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 STYLE

다른 방식의 곡물 경험
공주 ‘곡물집集’에서 다양한 토종 곡물을 맛보며 그동안 모르던 미식의 즐거움과 삶의 방식을 발견했다.
로컬 콘텐츠가 풍성해지는 요즘 롯데리조트 부여에서 차로 30분, 롯데시티호텔 대전에서 차로 50여 분 거리에 위치한 공주시 원도심 봉황동에서 흥미로운 브랜드가 탄생했다. 바로 ‘곡물집集’(이하 곡물집, 곡물집의 ‘집’은 주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모으다’라는 뜻의 한자 ‘집’을 사용한다) 이다. 곡물집은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기획자로 일하던 김현정, 문화예술과 농업을 잇는 여러 기획을 하던 천재박 두 공동 대표가 2020년 8월 설립했다. 원도심의 한적한 마을에 자리한 2층 규모의 한옥에 곡물 메뉴를 맛볼 수 있는 카페와 제품을 판매하는 쇼룸, 그리고 작은 서점인 ‘데시그램 북스’ 등이 들어서 있다.
 

낯선 토종 곡물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는 곡물집

쉽게 말해서 곡물을 판매하는 그로서리 카페라고 해도 무방하겠으나, 곡물집이 하는 일은 이보다 훨씬 다채롭다. 여러 토종 곡물의 가능성을 탐구하며 만든 제품과 콘텐츠, 즉 농부·셰프·소설가·인문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협업해 곡물을 활용한 ‘식경험’을 제안한다. 이들이 스스로를 “곡물 경험 브랜드”라고 소개하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지금껏 모르던 토종 곡물을 하나씩 맛보는 경험은 미식의 지평을 넓히는 동시에 우리의 취향과 생활 방식을 돌아보는 계기를 제공한다. 알면 알수록 궁금한 곡물집 김현정 대표를 공주에서 만났다.
 

곡물집 내부 쇼룸 겸 책방

곡물집 안에 들어서면 카페 공간에서 차를 즐길 수 있다.

Q. 여러 작물 중 토종 곡물에 주목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A. 저희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고 싶었어요. 그런 부분에서 다양성을 이야기하고 차이를 중요시 여기는데요, 토종 곡물은 모두 조금씩 차이가 있고 각자의 이름으로 존재해요. 토종 곡물이 지닌 오리지널리티가 있죠. 곡물집에서는 다양한 곡물을 경험하는 여러 가지 방식을 마련하는 것으로 메시지를 담고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고 있어요.

Q. 곡물집이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세요.
A. 다양성에 대해 지속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다양성을 통해 오히려 단순한 삶에 다가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죠. 다양성을 경험하고 작은 차이에서 자신의 취향을 발견하는 것, 그것이 본인에게 집중하며 개인이 주체적인 삶을 사는 시작점이라고 생각해요. 또한 그런 주체적 삶이 지속될 때 세상에 다양성이 존재하고 그 다양함이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죠.

Q. 토종 곡물이라는 건 정확하게 어떤 의미인가요?
A. 토종 곡물은 오랫동안 어떤 지역에 적응한 곡물이라고 볼 수 있어요. 우리나라 토종 곡물에 대한 역사를 찾아보면 대부분 출처가 명확하지 않아요. 지역 특산물과 달리 정의하거나 검증하기가 쉽지 않죠. 그만큼 절대적 시간이 필요한 게 토종 곡물이에요. 어떤 지역의 기후와 토양에 적응해서 오랫동안 살아남은 아이들, 그런 맥락 안에서 토종 곡물을 판단할 수 있죠.
예를 들어 글루텐 함량이 낮아 외국에서 건강한 밀로 알려진 소프트밀은 오래전 우리나라 토양에 뿌리내려 지금까지 잘 생산되고 있어요. 외국 농작물이지만 우리 토종 곡물이라고 소개하는 농부님도 계시죠. 저희가 전하려는 얘기도 이렇게 다양한 토종 곡물이 있다는 거예요.
 

쇼룸을 정리하고 있는 김현정 대표

Q. 곡물집에서는 어떤 곡물을 경험할 수 있나요?
A. 곡물집 공간은 제품을 설명할 수 있는 쇼룸과 오픈 키친, 그리고 카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카페 공간을 마련한 것은 저희가 카페를 운영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부담 없이 토종 곡물을 경험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그런 툴로서 카페를 만들었고, 토종 곡물을 활용해 저희 나름대로 탐구 활동을 펼친 결과물을 카페에서 사람들과 공유하죠. 여러 워크숍도 진행하고 있고요.

