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 STYLE

보드카가 궁금한 러시아 여행자를 위한 안내서
‘무색·무취·무미’. 러시아인에게 보드카는 일상이자 영혼의 술이다. 혹한의 추위를 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일상 속 언제, 어디에서라도 차가운 보드카를 들이켠다. 러시아 여러 도시에 보드카 박물관이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좋은 문학이나 예술 작품을 대하는 것은 보드카 한 잔을 마시는 일과 같다.”
러시아 작가 안톤 체호프
러시아는 보드카의 나라다. 러시아인들은 보드카를 마시며 추위를 이기고, 시대의 격동을 겪어냈다. 폴란드는 보드카가 자국에서 탄생했다고 주장하고 북유럽 발트해의 나라들이 모두 보드카를 즐기지만, 수많은 세계인이 보드카를 러시아인의 술이라고 생각한다. 10세기경 키예프대공국의 블라디미르 1세가 국교를 정할 때 이슬람교를 배제한 이유가 술과 돼지고기를 먹지 않기 때문이라고 할 정도로 러시아인에게 술은 온전한 나라를 완성하기 위한 필수 불가결한 요소다. “주량을 말할 때는 항상 겸손해야 한다. 네 뒤에 러시아인이 있을지 모르니까”라는 농담까지 있을 정도다.
러시안 보드카 박물관

보드카가 가득 진열되어 있는 클래식한 느낌의 바. 보드카 박물관답다.

러시아 예술가들의 영혼의 물
러시아의 위대한 작가 안톤 체호프가 스무 살 무렵 썼다는 단편 <자명종의 달력>에는 ‘언론인을 위한 8코스 메뉴’라는 글이 실려 있다. 내용은 이렇다. 1. 보드카 한 잔 2. 양배추 수프와 카샤(메밀가루 죽의 일종) 3. 보드카 두 잔 4. 양고추냉이를 곁들인 새끼 돼지고기 요리 5. 보드카 세 잔 6. 양고추냉이, 고춧가루, 간장 7. 보드카 네 잔 8. 맥주 일곱 병. 언론인의 일상에서 술을 떼어놓을 수 없다는 것은 어느 나라든 똑같지만, 음식 사이에 이 독한(이미지의) 보드카가 연이어 들어가다니 조금 겁나기도 하다.
많은 예술가가 작품을 통해 술에 찬사를 보냈다. 헤밍웨이는 아바나의 뜨거운 태양 빛을 담은 럼에 찬사를 보냈고, 19세기 후반 파리의 우울한 술주정뱅이 화가들은 압생트가 보여주는 몽환적인 캔버스 위에 그림을 완성해갔다. ‘술 사랑’이라면 뒤지지 않을 러시아 작가들은 조금 달랐다. 그들에게 보드카는 머리로 계산하고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그저 일상 그 자체였다. 체호프는 “좋은 문학이나 예술 작품을 대하는 것은 보드카 한 잔을 마시는 일과 같다”라고 말했다. 굳이 애정을 나타내거나 음미하고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한 순간 입안에 털어 넣으면 되는, 툭 하고 가슴으로 느껴지는 무엇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러시안 보드카 박물관

“주량을 말할 때는 항상 겸손해야 한다. 뒤에 러시아인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보드카에 관한 애주가들의 농담
무엇이든 보드카로 거듭날지니
과거 보드카는 ‘지제네냐 보다(Zhizenennia Voda)’, 생명의 물이란 이름으로 불렸다. 대략 9세기에 시작됐다고 전해지지만, 실제 남은 최초의 기록은 12~13세기경이다. 1400년대, 이탈리아에서 증류 기술을 익히고 러시아로 돌아온 한 수도사가 수도원에 남긴 증류기 덕분에 보드카가 러시아 전역으로 전파되었다는 설이 러시아에서 익숙한 이야기다. 당시 ‘지제네냐 보다’가 지금과 같은 증류 과정을 거쳤는지, 어떤 재료로 만들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그저 ‘메도부하(Medovuha)’라고 불리는 벌꿀로 만든 토속 술, 호밀로 만든 러시아 알코올 음료 크바스(Kvass), 자작나무 수액 같은 러시아 전통 천연 발효 제품처럼 오랜 역사를 지녔다고 추측할 뿐이다.
러시안 보드카 박물관

오랫동안 보드카를 만든 재료들은 시대의 상황에 맞게 변화를 거듭했다.

보드카 제조국들은 자국에 맞는 곡식이나 식물 재료를 사용해 보드카를 만든다. 모두 자국에서 쉽게 생산하거나 조달할 수 있는 재료들이다. 보통 호밀이나 보리, 귀리, 밀 등을 사용하는데, 만드는 방법은 러시아 추위처럼 지극히 단순하다. 원료를 찌고 발효시킨, 알코올 함량 95~96%가 넘는 원액을 물로 희석해 도수를 낮추고 자작자무 숯으로 냄새와 색을 여과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무색·무취·무미’의 매력을 지닌 투명한 보드카는 그렇게 탄생한 것이다. 어떤 재료로든 보드카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은 보드카의 핵심이 재료가 아니라 증류와 여과 과정에 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그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보드카를 생산하는 나라들이 정확한 보드카 제조법과 정의를 유럽연합(EU)에 규정해달라고 요청하는 일이 생겨나기도 했다. 러시아에서는 초기에 호밀과 귀리, 감자를 이용해 제조하다 지금은 주로 밀을 이용해 생산한다.
러시안 보드카 박물관

