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 EXPERIENCE

밤의 궁궐 산책
한시적으로 야간 개방했던 창경궁이 올해부터 저녁 9시까지 상시 개방하고 있다. 21세기 서울의 밤에 거니는 15세기 한양의 흔적, 밤의 창경궁은 한낮 더위를 식히고 몽상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다.
예나 지금이나 궁궐에서 밤을 보내긴 쉽지 않다. 조선 시대에는 초경(저녁 7시)에 궁궐 문이 닫혔고, 요즘의 궁궐은 관람 시간이 저녁 6시까지로 제한된다. 그래서 봄가을에만 운영하던 야간 궁궐 탐방 행사는 매번 표가 금세 매진될 만큼 인기 있는 행사였다. 이런 열광적 반응 덕분인지 올해부터는 밤에도 궁궐을 수월하게 찾을 수 있게 됐다. 한시적으로 야간 개방했던 창경궁이 저녁 9시까지 상시 개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 그럼, 해가 지는 시간의 아름다운 궁궐을 만나보자.
창경궁

창경궁 전경, 파란 천막으로 감싼 곳은 현재 보수 공사 중인 명정문이다.

동쪽으로 열린 문
창경궁은 경복궁과 창덕궁에 이어 세 번째로 들어선 조선 시대의 궁궐로, 서울에 남아 있는 5대 궁궐 중 하나다. 많은 이가 창경궁과 창덕궁의 명칭을 헷갈리는데, 이 둘이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붙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창경궁은 창덕궁의 모자란 주거 공간을 보충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조선의 아홉 번째 왕 성종이 왕실의 웃어른인 세 명의 대비를 위해 창덕궁 이웃에 궁궐을 마련했는데, 그곳이 바로 창경궁이다. 별개이면서도 왕래가 잦았던 두 궁궐을 합쳐 ‘동궐(東闕)’이라 불렀다.
창경궁은 왕실의 생활 공간으로 지었기 때문에 공간의 구조와 배치가 자유로웠다고 한다. 이러한 창경궁의 독특함은 궁궐 문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대부분의 궁궐이 남향인 데 비해 창경궁의 정문과 정전은 동향인 것이 특징이다. 그러니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은 동쪽을 향해 활짝 열린 유일한 궁궐 정문인 것이다. 그리고 이 동쪽의 문을 지나야 본격적인 창경궁 야간 산책이 시작된다.
창경궁

창경궁

창경궁

명정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전각
홍화문과 창경궁의 두 번째 문인 명정문을 지나면 정전인 명정전을 만날 수 있다. 창경궁 안에는 움직이는 데 어려움이 없을 정도로만 불을 밝히고 있어 해가 지면 금세 사위가 어두워지는데, 명정전은 창경궁에서 가장 밝은 빛을 내는 궁궐이며 또한 가장 의미 있는 공간이다. 명정전은 1592년 임진왜란으로 한 차례 불에 탔으나 광해군 때 재건되어 현재까지 남아 있는 조선 시대의 정전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명정전에서는 과거시험이나 왕실 어르신들을 위한 각종 잔치가 열렸다. 명정전 중앙에 위치한 옥좌에 앉아 잔치를 즐기는 왕의 모습을 떠올리기에 어렵지 않을 것이다.
창경궁

환경전과 경춘전

창경궁

춘당지

희극과 비극의 무대
현실 세계를 사는 사람에게 궁궐은 역사적 공간이자 상상의 공간이다. 현실과 상상의 경계가 흐릿해지고 많은 것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밤의 궁궐에서는 옛이야기가 더욱 잘 들려온다. 창경궁은 왕과 세자, 왕비와 후궁 등 왕실의 사랑과 갈등이 뒤엉킨 이야기가 넘쳐나는 장소다. 영화 <사도>와 드라마 <장희빈> 등 영화와 드라마로 친숙한 역사적 인물들과도 연관이 많다.
명정전의 오른쪽에 위치한 문정전은 사도세자와 관련이 있다(현재 문정전 건물은 일제강점기에 철거된 것을 1986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문정전은 창경궁의 편전으로, 왕이 업무를 보고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던 집무실이었다. 이곳에서 영조가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라고 명했다. 이후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고도 비극적이다. 뒤주는 홍화문 남쪽에 있는 선인문 안뜰로 옮겨졌고, 사도사제는 뒤주 안에서 8일 동안 굶주림과 더위를 견디다 못해 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왕비의 침전이자 왕비가 내명부를 다스리는 업무를 보던 내전의 최고 전각으로, 궁중 암투의 주 배경인 통명전, 정조가 생을 마감한 영춘헌 등 어둠 속에서 감각은 더욱 예민해지고 사건의 현장에서 떠올리는 이야기들은 영상으로 보는 것만큼 생생하게 다가온다.
창경궁

창경궁

창경궁

대온실

밤에 더욱 선명한 초록
창경궁의 연못인 춘당지를 지나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국내 최초의 서양식 온실인 대온실이 있다. 대온실은 1909년에 조성한 것으로, 당시 일본 왕실 식물원 책임자이던 후쿠바 하야토가 설계하고 프랑스 건축 회사가 지었다. 대온실 또한 야간 개방 시간 동안 둘러볼 수 있다. 마치 하나의 등대처럼 녹색으로 빛나는 온실 안으로 들어서면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준공 당시 대온실을 채운 것은 열대지방의 관상식물을 비롯한 여러 희귀 식물이었지만, 현재 대온실에서 볼 수 있는 것은 한국의 자생식물들이다. 창덕궁 향나무, 통영 비진도의 팔손이나무 등 70여 종의 식물이 이곳에서 자란다. 규모가 크지 않지만, 한밤중에 아담하고 아름다운 궁궐의 분재들을 감상하는 즐거움이 있다.
창경궁

집복헌

여름의 길어진 해는 저녁 8시가 지나서야 저 너머로 사라진다. 관람객 또한 그림자로 형체만 남아 자연스럽게 이곳에 녹아든다. 명정전 뒤로 밝게 빛나는 N서울타워도 창경궁이 만들어내는 풍경의 일부다. 캄캄한 밤의 창경궁을 모두 둘러보기에 1시간은 짧다. 하지만 짧은 시간을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여름이 가기 전 언제고 다시 밤에 창경궁을 산책할 수 있으니까.
창경궁

창경궁 홍화문

창경궁
관람 시간 9:00~21:00(매표 및 입장 마감 20:00, 매주 월요일 휴무)
주소 서울시 종로구 창경궁로 185
전화 +82-2-762-4868
홈페이지 cgg.cha.go.kr
2019. 7 에디터:김혜원
포토그래퍼:안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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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7
  • 에디터: 김혜원
  • 포토그래퍼: 안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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