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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스토르 장인의 전설이 깃든 키지섬
여행자들은 키지섬을 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조건축과 자연이 있는 곳이라고 하는지 직접 가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고 말한다.
지금부터 1만 년 전, 빙하기가 끝나자 두꺼운 빙하가 녹기 시작했다. 유라시아 대륙 북부에 거침없이 빙상들이 밀려 내려왔다. 현재의 핀란드와 러시아 북서 지역에서는 빙상의 이동 경로를 따라 수많은 강과 호수가 생겨났다. 그중 라도가호와 오네가호는 유럽에서 가장 큰 호수가 되었다.
키지섬

키지섬의 아름다운 가을 풍경 © Shutterstock

승리자가 섬의 주인
시간이 흘러 호수의 늪지대와 섬으로 사람들이 진출하기 시작했다. 13세기 들어 이 지역을 차지한 나라는 스웨덴이었다. 그러다 노브고로드공국이 팽창하면서 라도가호, 오네가호가 있는 카렐리야 일대로 세력을 넓혔다. 둘의 싸움은 피할 수 없었다. 오랜 전쟁 끝에 1323년, 스웨덴과 노브고로드공국은 뇌테보리 조약을 맺어 국경선을 정했다. 이렇게 카렐리야 일대는 러시아 땅이 되었다.
이후에도 북유럽 강자들의 싸움은 계속됐다. 그때마다 카렐리야의 운명도 달라졌다. 이반 3세 당시 노브고로드공국이 모스크바대공국에 병합되고, 18세기 초 러시아와 스웨덴이 발트해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벌인 대북방 전쟁에서 러시아가 승리함으로써 이 지역은 러시아 영토로 확정되었다.
카렐리야 일대는 아름다운 자연을 품고 있으나, 불모지와 다름없었다. 이 지역을 가꾼 이들은 정교 신앙을 가진 농부와 어부들이었다. 원래 천둥신 페룬을 믿었던 러시아인들은 988년 키예프대공국의 블라디미르 대공 때, 동로마제국으로부터 정교를 받아들인다. 이후 숲속 페룬 신전이 있던 곳은 허물어지고, 성당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러시아인들은 주변의 흔한 소나무와 참나무를 베어 집을 지었다. 그래서 러시아에서 촌락은 통나무집으로 대표되는 목조건축의 전통을 지니고 있었다. 마을 중심에는 어김없이 성당이 세워졌다. 공후나 유력 귀족들의 지원을 받은 경우 석조 성당이 들어서기도 했으나 대부분은 나무로 지었다.

나무로 지은 낡은 풍차 © Shutterstock

키지섬 포고스트와 오네가호 풍경 © Shutterstock

러시아인이 동경하는 키지섬
끝없는 초원, 울창한 숲과 호수, 하천들이 어우러지고 그곳에 마을과 성당이 있는 모습은 러시아 마을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성당은 자연과 인간이 어울려 신과 만나는 곳이 되었다. 이러한 중세의 영성을 흠모하는 러시아인은 늘 키지섬을 동경했다. 무엇이 키지섬을 사모하게 했을까?
오네가호는 유럽에서 라도가호 다음으로 큰 호수로, 면적이 9,700㎢에 달한다. 키지섬은 오네가호에 있는 약 1,650개의 섬 중 하나로 면적 5㎢, 길이 약 6km, 폭은 최대 1km의 기다란 형태를 띠고 있다.
오네가호의 투명한 물과 파란 하늘이 만나는 지점에서 마치 수백 개의 섬이 둥둥 떠다니는 듯한 황홀경을 선사한다.

키지섬에서는 다양한 민속 놀이나 활동을 체험할 수 있다.

러시아 카렐리야 공화국 수도인 페트로자보츠크에서 쾌속정을 타고 키지섬에 도착하면, 맑은 호수에 둘러싸인 푸른 초원, 우뚝 선 목조 성당 그리고 통나무집들이 여행자를 반긴다. 특히 성당은 중세 목조건축 공예의 정수를 보여준다. 장인들의 정교한 목공예뿐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선보이는 절묘한 조화가 보는 이들의 넋을 빼놓는다.
섬으로 한 걸음 내딛는 순간, 신성하고 그윽한 분위기에 압도당해 별천지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키지섬 유적지는 루스키예 자오네지야, 바실리예보, 푸도지스키 등 총 9개 구역으로 이루어진다. 18~19세기 목조건축물이 들어서 있는데, 섬에서 지은 것도 있으나 야외 목조건축 박물관을 만들기 위해 다른 지역에 있던 것을 그대로 옮겨 온 집도 있다. 성당, 주택, 대장간, 헛간, 방앗간 그리고 사우나실 등으로 사용하던 것들이다.

