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혀끝의 베트남
베트남 사람들의 식탁 위, 그들만의 생기로운 분위기를 온전히 경험하는 방법이 있다. 맛을 구성하는 일상의 식재료를 탐험하고 음미하는 것이다.
베트남의 아침 해는 유난히 일찍, 분주하게 떠오르는 느낌이 든다. 이른 아침, 도로를 바쁘게 가르는 오토바이 부대 옆 좁디좁은 인도에 늘어선 노점 행렬. 그 주변으로 크기가 작은 플라스틱 의자(한국의 목욕탕 의자와 흡사하다)에 앉아 아침을 즐기는 도시인의 풍경을 만난다. 베트남 사람들은 주로 아침 식사를 밖에서 먹는다. 한국에 알려진 가장 유명한 베트남 음식인 쇠고기 쌀국수 퍼보(Pho Bo)는 베트남의 흔한 아침 메뉴다. 다양한 국수 요리 중에서도 베트남 중부에 위치한 후에 지방 특유의 면 요리인 분보후에(Bun Bo Hue)는 오감을 자극해 잠을 깨우는 아침 메뉴로 사랑받고 있다. 국물을 한술 뜨면 각종 허브와 라임의 향이 코끝을 자극하고 국물에 깊이 배어든 생강과 레몬그라스, 베트남 고추의 매운맛이 기분 좋게 어우러진다. 여기에 몸을 따뜻하게 감싸는 온기가 자연스레 몸에 생기를 안겨준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쫄깃한 베트남식 바게트로 만든 반미(Banh Mi)는 어떠한가. 바게트에 파테 혹은 치즈를 바르고 고기나 햄, 따끈한 오믈렛을 취향대로 넣어 당근이나 무로 만든 피클을 적당히 얹으면 신맛과 단맛이 매력적인 반미 샌드위치가 완성된다. 그 먹음직스러운 모습에 아침 시간, 베트남 거리의 노점을 못 본 척 지나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호치민의 시장 풍경 ⓒ SHUTTERSTOCK
베트남 음식에서는
식재료 본연의 개성을 살리되,
맛과 질감이 조화를 이루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식재료 본연의 개성을 살리되,
맛과 질감이 조화를 이루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베트남 음식을 흔히 ‘건강식’이라 부르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베트남 음식에서는 식재료 본연의 개성을 살리되, 맛과 질감이 조화를 이루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동양철학에서 중시하는 ‘음양의 조화’가 베트남 음식 면면에 깊이 배어 있다. 이를테면 몸에 열기를 불어넣는 생강을 사용할 때 찬 성질이 있는 허브잎을 함께 넣어 음식의 밸런스를 맞추는 식이다. 베트남 남부의 고원지대인 달랏에서 나고 자란 다채로운 과일과 채소는 베지테리언에게 환상적인 식단을 제공한다. 식재료가 지닌 본연의 성질을 존중하는 것, 더불어 다른 식재료와 조화롭게 요리하는 것이 베트남 음식을 이해하는 열쇠다.
1향긋하고 신선한 허브

각종 허브와 채소 ⓒ SHUTTERSTOCK
로컬 시장에 가면 가장 먼저 다채로운 향과 맛을 지닌 허브를 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베트남 음식에 고명으로 자주 사용하는 것은 ‘바질(Thai Sweet Basil)’이다. 특히 쌀국수나 분보후에 같은 국물이 있는 면 요리를 주문할 경우 반드시 함께 나오는데, 향신료 중 하나인 아니시드와 비슷한 맛이 난다. ‘베트남 레몬 밤(Vietnamese Lemon Balm)’이라고도 불리는 민트(Mint)는 스프링롤이나 샐러드, 치킨, 생선 요리에 두루 쓰인다. 잎을 끓여 차로도 즐겨 마시지만, 국수 요리의 고명으로 많이 사용한다. ‘실란트로(Cilantro)’라고 불리며 향신채로서 독특한 향과 맛을 지닌 고수잎(Coriander Leaf)도 국물 요리나 볶음 요리에 고명으로 쓴다. 고수잎을 잘게 뜯어 샐러드에 넣어 먹기도 한다.

(좌) 호치민 벤탄 시장에서 만난 채소 가게 ⓒ 안지나 / (우) 전채 요리에 신선한 허브를 곁들여 먹는 베트남 가정식 ⓒ 안지나
향이 독특한 판단잎(Pandan Leaves)은 베트남뿐 아니라 동남아시아 전역에서 자주 사용하는 식재료다. 디저트부터 메인 요리까지 쓰임이 매우 다양한데 잎을 우려내 아이스크림이나 케이크를 만들 때 넣기도 하고, 찻잎으로 끓여 마시기도 한다. 특히 판단잎에 고기나 생선을 싸서 요리하면 특유의 향이 비린내는 없애고 풍미를 더한다. 차조기(Shiso or Perilla)는 중국, 일본에서도 사용하는 맵싸한 맛의 허브로, 계피나 펜넬과 향이 비슷하다. 베트남에서는 이것을 넣어 샐러드에 곁들이거나 서머롤 혹은 차가운 면 요리를 만들 때 사용한다. 구장나무(Wild Betel)는 후춧과 나무로 잎 자체에서 맵싸한 향이 난다. 크고 둥근 구장나무의 잎은 영양소가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국물 요리에 넣거나 고명으로 쓰인다. 스프링롤이나 고기를 말 때도 커다란 잎을 사용한다.
2바다의 풍미를 담은 소스

