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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족 군락 © 전혜인

베트남의 15%, 소수민족 이야기
베트남은 54개의 민족으로 이루어진 다민족 국가다. 그중 비엣족은 베트남 인구의 약 85% 이상을 차지하는 최대 민족이다. 나머지 53개의 소수민족은 도시에서 떨어진 곳에서 고유한 생활양식을 고수하며 살아간다. 베트남 하노이에 거주 중인 여행작가 전혜인이 베트남 민족학 박물관을 중심으로 베트남 소수민족의 의식주, 종교 등 그들의 문화 전반을 소개한다. 베트남을 이해하는 남은 한 조각의 퍼즐, 15%의 소수민족 이야기.
“모든 인류는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
이경덕의 <어느 외계인의 인류학 보고서> 중에서
번잡한 하노이 도심 한복판, 뜻밖의 공간이 펼쳐진다. 마치 비밀의 화원에 들어온 듯 새들이 지저귀고 우거진 녹음을 만끽할 수 있는 곳. 거대한 나무들이 작열하는 태양으로부터 그늘막을 만들어주고, 솔솔 부는 바람은 흙냄새와 풀 냄새를 담뿍 실어 나른다. 졸졸 물이 흐르는 자그마한 냇가에는 풀벌레와 개구리가 노닐고, 수풀 사이로 드문드문 신비로운 형태의 집들이 보인다. 깊은 산속 시골 마을에 들어가야 마주칠 법한 목가적인 풍경을 자랑하는 이곳은, 베트남 소수민족의 역사와 생활상을 두루 전시하는 ‘베트남 민족학 박물관’이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목가적인 풍경 © 전혜인

민족학이란 인류학의 한 분야로 각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는 학문이며, 소수민족은 민족국가 내부에서 문화·언어·종교를 달리한 이민족 집단을 일컫는다. 베트남은 54개 민족으로 이루어진 다민족 국가다. 하노이, 호치민, 다낭 등 대도시를 여행할 때 만나는 베트남 사람은 대부분 베트남 인구의 약 85% 이상을 차지하는 최대 민족 비엣족(Viet People, 낀족(Kinh People))이며, 나머지 53개의 소수민족은 도시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고유한 생활양식을 고수하며 살아가고 있다.

베트남 민족학 박물관 외경 © 전혜인

베트남 민족학 박물관 내부 전시 © 전혜인

하노이 꺼우저이군(Quan Cau Giay)에 위치한 베트남 민족학 박물관에서는 소수민족의 역사와 제반 생활양식을 전시하고 있으며, 널찍한 뒷마당에 조성된 건축 정원(Architecture Garden)에는 각 소수민족을 직접 초청해 실제 그들의 건축양식으로 소수민족 주거지를 생생하게 재현해놓았다.

건축 정원의 소수민족 무덤 © 전혜인

먹고(食) 살기(住), 대자연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
세로로 약 1,650km에 달하는 긴 영토를 보유한 베트남은 지역마다 기후가 크게 다르다. 53개 소수민족 중 대부분이 북부 산악 지대에 거주하며, 그 외 민족은 베트남 전역에 뿔뿔이 흩어져 생활하고 있다. 소수민족 공동체는 기본적으로 농사와 가축 사육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계절에 따라 논과 밭에서 자란 곡식과 과실을 수확해 양식으로 쓰며 가끔 찾아오는 명절과 특별한 잔칫상에는 고기 요리를 준비해 여럿이 함께 즐긴다.

자연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 © 전혜인

자연에 기대어 살아가는 이들의 생활상은 주거 양식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도시 사람들에게 건축은 전문가의 영역이지만, 소수민족 공동체는 자연이 내어준 재료를 이용해 마을 사람들의 노동력을 토대로 직접 집을 짓는다.

