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 STYLE

글 쓰러 가는 문구점
디지털 세상에서 아날로그로 사고하는 이들이 분명 좋아할 서울의 글 쓰는 문구점을 소개한다.
스마트폰을 스크롤하며 보는 웹툰이 아니라 종이 책장을 넘겨야 만화책을 읽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사람들이 있다. 이모티콘이 가득한 문자보다 펜을 꾹꾹 눌러 글자로 채운 생일 카드를 반가워하는 이도 많다. 꼭 아날로그 세상을 살 필요는 없지만, 이런 감성이 그리울 때가, 분명 있다. 얇은 종이 한 장에 글자를 채워나가는 것이 생각보다 즐거운 일임을 알려주는 서울의 글 쓰는 문구점들을 방문했다.
포셋
트렌드에 관심 있는 이들 사이에서 늘 화제가 되는 리빙 브랜드 ‘오브젝트’가 있다. 리사이클 제품부터 독립 출판 형식으로 제작한 책, 다양하고 쓸모 넘치는 리빙 소품을 판매하는 브랜드다. ‘사물의 의미를 재해석하고 현명한 소비로 나아가자’는 오브젝트의 슬로건은 이들이 무엇에 가치를 두는지 짐작할 수 있다. ‘엽서 도서관’이란 콘셉트로 연희동에 문을 연 포셋은 오브젝트에서 운영하는 공간이다.
포셋

도서관 서재 같은 포셋의 엽서 진열장

포셋은 끼워 팔거나 사은품으로 전락한 지 오래인 엽서를 주연으로, 아니 1인 등장극으로 내세웠다. 이곳에선 3,200여 장의 엽서와 필기구를 전시하고 판매한다. 도서관처럼 자체 제작한 포셋의 서가는 오직 엽서만으로 채워져 있다. 높은 서가마다 일정 간격으로 엽서를 배치해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는 느낌이 들도록 구성했다. 엽서는 다양한 주제의 사진이나 일러스트, 그래픽 혹은 텍스트로 이루어져, 마치 작은 전시를 관람하는 기분이 들게 한다.
포셋

포셋

포셋

포셋

포셋에서 판매하는 다양한 엽서와 필기구

글을 쓰기 위한 여러 가지 소품 도구도 판매한다. 연필과 연필깎이도 구입할 수 있다. 요즘 시대에 웬 연필인가 싶겠지만, 쓸모뿐 아니라 소품으로서도 연필은 제 역할을 다한다. 애써 고른 엽서에 연필을 깎아 글을 채워가는 것이 이 숍의 의도일 것이다. 편지지나 봉투 종류도 다양하다. 엽서는 1,000원 안팎부터 5,000원 정도까지, 종류와 가격대가 매우 다양하다. 인테리어 소품으로 제격인 엽서 북도 있다.
포셋

1인 책상에서 구입한 엽서를 채울 수 있다.

방문객이 할 일은 단순하고 간단하다. 여러 가지 엽서 중 마음에 드는 하나를 골라 창가 쪽 1인용 테이블 앞에 앉아 빼곡히 글을 채워나가면 된다.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일 수도, 나에게 남기는 다짐과 잠언의 문구일 수도 있다. 혹은 그냥 비워두어도 무방하다.
재미있는 이벤트도 있다. 기록 보관함 서비스다. 일정 기간 편지나 일기장, 사진 등 소중한 기록을 대신 보관해준다. 누군가에게 남긴 기록을 당사자가 찾아서 볼 수도 있다. 요즘 세상에 다소 어색하긴 하지만 분명 의미 있는 이벤트가 될 거다.
주소 서울시 서대문구 증가로 18 3층
인스타그램 @poset.official
동백문구점
취향이란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이나 그런 경향’, 즉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을 말한다. 많은 자영업자가 자신의 취향을 사업장에 입히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개인의 취향에 대한 애착이 강한 자영업자일수록 더더욱 그러하다. 동백문구점의 주인이자 유튜버 펜크래프트 유한빈 대표는 필기구, 특히 만년필에 대한 애정으로 시작해 글씨 쓰는 문구점을 차린 덕후다. 만년필의 필기감이 마음에 들어 만년필 그리고 손 글씨에 빠지게 되었다고. 글씨 쓰는 일이란 글을 쓰는 일과는 다른, 하나의 행위이자 절제된 양식이다.
동백문구점