느억맘짬 ⓒ SHUTTERSTOCK
베트남 식당이나 시장에 가면 유독 후각을 자극하는 쿰쿰한 젓갈 냄새에 정신이 번쩍 들곤 한다. 느억맘(Nuoc Mam)은 베트남 음식에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피시 소스의 일종으로, 염장한 멸치나 생선으로 만든다. 한국 요리에서 액젓을 넣는 것처럼, 베트남 음식에도 소량 사용해 깊은 맛을 더할 때 유용하다. 느억맘에 설탕, 마늘, 라임 주스를 더한 디핑 소스 ‘느억맘짬(Nuoc Mam Cham)’은 베트남 가정식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새우를 갈아 만든 갈색빛의 되직한 소스, 맘루옥(Mam Ruoc, Dried Shrimp Paste)은 코끝을 찌르는 향이 인상적이다. 시장에 가면 병 또는 플라스틱 통에 담겨 있거나 종이에 둘둘 말아 판매하기도 한다. 맘루옥의 강한 맛과 향 때문에 국물 요리에 아주 조금 넣거나 디핑 소스로 쓰인다.

다양한 스트릿 푸드를 경험할 수 있는 시장 ⓒ 안지나
베트남에는
‘안 쪼이(an choi)’라는 용어가 있다.
영어로 표현하면 ‘to eat playfully’로,
음식을 대하는 베트남 사람들 특유의
유쾌한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안 쪼이(an choi)’라는 용어가 있다.
영어로 표현하면 ‘to eat playfully’로,
음식을 대하는 베트남 사람들 특유의
유쾌한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3다양한 식감의 누들

건조된 쌀국수 면 ⓒ SHUTTERSTOCK
베트남에서는 면의 성분과 굵기, 생김새에 따라 다양한 국수 요리가 존재한다. 우리가 흔히 아는 쌀국수의 면은 ‘반퍼(Banh Pho)’라고 하는데, 평평하고 넓적한 면발이 특징이다. 쌀국수 면발의 일종인 ‘분(Bun)’은 건조면이나 생면 둘 중 하나를 구입해 국수 요리에 쓸 수 있다.

쇠고기 쌀국수 ⓒ SHUTTERSTOCK

그릇에 담긴 쌀국수 면 ⓒ SHUTTERSTOCK
글래스 누들(Glass Noodles or Cellophane Noodles)은 녹두 전분으로 만든 반투명한 색의 건조된 면을 뜻한다. 베트남 북부에서는 ‘미엔(Mien)’, 남부에서는 ‘분따오(Bun Tao)’라고 부른다. 미세하게 얇은 면발이 특징인 버미첼리 면(Vermicelli Noodles)은 구운 고기 요리와 잘 어울린다. 다른 면발에 비해 노란색이 특징인 에그 누들(Chinese Yellow Egg Noodles)은 주로 국물이 있는 면 요리나 볶음 면 요리를 만들 때 쓴다.
4두루 사용되는 과일과 채소

스타프루트 ⓒ SHUTTERSTOCK
바나나 꽃(Banana Blossom or Banana Flower)은 바나나나무에 열리는 자주색 꽃이다. 베트남뿐 아니라 동남아시아 전역에서 사랑받는 식재료 중 하나이며, 주로 샐러드 재료로 사용한다. 자주색을 띠는 바깥 꽃잎을 벗겨내고 하얀 속살을 쓴다. 마켓에서는 대부분 먹기 좋게 채를 썬 바나나꽃을 판다. 아티초크와 비슷한 맛이 나며 식감이 아삭한 것이 특징이다. ‘모닝글로리’나 ‘캉콩’으로도 불리는 공심채(Water Spinach)는 베트남어로 ‘라우무옹(Rau Muong)’이라고 한다. 아삭한 고유의 식감으로 아시아 요리에 두루 사용하는 채소이며, 공심채의 잎과 줄기 모두 요리에 쓰인다. ‘타로(Taro)’는 언뜻 보기에 감자와 비슷하게 생긴 뿌릿과 채소인데 탄수화물이 많이 함유되어 있다. 껍질을 벗기면 내용물 역시 감자와 비슷하지만 맛은 전혀 다르다. 약간의 단맛이 도는 것이 특징. 주로 굽거나 튀기는 등 열을 가한 후에 먹는다. 스타프루트(Starfruit)는 별 모양의 열대과일로, 주로 잘게 썰어서 날것으로 먹는다. 어린 스타프루트는 시큼한 맛이 나며 덜 익은 바나나와 곁들여 디저트로 먹는다. 고소하면서 옅은 단맛을 지닌 말린 연밥(Lotus Seeds) 역시 디저트로 먹거나, 샐러드 재료로 자주 사용하는 식재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