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 EXPERIENCE

정동에서 경성을 걷다
서울이 경성으로 불리던 때가 있었다. 볕이 좋은 날 덕수궁 뒤쪽, 정동길을 걸으면 당시 경성을 만나게 된다.
한 나라의 수도는 곧잘 변화한다. 다른 지역으로 수도를 이전하는 경우도 있지만, 수도 자체의 지명이 여러 번 바뀌기도 한다. 지금의 서울 역시 오랜 세월 개명의 시기를 거친 것이다. 그중 경성으로 불리던 시기도 있었다. 1910년 8월, 일본이 조선을 강제 합병하던 때에 맞춰 조선 시대 한성으로 불리던 이름을 경성부로 고쳤다. 그 이름은 1946년 서울로 바뀌기까지 36년간 유지됐다. 당시의 경성을 느껴보고 싶다면 두어 시간가량 정동길을 산책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정동에는 1900년대 초에 들어선 다양한 서양 양식의 건축물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정동에서 만날 수 있는 풍경들

정동에서 피어난 꿈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 덕수궁에서 시작해 이화여자고등학교, 정동극장을 지나 대한성공회성당, 구세군 역사박물관까지 이르는 일대를 가리키는 현재의 행정구역이다. 정동은 원래 조선 초기 신덕왕후의 묘가 있던 곳이었다. 신덕왕후는 태조 이성계의 둘째 부인으로, 사냥을 나와 물을 청하는 이성계에게 체하지 말라고 버드나무잎을 띄워 물을 건넸다는 그 유명한 일화의 주인공이다.
도성 안에는 묘지를 세울 수 없었지만, 태조 이성계는 신덕왕후를 아꼈던 마음에 이를 강행했고, 그래서 당시에는 정릉으로 불렸다. 이후 지금의 성북구에 있는 정릉으로 이장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예전 정릉에서 ‘정’자만 남아 정동(貞陵)으로 불렸으며, 정식 지명이 된 것은 1900년대 초기 소정동에서 정동으로 이름이 바뀌면서다.

오랜 세월을 느낄 수 있는 정동 골목길

원래 경운궁(지금의 덕수궁)과 서민 촌락이 함께 자리하던 정동 일대는 개화기 초인 19세기 후반에 서구 열강의 쟁탈전이 펼쳐지면서 외국 문화가 들어오던 관문이자, 역사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고종은 경복궁에서 경운궁으로 거주지를 옮기고, 대한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서구 공사관들이 하나둘 들어선 것도 이 시기다. 1883년 미국공사관이 조선 최초의 외국 공사관 건물로 자리 잡은 후 독일과 러시아, 영국, 벨기에 등 많은 열강이 정동에 뿌리를 내렸다.
공사관이 들어설 때 선교사들 역시 함께 들어와 교육 시설과 병원 등을 세웠다. 이화학당(1886), 배재학당(1988), 장림성당(1892), 정동제일교회(1897) 등이 당시 건립된 학교와 종교 시설이다.

정면으로 보이는 성공회 서울 성당

한옥과 어우러진 양식이 눈에 띈다.

서구 건축양식의 집합소
정동 일대가 여전히 걷기 좋은 길로 불리는 이유는 아름다운 데에서 그치지 않고, 한국의 근대사를 충분히 느끼면서도 당시 유럽의 건축양식을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이국적인 면이 정동 곳곳에 느껴진다.
시청역 3번 출구로 나와 세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주황색 지붕의 이국적인 건물을 만나게 된다. 이는 성공회 성당으로, 정식 명칭은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이다. 10세기 후반 유럽에서 유행하던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로, 국내의 공적 건물로는 유일하다. 1911년 당시 주교 마크 트롤로프가 의뢰하고 영국 건축가 아서 딕슨이 설계해 지었다. 원래 한옥이던 장림성당 자리에 들어서, 돌을 사용하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특징과 둥근 아치형 구조, 한옥의 소박함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1922년에 공사를 시작해 1926년에 1차 완공됐으며 명동성당과 함께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성지로서 역사적 향취가 물씬 풍기는 곳이다.

고종의 길

대한성공회성당 안쪽 길로 들어가 잠시 걷다 보면 ‘고종의 길’을 만나게 된다. 고종의 길이란 이름은 대한제국 당시 미국공사관에서 제작한 정동 지도에 표시된 ‘왕의 길’에서 유래되었다. 명성왕후를 잃으며 신변에 위협을 느낀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한 아관파천(1896년)을 단행한다. 이후 고종은 1년여 가까이 러시아공사관에서 덕수궁을 오가며 국사를 돌보게 되는데, 그 오간 길을 고종의 길로 부르게 된 것이다. 총 120m 정도 되는 이 좁고 슬픔 가득한 돌담길이 이름 때문에 다소 운치 있고 낭만적인 느낌을 주는 듯해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고종의 길을 거슬러 올라 미국 대사관저를 따라 걷다 보면 옛 구세군 중앙회관 건물이 나온다. 1928년에 들어선 이 2층 벽돌 건물은 구세군 양성과 선교, 사회사업을 위한 본부로 사용하기 위해 건축됐다. 단순하지만 안정감을 전하는 중앙 상부의 박공지붕과 붉은 벽돌과 중앙 현관의 4개 기둥 등이 당시 유행하던 신고전주의 양식을 잘 보여준다.

