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 STYLE

지금의 떡, 병과점 합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디저트 맛을 보여주고 싶다면, 망설임 없이 합으로 간다. 병과점 합은 지금 서울에서 가장 현대적인 떡과 한과를 내는 트렌드 최전방의 떡집이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디저트 맛을 보여주고 싶다면, 망설임 없이 합으로 간다. 병과점 합은 지금 서울에서 가장 현대적인 떡과 한과를 내는 트렌드 최전방의 떡집이다. 여행자는 언제나 배고프고, 여행지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기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한국 전통 디저트로서 떡을 경험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면, 당신은 운이 좋은 사람이다. 서울 종로는 가장 한국적인 풍경을 마주할 수 있는 지역인데, 창경궁을 이웃에 둔 투명한 유리 빌딩 2층에 ‘합 원서점’이 있다. 합은 병과점 ‘지화자’에서 일하다 프랑스 ‘에콜 르 노트르’에서 제과 제빵을 배우고 주스위스 한국대사관의 요리사를 거쳐 한식 레스토랑 ‘품’의 헤드 셰프를 지낸 신용일 셰프가 오너 셰프로 있는 떡집. 한국 전통 디저트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하는 곳이다.
채광 좋은 합 원서점

채광 좋은 합 원서점

매장 한쪽에는 떡시루가 쌓여있다.

매장 한쪽에는 떡시루가 쌓여 있다.

“사람들은 제가 어느 날 갑자기 떡집을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사실 항상 마음속으로 어떤 떡을 만들고 싶다, 그 떡을 만들 땐 어떻게 해야겠다, 끊임없이 연습했어요.”
(왼쪽부터) 하얀 바람떡, 초콜릿 약과, 주악, 단감 시루떡

(왼쪽부터) 하얀 바람떡, 초콜릿 약과, 주악, 단감 시루떡

신용일 세프는 자신의 남다른 이력에서 쌓은 노하우와 프랑스에서 배워 온 현대적 기술을 기반으로 한국 전통 디저트의 매력을 한 단계 높였다. “한국엔 새로운 떡에 대한 자료나 소스가 많이 없었어요. 이곳에서 해답을 찾기보다는 디저트 선진국인 프랑스에 가서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기본을 잘 익히고 난 다음 응용하는 건 제 몫이고요.” 서양의 제과 제빵 도구를 적극 활용해 정확한 습도와 온도, 규격 등 항상 일관된 맛과 모양의 제품이 나올 수 있게끔 했으며(예를 들어 약과는 기름에 튀기는 게 정석이지만 합에서는 오븐에 구워 더욱더 담백하다), 우리 제철 식자재를 사용하는 것은 물론(지난가을에는 감을 주제로 두 가지 새로운 메뉴를 선보였다) 평소 즐기던 초콜릿과 올리브, 치즈 등의 식자재도 떡과 약과의 재료로 활용한다. 그의 떡에서 고구마, 단호박, 옥수수, 유자 등의 재료는 조연이 아니라 주인공이며, 이들이 들어간 떡에서는 각 재료의 맛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주악. 한입 베어 물면 안에 있는 조청이 주욱 하고 나온다. 향긋한 생강 향이 매력적.

주악. 한입 베어 물면 안에 있는 조청이 주욱 하고 나온다. 향긋한 생강 향이 매력적.

부드럽고 쫄깃한 식감의 바람떡. 안에는 곱고 부드러운 흰 팥소가 들어있다.

부드럽고 쫄깃한 식감의 바람떡. 안에는 곱고 부드러운 흰 팥소가 들어있다.

(위에서부터) 팥 약과, 호두 약과, 초콜릿 약과, 간장 약과. 담백한 합의 약과는 커피와도 잘 어울린다.

(위에서부터) 팥 약과, 호두 약과, 초콜릿 약과, 간장 약과. 담백한 합의 약과는 커피와도 잘 어울린다.

가을 식자재인 감을 사용한 시즌 메뉴, 단감 시루떡.

가을 식자재인 감을 사용한 시즌 메뉴, 단감 시루떡.