하니족의 전통 흙집. 창문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 전혜인

• 하니족의 버섯집
소수민족 중에서도 특히 외부와 접촉하는 일이 적은 하니족(Hani People)의 집은 ‘단순함’을 특징으로 한다. 산기슭에 옹기종기 솟아난 버섯처럼 보인다고 해서 ‘버섯집’이라는 별명을 가진 하니족의 집은 흙과 돌, 나무, 볏짚으로 지은 자연식 흙집이다. 베트남 북부 산악 지대의 연교차 심한 날씨에서 살아남기 위한 선택으로 하니족은 집에 창문을 내지 않는 방법을 선택했다. 벽 중앙에 있는 작은 구멍이 최소한의 일조량과 환기를 담당한다. 40cm 두께의 흙벽은 겨울의 추위와 여름의 고온다습한 기후로부터 가족들을 지켜준다. 창문이 없는 까닭에 부엌 화로에서 발생하는 연기가 오갈 데 없이 천장을 온통 까맣게 그을리는데, 하니족은 이마저 역으로 이용해 흙집의 내구성을 높이고 나무 기둥과 풀 지붕의 방부·방습제로 사용한다.

고상 가옥의 하나인 에데족의 롱하우스 © 전혜인

• 에데족의 롱하우스
북부 산악 지대와 달리 연중 더운 기후를 견뎌야 하는 중부 이남 지역 소수민족은 고상 가옥(raised houses)을 기본 건축양식으로 한다. 고상 가옥이란 집의 기둥을 높게 올려 땅에서부터 1.5층 높이에 바닥을 설계한 집으로 지면에서 올라오는 열기와 습기, 해충의 피해를 막기에 최적화된 건축 방식이다. 또한 지면과 마루 사이의 공간은 가축 우리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다양한 형태의 고상 가옥 중에서 특별히 이목을 끄는 것은 에데족(Ede People)의 롱하우스다. 닥락(Dac Lac)성에 주로 거주하는 에데족은 기다란 배 모양 집을 짓고 산다. 통으로 뚫린 실내에 바람이 잘 통해 시원하다는 장점이 있으며, 이는 대가족이 모여 살기 위해 고안한 형태다. 집의 길이는 가족 수에 비례한다. 과거에는 무려 100m에 달하는 집도 있었으나 오늘날에는 보통 30~40m 정도로 짓는다.

여성의 육체를 형상화한 나무 계단 © 전혜인

에데족 주거지에서는 여성의 육체를 형상화한 조형물을 흔하게 볼 수 있다. 과장된 모양으로 나무를 조각해 입구 계단과 실내 기둥으로 사용하는데, 이는 에데족의 모계사회적 특징을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롱하우스 한 채에 거주하는 가족은 보통 모계 중심의 확대 가족 공동체이며, 가족 내에서 가장 나이가 많고 존경받는 여성이 우두머리에 해당하는 콰상(khoa sang) 자리를 맡아 집안의 중대사를 관할하고 내부 다툼을 처리한다.

바나족의 공동 가옥 냐롱 앞에 모여 잔치를 벌이는 바나족 주민들 © 전혜인

바나족의 공동 가옥 냐롱 앞에 모여 잔치를 벌이는 바나족 주민들 © 전혜인

• 바나족의 냐롱
중부 꼰뚬에 위치한 바나족(Ba Na People) 마을에도 매우 특별한 집이 있다. 바나족 공동체에는 반드시 공동 가옥 ‘냐롱(Nha Rong)’이 존재한다. 총높이 17m, 지붕만 10m에 달하는 높고 거대한 건축물이다. 냐롱의 지붕은 도끼 모양으로 디자인했으며 부족의 힘과 권력을 상징한다. 거대한 지붕을 만들기 위해서는 막대한 노동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냐롱은 바나족의 소중한 전통이자 위대한 유산으로, 공동체 결속에 꼭 필요한 핵심 공간이다. 마을의 중요한 회의와 잔치가 모두 냐롱에서 이루어지며, 때로는 학교를 대신하는 교육 장소로 사용되기도 한다.

