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CULTURE

니가타칠기, 옻의 무한한 가능성을 품다
일본 니가타현에서 탄생한 니가타칠기는 예로부터 적색과 흑색에 한정되지 않는 자유로운 변주로 주목받아왔다. 그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니가타 출신의 젊은 장인, 사나다 모모코 씨를 만났다.
자연이 선물한 최상의 도료, 옻
옻나무에는 시간을 붙드는 힘이 있다. 단단한 회갈색 껍질에 상처를 내면, 끈적한 수액이 서서히 차오른다. ‘옻’이라 불리는 이 액을 도료 삼아 여러 번 칠한 물건은 천년의 세월도 버텨낸다. 물과 열에 강하고 쉽게 상하지 않는 옻의 탁월한 내구성 덕분이다. 여기에 미끄러질 듯 고운 질감과 은은한 광택은 매혹적이기까지 하다. 옻나무가 자생하는 아시아 각지에서는 예로부터 옻의 실용성과 심미성에 주목해 찬란한 칠기 문화를 꽃피웠다.

니가타칠기 방식으로 제작한 다양한 작품들

일본 칠기의 역사는 나라시대(710~794년)에 당나라에서 승려를 통해 전해지며 시작되었다고 한다. 화려한 귀족 문화가 성행한 헤이안 시대(794~1185년)에 이르면, 칠기 표면에 금은 가구를 뿌려 문양을 넣는 ‘마키에(蒔絵)’ 등 정교한 칠공예 기법이 등장한다. 칠기는 오랫동안 상류 계층에게만 허락된 사치품이었지만, 기술이 발달하면서 차츰 대중화되어 17세기에는 서민의 식탁에도 오르게 됐다.
니가타칠기, 칠공예에 다채로움을 더하다
일본 중부 지방에 자리한 니가타현에도 17세기 초 식기와 쟁반, 식탁 등 일상용품으로서 칠공예가 처음 전해졌다. 전국 각지의 특산품을 실은 무역선 ‘기타마에부네(北前船)’가 항해 도중 니가타현의 항구도시에 머물며 다양한 문화를 들여오던 시기였다. 칠공예 역시 여러 지역의 영향이 융합한 덕에 틀에 박히지 않은 실험적 기조를 보였다. 니가타현 장인들은 칠의 방식과 재료 등을 독창적으로 활용하는 칠공예의 일종인 ‘가와리누리(変塗)’에서 특히 진가를 발휘했는데, 숫돌 가루와 줄풀 가루 등을 사용해 대나무의 마디와 무늬를 입히는 ‘다케누리(竹塗)’ 기법과 탄분을 이용해 돌의 거친 질감을 표현하는 ‘이시메누리(石目塗)’ 기법이 대표적 예다. 어쩌면 니가타칠기의 정체성은 기존 방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발상과 도전에 있는 것은 아닐까.

고향의 전통 니가타칠기를 연구하는 사나다 모모코 작가

스물세 살에 니가타칠기 장인이 된 사나다 모모코 씨도 그 유연함에 매료되어 10년 넘게 고향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주로 레스토랑에서 사용하는 맞춤 식기 등 현대인이 일상에서 직접 쓰고 즐길 수 있는 칠기를 만든다. 독일 암비엔테(Ambiente)와 밀라노 가구 박람회(Salone del Mobile) 등 해외 전시에 활발히 출품하는 한편, 독자적인 가와리누리 기법을 개발하는 데도 힘쓴다. 옛 지혜와 기술을 바탕으로 옻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실현해나가는 사나다 씨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건조 과정

사나다 모모코 작가의 칠 도구들

Q. 어떻게 니가타칠기 장인이 되었는지 궁금해요.
A. 칠공예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칠공예가 선생님 밑에서 4년간 수련했어요. 잘 알려진 검은 옻칠과 다양한 가와리누리, 마키에, 깨진 도자기를 옻으로 접착하는 ‘긴쓰기(金継ぎ)’ 등 옻에 관해서라면 무엇이든 배웠죠. 그러다 지금의 파트너인 니가타칠기제조주식회사의 대표이사 사토 게이타 씨를 만나 니가타칠기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대개 칠기 하면 검은색이나 붉은색으로 된 전통 공예품을 떠올리는데, 니가타칠기는 일본 전국에서 전해진 칠 기술이 집합해 발전한 가와리누리가 유명한 만큼 기법이 다채로워서 매력적이었어요. 특히 대나무를 완성도 높게 표현한 다케누리에 담긴 장인 기술에 매료되었죠. ‘꼭 만들고 싶다’, ‘나라면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직관적으로 들더라고요.

Q. 다른 지역의 칠기와 구별되는 니가타칠기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A. 일본 각지에서 흡수한 기술을 바탕으로 발전한 다양한 가와리누리가 존재할 뿐 아니라, 지금도 새로운 기법을 꾸준히 개발한다는 점이에요. 저 역시 2014년에 로컬 프로젝트를 통해 ‘오보로긴누리(朧銀塗)’라는 독자적인 칠을 선보였는데, 낡은 금속의 질감을 표현하는 저만의 기법이에요.
또한 다른 칠기 산지에서는 기계나 합성 도료를 도입하는 경우도 많은데, 니가타칠기는 모든 공정에서 천연 옻과 소재만 사용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수작업을 고집합니다.

