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 STYLE

가장 오래되고도 새로운 술
익숙하지 않은 옛것은 그 자체로 새롭다. 북유럽 신화에 자주 등장하면서 ‘인류 최초의 술’이라고 불리는 꿀술이 부활했다.
때로는 모든 시름을 덜어주고, 때로는 인간을 천 길 벼랑 끝으로 내모는 술. 우리는 오랜 시간 이 마력을 지닌 음료의 기원을 궁금해했다. 이 해묵은 궁금증을해소하기 위해 벌어진 담론은 종종 술자리에서 말다툼으로 번지기도 한다. 맥주파와 와인파는 제각기 서로가 먼저라며 옥신각신한다. 하지만 술이만들어지는 원리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들의 논쟁이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단박에 알 수 있다. 술은 효모가 당분을 먹고 증식하며 이산화탄소와 에탄올을생산하는데, 이산화탄소를 걷어내고 에탄올을 약간 가공하면 술이 생성된다. 즉 효모와 당분이 있으면 굳이 인간의 손이 닿지 않아도 술은 저절로 탄생한다. 술은 인류가 발생하기 전부터 존재한 자연의 산물 중 하나인 셈이다. 실제로 인류에 앞서 동물이 먼저 술을 마셨다는 설도 있다. 인간은 어느 날 운 좋게 술을발견했을 뿐이다.

© Adwaiz. Courtesy Gosnells of London

인류의 유물로 남을 뻔한 꿀술이최근 미식 신에서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획일화된 맥주 맛에 싫증을 느낀 사람들이직접 맥주를 만들며 시작된 크래프트 맥주 붐에꿀술도 함께 부상한 것이다.
많은 전문가는 와인이 기원전 8,000~6,000년, 맥주가 6,000~4,000년 전에 생겨났으며, 이들이 인류 최초의 술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들의 학설에는허점이 있다. 술이 만들어지려면 당분은 단당류 형태여야 하는데, 맥주의 주재료인 보리는 다당류로서 단당류로 분해하는 당화 과정이 필요하다. 한편, 포도당은 단당류에 속하지만 껍질에 붙은 효모가 당분을 먹기 위해서는 낱알을 으깨는 등의 물리적 개입이 필요하다.

© SHUTTERSTOCK

인류가 최초로 발견한 술은 이보다 더 원초적인 형태였을 터. 그저 가만히 둬도 저절로 술이 되는 꿀처럼 말이다. 인류학자들은 원시인들이 땅에 떨어진벌집에 고여 있는 빗물을 발견하고 목을 축일 요량으로 이를 마셨다가 몸이 후끈 달아오르고 마음이 한껏 부푸는 진묘한 경험을 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다시말해 그들은 물이 아닌 공기 중에 떠다니는 효모가 벌집에 남아 있던 꿀을 만나 탄생한 꿀술을 마셨을 거라는 이야기다. 실제로 수백 년간 잊혀 있던 꿀술이오늘날 유행하는 배경에는 간단하고 손쉬운 제조 과정이 있다.

© Adwaiz. Courtesy Gosnells of London

영어로 ‘미드(mead)’라고 부르는 꿀술은 북유럽 신화에 자주 등장한다. 북유럽 신화에서 오딘은 최고 신에 해당한다.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처럼 익숙한 존재는아니지만, 영화 <토르>에서 앤서니 홉킨스가 연기한 토르의 아버지가 바로 오딘이다. 극 중에서 홉킨스는 시종일관 오른쪽 눈에 안대를 끼고 등장한다. 그런데최고 신인 오딘이 한쪽 눈을 잃은 불명예스러운 사건에 꿀술이 얽혀 있다. 지식을 탐구하는 일에 유독 집착한 오딘은 지혜와 현명함을 불어넣어준다는 샘물을한 모금 마시기 위해 스스로 자신의 눈을 파냈다. 이때 오딘이 자신의 오른쪽 눈을 희생하면서까지 갈구한 지혜의 샘물이 바로 꿀술이었다.

