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 EXPERIENCE

[LOCAL TOUR] 문래의 낮과 밤
차르륵, 끼익, 철을 자르고 단련하는 소리가 골목마다 반복적으로 들려온다. 그 골목 곳곳에서 낮에는 커피 향이, 저녁엔 고기 굽는 냄새와 와인 향이 어우러진다. 문래동의 풍경이다.
중소규모 철공소가 모여 있는 서울시 영등포구 문래3가는 이상하고 특별한 동네다. 예사롭지 않은 벽화와 조형물이 골목마다, 공장 문짝마다 그려져 있고, 곳곳에 놓여 있다. 저녁이나 주말이면 어디에서 왔는지 사람들이 골목 구석구석까지 가득하다. 그러다 평일 낮이 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철공소의 철 재단 소리만 골목을 채운다.

문래창작촌 나인스페이스 갤러리

예술가들이 비집고 자리 잡은 문래창작촌
문래2·3가의 철공소 일대가 문래창작촌이라고 불리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들어 작가들이 문래동 일대로 작업실을 옮기면서부터다. 이유는 짐작하는 것처럼 젠트리피케이션이다. 홍대나 성수동 등의 임대료 상승으로 젊은 작가들은 작업실을 이전해야 했고, 그 대안 중 하나가 문래 철공소 동네였던 것이다. 당시 공장 이전과 재개발로 일부 공장이 비게 되자 젊은 예술가들이 철공소 공간에 작업실을 마련하면서 자연스럽게 예술가 동네가 생겨났다. 대부분의 작업실이 철공소 건물 2층 이상 위치에 자리해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200여 명이 넘는 예술가가 문래2·3가 일대에 자리 잡았다고 한다.
 

거리 곳곳에 철공과 예술가들의 합작 흔적이 보인다.

눈에 잘 띄지 않아도 예술가들의 흔적은 골목 곳곳에 남아 있다. 공장이나 식당 등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이들은 벽화를 그리거나 간판을 달아주고, 작품을 의뢰받아 제작하기도 했다. 주변 철공소에서 받은 자재로 만든 숍과 와인바, 레스토랑 등도 하나둘 생겨났다. 건물의 루프톱은 이미 펍이나 바, 식당이 선점한 지 오래다. 저녁이나 주말이 되면 문래창작촌 일대는 젊은 세대들의 맛 골목으로 변신한다. 줄 서서 기다려야 하는 고깃집, 화려한 루프톱 와인바,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펍 등 힙한 장소들이 골목을 가득 채운다.
문래동의 낮과 밤은 다른 모습으로, 잘 끼워 맞춘 섬세한 톱니처럼 돌아가는 중이다.

❶ 아트필드 갤러리
예술가들이 모여들었다고 해서 전시 공간이 꼭 많을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적지 않은 갤러리 수에 짐짓 당황했다면 그중에서도 아트필드 갤러리는 꼭 한번 들러보길 바란다. 이곳은 문래창작촌의 세월과 함께한 플라이스페이스 소속 갤러리다. 문래창작촌에서 유명한 골목 중 하나인 갤러리문래 골목에는 아트필드 갤러리를 비롯해 레스토랑이자 문화 공간 갤러리문래, 공연을 선보이는 펍 문래문화살롱 등 플라이스스페이스 식구들의 숍과 갤러리가 모여 있다. 문래동에서 열리는 문래 아트페어도 이곳에서 주관한다.
아트필드 갤러리는 문래동에서 가장 활발하게 전시를 진행하는 갤러리다. 두 곳의 전시장에서는 각각 성격이 다른 전시를 선보이는데, 1관에서는 주로 초대전 비중이 높은 반면 2관에서는 다양한 신진 작가의 기획전을 개최해 좀 더 풍성한 전시를 제공한다. 자선 전시회나 기획전을 통해 작가들의 참여와 자선 활동을 연계하는 전시도 자주 기획하며, 문래창작촌이란 단어에서 창작에 방점을 찍어주는 역할을 기꺼이 하고 있다.
주소 서울시 영등포구 도림도129길 2-1
인스타그램 @artfield_gallery