보드카 박물관의 실내

누구에게나 평등한 술
지금의 보드카가 러시아 전역에서 사랑받게 된 것은 러시아제국 로마노프왕조의 황제였던 표트르 1세의 공이 크다. 그는 서구 정책과 영토 확장으로 러시아를 번성시킨 지도자였다. 하지만 나라를 번성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했다. 방법은 세금이었다. 당시 가정에서 자유롭게 만들던 보드카를 표트르대제는 국가에서만 독점해 생산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그렇게 생산한 보드카를 국민들에게 팔았다. 당시 러시아 정부가 벌어들이는 세금의 40% 정도가 보드카 판매 수입이었다고 하니, 러시아 국민들이 얼마나 많은 보드카를 소비하고 있었는지 짐작이 된다.
보드카를 만드는 과정은 러시아의 추위처럼 지극히 단순하다. 원료를 찌고 발효시킨, 알코올 함량 95~96%가 넘는 원액을 물로 희석해 도수를 낮추고 자작자무 숯으로 냄새와 색을 여과시키는 과정을 반복한다.
담배

러시아 사람이라면 보드카 옆에는 담배가 빠질 수 없다.

한때 보드카의 알코올 도수는 50도 안팎을 오갔지만, 현재 러시아에서 생산하는 보드카의 공식 도수는 대부분 40도다. 이 ‘최상의 도수’를 발견한 사람은 러시아의 화학자 드미트리 이바토비치 멘델레예프(Dmitri Ivanovich Mendeleev)였다. 원소주기율표를 만든 그 멘델레예프가 맞다. 그는 논문을 통해 몸에 가장 잘 흡수되며 건강을 해치지 않고 최상의 술맛을 내는 도수가 40도라고 발표했다. 당시 러시아인의 과도한 보드카 사랑과 중독을 걱정한 제정러시아 정부에서 이 사실을 공식화했다. 이후부터 러시아에서 생산하는 공식 보드카는 40도를 유지하고 있다.
러시안 보드카 박물관

박물관에는 근현대사의 다양한 역사 소품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

러시아에서 가장 평등한 것은 보드카라고 말한다. 근대 전 황제부터 귀족과 농노까지, 연방 해체 후 러시아의 대통령부터 노동자까지, 러시아인은 모두 보드카를 마신다. 1900년대 초 볼셰비키 혁명 이후 알코올의존자들이 넘쳐날 것을 우려해 한때 제조를 금지했지만, 보드카 제조 기술자들이 다른 나라로 넘어가 보드카를 생산했고, 오히려 세계에서 가장 잘 팔리는 증류주로 자리잡는 촉매제가 되었다.
세계에서 보드카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나라는 이제 미국이 되었지만, 러시아가 보드카의 나라라는 사실은 여전히 그대로다. 러시아인에게 보드카의 알코올 도수 40도는 보드카를 사랑하는 러시아인의 체온이 되어버린 듯하다.
러시안 보드카 박물관
보드카에 관한 이 짧은 안내를 읽었다면 러시아를, 특히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방문했을 때 마린스키 극장이나 여름 궁전뿐 아니라 둘러봐야 할 곳이 하나 더 늘어날 것이다. 바로 보드카 박물관이다. 정확한 이름은 러시안 보드카 박물관(Russian Vodka Museum). 네바강을 따라 시내 중심부에 위치한 러시안 보드카 박물관은 보드카의 시작부터 현재까지의 보드카 역사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보드카의 생산 과정과 전통, 문화 등도 함께 들을 수 있으며, 16세기 이시도르 수도사가 문을 연 최초의 보드카 술집을 재현한 현장도 볼 수 있다. 또 서로 다른 유형의 보드카를 시음해볼 수 있는 테이스팅 룸에는 260여 종이 넘는 보드카 컬렉션이 전시되어 있다.

주소 4 Konnogvardeyskiy bulvar, Saint-Petersburg, Russia (롯데호텔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도보로 10분)
전화 +7-812-9-431-431
관람 시간 12:00~19:00
홈페이지 en.stroganoffgroup.ru/restaurants/muzey-russkoy-vodki
보드카

Tip. 보드카를 가장 맛있게 마시는 법
보드카 병을 냉동실에 넣어둘 것. 얼지 않고 걸쭉한 액체로 변한 술은 ‘륨카(рю́мка)’라고 불리는 작은 잔에 따를 때 꿀이 흐르는 것처럼 가느다란 줄기 형태로 흐른다. 이 상태의 보드카를 한 입에 털어 넣는다.

보드카 폭탄주 ‘요르시’
요르시(Yorsh)는 보드카를 맥주와 섞어 마시는 방법으로 비율은 4:1 혹은 5:1이 적당하다. 참고로 요르시는 가시가 많은 작은 민물고기를 말한다. 폭탄주로 마시면 요르시처럼 독해진다는 의미다.

보드카에 어울리는 안주
러시아인은 보드카와 함께 흑빵이나 캐비아, ‘셀료트카’라 불리는 삭힌 청어 절임 등과 함께 마신다. 피클 국물은 보드카를 마신 후 해장에 좋다.
롯데호텔상트페테르부르크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머물 곳: 롯데호텔상트페테르부르크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중심가인 성 이삭 광장에 위치한 롯데호텔상트페테르부르크는 1851년에 지은 유서 깊은 건물을 리모델링한 럭셔리 호텔이다. 인근에는 네프스키 거리와 마린스키 극장이 위치해 비즈니스뿐 아니라 관광하기에도 편하다. 150개의 객실과 3곳의 고급 레스토랑과 바가 있다. 특히 여름 백야의 매력에 빠질 수 있는 루프톱 바가 유명하다.
주소 2, Antonenko lane, Saint-Petersburg, Russia, LOTTE HOTEL ST.PETERSBURG
전화 +7-812-336-10-00
홈페이지 www.lottehotel.com/stpetersburg-hotel
2019. 5 에디터:정재욱
자료제공: 러시안 보드카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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