정동1928 아트센터

현재 이 건물은 ‘정동1928 아트센터’라는 이름으로 공연과 전시,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을 위한 장소로 조성되어 사용 중이다. 구세군 역사박물관을 마련해 근대 역사·문화가 지닌 의미와 가치를 공유하면서도 과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잇는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 공간으로 재정립한 것이다.
구세군 중앙회관을 둘러보았다면 다시 고종의 길 방향으로 돌아가보자. 고종의 길과 나란히 붙은 길에 옛 러시아공사관이 있다. 당시 정동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했던 이곳은 이제 그 터와 탑만 남아 세월의 무상을 느끼게 한다.

옛 러시아 공사관의 흔적

이화학당 박물관 © Shutterstock

염원과 낭만이 모인 공간
옛 러시아공사관에서 이화여자고등학교로 향하면 메인 정동길과 합류하게 되는데, 초입에 이화학당과 안쪽의 손탁호텔 터가 있다.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지만, 손탁호텔은 초대 주한 러시아공사 카를 이바노비치 베베르와 함께 조선에 온 독일인 손탁(Sontag, A.)이 운영하던 외국인 전용 호텔이었다. 25년간 한국에서 생활하며 고종에게 처음으로 커피 맛을 선보여, 오늘날 영화와 소설 등 고종과 커피를 소재로 한 다양한 창작의 영감을 준 이가 바로 손탁이다. 그녀는 자주와 독립을 꿈꾸던 고종의 밀사 역할을 하기도 했는데, 고종으로부터 하사받은 한옥 한 채를 개조해 해외 공사와 선교사, 외국인들의 사교 모임 장소로 사용했다. 이 모임이 커지고 숙박 시설이 필요해지자 서양식 호텔로 개조하게 된다. 이것이 국내 최초의 서양식 호텔인 손탁호텔이다. 이곳에서는 서구 열강 외교관들의 자국을 위한 치열한 각축이 벌어졌다. 외교관과 사업가, 신시대를 꿈꾸는 조선 청년 엘리트들이 모인 이 자리에서 밤마다 외교와 사교가 이루어졌다. 어떤 외교는 현실이, 어떤 사교는 ‘동상이몽(同床異夢)’이 되었다. 조선 개화파 인사들의 모임이자 후에 독립 자강 운동의 시발점이 되기도 한 ‘정동구락부’도 여기서 발족됐을 정도로 이 작은 호텔이 지닌 의미는 적지 않다.
 

정동제일교회 © 문화재청

배재학당역사박물관

이화학당에서 길을 따라 덕수궁 방면으로 걸으면 가장 먼저 정동제일교회를 만난다. 30여 년 전 노래 ‘광화문 연가’에 “언덕 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이라는 노랫말이 나오는데, 그 조그만 교회당이 정동제일교회다. 영국 고딕 양식을 단순화한 19세기 빅토리안 고딕 양식으로 지은 이 건물은 화려할 것 없이 단순한 디자인으로 외관과 실내를 설계했다. 소재도 나무를 사용해 더욱 소박한 분위기를 풍긴다.
정동제일교회 옆에는 배재학당이 들어서 있다. 미국 선교사 헨리 아펜젤러가 설립한 배재학당은 한국의 최초 서양식 학교다. 영국 컨트리하우스 양식을 기반으로 벽돌로 지었는데, 우람하거나 화려하지 않고 아담하고 안정적인 형태를 띤다. 크기나 형태는 소박하지만 난간이나 계단, 창틀 등을 보면 매우 섬세하게 마무리했는데, 이는 미국 19세기 상류층의 주택을 연상시킨다.

서울시립미술관

배재학당 맞은편에는 서울시립미술관이 자리한다. 미술관 본관 건물은 원래 조선 말 개화기 때 재판소이던 평리원으로 사용했다. 이후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의 경성재판소로 쓰이다, 해방 후 대법원으로 사용했다. 그러고 보니 미술관 이전에 세 번 모두 재판소로 쓰였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원래 둥근 아치 형태의 고딕 양식으로 지은 이 3층 건물은 건축적·역사적 가치가  있어 대한민국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덕수궁 중명전

정동길 산책의 마지막 여정은 덕수궁이다. 비운의 고종이 순종에게 왕위를 물려준 뒤 머물렀던 덕수궁에는 단청과 목재가 조화를 이룬 조선 양식 건물을 비롯해 고대 그리스의 건축 스타일인 이오니아 양식이나 로코코풍을 적용한 서양식 건물도 있다. 18세기 유럽 궁정 건축양식으로 세운 석조전은 최초의 서양식 건물로 영국인 존 하딩이 설계했다. 고종은 1919년 승하할 때까지 석조전에서 집무를 보았다. 이곳에서는 조선 왕실이 아닌 대한제국 황실의 생활상을 볼 수 있다.
독립된 황실을 꿈꿨지만, 꿈에 그쳤던 대한제국 황실이 건립 당시 사용했던 고가구와 골동품, 영상 자료 등이 잘 재현되어 있다.
대한제국 시대 경성의 정동은 언제나 한반도를 둘러싼 해외 열강의 각축장이었다. 그 사이사이마다 독립을 향한 치열한 삶과 그 속에서 피어난 낭만의 분위기가 지금도 정동을 걷다 보면 스멀스멀 느껴진다.
2020. 4 에디터:정재욱
포토그래퍼:김준

Where to stay?

LOTTE HOTELS & RESORTS
  • 2020. 4
  • 에디터: 정재욱
  • 포토그래퍼: 김준
  • 트위터로 공유
  • 페이스북으로 공유
  • 핀터레스트로 공유
  • 링크URL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