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CULTURE

서울 최초의 도시공원, 탑골공원
종로 일대에 자리한 탑골공원은 규모가 그리 크지 않지만 일제강점기를 비롯한 대한민국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보석 같은 곳이다. 밀레니얼 세대들에게 광장시장과 탑골공원, 그리고 2000년을 뜻하는 Y2K는 과거를 연상시키는 레트로의 상징이기도 하다.
코로나19 발생 이전 하루 평균 2,000명 이상이 방문하던, 수도권 지역 노인들의 핫 플레이스인 탑골공원. 젊은 세대들이 1990년대, 2000년대 문화를 향유하는 온라인 공간을 ‘온라인 탑골공원’이라 빗대어 부를 만큼 탑골공원이 상징하는 바는 매우 크다. 지하철 1·3·5호선이 교차하는 종로3가역이 가까워 서울과 경기도 곳곳에서 아침에 집을 나선 노인들이 탑골공원을 찾는다. 공원 주변 골목에는 3,000원 안팎으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식당들이 자리해 무료한 하루를 보내기에 더할 나위 없다.
탑골공원

탑골공원

탑골공원

근대를 담은 역사 공원
탑골공원은 서울 최초의 도시공원이다. 도시공원은 근대의 산물이다. 산업혁명 이후 근대 도시가 형성되었고, 고향을 떠난 이주민들은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들었다. 초기 공업 도시는 삭막한 데다 범죄율도 높았기에 해결해야 할 문제가 적지 않았다. 세계 최초의 도시공원인 센트럴파크가 뉴욕 맨해튼에 조성된 후 녹지가 도시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자 많은 산업국가에서 정책적으로 도시공원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근대국가로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담아 1897년 대한제국 성립을 선포한 조선 역시 서울 최초의 도시공원인 탑골공원 조성을 추진한다. 책임을 맡은 영국인 존 매클레비 브라운의 요구에 따라 1901년에 공원 부지 주변의 민가를 철거하고, 담장과 출입문을 설치하며 1902년 ‘파고다공원’이 완성되었다.
탑골공원

탑골공원

1896년 러시아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파견되어 서구를 견학한 민영환은 고종에게 군악대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에 따라 프로이센 왕립악단의 프란츠 폰 에케르트 단장을 군악대장으로 초빙해 1900년 대한제국 군악대가 창설되었다. 군악대의 숙소는 파고다공원 서쪽에 설치되었고, 군악대 연주 공원으로 사용할 팔각정도 파고다공원에 건립되었다. 파고다공원은 이렇게 대한제국 근대화를 위한 몸부림과 여러모로 맞닿아 있었다. 이름부터가 그렇다. 파고다는 탑을 가리키는 페르시아어 '부트카다’에서 유래한 포르투갈어다. 대한제국 시절 서양식 이름을 사용한 것만 봐도 근대화의 필요성에 대한 당시 인식을 엿볼 수 있다. 파고다공원은 1991년 10월 25일에 사적 제354호로 지정되면서 71년 만에 탑골공원으로 이름이 바뀐다(현재 정식 명칭은 서울 탑골공원이다).
탑골공원

탑골공원

탑골공원

흥복사와 원각사 사이
탑골공원 터에는 원래 고려 시대에 지은 흥복사라는 절이 있었다. 불심이 깊기로 유명한 세조는 궁에서 가까운 곳에 큰 절을 세우려 했는데, 당시 낙점된 곳이 흥복사다. 1464년 세조는 3년간 대대적인 공사를 벌여 흥복사를 원각사로 개명하고 중건했다. 전국에서 구리 5만 근(30톤)을 모아 대종을 주조해 걸고, 높은 탑을 지어 부처님의 분신사리와 새로 번역한 원각경을 안치했다.
종로의 지명은 ‘종이 있는 거리’라는 뜻이다. 조선 시대에는 통행금지 시간이 있어 밤 10시면 사대문의 문을 닫고 새벽 4시에 다시 열었는데, 이때 종을 쳐서 여닫는 시간을 알렸다. 조선 초기부터 종로의 종루에 걸려 시간을 알리던 종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전후 국가 재정이 피폐한 상황에서 종을 다시 만들 수 없었기에 선조는 원각사 대종을 종로에 설치하도록 했다. 몇 번의 화재에서도 살아남은 대종이 소리가 잘 나지 않자 1988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겼고, 보신각에는 새로운 종으로 교체 설치했다. 원각사가 문을 닫은 후에도 원각사지십층석탑은 자리를 지켰다. 높이 12m의 탑은 고층 건물이 없어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게다가 원각사지십층석탑은 우리나라의 석탑 중에 예외적으로 대리석으로 제작해 빛을 받으면 하얗게 반짝거렸다. 사람들은 원각사지십층석탑을 그냥 탑 또는 백탑이라고 불렀고, 그리하여 이 일대에는 탑골 또는 탑마을이란 이름이 붙었다. 참고로 조선 후기 박지원 등 실학파를 ‘백탑파’라고 일컫는데, 이 근처에서 모임을 많이 가졌기 때문이다.
탑골공원

