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 STYLE

속초 이북 음식 기행
한국전쟁 당시 이북에서 내려온 피란민 일부가 속초에 정착했다. 그들은 고향 음식을 잊지 못해 음식을 만들고, 생계를 위해 내다 팔았다. 속초에서 이북 음식을 맛볼 수 있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속초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푸른 동해가, 서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설악산과 점봉산이 펼쳐져 있다. 한우로 유명한 횡성과 태백도 이곳에서 멀지 않다. 속초는 산과 바다, 생선과 고기가 모두 풍족해 미식을 즐기기 좋은 고장이다. 또 하나, 함경도식 이북 음식을 맛보기에 가장 좋은 도시기도 하다.

속초 아바이 마을은 고향으로 돌아가리라는 기대를 품은 실향민들이 70여 년간 바닷바람을 맞아가면서 정착한 동네다. 그래서 이들이 내놓는 음식에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기억이 함께 응축되어 있다.

아바이순대
속초는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주둔한 대한민국 최북단 거점 중 하나였다. 이북 피란민은 휴전협정이 체결되기 전부터 속초에 모여 귀향을 꿈꿨다. 특히 속초에서 배를 타면 바로 고향에 닿는 함경도 사람들은 하나둘 모여 마을까지 이루었다. 속초 아바이마을이 탄생한 것이다. 아바이마을과 인근 지역은 자연스레 함경도식 이북 음식의 천국이 되었다. 그리고 돼지고기와 부속 대신 해산물을 사용하는 오징어순대와 명태순대는 아바이마을의 특산물이 되었다.
오징어순대는 달걀에 부쳐 내는 것이 특징이다. 돼지 수급이 가능해지면서 돼지순대도 지역 특산물로 발전했다. 아바이마을의 이북식 순대는 전라도나 제주도의 피순대, 채소를 많이 넣는 병천이나 백암 등 중부 지역 순대와는 많이 다르다. 남한 순대가 돼지의 소창을 이용하는 것과 달리 아바이순대는 대창을 쓴다. 양이 많은 소창에 비해 대창은 돼지 한 마리에서 50~100cm 정도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아바이마을에서도 소창 순대를 내기도 한다. 대창은 씹는 맛이 더 강해서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질기다고 느낄 수도 있다.

순대국밥
지금은 서민 음식이 된 아바이순대지만 전에는 귀한 음식이었다. 대창순대를 쓰는 아바이순대는 더욱 그랬다. 그래서 돼지 부속과 섞어 국물을 내서 더 많은 사람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순댓국 문화가 대한민국 방방곡곡에 생겨났다(국밥뿐 아니라 순대국수가 유명한 지역도 있다). 속초의 순대국밥은 자극적인 것을 좋아하는 함경도 스타일답게 빨갛게 양념을 푼다. 시간이 흐르면서 함경도 음식의 자극성이 희석된 것처럼, 속초의 순대국밥도 색깔만큼 맵지는 않은 편이다. 또 대창 대신 소창을 재료로 많이 활용하면서 다른 지역과의 차별성도 많이 줄어들었다. 아바이마을에서 가장 유명한 식당 두 곳 중 하나인 단천식당 순대국밥은 특히 유명하다. 단천은 식당을 창업한 할머니의 함경도 고향 이름이다.

가리국밥
가리는 ‘갈비’를 가리키는 고어다. 그래서 갈비탕을 떠올리기 쉽지만, 가리국밥은 갈비탕보다 육개장이나 쇠고기국밥에 더 가깝다. 사골을 고아 만든 육수에 쭉쭉 찢은 양지머리와 콩나물, 파, 고사리를 넣고 맑게 끓인 후 떡국처럼 달걀지단을 얹어 낸다. 그래서 갓 나온 가리국밥은 빨갛게 끓여내는 육개장이나 쇠고기국밥과 전혀 다르게 보인다. 하지만 함경도 음식답게 안에는 양념장을 듬뿍 품고 있다. 잘 저으면 육개장처럼 붉게 변한다.
속초에서는 순대국밥을 맛볼 수 있는 식당이 적지 않은 반면 가리국밥을 내는 곳은 신다신식당 한 곳뿐이다. 신다신식당은 단천식당과 아바이마을의 양대 산맥을 형성하고 있는 음식점이다. 이곳 역시 함경도 할머니가 문을 열었는데, 창업자 모두 실향민이어서 그런지 두 식당은 경쟁 관계라기보다 동료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가자미식해와 명태식해
육개장을 ‘육계장’이라고 잘못 표기하는 식당이 있는 것처럼 ‘식해’를 ‘식혜’로 적은 곳도 종종 보인다. 쌀에 엿기름을 섞어 달달하게 만든 감주가 식혜다. 식해는 생선으로 담근 젓갈을 가리킨다(북한에선 식해와 식혜를 모두 식혜로 표기하니 오기라고 할 순 없다). 따뜻한 남쪽 지역에선 생선이 빨리 상하기 때문에 소금을 듬뿍 넣고 발효시켜 보존성이 뛰어난 젓갈을 만든다. 서늘한 북한에선 음식이 상할 위험성이 덜해 소금의 양을 줄이고 곡식을 섞어 젓갈을 만든다. 이것이 바로 식해다. 그래서 식해는 남쪽 지방의 젓갈처럼 짜지 않은 대신 삭힌 홍어처럼 쿰쿰한 ‘발효의 맛’이 난다. 가자미를 삭힌 가자미식해는 속초에서 맛볼 수 있는 이북 음식의 정수지만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지금의 함경도식 냉면에 고명으로 올라가는 ‘명태회’ 또는 ‘명태식해’는 가자미 수급이 원활하지 않아서 만들어낸 대체재다. 식해처럼 쿰쿰하지 않고 새콤달콤하기 때문에 기호를 덜 탄다. 비슷한 듯해도 전혀 다른 음식이다.
 