공간 오픈과 동시에 20가지 토종 곡물을 맛보며 농부의 곡물 이야기, 옹기장의 솥 이야기를 통해 자신만의 ‘밥’에 대한 의미를 찾아보는 ‘곡물 경험 워크숍’을 선보였어요. 캠핑장에서 ‘불멍’하듯 밥이 완성될 때까지 밥솥에 집중해 ‘밥멍’을 해야 하죠. 지난해에는 김연수 소설가, 나태주 시인을 초대해 소설에 등장한 음식을 토종 곡물로 재현하고 경험하며 왜 그 책에 그 음식이, 그 인물과 함께 등장했는지 작가와 대화하는 프로그램도 있었어요.

Q. 곡물집 공간 안에 서점을 둔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처음 이 공간을 구상할 때부터 우연한 계기로 함께하게 됐어요. 데시그램 북스는 숍인숍 개념으로 문학 작품만 다루는데요, 문학과 곡물은 굉장히 동떨어진 존재 같지만 마음과 몸의 양식이라는 차원에서 공통분모가 있죠. 그런 맥락에서 느슨한 연대를 갖고 무언가 함께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덕분에 저희가 ‘푸드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부르는, 문학가분들과 함께하는 워크숍 프로그램도 자연스럽게 진행할 수 있었죠.
 

곡물 경험 워크숍 때 선보인 차림

Q. 워크숍 참가자들의 반응이 궁금해요.
A. 일단 맛에서 굉장히 놀라요. 반찬 없이 밥만 먹어도 맛있거든요. 오롯이 밥을 짓고 밥과 관련한 개인적 기억을 나누는 경험이 실제 식생활에도 영향을 미치고요. 워크숍이 끝나고 나서 저희에게 주시는 피드백을 보면, 일주일에 한 번 나를 위해 밥을 짓는다든가 그 시간의 소중함과 음식의 중요성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고 해요. 그렇게 자신의 식생활은 물론 라이프스타일에도 변화가 생겼고요. 곡물을 다루지만 결국 라이프스타일을 얘기할 수밖에 없어요. 먹는 행위가 우리 삶에서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하잖아요.

Q. 그런 곡물 경험이 대표님에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A. 저도 처음 토종 곡물을 맛보고 많이 놀랐어요. “콩밥이 이렇게 맛있었나?” 하고요. 저는 콩을 너무 싫어했거든요. 저희는 잡곡밥을 ‘곡물밥’이라고 부르는데요, 매번 토종 곡물을 블렌딩해 곡물밥을 만들어 테스트하는 경험이 제 삶을 풍요롭게 만들었어요. 소박하지만 절대 남루하지 않고 굉장히 풍부하고 풍요롭게요. 앞으로 더욱더 이런 삶에 내 생활을 맞추고 싶다고 생각했고, 실제 경험을 하면서 브랜드에 대한 확신도 더 생긴 것 같아요.
 

자세히 살펴볼 수 있도록 전시 중인 토종 곡물

Q. 카페 메뉴 중에서는 원두와 토종 콩을 블렌딩한 ‘시그니처 드립 커피’가 인상적이었어요.
A. ‘커피도 콩인데 토종 콩과 블렌딩해서 마셔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에서 시작했어요. 거의 실험에 가까웠죠. 커피와의 조화를 생각하며 저희가 가지고 있는 모든 토종 콩을 커피처럼 볶고 갈아서 마셔봤어요. 그렇게 해서 최종 선정한 게 ‘등틔기콩’이에요. 원두는 동네에서 로스팅하는 카페와 협업했고요. 토종 콩 커피를 마셔보면 아시겠지만, 끝맛이나 보디감이 굉장히 풍요롭고 부드러워요. 커피 카테고리에서 벗어난 맛은 아닌데, 비교해서 먹어보면 완전히 다른 맛이에요. 주변 반응도 좋아 저희 시그니처 음료가 됐죠.

그리고 싱글 오리진 커피처럼 한 가지 곡물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는 ‘그레인 라떼’는 선비잡이콩, 등틔기콩, 대추밤콩, 수수, 오리알태 다섯 종류가 있어요. 토종 곡물을 분쇄해 우유나 두유에 섞어 먹는 거예요. 미숫가루와 비슷하지만 맛이 훨씬 깊고 진하죠. 수수는 약간 초콜릿 맛이 나는데 다들 마시고 깜짝 놀라요.

