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 STYLE

© Dan Taylor Courtesy of Broadcast Coffee

다시 젊어진 시애틀 커피 신
데스 캡 포 큐티(Death Cab for Cutie)라는 워싱턴주 출신 록밴드가 있다. 이들의 연주는 기타와 베이스, 키보드, 드럼을 사용하는 전통적 록 음악의 악기 구성을 기본으로 하지만 그 위에 피아노를 가미해 훨씬 더 섬세하고 복합적 풍미를 지닌다. 지역 고유의 전통에 뿌리를 두었지만 훨씬 더 세련되고 성숙해진 지금 시애틀의 커피 신이 그렇다.
1990년대 후반을 떠올려보자. 어느 커피숍에 가도 메뉴판 위에서 서너 가지 이상의 커피를 찾기가 어렵던 시절. 어느 순간 커피의 신세계에 눈뜨게 한 카페가 있지 않았던가? 생전 처음 에스프레소란 단어를 익히고, 달달한 카페모카가 먹고 싶어 달려가곤 하던 해외 프랜차이즈 카페 말이다. 누구는 스타벅스를, 누구는 시애틀 에스프레소를, 또 누구는 시애틀 베스트나 털리스를 떠올릴 것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시애틀발 커피 브랜드란 것이다.
시애틀커피

© Garrett Hanson Courtesy of Broadcast Coffee

© Garrett Hanson Courtesy of Broadcast Coffee

시애틀만의 커피 문화
이러니 시애틀을 떠올리면 커피가 생각나는 이유를 꼭 스타벅스에서 찾을 건 아니었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궁금해지는 게 있다. 도대체 왜 시애틀은 커피로 유명한 걸까? 이 도시만의 커피 문화란 게 있을까?
궁금하면 직접 알아보는 수밖에 없다.
로컬 커피 메이커들의 도움을 받는 거다. 일단 감성적으로 가장 잘 와닿는 건 이 도시의 젊은 커피 로스터 브랜드 ‘브로드캐스트 커피(Broadcast Coffee)’의 세일즈 매니저인 티머시 그램(Timothy Graham)의 해석이다. “비 내리는 시애틀의 겨울이 뜨거운 커피를 특별히 더 맛있게 해요.”
20년째 이 도시를 지키고 있는 또 다른 유명 커피 브랜드 ‘빅트롤라 커피 로스터스(Victrola Coffee Roasters)’의 세일즈 디렉터 조슈아 보이트(Joshua Boyt)는 언젠가 CNN과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시애틀에서 커피는 우리의 액상 햇살(liquid sunshine) 같은 거랍니다.” 이 브랜드에서는 주말마다 대중을 상대로 무료 커피 커핑(Coffee Cupping)을 진행한다. 새로운 커피를 선보이고, 제대로 내리는 방법을 알려주는 미니 클래스 같은 의식이다. 
시애틀의 로컬 정보지 기사는 그 ‘날씨설’에 힘을 더한다. 이야기는 이렇다.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시애틀에는 독특한 보헤미안 문화가 형성되었다. 이 문화와 비 오는 날씨, 만남을 위한 공간의 필요가 합쳐지며 그에 대한 솔루션으로 커피숍이 번성했다는 거다. 이어 1980년대에는 보헤미안 정신에서 파생한 반문화(counter culture)가 유행했다. 사람들은 거대 기업을 거부했고, 커피 애호가들은 작은 로컬 커피숍을 찾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된 커피숍 붐이 급물살을 탔고, 1990년대 들어 전 세계를 사로잡게 된 것이다.
 
시애틀커피

© Garrett Hanson Courtesy of Broadcast Coffee

시애틀커피

© Garrett Hanson Courtesy of Broadcast Coffee

세계의 커피는 시애틀로
“항구도시인 시애틀에는 매년 1억2,000만 파운드(약 5,400만 킬로그램) 정도의 생두가 들어와요.” ‘앵커헤드 커피(Anchorhead Coffee)’의 공동 대표 제이크 폴슨(Jake Paulson)의 말을 들으니 지리적 요인도 한몫하는 듯하다. 오디오 엔지니어로서 밴드와 함께 전 세계를 여행하던 폴슨의 에너지가 고갈되었을 때, 거기엔 동창생으로 같은 일을 하던 마이크 스타이너(Mike Steiner)가 있었다. 2013년, 이들은 스페셜티 전문 로스터인 앵커헤드 커피를 시작했고, 브랜드 이름에는 평소 자랑스럽게 여기던 이 고장 항해 문화에 대한 힌트를 담았다.  
윗세대 밀레니얼 세대에 속하는 폴슨과 스타이너는 여전히 활달한 시애틀의 전통 커피 신과 떠오르는 모던 카페 문화의 교차 지점에 자신의 브랜드를 포지셔닝했다. 카페 인테리어와 상품 패키지를 어두운 분위기로 일관한 것은 조금 의외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안엔 독특한 위트가 있다. 이상하고 흥미로운 디자인을 통해 특별한 아이덴티티를 구축한 것이다. “하나의 도시 안에 여러 시대의 로스터와 카페가 모두 함께 자리하고 있어요. 시애틀의 커피 문화는 굉장히 다양하며 여전히 성장하고 있습니다.” 폴슨이 덧붙인다.
 