© Adwaiz. Courtesy Gosnells of London

또 북유럽 최초의 고대 영웅 대서사시 <베오울프>의 내용은 베오울프가 ‘그린델’이라는 괴수를 물리친 이야기다. 그린델은 사람을 무자비하게 잡아먹었는데, 그 이유는 인간들이 밤새워 술을 마시며 소란을 피워 자신의 잠을 깨웠기 때문이다. 이때 인간들이 밤사이 음주를 즐긴 곳의 이름은 다름 아닌 ‘미드 홀(meadhall)’이었다. 고대 신화에서 신비로운 존재로 기록된 꿀술은 산스크리트어에 어원을 둔, 음주나 명정(酩酊)을 의미하는 가장 오래된 단어이기도 하다. 신은 눈을 내놓고, 사람은 목숨을 걸고 마신 이 진묘한 술은 어느 날 역사에서 사라졌다. 포도가 유럽 대륙을 지배하면서 꿀술은 백악기 시대 공룡처럼 한순간소멸했다. 사람들은 꿀보다 훨씬 더 값싸게 구할 수 있는 포도로 술을 담그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16세기 종교개혁을 거치며 교회에서 양초 수요가 급격히줄어들자 생계가 막막해진 양봉업자들이 벌꿀 가격을 올리면서 꿀술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 Adwaiz. Courtesy Gosnells of London

이렇게 인류의 유물로 남을 뻔한 꿀술이 최근 미식 신에서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획일화된 맥주 맛에 싫증을 느낀 사람들이 직접 맥주를 만들며 시작된크래프트 맥주 붐에 덩달아 꿀술이 비상한 것이다. 크래프트 맥주가 미국 전역을 넘어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자 사람들은 더욱 개성 있고 독특한 풍미를갈망했다. 그중 맥주에서 한계를 느낀 몇몇 양조업자는 사과즙을 발효해 만든 애플 사이더와 꿀술로 회귀하는 것을 택했다. 게다가 이들 전통주는 글루텐을함유하지 않아 셀리악병 보유자들에게 맥주의 대안으로 환영받았다. 현재 미국에는 꿀술을 빚는 양조장 수가 300개에 이르며, 맥주나 와인 양조장에서도꿀술을 라인업에 추가하는 추세다.

© Adwaiz. Courtesy Gosnells of London

꿀술은 미국에서 부활했다. 하지만 이 1만 년 묵은 술을 가장 현대적으로재해석한 양조장은 영국에 위치한다. 바로 ‘고스넬스 오브 런던(Gosnellsof London)’이다. 고스넬스 오브 런던의 대표 톰 고스넬스는 어려서부터술과 음식에 무한한 애정을 품어왔다. 성인이 되어 크래프트 맥주, 사이더 등 모든 술을 직접 빚어 마신 고스넬스가 처음 꿀술을 접한 건미국에서다. 미 동부를 여행하던 중 꿀술을 맛본 고스넬스는 그 옛날오딘이 그러했듯 감미로운 맛에 매료됐다. 그는 런던에 돌아오자마자양조장을 마련해 꿀술을 빚기 시작했다. 고스넬스 꿀술은 가벼운 탄산에산미와 화사한 꽃 향이 꿀의 단맛과 잘 어우러지는 것이 특징이다. 달다는인상이 지배적이지 않을뿐더러, 스페인에서 공수한 오렌지꽃꿀을 활용해레모네이드 같은 느낌까지 풍긴다. 고스넬스는 감각적인 맛과 디자인만큼젊은 소비자에게 체험을 안겨주는 일에 큰 의미를 둔다. 런던의 우범지역에서 최근 힙스터들의 명소로 탈바꿈한 페컴(Peckham)에 위치한고스넬스 양조장은 금요일과 토요일에 탭룸을 오픈한다. 토요일에방문하면 브루어리 투어에도 참여할 수 있다. 매년 12월 초는 고스넬스가그해의 빈티지를 출시하는 시기다. 갓 빚은 감미로운 꿀술 한 모금에추위가 저만치 물러선다.
2019. 1 에디터:김혜원
글: 이주연
자료제공: 고스넬스 오브 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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