갤러리 문래 골목에 위치한 아트필드 갤러리

❷ 올드문래
문래동 일대에는 일제강점기에 지은 목조건물 가옥이 여전히 곳곳에 남아 있다. 이들 건물은 천장이 높아 시원하게 탁 트인 공간감을 자랑한다. 그래서 주로 전시 공간으로 이용하는데, 올드문래는 카페와 펍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곳은 문래창작촌의 터줏대감이자 꽤 유명한 핫 플레이스다. 드라마에서 등장인물들의 회식이나 만남 장소로 자주 등장해 SNS에서 문래동을 검색하면 먼저 나오는 곳이기도 하다.
낮에는 카페로, 저녁은 크래프트 비어 펍으로 운영 중인 올드문래는 목조건축을 공부한 대표가 문래동에서 재생 건축의 가능성을 살펴보기 위해 시작한 작업의 결과물이다. 많은 손님을 받겠다는 의도보다는 서울에서 보기 힘든 목조 구옥을 제대로 구현해보고 싶어 실행한 프로젝트였다.
곳곳에 자리한 많은 식물, 컨베이어 벨트와 용접용 마스크, 시계 태엽 형태로 만든 벽 구조물 등 철공소 동네가 지닌 고유의 특성을 적절하게 적용해 공간을 꾸미려 한 흔적이 역력하다. 가게 뒤 공장에서 나는 기계 소리는 생생한 배경음악이 된다. 이것이 올드문래의 정체성이다.
주소 서울시 영등포구 도림로 433-6

올드문래는 문래동에서 가장 오래된 펍 중 한 곳이다.

❸ 베르니사쥬
일반적으로 미술에서 코팅제인 바니시를 칠하는 일을 뜻하는 베르니사쥬는 주최 측의 초대를 받아 전시 전날 미리 참석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전에 약속하고 공간을 방문하는 것이다.
문래창작촌의 입구 쪽에 위치한 베르니사쥬는 빈티지 포스터 숍이다. 최근 들어 아트 포스터나 사진 작품들이 인테리어 소품으로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데, 베르니사쥬에서는 오리지널 빈티지 포스터를 판매한다. 주로 프랑스 파리에서 지인들이 경매에 나온 아트 포스터를 구매해 보내주고 있다.
상당수 포스터가 프랑스의 역사 깊은 인쇄소 페르낭 무를로에서 1950년대에 인쇄한 것이다. 오리지널티를 지닌 동시에 인쇄 퀄리티가 남다르다는 의미다. 지금의 인쇄 방식으로는 동일하게 찍어내기 어려운 질감이나 색감 등이 빈티지하면서도 생생하게 살아 있다. 이곳에는 샤갈이나 고흐, 피카소 등의 아티스트 전시나 작품이 새겨진 희귀 포스터 등이 마련되어 있다. 보통 30만~40만원대에 판매하는데, 고흐나 피카소 같은 화가의 오리지널 포스터는 이보다 좀 더 비싸게 팔린다.
특히 샤갈과 기 바르돈의 포스터가 좋은 반응을 얻었는데, 대부분 이런 오리지널 포스터 하나로 집이나 사무실 공간의 분위기가 확 달라지는 느낌을 체감한 사람들이 구매한 것이다. 낡았지만 또렷하고 생명력 있는 포스터들이 문래창작촌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만 문을 열며, 그 외의 날에 방문하고 싶다면 별도로 문의해야 한다.
주소 서울시 영등포구 도림로 445
인스타그램 @vernissage.kr 

베르니사쥬에서는 다양한 빈티지 포스터를 만날 수 있다.

❹ 철판희
문래창작촌에 있는 맛집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기존 철강소나 가게의 직원이 오래전부터 방문하던 전통 있고 오래된 식당이거나, 문래동을 경험하려는 손님들이 찾는 곳으로 최근에 들어선 식당이다. 철판희는 후자에 속한다. 저녁이나 주말에 문래창작촌을 방문하는 손님들이 자주 찾는 식당이다. 하지만 동시에 오래된 문래동 주민들도 괴리감 없이 좋아하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한옥의 멋을 살린 아기자기한 인테리어를 즐기며 식사도, 음주도 모두 가능하다. 점심에는 우삼겹볶음밥이나 해산물볶음우동 등 철판에서 불맛 가득하게 볶아낸 포슬포슬한 볶음밥류와 면을 내고, 저녁에는 오코노미야키나 구이, 볶음류, 철판 스테이크 등 식사와 술안주를 함께 낸다. 처음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입소문과 고객 만족도가 높았던 터라 평일 점심에는 인근 직장인이, 주말이면 문래동 방문객이 항상 줄을 길게 선 모습을 볼 수 있다.
철판의 뜨거운 열기로 볶아지는 식자재를 감상하거나, 대기하는 손님 이름을 종이가 아닌 창문에 쓰는 등 소소한 재미도 맛볼 수 있다.
주소 서울시 영등포구 도림로 440-11

철판에서 볶아내는 다양한 메뉴는 늘 긴 줄을 서게 한다.