시애틀커피

© Courtesy of Anchorhead Coffee

© Courtesy of Anchorhead Coffee

초기의 시애틀 커피 로스터들이 전통적 커피 맛에 힘을 실으며 그 방향으로 발전해왔다면 앵커헤드 커피를 비롯한 젊은 로스터들은 각 커피 속에 내재된 고유의 풍미를 이끌어내기 위해 보다 균형 잡힌 로스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여러 매체를 통해 스타 로스터로 인정받고 있는 앵커헤드 커피의 두 사람도 그 성공 요인을 로스팅 퀄리티와 디자인, 독특한 카페 문화에서 찾는다. 이들은 대도시적 분위기의 시애틀 다운타운과 벨뷰(Bellevue), 상대적으로 한적한 이사콰(Issaquah) 지역에서 카페 세 곳을 운영 중이다.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 지역에도 곧 새 카페 오픈을 앞두고 있다. 한편, 이들의 카페에서 스페셜티 음료 말고도 인기 있는 메뉴는 직접 구운 ‘콰플(Quaffle)’이다. 시나몬 롤과 와플, 크루아상을 결합한 독특한 페이스트리다.
 
21세기 커피 신, 그 변화의 시작
앵커헤드의 제이크도 인정하는 이 지역 또 다른 커피 로스터 중 하나로 ‘올림피아 커피(Olympia Coffee)’가 있다. 아마존의 시애틀 헤드쿼터에도 입점해 있는 이 브랜드는 2005년 시애틀에서 차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올림피아 지역의 작은 창고에서 시작했다. 당시로 잠시 되돌아가보면 태평양 연안 북서부의 커피 문화는 다른 도시에 밀린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정체되어 있었다. 21세기 들어 눈에 띄게 활발해진 샌프란시스코, LA, 멜버른의 커피 신을 떠올려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설립자로부터 브랜드를 인수한 샘 슈로더(Sam Schroeder)와 올리버 스톰섁(Oliver Stormshak)은 이 태평양 연안 북서부의 커피 문화를 21세기형으로 끌어올릴 가능성을 보았다. 답은 커피 농가와의 직거래에 있었다. 질 좋은 생두를 재배하는 농가와 가족 같은 파트너십을 맺어 커피 맛도 세심하게 조율할 수 있었던 것.
생두의 선별부터 로스팅, 테이스팅 그리고 커피 한 잔을 내리는 과정까지. 커피를 대하는 이들의 태도는 섬세하고 아름다운 수공예품을 만드는 장인과 다르지 않다. 미국 브루어스 컵(US Brewer’s Cup), 북서부 브루어스 컵(Northwest Brewers Cup)의 수상 경력에 빛나는 이들의 커피는 웨스트 시애틀에 자리 잡은 올림피아 카페에서 맛볼 수 있다.

