 주택가 속 모습을 그린 작품도 있죠. 빽빽한 아파트와 빌라가 들어서 있는데, 그곳에서는 사람이 보이지 않고 나무와 화분이 주로 자리해요.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 이유가 있나요?
A. 식물이나 나무를 좋아했지만, 사람의 손길이 깃들거나 사람들이 찾는 자연에 특히 관심이 있었어요. 예전 작업에서는 동네를 산책하면서 만나는 주택가의 화분이나 옥상 식물을 주로 그렸는데, 저는 그 식물들을 통해 사람의 마음이 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애초에 사람을 그리지 않아도 그 식물을 가꾼 누군가가 작품에 드러난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각자의 마음속에 내재된 자연성을 식물을 매개로 표현해왔죠.

Beads in the Green_2022_한지에 수묵 채색_120×120㎝

My lovely fairy tale_2021_한지에 수묵_122×120㎝

My lovely fairy tale_2022_한지에 수묵_33×33㎝

Q. 작가님 작품 속 번짐은 풀밭, 물결과 바람 등이 자연 속 사람들의 모습 안에서 효과를 준 것 같아요.
A. 번짐 효과는 한지로 나타낼 수 있는 가장 매력적인 표현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한지는 닥나무로 만드는데 물과 친한 성질이 있어요. 저는 주로 나무와 물을 그릴 때 번지는 기법을 사용하는데, 한지의 결을 타고 우연적으로 번져나가는 형태를 보면 실제 자연과 같은 생명력이 느껴지기도 해서 재미있어요. 그래서 작품에는 스케치를 거의 하지 않아요. 자연물의 번짐 정도에 따라 집과 사람의 간격과 크기를 조정해야 하거든요.

Q. 그림을 그릴 때 가장 고민하는 부분은 어떤 것인가요?
A.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지, 가장 나다운 형식으로 그리는지, 재료의 특징을 잘 발현하는지, 현대성이 있는지를 고민합니다.

대화_2022_한지에 수묵 채색_33×24㎝

대화_2022_한지에 수묵 채색_33×24㎝

풍경에 담기 위해, 여행

Q.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과 좋아하는 여행지가 궁금합니다.
A. 처음 LA를 방문했을 때 기분 좋은 충격을 받았어요. 눈에 걸리는 것 없이 뻥 뚫린 하늘 위로 팜트리가 마구 솟아 있는 풍경이 인상적이었거든요. 건물들 사이로 생경한 나무와 식물들이 무성한 길을 걸으면서 만족스러운 균형감 같은 것을 느꼈어요. 서울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방대한 대지와 특별한 감수성을 경험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Q. 이번 전시작에는 이국적인 풍경과 그 자연 속 사람들의 모습이 담긴 작품이 많던데, 어떤 모티브가 된 지역이나 도시가 있나요?
A. 다양한 장소에서 영감을 받고 풍경을 내면에서 조합하기 때문에 특정 지역을 꼽을 수는 없지만, 주로 LA나 유럽의 작은 해변을 참고해요. 최근 방문한 하와이의 풍경도 지금 진행 중인 작업에 반영되고 있어요.

Beads in the Green_2022_한지에 수묵 채색_24×33㎝

Q. 가고 싶은 여행지와 담고 싶은 풍경이 있을까요? 이유도 궁금하네요.
A. 사람이 자연의 일부로 조화롭게 일상을 보내는 느낌을 주는 장소들을 좋아해요. 따뜻한 나라의 선명한 풍경과 사람들이 내뿜는 건강한 기운을 느끼고 싶어요. 활기차면서도 평화롭고 아기자기한 곳에 머무르며 스케치를 하면 좋을 것 같아요.

Q. 부산이나 제주, 서울 등 국내에서 우리 눈에 익숙한 풍경을 담고 싶은 마음도 있나요?
A. 특정한 장소를 있는 그대로 옮기는 작업이 아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뿐, 당연히 국내 풍경도 작품에 함께 녹여내고 있어요.

전시 중 작품 앞에 선 조은 작가

Q. 여행지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A. 나무를 주로 봅니다. 공항에서 도심으로 가는 길가에 서 있는 나무들, 가로수, 화분들도 유심히 살펴봐요. 도시 분위기를 식물과 건물, 사람들의 모습이 어우러진 한 점의 풍경화처럼 눈에 담는 습관이 있어요.
  
Q. 이상적인 여행지가 있나요?
A. 바캉스라는 말의 어원처럼 바쁜 일상을 충분히 비워낼 수 있는 여행지를 좋아합니다. 반드시 뭔가를 해야 하는 여행이 아니라, 휴식할 수 있는 자연과 새로운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시가지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도시가 좋아요. 비워진 자리에 새로운 영감이나 생활의 활력이 채워지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조은 작가 인스타그램 www.instagram.com/johnsyolk 
2022. 11 에디터:정재욱
자료제공: 아트사이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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