❺ 그릴러즈
연남동이나 성수동, 가로수길 등 요즘 잘나가는 동네마다 꼭 있다는 레스토랑 중 하나가 바비큐 플래터 전문점이다. 그릴러즈 역시 문래창작촌 일대를 책임지고 있는 바비큐 플래터 전문점이다. 폴드포크, 포크립, 브리스캣 등 훈연한 바비큐가 진한 소스와 빵, 프렌치프라이, 샐러드 등과 함께 철판 플레이트에 가득 담긴 사진을 보자면 ‘맛깡패’란 말이 실감난다.
장시간 조리해야 하는 특성상 바비큐는 다른 메뉴와 달리 시간과 일손이 많이 필요해 쉽게 시도하기가 어렵다. 그릴러즈는 천연 참나무 칩을 이용해 저온에서 오랜 시간 훈연해 ‘겉바속촉’이라는 어려운 임무를 완수한다. 북미에서 함께 공부한 동창들이 텍사스 정통의 맛을 오랫동안 연구한 덕분이다. 그래서인지 실내 역시 투박하면서 진중한 미국 남부 분위기가 나는 듯하다.
콜슬로와 감자샐러드를 비롯해 비프칠리와 찹쌀옥수수튀김, 당근, 셀러리 등 플레이트에 담기는 토핑은 주문 시 변경이 가능하다. 이미 수많은 방송 유명인이 다녀간 것으로 보아 맛집이란 증명은 더 이상 필요 없을 듯하다.
주소 서울시 영등포구 도림로 440-13

정통 텍사스식 바비큐를 재현한 그릴러즈의 플레이트 메뉴

❻ 잠수교집 문래
문래동 초행길이라면 잠수교집 문래를 그냥 지나갈 확률이 높다. 길가에 있지만 눈에 띄는 간판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늘 이곳은 만원이다 못해 평일 점심에도 줄이 길게 늘어선다.
잠수교집은 보광동에서 시작해 송파와 압구정, 문래 등 여러 곳에 직영점을 운영하고 있다. 대표 메뉴는 냉동 삼겹살로 100% 1등급 국내산을 사용한다. 레트로한 인테리어와 구성 등은 모두 동일하다. 문래점에는 루프톱이 있는데, 매주 주말 4인 이상만 예약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두어 달 치 예약이 이미 완료된 상태.
알루미늄포일 위에 잘 잘린 고기와 파절이, 김치가 기본으로 올라가는데, 미나리와 꽈리고추 세트를 반드시 추가로 주문해야 한다. 함께 나온 찬 중 달걀말이는 불에 올려 다시 구우면 훨씬 부드럽다. 날달걀에 간장, 파 등을 섞은 소스에 구운 고기나 채소를 푹 담가 먹는 맛도 일품이다. 고기를 먹고 난 뒤에는 잊지 말고 볶음밥을 꼭 챙겨 먹되 오징어내장탕이나 순두부 등 찌개를 주문해 곁들이면 좋다.
주말 저녁에 루프톱에서 문래동 일대 근처를 조망하는 일은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주소 서울시 영등포구 도림도 428-1 2층

문래동의 냉삼 맛집 잠수교집은 늘 손님으로 북적인다.

❼ 문래방구
문방구일까, 카페일까? 문래방구는 문래동2가에서 3가로 건너는 도로변에 위치한 카페이자 편집숍이다. 어릴 적 문방구를 떠올리게 하는 이름 때문인지 에스프레소를 비롯한 몇 가지 음료와 함께 연필이나 노트, 수첩이나 인센스 스틱 등의 일상용품과 문래동의 특별한 의미를 담은 제품들을 함께 판매한다. 문래방구 대표 역시 인근에서 작업을 하는 아티스트다. 가죽이나 천 등을 이용해 가방이나 소품을 만들고, 클래스도 함께 운영 중이다.
에스프레소 주문자들에겐 커피 종류나 생크림, 우유와 캐러멜 등의 취향을 거래명세표란 이름이 적힌 종이에 체크해서 주문한다. 점심시간이 되니 잠시 들러 에스프레소를 마신 손님들이 쌓아 올린 데미타스잔이 곳곳에 놓여 있다.
무심하게 툭 쌓아놓은 벽돌과 철공소에서 나온 게 분명한 여러 자재로 꾸민 실내 등 문래방구의 인테리어를 보면 일상의 터전과 예술이 공존하는 문래동 그 자체로 느껴진다.
빈티지와 인더스트리얼 그리고 예술이 합쳐진 공간이 바로 문래동이다.
주소 서울시 영등포구 경인로763
인스타그램 @mullaebanggu  

에스프레소바 문래방구의 재미있는 실내

MULLAE ART VILLAGE / VIDEO BY PARK SUNGYOUNG

2022. 7 에디터:정재욱
포토그래퍼:박성영

Where to stay?

LOTTE HOTELS & RESORTS
  • 2022. 7
  • 에디터: 정재욱
  • 포토그래퍼: 박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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