소수민족이 만든 아름다운 천 © 전혜인

의복(衣), 민족의 색과 결
소수민족은 독특한 색과 무늬로 수놓은 전통 의상을 즐겨 입는다. 베틀로 직접 실을 짜고 천연 염색 공법으로 물들인 뒤 한 땀 한 땀 정성껏 수를 놓아 완성한 수공예품이다. 만드는 방식은 유사할지 모르지만 디자인 측면에서 소수민족 의상은 민족별로 확연히 구분되는 특징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의상을 입기로 유명한 허몽화족(Flower Hmong)은 알록달록한 나선형과 기하학적 무늬를 수놓은 상·하의를 착용한다. 색색의 두건을 써 머리를 가리며, 금속 재질의 팔찌, 목걸이, 귀걸이 등의 액세서리를 활용해 과감하게 연출한다. 반면 하니족은 비교적 단순한 검은색 의상을 입으며 팔과 머리 부분, 목도리에만 색을 넣어 장식한다. 참족은 베트남을 대표하는 비엣족의 전통 의상 아오자이와 흡사한 비단옷을 지어 입으며, 타이족은 예쁜 은 단추가 달린 짧은 조끼를 입는다. 또한 자오족은 치마와 바지를 한데 걸쳐 입으며, 특별한 날에는 공예 장식된 모자를 쓴다.

기하학적 무늬를 수놓은 포대기 © 전혜인

베틀로 천을 직조하는 모습. 베트남 민족학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 전혜인

각 집단의 특성을 오롯이 반영한 고유의 의복은 이들에게 단지 ‘몸을 가리는 천’이 아니라 정체성의 표현이다. 그뿐 아니라 요즘은 소수민족이 직접 제조한 천, 의상, 수공예품 등이 많은 소수민족 여성의 주요한 생계 수단으로 자리 잡았으며, 이를 거래하는 장터는 소수민족과 도시 사람들의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중요한 장으로 기능하고 있다.

베트남 민족학 박물관에 재현된 소수민족의 종교 의식 © 전혜인

종교와 신앙, 믿고 바라는 것
소수민족 주거지에는 다양한 종류의 ‘제단’이 존재한다. 자택 내외부에 작은 제단을 설치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종종 마을에 거대한 주술 장식물을 세우기도 한다. 자연과 동물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애니미즘과 토테미즘 등 원시 신앙의 형태가 남아 있고, 죽은 자와 조상을 기리는 제사를 지내기도 한다.
종교의식을 치르는 공간과 조상을 기리는 제사, 제단 등은 우리에게도 친숙한 풍경이다. 종교와 신앙은 비단 소수민족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인류를 아우르는 정신적 유산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회는 어떤 형태로든 종교를 가지고 있으며 그 믿음을 바탕으로 정신문화를 창조해 사회 공동체를 유지하고 구성원들을 결속시킨다.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힌두교 등 세계를 움직이는 4대 종교는 물론이거니와 물 한 그릇 떠다 놓고 ‘천지신령님께 비나이다 비나이다’ 읊조리던 과거 우리네 기도조차 같은 뿌리에서 기원한다. 저마다 숭배하는 대상은 다를지언정 가족과 공동체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한다는 점에서 모든 인류는 같은 마음을 간직한 셈이다.