동백문구점

동백문구점

동백문구점

클래식한 느낌의 외관과 실내

망원동에 위치한 동백문구점은 오직 글씨와 글쓰기에만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다. 랩톱의 키보드나 스마트폰 자판이 아니라 펜을 쥔 손으로 질 좋은 종이 위에 한 자 한 자 공들여 글씨 쓰기에 몰입하는 거다. 문구점 공간과 판매 소품 하나하나에는 유한빈 대표의 취향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디자인과 종이 질, 제본 방식 등 시중의 노트가 마음에 들지 않아 직접 제작하기도 했을 정도다. 필사를 하다 좋은 만년필을 발견하게 되면, 그 펜으로 좋은 잉크를 담아 글씨를 써 내려갔다. ‘망해도 내가 쓰면 되지’라는 심정으로 만들었다고 하니 질이 좋을 수밖에 없다. 글씨를 쓰는 덕후에게 종이의 질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잉크도 직접 조합해 담았다.
동백문구점

오직 글씨쓰기에 집중하는 동백문구점의 제품들

2022년. 너무 빠르게 돌아가 모든 게 초현실적으로 보이는 요즘 시대에 오프라인 문구점을 연다는 건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취향 같은 동지들을 골라 모으는, 이른바 오프라인 레지스탕스 같은 활약을 하기도 한다. ‘영화광의 3법칙’이란 말이 있다. 1단계는 영화를 두 번 보는 것, 2단계는 영화에 대한 평론을 쓰는 것, 3단계는 영화를 직접 만드는 것. 영화 덕후이자 감독이던 프랑수아 트뤼포의 말인지는 정확치 않지만 어쨌든 영화를 사랑하는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유명한데, 유한빈 대표는 아마 손 글씨계의 트뤼포일지 모른다.
주소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로25길 85
홈페이지 pencraft.co.kr
글월
연희동과 성수동 두 곳에 문을 연 편지 가게 글월은 마음을 담아 편지를 쓰고 누군가와 공유하는 곳이다. 이에 필요한 편지지나 엽서, 필기구와 수첩 등도 판매하지만, 본질인 편지를 쓰고 보내고 받는 과정에 집중한다. 글월은 ‘편지’를 뜻하는 우리말이다. 글이나 문장을 일컫기도 한다.
글월

글월 성수점의 실내

이곳에서 방문객들을 위해 제공하는 대표 서비스는 펜팔이다. 말 그대로 펜으로 만든 친구,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귄 친구를 말하는 펜팔을 대행한다. 글월에서 준비한 편지함에 내가 쓴 편지를 두고 가면, 다른 사람이 그 편지를 가져갈 수 있다. 잘 알지 못하는 이들끼리 편지를 주고받는 일이 가능할까 싶지만, 진실된 마음을 글로 전하는 일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늘 잔잔한 감동과 즐거움을 준다. 누군가에게 편지를 보내는 일은 어쩌면 효율과 속도를 중요시하는 2022년에는 느리고 쓸모가 결여된 일일지 모르지만, 다행히 많은 손님이 이용하고 좋아한다.
글월

글월

글월

글월 성수점의 실내와 소품들

글월의 시작은 연희동 작은 건물 4층. 이곳에는 편지를 위한 모든 것이 있다. 직접 만든 편지지 전용 원목 함, 편지를 쓸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도 특별히 디자인했다. 단순히 미감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글월이 주목하는 바와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글월

얼마 전에는 모든 문화와 유행을 스펀지처럼 흡수하고 있는 성수동에 두 번째 공간을 마련했다. 제품 구성이나 운영 방식은 연희동 매장과 동일하다.
글을 쓴다는 것, 특히 나를 모르는 이에게 내 신원이나 개인 정보가 아닌 나의 취향과 감정을 적어 보내는 행위는 받는 사람뿐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다. 편지는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전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글로써 스스로를 정의하고 지금의 나를 정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주소 연희동점 서울시 서대문구 증가로 10, 연궁 403호 / 성수점 서울시 성동구 연무장17길 10 LCDC 서울 A동 302호
홈페이지 www.geulwoll.kr
2022. 12 에디터:정재욱
포토그래퍼:김준

Where to st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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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12
  • 에디터: 정재욱
  • 포토그래퍼: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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