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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아래 첫 마을, 제주 메밀 마을
‘제주의 메밀마을’로도 불리는 안덕면 광평리를 찾았다. 한라산 아래 첫 마을에는 메밀 내음이 가득하다.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광평리는 해발 400~600m 고지에 위치한 마을이다. 제주는 주로 용천수가 있는 해안선을 따라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그래서 중산간(해발 200~600m)에는 마을이 발달하지 않았다. 광평리는 제주 중산간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마을로 ‘평평하고 넓다’라는 뜻을 지녔다. 예전에는 ‘넙은곶’ 혹은 ‘넙은드르’ 마을로 불렸다.

제주의 넓은 메밀밭

물 맑고 공기 좋은 광평리
광평리는 10년 전까지만 해도 ‘오지 마을’에 가까웠다. 왕이메오름, 이돈이오름, 족은대비악오름, 돔박이오름 등 오름으로 둘러싸인 분지 마을이라 초지가 많으면서도 지형은 평평했다. 그래서인지 예전부터 목장이 많았다. 이곳 사람들은 대대손손 감자와 메밀을 심어 주식으로 삼았다. 현재는 감자 농사보다 메밀과 콩을 주로 재배한다. 15가구 남짓 모여 사는 이곳은 제2산록도로가 개통되어 공항과 서귀포시, 제주시와의 접근성이 좋아지면서 더 이상 오지 마을이 아니다. 물론 지금도 51가구 정도 살고 있어 다른 마을에 비해 가구 수가 많다고 할 수 없다. 살기에 가장 쾌적한 환경이라는 고도 600m에 위치하면서도 사람은 많지 않아 여전히 물이 맑고 공기가 좋다. 이 작고 평화로운 마을은 언젠가부터 메밀 마을로 유명해졌다. 여기에는 마을 사람들의 노력이 숨어 있다.

고배기 동산의 풍경

농경신 자청비가 가져다 준 메밀
제주는 신화를 많이 품고 있는 섬이다. 메밀 마을 이야기를 하려면 제주의 대표 신화 중 하나인 ‘농경신 자청비’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한다. 옛날에 김진국 대감과 자주 부인이 나이가 들어 딸을 얻은 후 이름을 ‘자청비’라 짓는다. 어느 날 냇가에서 옥황의 아들 문국성 도령을 만난 자청비는 남자 행세를 하게 되고, 글 공부 하러 가는 문도령을 따라 나선다. 문도령이 하늘로 떠날 때 자청비는 비로소 자신이 여자임을 밝힌다. 기뻤던 문도령은 혼인을 약속하지만 오랜 시간 돌아오지 않는다. 자청비는 마냥 기다리지 않고 온갖 어려움을 헤치고 스스로 하늘로 올라가 문도령과 혼인한다. 하늘 나라에서 문도령과 행복하게 살던 자청비가 어느 날 땅을 굽어보며 인간들이 고단하게 농사짓는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다 인간을 위해 곡식을 가지고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이야기가 ‘자청비 신화’다. 구전에 따라 이야기가 조금씩 다르지만 보통 ‘자청비 신화’는 이 정도로 소개된다.
자청비가 인간을 위해 가져오려던 곡식은 다섯 가지인데, 곡식을 가지고 하늘에서 내려왔다가 메밀을 두고 온 것을 깨닫고 다시 올라가 메밀을 가지고 내려온다. 신화 속에서 다섯 가지 곡식이 각각 무엇인지는 자세히 언급하지 않지만, 뒤늦게 가지고 온 곡식은 ‘메밀’이라고 특정한다. 이 이야기를 통해 메밀은 늦게 심어도 금방 자라 다른 곡식과 함께 수확할 수 있다는 걸 표현했다고 한다.
광평리 마을은 자청비가 다시 챙겨 온 곡식이 메밀인 점에 집중하며 김진국 대감과 부인이 살던 동네가 광평리인 ‘넙은드르 마을’이었다고 이야기한다. 문국성 도령이 살던 곳은 ‘왕이메오름’이며 문도령과 자청비가 만난 물웅덩이는 바로 광평리 유일의 문화유산인 ‘행기소’다. 마을에 들어서서 선녀가 목욕을 하고 갔을 법한 행기소를 살피고 왕이메오름 아래 자리한 마을을 걷다 보면, 이 마을이 아니면 대체 어디서 자청비가 살았을까 싶다. 행기소에는 나무 그네가 하나 설치되어 있다. 봄부터 가을까지 신비로운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종종 찾는다.
 

한라산 아래 첫 마을 영농조합에서는 직접 메밀 제분 공정을 수행한다.