키지 포고스트 안의 목조 종탑

키지섬의 압권은 키지 포고스트
이 중 우리의 눈을 사로잡는 것은 단연 루스키예 자오네지야에 있는 건축물들이다. 이곳에 키지 포고스트(Kizhi Pogost)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있다. 키지 포고스트는 ‘키지 울타리’라는 뜻으로 주변모 성당(The Church of the Transfiguration), 성모가호 성당(The Church of the Intercession), 그리고 종탑과 울타리가 앙상블을 이루고 있다. 이곳에 무명의 장인들이 도끼 하나만으로 세계 건축사에 길이 남을 작품을 만들어냈다. 키지 포고스트는 러시아에서는 1990년에 상트페테르부르크와 교외 궁전들에 이어 두 번째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나무로 된 다각형 울타리 안에는 목수 세르게이 오시포프(Sergey Osipov)가 세운 종탑이 있고, 양쪽에 두 채의 성당이 들어서 있다. 두 성당 중 성모가호 성당은 겨울 교회고, 주변모 성당은 여름 교회다. 마을 사람들과 순례객들은 겨울에는 성모가호 성당에서, 여름에는 주변모 성당에서 예배를 드렸다. 겨울 교회는 단열을 해 따뜻함을 유지했고, 여름 교회는 통풍이 잘되어 시원했다.
종탑의 높이는 30m, 전통적인 높은 입방체의 ‘정팔각형’ 형태를 띤다. 커다란 팔각뿔 지붕이 구조물의 머리를 장식한다. 9개의 기둥이 팔각뿔 지붕을 받치고 있고, 지붕 꼭대기에는 작은 양파 모양의 돔이 있다.
성모가호 성당은 1764년에 지어졌다. 전통적으로 러시아 목조건축은 지붕이 박공형인 데 비해, 이 성당은 왕관 같은 8개의 우아한 돔을 얹은 것이 특징이다. 8 개의 돔이 27m 높이의 양파 모양 중앙 돔을 둘러싸고 있다.

키지 포고스트의 걸작인 주변모 성당

주변모 성당 건축 이야기
그러나 키지 포고스트에서 탄성을 자아내게 만드는 작품은 주변모 성당이다. 연대기 자료에 따르면 주변모 성당은 1713~1714 년 이후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십자가 형태 위에 팔각지붕을 쌓아 올린 구조다. 중앙 돔 높이가 37m에 달하는 성당의 입면은 다층, 다단 돔 및 단일 블록 구조의 걸작품이다. 다양한 크기의 양파 모양 돔 22개가 3단으로 배열돼 하늘을 찌르고 있다.
성당을 건축한 장인은 영리한 착상을 했다. 돔들을 오래 보노라면 성당이 로켓처럼 하늘로 쏘아 올려지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3단으로 된 돔들의 수직 줄이 8개가 있는데, 어떤 줄은 돔들이 큰 것에서 작은 것 순으로, 어떤 줄은 작은 것에서 큰 것 순서로 배열되었다. 수직 줄들이 역동적으로 교차함으로써 착시 현상을 유발한다. 또 하나의 시각 효과는 어느 방향에서 보든지 성당이 똑같다는 것이다.

주변모 성당은 22개의 돔이 3단으로 배열되었다.

돔의 외장재로 사용되는 나무 기와를 ‘레메흐’라고 한다. 사시나무 재질의 이 기와는 숙련된 목수가 하루 30개밖에 만들지 못한다. 그래서 성당 하나를 짓는 데 약 2년이 걸렸다고 한다. 보통 성당의 돔이 1~5개 정도였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22개의 돔을 갖춘 주변모 성당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을지 궁금하다.
목조건축물이 빗물에 상하지 않도록 배수 시스템을 고안한 솜씨 또한 기발하다. 비가 오면 빗물이 나무 기와의 경사를 따라 흘러 내려간다. 그러면 그 아래 돔의 기와에서 물을 받아 다시 아래로 내려 보낸다. 이렇게 3단 돔 구조의 흐름을 따라 가면서 기와, 용마루, 처마 등의 많은 장식 요소가 자연스럽게 물길을 홈통으로 유도해 밖으로 배출함으로써 실내로 침투하는 것을 막아준다. 

