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 STYLE

입말음식가 하미현이 타파스로 재현한 제주 음식 © 이주연

입으로 전해진 제주의 맛
제주는 한국에서도 여전히 고유한 식문화를 이어오고 있는 지역이다. 입말음식가 하미현은 452일간 123명의 제주 토박이와 농부를 만나 오랜 시간 구전되어온 제주의 맛을 탐구하고 기록했다. 그를 따라 제주의 진짜 맛을 들여다보았다.

제주의 땅밭, 우영팟 © 이주연

따뜻한 기후로 사계절 식자재가 풍부한 제주는 저장식이 필요 없다. 심지어 김장 문화도 없다. 그때그때 나는 땅밭(우영팟)과 물밭(바다)의 식자재를 조합해 후딱 지어 먹을 만큼 싱싱한 식자재가 가득하다. 밭에서 키워 밥 지을 때마다 뜯어 먹고 당장 안 먹는 것은 땅에 그대로 심어 보관한다. 음식을 썩혀 버릴 일도 없고 랩이나 봉지도 필요 없으니, 우영팟은 천연 냉장고나 다름없다.
15분을 넘지 않는 간단한 조리법과 너덧 가지 식자재로 한 그릇을 만들어내는 제주의 소박한 식사를 보며 ‘바빠서 어쩔 수 없이 간편하게 만들었다지만, 어쩌면 지금 이 시대에 딱 맞는 음식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패스트푸드도 많고 셰프가 만든 음식을 내 밥상에 올릴 수 있는 간편식도 많다지만 진정한 간편식, 싱싱한 패스트푸드가 바로 제주에 있구나’ 하고 말이다.

미역을 씻는 농부의 손 © 이주연

특별한 도구 없이 바닷가 돌로 소라 껍데기를 손질한다. © 이주연

최소한의 조리법으로 최대한의 맛을 낸 제주식 패스트푸드
조리를 최소화해 최대의 맛을 끌어내는 게 특징인 제주 음식은 식자재 고유의 향미에서 비롯된 맛들로 표현할 수 있다. 바로 제주 천혜의 환경이 만들어낸 것이다. 이런 환경은 맛뿐 아니라 사람의 생김과 성품에까지 영향을 미칠 터. 겉은 딱딱하고 뾰족하지만 속을 가르면 가는 뼈 하나 없이 부드럽게 쏟아져 나오는 베지근한 맛의 구살(성게)처럼, 처음 만난 제주 사람들도 겉으로는 퉁명한 듯했지만, 함께 밥을 지으며 들여다본 속마음은 누구보다 깊고 부드러워 ‘베지근’했다.
 

김영희 해녀 농부 © 이주연

“우리 제주의 음식은 요리렌 헐 게 어수다. 우영팟디거영, 바당에서 나는 물에 거영 섞어그네 확 밥허영 먹엉 일허레 가젠허난 막 조르저브난 마씸게.”
(우리 제주 음식은 요리랄 게 없어요. 밭에서 나는 땅 것이랑 바다에서 나는 물 것이랑 섞어 후딱 밥해 먹고 일하러 가기 바쁘니까요.)
제주, 추미숙 농부의 입말
갓 짠 신선한 유채 기름에 단맛 강한 노란 배추를 넣어 겉절이를 무쳐낸 양명숙 농부, 빙떡은 꼭 제주 메밀로 반죽해야 얇고 차지게 구울 수 있다는 추미숙 농부, 솔라니(옥돔)죽을 하고 남은 생선 뼈는 미역국 육수로 몇 번 우려내고, 그러고도 남은 뼈와 내장은 우영팟에 거름으로 주는데 그 자리에 나는 세우리(부추)가 맛이 좋다는 서광리의 토박이 살림꾼, 김태자 농부. 타고난 제주의 환경에서 찬찬히 땅을 일구고 밥을 지어온 사람들을 보며, 그들이 높이 섬기는 신들이 그들의 낮은 땅과 밥에 머물러 있음을 느낀다. 이렇게 길러낸 제주 토박이의 음식과 식자재는 옛것이라 좋은 게 아닌, 지금 봐도 충분히 맛 좋고 오늘날과 맞는 음식이었다.
 

입말로 전해진 제주 음식을 입말음식가 하미현이 스타일링하고 있다. © 이주연

제주의 토양과 맞지 않아 고추가 드물고 소금이 귀했던 탓에, 제주의 맛은 짜거나 맵지 않은 담백한 맛이다. 쌀농사가 되지 않는 땅에서 키운 메밀과 보리로 지은 밥, 채소와 생선, 삶은 돼지고기로 차린 제주의 입말음식은 현재 우리가 섭취하는 탄수화물, 글루텐, 나트륨 과잉 식단과는 차이가 있다. 사철 내내 싱싱한 채소가 있어서 저장하지 않고 후딱 지어 먹는 제주의 간편한 음식은 가공 식자재와 양념으로 범벅이 된 패스트푸드가 아닌 제주만의 건강한 패스트푸드가 아닐까 생각한다. 솜(말똥성게)은 훗맛, 깅이(방게)는 둥고운 맛, 구살(성게)는 베지근한 맛이라는 알다가도 모를 김영희 님의 표현을 듣고 그 맛을 가늠하며 더듬더듬 찾아가는 일은, 좁고도 넓은 제주 땅과 그곳 사람들을 알아가는 통로가 됐다.
이처럼 제주 토박이의 입에서 입으로 이어지고 있는 입말음식이 우리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리라 믿는다.
 

입에서 입으로 이어지는 제주 입말음식 © 이주연

제주 입말음식 맛보기
온평생활개선(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환해장성로 389)은 해녀들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특히 해산물과 미역, 채소를 넣어 만든 ‘해산물 토렴’을 추천한다. 정성듬뿍제주국(제주도 제주시 무근성7길 16)은 제주도민들이 즐겨 찾는 동네 밥집이다. 책 <입말음식 제주 우영팟>에서도 소개한 멸치와 배추를 넣어 만든 제주식 ‘멜국’과 멸치를 통째로 튀긴 ‘멜튀김’을 맛볼 수 있다. 멜국 외에도 각재기라는 생선을 넣고 끓인 ‘각재기국’, 몸(참모자반)을 넣은 ‘몸국’ 등 다양한 제주 입말음식을 판매하고 있다. 명성수다뜰(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하모중앙로 56-1)은 제주 토종 식자재를 키워 밥을 차리는 동네 밥집이다. 제주 토박이, 양명숙 농부의 집밥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입말음식가 하미현이 타파스로 재현한 제주 음식 © 이주연

PROFILE
글을 쓴 하미현은 전국과 세계를 여행하며 농부, 토박이의 음식과 식자재를 연구·개발하는 입말음식가이자 작가, 스포큰 컴퍼니(SPOKEN COMPANY) 대표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농부와 토박이의 음식을 ‘입말음식(Spoken Recipe)’이란 이름으로 대중에게 소개하며, 고유한 기준을 마련해 생존과 결핍으로 탄생한 한국의 오래된 맛, 아름다운 문화를 모으고 있다. 저서로 제주의 입말음식에 관해 쓴 <입말음식 제주 우영팟>이 있다. 한편 입말음식 소식은 입말음식 인스타그램홈페이지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
 
2021. 8 에디터:김혜원
글: 하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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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8
  • 에디터: 김혜원
    글: 하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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