한라산 아래 첫 마을의 표지판

메밀 마을 광평리
‘자청비 신화’에 주요하게 등장할 정도로 메밀은 제주도에서는 주요한 농작물이다. 제주를 넘어 우리나라 전체를 봐도 제주 메밀은 중요한 작물이다. 전국 메밀 생산량의 40% 이상이 제주 메밀이라는 이야기를 하면 제주도민도 깜짝 놀라곤 한다. 하지만 봄가을, 제주 어디서나 들판에 하얗게 피어 있던 메밀꽃을 떠올리면 납득할 만하다. 제주 메밀은 1년에 두 번 파종하며 메밀꽃이 지는 6월과 11월 메밀을 수확한다. 광평리에서도 마찬가지다. 토양 때문에 쌀농사가 어려운 제주에서 메밀과 보리는 언제나 중요한 곡식이었고, 그중 메밀을 활용한 요리가 발달했다. 빙떡, 메밀묵, 조배기국, 돌레떡 등 토속 음식뿐 아니라 여행객이 많이 찾는 고사리육개장과 몸국도 메밀을 풀어 걸쭉하게 만든다. 예전에는 제주에 메밀 가공 공장이 없어 생산한 메밀 대부분을 강원도 등 육지로 보내 가공해왔다.
마을을 지키고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살아가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 광평리에서는 제주 메밀을 활용해 ‘농촌힐링마을'로 변신하는 중이다. 그 첫 단계가 2015년 한라산아래첫마을 영농조합 설립이다. 2017년 초 마을 안에 메밀제분 공장을 완공해 메밀쌀과 메밀가루 생산 및 판매를 시작했다. 이후 메밀 체험장을 만들고 그 안에 식당과 판매장, 카페도 운영 중이다. 광평리는 농사를 짓고, 제조·가공하고, 판매하는 모든 단계를 마을 안에서 진행함으로써 ‘6차 산업화마을’이 되었다. 또 제다 공장도 지어 야생초 차도 생산하고 있다. 청정 지역 광평리에서 야생초 차 재료를 채취하고, 지하 700m 암반수로 씻어 제다한다. 메밀밭 사이를 걷고, 마을에서 생산한 메밀로 만든 음식을 먹고, 이 마을에서 채취한 식물로 덖은 야생초 차를 마시다 보면 이 청량한 마을의 일부분이 된 듯하다.
광평리에 가면 들를 곳

한라산 아래 첫 마을
지금의 광평리는 무엇보다 ‘한라산 아래 첫 마을’이라는 제주 메밀 식당으로 유명하다. 광평 마을 주민들이 재배한 메밀로 직접 제분하고, 제면해 만든 메밀 면을 사용한다. 성수기 주말이면 줄이 끝없이 이어진다. 한번 맛보곤 그 맛에 반해 지금까지 수십 차례 방문했고, 어떤 메뉴를 먹든 한 번도 실망한 적이 없다. 대표 메뉴는 ‘비비작작면’으로 메밀 면과 제주 제철나물, 들깨를 함께 비벼 먹는 들기름 비빔면이다. 그 외 물냉면, 비빔냉면도 깔끔하고 맛이 좋으며 제주메밀 만두와 전도 판매한다. 또한 피를 맑게 해준다고 하여 예로부터 제주의 산모들이 보양식으로 먹은 제주 향토 음식 ‘메밀조배기’도 맛볼 수 있다.

주소 서귀포시 안덕면 산록남로 675
웹사이트 한라산아래첫마을
 

고배기 동산
200년 전 조성된 광평 마을은 제주 4·3사건을 겪은 후 한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다. 1955년 마을을 재건하며 고배기 동산 아래 터를 선택했다. 그야말로 마을 동산인 고배기 동산에는 660m 길이의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전체를 걷는 데 채 20분이 걸리지 않는다. 산책로를 따라 매트가 잘 깔려 있고, 앉아 쉬거나 그물 침대 등 몸을 누일 수 있는 곳도 많아 가족들과 천천히 시간을 보내기 좋다. 한라산아래첫마을에서 식사를 하고 쉬엄쉬엄 고배기 동산으로 걸어가 한 바퀴 천천히 걷는 것을 추천한다.

족은대비악오름 풍경

족은대비악오름, 왕이메오름
최근 광평리에서는 마을을 통과하는 도로 ‘시도29호선’에 참꽃나무와 산딸나무를 심었다. 이 나무는 시간이 지날수록 땅에 뿌리를 내리고 하늘로 가지를 뻗어 마을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 것이다. 도로를 따라 5월에는 참꽃을, 7월엔 산딸나무를 감상할 수 있다. 메밀꽃과 참꽃이 어우러져 만개할 5월이 무척 기대된다. 꽃길을 따라 가다 보면 왕이메오름에 닿는다. 반대로 달려 산록도로를 지나면 족은대비악오름에도 갈 수 있다. 두 오름 모두 야트막한 오름이지만 탐방로가 조성돼 있는 편은 아니라 신발과 옷 등 복장을 갖추고 오르길 추천한다. 해 질 녁 오르면 제주 서쪽 일몰을 감상할 수 있다.

제주에서 머물 곳: 롯데호텔 제주
롯데호텔 제주는 500개의 객실을 갖춘 리조트 호텔로 중문관광단지에 자리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리조트 호텔 ‘더 팰리스 오브 더 로스트 시티’를 모델로 한 설계와 제주 천혜의 자연이 어우러져 이국적 분위기가 물씬 난다. 호텔 셰프들이 엄선한 최상의 제주 현지 식자재로 요리한 140여 종의 메뉴를 올데이 다이닝 레스토랑 ‘더 캔버스(THE CANVAS)’에서 맛볼 수 있다. 사계절 온수풀과 헬로키티 캐릭터 룸 등 다양한 시설로 가족과 연인에게 사랑받는 호텔이다.

주소 제주 서귀포시 중문관광로 72번길 35
전화 +82-64-731-1000
홈페이지 www.lottehotel.com
 
2022. 4 에디터:정재욱
글: 정다운
포토그래퍼:박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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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4
  • 에디터: 정재욱
    글: 정다운
  • 포토그래퍼: 박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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