돼지수육(제육)
평양냉면 식당에서 소주 한잔 곁들일 때 꼭 등장하는 음식이 돼지수육(제육)이다. 속초의 이북 음식점에서도 돼지수육은 소주 한잔과 함께할 수 있는 가장 든든한 벗이다. 소주 한 잔 마신 다음 비계와 살코기가 잘 어우러진 돼지수육을 입에 넣으면 그야말로 살살 녹는다. 기본으로 제공하는 명태식해와도 궁합이 나무랄 데 없이 잘 맞는다. 함흥냉면옥이나 영광정막국수, 이목리막국수, 백촌막국수 등 어느 식당을 가도 수준급 돼지수육을 맛볼 수 있다. 대부분의 식당에서 가자미식해 맛보기를 주문할 수 있으므로 이색적인 조합을 즐기는 것도 가능하다(홍어삼합과 닮았지만 전혀 다른 매력을 풍긴다). 돼지고기의 느끼함을 잡아줄 명태식해를 추가할 수 있다는 점도 속초 미식 여행의 즐거움 가운데 하나다.

함흥냉면
북한에는 함흥냉면이 없다. 농마국수가 있을 뿐이다. 산이 많은 함경도는 강원도처럼 감자가 특산물이어서 예부터 감자로 면을 내서 국수를 만들어 먹곤 했다. 감자처럼 녹말을 많이 머금은 곡물을 북한에선 ‘농마’라고 부르기 때문에 함경도식 감자국수는 농마국수로 불렸다. 가자미식해를 얹고 양념을 두르지만 우리의 비빔냉면과 달리 동치미나 오이냉국, 고기 또는 사골 국물을 부어서 물냉면처럼 먹었다. 한국전쟁 당시 속초에서 한반도 최초로 문을 연 함흥냉면 식당, 함흥냉면옥은 지금도 농마국수의 옛 자취를 품고 있다. 이곳에서 함흥냉면을 주문하면 주전자 두 개가 따라 나온다. 따뜻한 사골 국물은 평양냉면의 면수처럼 곁들여 마시는 용도다. 차가운 쪽은 간장으로 간을 한 사골 국물로, 양념을 해서 비빈 함흥냉면에 부어서 먹기 위한 것이다. 참고로 가자미식해 대신 명태회를 함흥냉면에 처음으로 얹은 식당도 함흥냉면옥이다. 함흥냉면옥 외에는 이조면옥이나 낙천회관이 속초의 대표적인 함흥냉면 식당이다.

만두
함흥은 평양이나 개성처럼 만두로 이름난 곳이 아니다. 그래서 속초의 만두에 아주 높은 점수를 주긴 힘들다. 하지만 일부 식당에서 꿩만두를 맛볼 수 있다는 사실은 참고할 만하다. 꿩은 북한뿐 아니라 한반도 전역에서 가장 흔하게 섭취 가능한 동물성 단백질 제공원이었다. 신라의 태종무열왕 김춘추가 하루에 꿩 9~10마리를 먹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속초가 신라 화랑이 수련하던 장소였음을 떠올리면 속초 꿩만두에 한 번쯤 도전해봄 직하다. 속초의 함경도식 이북 음식점에서 판매하는 만두는 평양냉면집 만두에 비해 아담하지만, 가격이 저렴해 곁들임 메뉴로 추천할 만하다.
 

속초에서 머물 곳: 롯데리조트속초
삼면이 바다에 둘러싸인 외옹치 언덕에 자리 잡은 롯데리조트속초는 탁 트인 바다 전망으로 인기가 높다. 모든 객실에서 바다를 감상할 수 있으며, 최고급 시설의 워터파크는 가족 단위의 투숙객이 가장 좋아하는 시설이기도 하다. 아바이마을과는 4km 거리여서 10분 내외로 손쉽게 다녀올 수 있다.

주소 강원도 속초시 대포항길 186
문의 +82-1588-4355
홈페이지 롯데리조트속초
 
2020. 2 에디터:정재욱
글: 이중한
포토그래퍼: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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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2
  • 에디터: 정재욱
    글: 이중한
  • 포토그래퍼: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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