Q. 사실 처음엔 곡물집이 단순히 그로서리 마켓 겸 카페라고 생각했어요.
A. 저희의 이런 활동이 귀결되는 지점이 있다면 바로 ‘식경험’이라는 거예요. 저희 꿈은 다양한 토종 곡물을 먹어보기도 하고 토종 작물에 대해 심도 있게 배울 수도 있는 식경험 학교를 만드는 거예요. 졸업하는 학생들이 있는 학교는 아니고요. 제품을 만들거나 비즈니스 시스템을 배우거나, 여러 가지 차원에서 이런 걸 총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학교요. 그런 기반을 차곡차곡 마련해가는 준비 단계이기도 해요.
 

곡물집에서 판매하고 있는 제품들.

공주시 농업기술센터와 협업해 공주의 특산품인 밤을 활용해 만든 공주 밤밥 한그릇 ‘공주 한 끼’

Q. 대표님 고향이 공주라고 듣긴 했지만, 특별히 공주에서 곡물집을 시작한 이유가 있나요?
A. 여러 상황이 맞물려 이곳으로 오게 되었는데요, 처음부터 큰 기대를 한 건 아니에요. 제가 어릴 때부터 공주는 굉장히 조용한 도시였어요. 이제 원도심 쪽으로 다시 활성화되는 시점이죠. 저처럼 공주가 익숙한 사람보다는 공주를 처음 찾는 분들이 이곳에 더 매력을 느끼는 것 같아요. 또 저희처럼 로컬 비즈니스를 열심히 전개하는 분들이 계셔서 서로 응원해가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비즈니스 측면에서는 토종 곡물 농사를 짓는 농부님도 가까이에 계시고, 지역적으로 중간 지점이라는 이점도 있고요.

Q. 공간을 구성할 때 중점을 둔 것은 무엇인가요?
A. 이 장소는 공주로 이주하기 전 사무실을 찾다가 발견했어요. 한옥으로 지은 신축 건물을 임대했죠. 온전히 저희 공간이 아니기에 특별히 어떤 주안점을 두거나 변화를 꾀할 수가 없었어요. 사실 개인적으로 동네 안에 비밀스럽게 자리한 곳, 겉보기에 전혀 상가로 보이지 않는 숨은 보석 같은 장소를 좋아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외부에 크게 노출되는 사인을 만들지 않고, 안으로 들어왔을 때 밖과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공간을 만들게 된 것 같아요.
 

곡물집 시그니처 드립 커피

Q. 문을 열면 공간이 한눈에 들어오는 게 아니라 하나씩 둘러보는 재미가 있었어요. 혹시 곡물집에 오기 좋은 계절이나 시간이 있다면 추천해주세요.
A. 원도심이 고도가 낮잖아요. 대도시에 있을 때는 높은 건물들 때문에 시선을 위로 올리는 게 자연스러운데, 이곳에서는 정말 시원하게 시야가 앞으로 뻗어나가거든요. 사계절 다 좋지만, 야외에서 그런 시선의 차이와 자연을 느낄 수 있는 봄과 가을이 가장 좋지 않을까 싶어요.

Q. 여행의 목적을 곡물집에 두고 공주를 찾는 분이 많을 것 같아요. 그런 분들이 곡물집과 공주를 더 잘 즐길 만한 팁이 있을까요?
A. 원도심 전체에 청년들이 운영하는 공간이나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아요. 또 공주가 작은 책방 투어로 인기가 꽤 있다고 해요. 저희 데시그램 북스도 있지만, 조그만 책방을 함께 둘러보기를 추천드려요. 문화재도 빼놓을 수 없죠. 돌아와 다시 보니 역시 공주가 간직하고 있는 문화재가 근사하구나 생각했어요. 특히 공산성이 정말 멋있어요. 날씨 좋을 때 공산성을 산책하거나, 하루 묵는 일정이라면 공산성의 야경을 꼭 보세요. 문화재만으로도 볼거리가 아주 풍부하고, 로컬이 반영된 다양한 콘텐츠도 많이 생겨나고 있어서 분명 재미있는 여행이 될 거예요.
 

곡물집 김현정 대표

곡물집集
주소: 충남 공주시 효심1길 12-1
문의: +82-41-881-2094
영업시간: 목~월요일 11:00~20:00, 화·수요일 휴무
인스타그램: @a.collective.grain
 
2022. 1 에디터:김혜원
포토그래퍼:안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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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1
  • 에디터: 김혜원
  • 포토그래퍼: 안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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