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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명란의 도시
뜨거운 밥에 명란젓 한 조각. 스팸 이전에 명란이 있었다. 한국인의 쌀밥 소비를 촉진시키는 명란젓과 부산의 관계에 대해.
버릴 것 없는 생선, 명태는 잡는 시기와 가공 방식 등에 따라 생태, 동태, 북어, 황태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이른바 ‘부캐’가 많다. 명칭이 다양하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인과 밀접한 식자재란 방증이기도 하다. 한국인 밥상의 소울 푸드인 것이다. 살은 말할 것도 없고, 창자와 아가미까지 젓갈로 담가 먹는다.
조선인의 소울 푸드, 명태
명태알, 즉 명란(明卵)은 기호에 따라 젓갈을 담가 먹거나 탕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명란젓은 다른 젓갈에 비해 호불호가 적고, 가격이 비싼 편이다. 젓갈은 참기름을 뿌려 비벼 먹기도 하고, 마늘과 고춧가루, 참기름만 넣고 무쳐 밥에 얹어 먹기도 한다. 요즘 젊은 세대는 파스타나 피자 등의 요리 재료로 익숙하겠지만, 명란은 이외에도 다양한 요리에 사용되고 있다.

명태는 한국인에게는 소울푸드 그 자체다. © Shutterstock

명란을 젓갈로 먹었다는 기록이 문헌에 등장하는 것은 17세기부터다. 1400년대에 기술된 <세종실록(世宗實錄)>에서도 여러 젓갈 명칭이 나오지만, 1600년대부터 조정의 공식 문서에 ‘명태란(明太卵)’이란 단어가 등장한다. 이는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도 표기되어 있다. 18세기 농업 가정 생활서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서는 명란젓과 함께 명란을 먹는 다양한 방식을 소개하기도 한다. 명란젓 만드는 방법은 19세기 조리서 <시의전서 (是議全書)>에도 기록되어 있다. 보통 어란은 소금에 절여 햇볕에 말려 먹는다. 숭어나 민어 등도 마찬가지. 그런데 명란은 알집이 단단하지 않아 소금에 절여 삭혀야 했고, 딱딱하게 말리지 못하니 상온에서는 쉽게 상할 수밖에 없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명란이 주로 겨울에 유통된 것도 이 때문이다.

초량에는 남선창고 터만 남아 있다. © 부산광역시

명란의 새로운 산지, 부산
예부터 한반도의 명태는 함경북도 원산에서 연해주로 이어지는 동해 북쪽 해역에서 주로 잡혔다. 원산항은 잡은 명태의 집결지였다. 1900년대 전후로 일본인들도 이곳 일대에서 잡힌 명태와 명란을 보고 관심을 갖게 된다. 원산에서 한반도 전체로 명태와 명란이 운송되었다. 1905년 경부철도가 놓이면서 경성으로 명태를 운송하기 위해 함경도 객주와 초량 객주가 부산 초량에 함께 만든 남선창고가 이용된다. 일본인들의 창고 역시 속속 생겨났다. 그러다 1914년 경원선이 개통되면서 전국적 유통이 아니라 지역 내 객주들이 주로 이용하게 되면서 지역 유통을 위한 창고로 주로 활용된다. 그럼에도 기존의 전통적인 장시 유통망과 더불어 일제에 의해 구축된 철도와 배편을 이용한 일본으로의 유통이 이루어지면서 구포나 동래 대신에 신도시였던 부산이 명태와 명란의 핵심 유통망으로 자리하게 된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한국의 명태 조업과 명란 유통은 큰 변화를 겪는다. 원산이 이북 지역인 탓에 한국전쟁 이후에는 남쪽에서 직접 명태를 잡아야 했다. 고성과 속초 일대에서 명태가 잡히면서 활황을 누리지만, 1990년대부터 어획량이 급감하기 시작한다. 알려진 것처럼 현재는 씨가 마른 상태다. 결국 대부분의 명태는 미국과 러시아에서 수입하고 있으며 명란도 같은 처지가 되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오오츠크해에서 잡히는 러시아안 명란이 부산 감천항으로 모두 집결되어 전국으로, 또 일본으로 유통되고 있다. 부산이 명란의 새로운 산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명란은 오차즈케와도 잘 어울린다. © Deokhwa Food