Kizhi Island © Kizhi Museum

성당과 장인의 전설
이런 목조 성당을 경이롭게 생각한 나머지, 지역 주민들은 성당을 지은 네스토르(Nestor) 장인에 대한 전설을 탄생시켰다. 그 지방 전설에 따르면 네스토르는 단 하나의 못도 사용하지 않고 도끼만 가지고 주변모 성당을 지었다고 한다. 그에 관한 전설은 이러하다.
오네가호 반대편 사람들이 어느 날 키지섬을 습격해 마을 사람들을 죽이고 성당을 불태웠다. 세월이 흘러 성당이 있던 자리가 덤불로 무성할 즈음, 사람들은 성당을 다시 짓기로 결의한다. 네스토르 장인이 그 덤불 근처를 지나다가 성경을 발견하게 된다. 그 자리에서 끼니도 거른 채 밤새워 성경을 읽었는데, 아침 해가 뜨고 이슬이 맺힐 때 덤불과 이슬 위로 성당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환상을 보았다. 그는 이곳에 성당을 짓겠다고 생각하나, 마을 사람들은 그 자리가 불길하다며 반대한다. 사람들의 거부에도 마침내 그는 성당을 완성한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성당의 봉헌 예배조차 거부한다. 장인은 성당 지붕으로 올라가 돔 십자가에 빨간 리본을 묶고는, “이 기이한 성당은 어디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라는 말과 함께 도끼를 호수에 던지고 사라져버린다.
 

키지 포코스트 건물의 실내

성당이 봉헌되는 순간 장인이 도끼와 함께 기적처럼 사라진 것은 건축가의 육체가 성당과 하나로 되었음을 의미한다. 주변모 성당에 얽힌 네스토르의 이 같은 전설은 러시아인의 뛰어난 재능과 불굴의 의지 그리고 순수한 신앙심을 보여준다. 주변모 성당은 네스토르 장인의 혼이며, 푸른 호수로 둘러싸인 키지섬은 러시아 영혼의 풍경이다. 네스토르가 성당과 하나가 되었듯, 성당 역시 키지섬과 일체가 되어 불멸의 유산으로 남았다.
오늘도 투명한 오네가호 위에 고요히 떠 있는 키지섬은 지상 낙원을 한번 맛보지 않겠느냐며 전 세계 순례자를 향해 손짓하고 있다.

키지섬 가는 방법
여름에는 매일 오전 두 차례 페트로자보츠크에서 키지섬으로 수중익선이 출발한다. 겨울에는 수빙양용선 또는 헬기를 이용해 다녀올 수 있다. 페트로자보츠크에서 키지섬까지 편도 1시간 반이 걸린다.
여름에는 크루즈를 이용할 수도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키지-페트로자보츠크-만드로기-상트페테르부르크' 여정으로 5일이 소요된다.
상트페테르부르크나 모스크바에서 출발한다면 페트로자보츠크까지는 기차로 이동할 수 있다. 주간 열차, 또는 야간 침대열차를 이용하면 된다. 이동 시간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5~9시간 정도, 모스크바에서 13~17시간 정도 소요된다.
 

KIZHI ISLAND © KIZHI MUSEUM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머물 곳: 롯데호텔 상트페테르부르크
롯데호텔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가장 유명한 곳인 성 이삭 광장 맞은편에 자리 잡고 있다. 호텔은 1851년에 지은 역사 깊은 건물을 리모델링해 사용하고 있으며, 인근에는 넵스키 프로스펙트 주요 거리와 예르미타시미술관, 마린스키 극장 등이 자리한다. 지하 1층, 지상 6층 규모로, 총 10개 타입의 객실 150실을 갖춘 호텔 내부에는 다양한 레스토랑과 시설이 들어서 있다.

주소 2, Antonenko Lane, Saint-Petersburg
전화 +7-812-336-10-00
홈페이지 www.lottehotel.com/stpetersburg-hotel
 
2021. 2 에디터:정재욱
글: 이현희
자료제공: 키지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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