자오 로지 홈스테이의 매니저 프엉 씨 © 전혜인

민족 고유의 전통적 색채를 이어가면서도, 공동체 촌락이 외부 세계와 소통하고 관계 맺는 지점을 새로이 창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새로운 시대, 바깥 세계와의 조우
소수민족의 생활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공동체 안에서 교육받고 선대와 똑같은 생애를 이어가던 과거와 달리, 현재 소수민족 공동체에 속한 젊은 세대는 대도시 교육기관에 진학하는 일이 많아졌다. 각종 전자 기기를 통해 현대의 도시 문화를 접하고, 소수민족 언어 외에 베트남어·영어 등의 외국어를 배우며 다양한 지식을 습득한다. 그 결과 자신의 출신 언어와 문화를 외부 세계와 잇는 오작교 역할을 수행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민족 고유의 전통적 색채를 이어가면서도, 공동체 촌락이 외부 세계와 소통하고 관계 맺는 지점을 새로이 창출하는 것이다.
베트남 북부 하장(Ha Giang)의 자오족 20대 여성 프엉(Phuong) 씨가 좋은 예다. 슬하에 딸 하나를 둔 프엉 씨는 자오족(Dao People) 주거지 남담 마을의 ‘자오 로지 홈스테이(Dao Lodge Homestay)’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오랜 근무 경험을 토대로 최근 시부모와 함께 거주하는 자신의 집도 홈스테이로 변모시켰다. 고객과 원활히 의사소통하기 위해 현재 영어를 배우는 중이며, 홈스테이를 통해 지역 관광을 활성화하고 자오족 마을의 전통을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싶어 한다. 남편과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채팅으로 처음 만났다고 밝히며 환하게 웃는 그녀에게서, 새로운 세상을 향한 호기심과 열정으로 무장한 Z세대 특유의 당찬 풍모가 뿜어져 나왔다.

뛰노는 소수민족 아이들 © 전혜인

작은 변주를 아우르는 인류의 본질
영화나 드라마,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매체에서 타 문화권의 생활상을 접할 때 사람들은 흔히 이런 말을 한다. “사람 사는 건 어디나 똑같구나.” 처음에는 차이점에 이끌리지만 결국 모든 인류가 지닌 공통점을 발견하고 인간으로서 동질감을 느끼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국적인 옷을 입고 처음 보는 모양의 집에 살면서 낯선 춤을 추는 소수민족의 삶을 들여다볼 때에도 느끼는 바는 크게 다르지 않다. ‘인류’라는 거대한 공통의 본질 아래에서 ‘우리’가 가진 차이는 아주 작은 변주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같은 시기 지구라는 작은 행성에 머무는 존재로서, 다른 민족을 이해하는 것은 자기 중심성을 탈피해 진짜 세상을 만나기 위한 아름다운 여행의 시작이다. 서로에 대한 이해를 통해 우리는 평화로운 공존을 도모하고, 상생과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바다 건너 전혀 다른 세상에서 일군의 사람들이 같은 해와 달 아래 하루를 맞이하고 먹고 일하고 울고 웃으며 각자의 방식대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삶에 나직한 위로요, 오늘을 살아낼 든든한 힘이 된다. 그것이 바로 소수민족의 삶이 우리에게 전하는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 전혜인

PROFILE
전혜인은 사람과 사회를 천진하게 탐구하는 여행작가다. 한국외대에서 일본어와 영어 통번역을 전공하고, 서울대학교 사회대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EBS에서 방송작가 생활을 시작해 프로그램을 매개로 수많은 사람을 만나 함께 울고 웃었다. 대표작으로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건축탐구 집-베트남 편>, <세계견문록 아틀라스>, <생방송 교육 대토론>, <다큐프라임 시험> 등이 있다. 저서로 <파리에서 한 달을 살다>, <하노이에서 혼자 밥 먹기>가 있다. 현재 베트남 하노이에 3년째 거주하며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면서, 베트남 사람과 문화에 깊숙이 스며드는 중이다.

하노이에서 머물 곳: 롯데호텔 하노이
롯데센터하노이 상층부에 자리한 롯데호텔 하노이는 도시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수려한 전망을 자랑한다. 베트남 전통 문양을 차용한 객실 디자인, 그리고 하노이의 스카이라인을 조망할 수 있는 루프톱 바 톱 오브 하노이와 자연 속에 들어온 것처럼 몸과 마음을 릴랙싱할 수 있는 에비앙@스파 등의 부대시설을 두어 여행자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주소 54 Lieu Giai, Ba Dinh, Hanoi
문의 +84-24-3333-1000
홈페이지 www.lottehotel.com/hanoi-hotel
2020. 8 에디터:김혜원
글: 전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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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8
  • 에디터: 김혜원
    글: 전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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