© Tim Minzer Courtesy of Broadcast Coffee

© Tim Minzer Courtesy of Broadcast Coffee

© Garrett Hanson Courtesy of Broadcast Coffee

스페셜티 커피라는 특별함
이쯤에서 잠깐 스페셜티 커피(Specialty Coffee)를 짚고 넘어가자. 스페셜티 커피는 커피 생산지의 기후와 지리 등 특별 환경이 반영된 고유의 풍미와 맛을 지닌 고급 커피다. 로스팅과 향미에 결점이 없고 미국 스페셜티 커피 협회(Specialty Coffee Association of America)의 엄격한 평가를 거쳐 80점 이상의 점수를 받아야만 스페셜티 커피로 인정받을 수 있다. 1세대가 인스턴트커피, 2세대가 프랜차이즈 커피였다면, 스페셜티 커피는 제3의 물결로 불리며, 3세대 커피 문화를 이끌고 있다. 
가장 처음 언급한 시애틀의 신세대 스페셜티 커피 로스터 ‘브로드캐스트 커피(Broadcast Coffee)’로 돌아가보자. 브로드캐스트란 이름은 창업자 배리 포트(Barry Faught)가 한평생 라디오 DJ로 일했던 아버지에게 존경을 표하며 지은 것이다. 2008년 설립된 이 브랜드는 캐피톨 힐(Capitol Hill)의 인기 커피숍인 고스트 노트 커피(Ghost Note Coffee)의 원두를 전담하고 있으며, 시애틀에만 자체적으로 카페 세 곳을 운영 중이다. 커피를 대하는 자세는 엄청나게 진지하고 열정적이지만, 인테리어와 패키지에서는 모던함과 재미를 추구한다.
메뉴에 직접 만든 신선한 음식을 추가하는 게 요즘 커피숍의 눈에 띄는 트렌드라면 브로드캐스트 커피도 그 선두에 있다. 가족과 학생 고객이 많은 센트럴 디스트릭트의 두 카페가 그렇다. 잭슨(Jackson) 지점이 첫 테이프를 끊었다면 예슬러(Yesler) 지점은 후속 타자다. 최근에 새 주방을 들이고 음식 전담 특별 셰프까지 고용했다. 물론 제일 중요한 건 커피다. 이곳에서 고객에게 가장 인기 많은 음료는 ‘크로스페이드(Crossfade)’란 에스프레소다. 매우 높은 퀄리티의 콜롬비아산 원두와 에디오피아산 원두를 섞어 만든다. 그 위에 완벽하고 부드러운 스팀 밀크가 더해지는데, 이 궁합이 좋다. 이 외에도 ‘브레이커 원 나인(Breaker One Nine)’이란 특별한 블렌드를 사용해 부드럽고 달콤한 초콜릿 같은 맛을 내는 ‘콜드브루’, 스파클링 워터와 에스프레소, 크림, 바닐라 시럽, 그 위에 레몬 맛의 반전이 있는 ‘디스코 포니(Disco Pony)’도 인기다.
 

© Garrett Hanson Courtesy of Broadcast Coffee

© Garrett Hanson Courtesy of Broadcast Coffee

신선한 안목과 새로운 커피
이 도시의 커피를 직접 마셔보지 않을 수 없다. 브로드캐스트 커피 웹사이트에서 ‘페루 라 띠에라(Peru La Tierra)’란 원두를 주문했다. 자두와 피칸 파이 노트에 미디엄 로스트다. 미리 갈아 보낼 것을 요청하니 드립, 에스프레소, V60, 케멕스(Chemex), 에어로프레스(aeropress) 등 선택 가능한 그라인딩 옵션부터 다양하다. 벌써 새로운 커피 경험의 시작이다. 드디어 커피가 도착했다. 패키지 안에는 그 자리에서 원두를 직접 다룬 듯한 스태프의 짧은 손 글씨 인사가 담겨 있다. 대형 체인에서는 상상도 못 했을 인간미다. 마침내 핸드드립으로 내린 커피는 강하면서도 깨끗한 갈색이다. 그 위로 프루티한 향이 섬세하게 퍼진다. 맛은 더 감동이다. 가슴을 채우는 묵직함이 있고 그 위로 순수하고 복합적인 과일 풍미가 은은히 겹쳐진다. 시간이 흐르니 머리까지 맑고 개운해지는 것 같다. 맞아, 좋은 커피를 맛보는 건 이런 일이었지. 오직 맛이 전부가 아닌 것이다. 브로드캐스트 커피의 티머시 그램 말이 맞았다. 새로운 커피를 시도한다는 건 신선한 안목을 동시에 얻게 되는 일인 것이다.

에필로그
위에 소개한 카페 외에도 로컬 커피 메이커들에게 추천받은 시애틀 커피숍으로는 얼터너티브와 인디록 편성으로 유명한 시애틀의 공영 라디오 방송국 KEXP에 위치한, 에스프레소 머신 제조사 ‘라 마르조코(La Marzocco)’ 카페, <킨포크>와 <뉴욕 타임스> 등에 소개된 전형적인 동네 스타일 카페이자 이 도시에서 가장 먼저 콜드브루 탭을 선보인 ‘아날로그(Analog)’, 시애틀에서도 트렌디하기로 소문난 파이오니어 스퀘어(Pioneer Square)에 자리 잡은 젊은 로스터 브랜드 ‘엘름 커피 로스터스(Elm Coffee Roasters)’가 있다.

 

© BROADCAST COFFEE

2020. 7 에디터:정재욱
글: 한예준
자료제공: 브로드캐스트 커피 / 앵커헤드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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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7
  • 에디터: 정재욱
    글: 한예준
  • 자료제공:
    브로드캐스트 커피 / 앵커헤드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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