탑골공원

탑골공원

3·1독립운동의 그곳
1919년 1월 21일, 고종이 식혜를 마신 후 반시간 만에 급사했다. <윤치호 일기>에 따르면 고종의 시신은 혀가 닳아 없어지고 치아가 모두 빠졌으며, 목부터 배까지 검은 줄무늬가 길고 선명하게 나 있었다고 한다.
3월 3일로 장례 일자가 정해지자 천도교, 기독교, 불교계의 독립운동 대표들은 사람들이 모이는 이때를 만세 독립운동의 적기라고 판단했다. 3월 1일, 33인의 민족 대표는 탑골공원 뒤편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서를 읽고 이 사실을 일본에 알렸다. 애초 탑골공원에서 낭독할 계획이었지만 유혈 사태가 발생할까 봐 태화관으로 장소를 변경한 것이다. 곧 일본경찰대가 태화관을 포위하고 민족 대표들을 연행했다. 독립선언서는 탑골공원으로 전달되었고, 신원 미상의 학생이 팔각정에서 낭독하면서 한반도는 만세 함성으로 들끓었다. 탑골공원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의암 손병희의 동상이다. 그는 천도교의 교조로, 민족 대표 가운데에서도 가장 주도적 역할을 한 인물이기에 탑골공원의 입구를 차지하게 되었다.
탑골공원

탑골공원 정문에는 ‘삼일문’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탑골공원이 삼일운동의 시발점임을 알려주는 표식이다. 지금의 현판은 해방 이후 세 차례 바뀌었다. 해방 직후 처음에는 서예가 김충현이 쓴 현판을 걸었는데, 1967년 군사정부가 들어서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현판으로 교체되었다. 이후 2003년, 현재의 현판이 걸린 것이다. 이 현판은 독립선언서의 글씨체를 활용해 만들었다.
손병희 동상 밑에서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며 따뜻한 볕을 쬔다. 무료하게 앉아 있거나 하모니카 연주에 몰입한 이도 있다. 그 옆으로는 독립선언서가 보인다. 탑골공원이 우리 근현대사를 만날 수 있는 역사적 공간임은 이런 이유에서다. 공원 측면에는 팔각정과 대원각사비가, 공원 가장 안쪽으로는 국보 제2호인 원각사지십층석탑이 유리 보호벽 안에 자리 잡고 있다.
낙원상가

낙원상가

탑골공원

탑골공원과 함께 살펴볼 곳
낙원동과 운니동 일대
탑골공원을 나와 담장을 따라 걸으면 삼삼오오 장기를 두는 노인들이 보인다. 주로 1,000원짜리 내기 장기다. 옆 종묘공원에서는 장기 대신 바둑을 주로 둔다. 낙원상가의 허리우드극장은 이제 실버 영화관이 되어 노인들이 스크린 속 그때 그 시절의 향수에 젖게 한다. 낙원상가 주변의 국밥집들은 보기만 해도 정감이 넘친다. 낙원상가를 지나 좀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왼쪽으로 천도교중앙대교당이 보인다. 1921년 완공된 이 건물은 역사적 의의도 크지만, 곳곳에 박달나무와 무궁화 무늬를 새겨 한민족의 정서를 반영했다는 측면에서 흥미롭다. 손병희의 사위기도 한 방정환 선생의 자취를 찾아보는 것 또한 재미있다. 천도교중앙대교당 건너편으로는 대원군이 거처하던 운현궁이 자리한다. 길 곳곳에 있는 개벽사 터, 서북학회 터, 조선건국동맹 터 등의 표식도 한 번쯤 읽어보자.
익선동

익선동

탑골공원

익선동 일대
낙원상가에서 직진하지 않고 우회전하면 낙원동 아구찜거리가 나온다. 국밥이나 아구찜이 좋다면 여기에서 허기를 채워도 괜찮지만 식사와 차 한잔만큼은 젊은 공간에서 즐기고 싶다면 익선동이 제격이다. 아구찜거리를 통과하면 바로 익선동이 나온다. 익선동에는 한옥의 기본 골조는 유지하되 내부는 젊은 감성으로 새롭게 단장한 맛집과 카페가 넘쳐난다. 빵집, 한식, 양식, 분식, 선술집 등 식당과 메뉴가 다양하니 어디든 마음에 드는 곳으로 들어가면 된다. 익선동에서 허기를 달래고 탑골공원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면 길 건너 종각 쪽으로 걸음을 옮겨보자.
공평도시유적전시관 기획전시실에서 2023년 3월까지 ‘탑골공원전’을 개최한다.
롯데호텔서울

롯데호텔서울

롯데호텔서울

서울에서 머물 곳: 롯데호텔 서울
을지로 입구 소공동에 위치한 국내 최고이자 대표적인 럭셔리 비즈니스호텔이다. 모두 1,015실 규모의 객실은 인테리어 회사 네 곳이 참여해 설계하여 독창적이며 최신 트렌드를 반영하고 있다. 명동과 을지로, 청계천 등 서울 중심 관광지로의 접근성이 뛰어나 비즈니스와 관광 모두 만족시켜준다. 가족 모임과 럭셔리 웨딩, 대규모 국제회의를 진행하는 것은 물론, 해외 국빈이나 VIP 고객을 모시기에 최적의 장소로 유명하다.

주소 서울시 중구 을지로 30
전화 +82-2-771-1000
홈페이지 롯데호텔 서울
2022. 12 에디터:이현정
글: 이중한
포토그래퍼:김준

Where to stay?

LOTTE HOTELS & RESORTS
  • 2022. 12
  • 에디터: 이현정
    글: 이중한
  • 포토그래퍼: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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