사진 찍기 좋은 인스타그래머블한 메뉴 비주얼과 인테리어가 밀레니얼 세대 소비 선택의 기준으로 자리 잡은 요즘, 합은 떡의 담음새도 돋보인다. 하얀 종이에 한 입 크기로 포장해놓은 떡과 약과, 주악 등은 기존 떡집과 많은 점이 다르다. 합을 시작하기 전 그는 자신의 떡이 어떤 가치를 지녔는지 고민했다.
“저렇게 조그마한 떡을 2,000원 받는다고 했을 때, 사람들이 다 저보고 얼마 못 버틸 거라고 했어요. 결국 가격을 낮추게 될 거라 했지만, 지금 9년 전 금액 그대로 판매하고 있어요. 저는 처음부터 적당한 가격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사기꾼이었겠죠.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도 제가 해외에서 생활하며 디저트 가격에 적응돼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유학 시절의 경험은 떡을 만드는 테크닉이나 도구, 맛의 조합에도 표현돼 있지만, 가격적인 부분과 떡이 어느 정도 가치를 인정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감각에도 녹아 있는 거예요.” 식자재를 선택하거나 그가 떡을 만들고 내는 방식까지, 단지 고급스러워 보이려는 노력에서 나온 게 아님은 2010년 처음 문을 열어 약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합을 찾은 많은 사람을 통해 증명됐다.
시루떡은 하나씩 낱개로 포장해 판매한다.

시루떡은 하나씩 낱개로 포장해 판매한다.

“쌀을 주식으로 삼는 아시아권 국가는 많지만, 쌀을 이용해 다양한 떡을 만들고 그 문화가 이렇게 발전한 나라는 없어요. 쌀로 이런 디저트와 떡을 만드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값어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합의 대표 메뉴 중 하나인 주악

합의 대표 메뉴 중 하나인 주악

메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도 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싶었다는 신용일 셰프가 앞으로 하고픈 일은 한과를 활용해 한국의 음식 기념품을 만드는 것이다(한과는 떡보다 유통기간이 조금 더 여유 있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공항에서 손쉽게 사서 가져 갈 수 있는 디저트. “제가 처음 몸담았던 떡집이 문 닫는 모습을 보며 직접 떡집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떡은 저한테 꼭 해야 하는 숙제 같은 느낌이에요. 그저 떡이 좋아서 하는 거였으면 질려서 이미 그만뒀을 거예요. 그리고 일단 시작했기 때문에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봐야겠다고 생각해요.” 그는 기념품이 되고 선물이 되는 한과를 최후의 목표라고 말했지만, 신용일 셰프가 최전방에서 그리는 한국 전통 디저트의 지도는 더 멀리 나아갈지도 모른다.
합 원서점 내부 전경

합 원서점 내부 전경

합 원서점 내부

합 원서점 내부

아라리오 김창일 회장이 합의 오동나무 상자로 만들어 선물한 액자

아라리오 김창일 회장이 합의 오동나무 상자로 만들어 선물한 액자

합 원서점은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2층에 있다.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는 고 김수근 건축가의 건축사무소이자 한국 근대 건축물의 걸작인 옛 공간 사옥에 자리한다. 두 개의 건물이 다리로 이어져 있는데, 검은 벽돌 건물은 미술관으로 활용하며, 5층짜리 통유리 건물은 레스토랑과 카페 등으로 사용한다. 신용일 셰프가 합의 인테리어를 결정하면서 가장 중점에 둔 것은 바깥 풍경이 잘 보일 것. 의자와 테이블의 높이를 낮추고, 건물 두 동 사이에 위치한 한 채의 한옥이 잘 보이도록 한옥을 가리는 의자 등받이도 없앴다. 덕분에 많은 좌석 대신 풍경이 이곳을 채웠다. 문을 열고 매장 안으로 들어서면 오른쪽으로는 창경궁이, 왼쪽으로는 한옥이 내려다보인다. 어딜 보아도 근사하다. 매장을 채운 인테리어 소품에는 하나하나 의미가 담겨 있다. 천장에서 흔들리는 거대한 한지 샹들리에는 한국 1세대 스타일리스트 서영희가 선물한 것이며, 벽에 걸린 액자는 합의 오동나무 상자 세트를 가지고 아라리오의 창업자이자 컬렉터, 그리고 ‘씨킴(CI KIM)’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작가 김창일 회장이 만들어 선물한 작품이다.
12월, 팥죽 먹는 날
12월 22일은 이십사절기의 하나인 동지(冬至)다.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 조상들은 동지가 되면 팥죽을 쑤어 먹으며 귀신을 막고 나쁜 기운을 쫓았다. 합에서는 여름이면 팥빙수를, 겨울이면 팥죽을 낸다. 올해에는 팥죽에 우유를 넣고 쑨 전통 죽인 타락죽을 더했다. 특별한 이 팥죽은 오직 합에서만 맛볼 수 있다. 따뜻하고 든든한 동지팥죽과 함께 추운 겨울을 건강하게 즐겨보자.
합의 팥죽

합의 팥죽

합의 팥죽

합 원서점
주소 서울시 종로구 율곡로 83, 2층
문의 +82-10-5027-8190
홈페이지 haap.co.kr
2019. 12 에디터:김혜원
포토그래퍼:안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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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12
  • 에디터: 김혜원
  • 포토그래퍼: 안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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