일본식 명란 역시 시작은 부산
명태에 별 관심 없던 일본인들도 명란의 맛에는 눈을 번뜩였다. 1900년대 초부터 부산의 명란이 일본에도 수출되기 시작하면서다. 당시 부산-시모노세키 간 관부연락선을 통해 일본 전역으로 명란이 유통되었다.
명란이 일본인의 국민 반찬으로 자리 잡은 지는 오래다. ‘명란의 날’(1월 10일)까지 지정했을 정도다. 매년 전 세계 명란 생산량의 90%가량을 일본에서 소비한다. 그래서인지 명란이 일본에서 비롯한 음식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꽤 많다.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그렇다.
일본식 명란은 가라시멘타이코(辛子明太子), 즉 ‘매운 명란젓’으로 불린다. 그 유래는 부산에서 시작했다. 일제강점기에 부산 초량 지역에서 태어나고 고등학교까지 마친 일본인 가와하라 도시오가 조선 땅의 명란 맛을 잊지 못해 일본 후쿠오카에서 일본인의 입맛에 맞게 변형했다. 발효와 젓갈에 중점을 둔 짠맛의 조선식 명란을 개량해 고춧가루와 가쓰오부시 국물, 청주를 조미한 다소 가벼운 절임 숙성 방식의 제조법을 만든 것이다. 그 맛은 순식간에 일본 전역으로 퍼져나간다. 바로 일본 명란 최대 기업 ‘후쿠야’의 시작이다.
최근 우리 식탁에 오르는 명란 역시 전통 방식의 발효를 거친 조선식 명란이 아닌, 절이고 숙성시켜 저염 양념에 무치는 방식의 명란으로 돌아선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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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화푸드 장종수 대표는 명란에 관한 역사와 문헌 기록을 정리하며 명란의 확장에 힘쓰고 있다. © Deokhwa Food

조선명란으로 만든 명란감자볶음 © Deokhwa Food

부산의 명란 장인
부산에서 오직 명란만 만드는 덕화푸드는 일본식 가라시멘타이코를 생산해 일본 최대 편의점에 납품한 국내 최대의 명란 단일품목 생산 기업이다. 일본의 가장 대중적인 국민 반찬을 한국의 기업이 직접 생산했다는 점은 놀라운 일이다. 창업자 고(故) 장석준 명장은 ‘식품가공 분야 수산제조 직종’ 최초이자 유일한 대한민국 명장이다. 지금은 아들인 장종수 대표가 가업을 잇고 있다. 그는 명란 산업에 역사와 스토리, 다양한 메뉴를 덧붙여 명란 유니버스를 확장하고 있다.
명란에 대한 덕화푸드의 집요함은 국내외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명란을 대하는 이들의 자세는 전통을 이어가며 오랜 세월 공예품을 만들고 있는 장인 가족의 모습을 닮았다. 2018년에 명란 관련 아카이브센터를 만들고, 지역학 연구가, 음식문헌학자와 협업해 명란에 관한 역사 기록들을 발굴했다. 지금은 잊혀버린 조선 명란의 전통 제조법을 살펴보고 고증해 다시 재현하기도 했다. 남선창고가 있던 초량 지역에 새로운 명란 요리를 개발하고 실습해보는 브랜드 쇼룸도 운영했다. 얼마 전 시즌 1을 마무리했으며, 곧 2기 쇼룸의 문을 열 계획이다.

잊혀진 조선식 명란 제법을 그대로 재현했다. © Deokhwa Food

덕화푸드에서 운영했던 브랜드 쇼룸'데어더하우스' © Deokhwa Food

조선식 명란과 일본식 명란 © Deokhwa Food

조선식 명란과 일본식 명란의 차이
옛 문헌에 근거한 조선 명란의 제조법은 전통 발효에 기반한다. 소금을 이용해 발효시킨 후 고춧가루, 마늘을 넣고 버무린 조선식 명란은 수분이 빠져 쫀쫀하고 짭짭한 맛을 낸다. 저염에 익숙한 요즘 입맛에는 다소 짜다고 느낄 수 있지만 오히려 텁텁한 느낌 없이 뒷맛이 깔끔하다. 일본식 명란은 발효가 아닌 낮은 염도에서 절여내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가쓰오부시 국물, 청주, 고춧가루와 미림 등 고춧가루 외에는 일본식 숙성 재료를 이용하는데 아주 맵지는 않다.

부산에서 머물 곳: 롯데호텔 부산과 시그니엘 부산
부산 서면 근처에 위치해 화려한 시티뷰를 즐길 수 있는 롯데호텔 부산은 모던한 감각과 디자인으로 프라이빗한 휴식과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여행의 목적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650여 개의 객실과 다양한 레스토랑에서 부산 여행의 특별한 추억을 만들 수 있다. 
시그니엘 부산은 시그니엘 서울에 이은 시그니엘의 두 번째 호텔로, 해운대의 랜드마크인 엘시티(LCT) 타워에 위치한다. 총 260실 규모이며, 광안대교가 보이는 해운대의 환상적 오션 뷰를 자랑한다. 시그니엘 부산은 세계적 수준의 미식을 경험할 수 있는 호텔로, 미쉐린 3스타 셰프 브루노 메나드(Bruno Menard)가 컨설팅한 다양한 메뉴를 즐길 수 있다.

홈페이지 롯데호텔 부산시그니엘 부산
2021. 8 에디터:정재욱
자료제공: 덕화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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