작업 중인 사나다 모모코 작가

Q. 옻은 자연의 선물이기도 하지만, 온도와 습도가 잘 맞아야 건조되는 데다 독성까지 지닌 까다로운 재료입니다. 이로 인한 어려움은 없었나요?
A. 옻옴이 일어나 고생을 엄청 했어요. 옻이 피부에 닿으면 발진이 나는데, 잠을 못 이룰 만큼 괴로웠죠. 하지만 옻에 지면 일을 할 수가 없으니, 일부러 손에 옻을 묻히고 독을 견디기를 반복하며 극복했습니다. 이제는 옻을 만져도 옴이 오르지 않아요.

Q. 주로 주문 제작을 통해 칠기를 만든다고 들었는데, 그 과정에서 특별히 신경 쓰는 부분이 있나요?
A. 제작에 들어가기에 앞서 고객이 칠기를 어디에서 어떻게 사용할 계획인지, 또는 선호하는 모양과 크기, 칠 기법이 있는지 세심하게 듣습니다. 저 자신도 어떻게 하면 더 쓰기 편하고 아름다운 제품이 나올지 고민하고요. 한 가게나 기업을 위한 칠기를 만드는 데 수개월이 걸리는데, 니가타칠기를 선택해주신 만큼 최고의 완성품으로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커요. 그렇게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없는 오리지널 칠기를 만드는 일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반복하고 또 반복해 칠하는 니가타칠기

Q. 시대와 가치관이 바뀌면서 사라지는 전통 문화가 많습니다. 현대인의 일상에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니가타칠기의 비결이 있다면요?
A. 다른 곳에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가 되는 것이지요. 니가타칠기만이 선보일 수 있는 기법을 개발하고, 아무리 시간이 걸려도 대량생산 대신 오리지널 제품을 만드는 주문 제작 방식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남들과 같아지려 애쓰지 않고, ‘우리’다운 것을 만들다 보면 자연스럽게 대체 불가능한 브랜드로 자리 잡지 않을까요?

Q. 니가타칠기 장인으로서 앞으로의 비전이 궁금합니다.
A. ‘할 수 없다’고 단정 짓지 않고 무엇이든 계속 도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아무도 해보지 않은 일을 하고, 아무도 본 적 없는 제품을 만들면서요. 당장은 니가타칠기가 식기에 국한하지 않고, 건축과 인테리어 등 다방면에서 활용되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예요.

니가타칠기 공방 외관

Q. 쉬는 날에는 주로 어떻게 보내나요?
A. 팬데믹 전에는 휴가를 내어 1년에 6~7개국을 방문할 정도로 여행을 좋아했어요. 요즘은 주로 니가타칠기를 사용하는 레스토랑이나 가게를 찾아 셰프를 만나거나 식사를 즐기고 있습니다.

Q. 니가타현을 방문하는 분께 추천하고 싶은 본인만의 명소가 있을까요?
A. 제가 사는 니가타 교외에는 온천과 경륜장이 있어요. 니가타현의 온천은 이미 유명하니, 경륜장을 추천하고 싶네요. 경륜 자전거를 타고 달리며 선수끼리 부딪치고, 견제하고, 때로는 떨어지기도 하는 박진감 넘치는 싸움이에요. 때로는 동료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이타 정신도 느낄 수 있고요. 현장에서 보면 선수들의 숨소리와 관객의 함성이 더해져 정말 재미있는 경험이 될 거예요.

니가타현에서 머물 곳: 롯데아라이리조트
묘코산에 자리한 롯데아라이리조트는 단순한 숙소가 아니라, 그 자체로 훌륭한 여행지가 되어 휴가의 격을 한 단계 높여준다. 품격이 느껴지는 웅장한 건물은 다채로운 다이닝 옵션과 특산품 쇼핑과 수영장, 가라오케 등 즐길 거리로 가득하다. 여기에 겨울스포츠의 꽃 스키는 물론이고, 튜빙 파크와 집라인, 볼더링 등 사계절 이용할 수 있는 액티비티까지 풍부해 좀처럼 리조트를 떠나고 싶지 않을 정도다. 무엇보다 고요한 자연에 둘러싸인 객실은 유럽 산장 같은 아늑함을 자아낸다.

주소 니가타현 묘코시 료젠지 1966
전화 +81-255-75-1100
홈페이지 www.lottehotel.com/arai-resort
2023. 3 에디터:하재경
글: 이예은
포토그래퍼:사나다 모모코

Where to stay?

LOTTE HOTELS & RESORTS
  • 2023. 3
  • 에디터: 하재경
    글: 이예은
  • 포토그래퍼: 사나다 모모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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