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 EXPERIENCE

북방의 베르사유로 불리는 황제의 마을, 푸시킨시
차를 타고 황제의 마을 입구에 도착하면, 경사진 아스팔트 길 끝에서 옥색 외벽과 황금 대문이 인상적인 궁전이 여행자를 반긴다. 정원을 따라 궁전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뜻밖에도 러시아 국민 시인 푸시킨의 동상이 보인다. 푸시킨시에 도착했음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약 25km 정도 떨어진 이 작은 도시의 이름이 푸시킨이라고 했을 때, 그와 무슨 관련이 있을까 궁금했다. 알고 보니 푸시킨이 청년 시절을 이곳에서 보냈단다. 러시아뿐 아니라, 심지어 코카서스 지방과 크림반도에 이르기까지, 푸시킨의 발길이 닿은 곳은 어떤 형태로든 기념이 된다. 하물며 푸시킨이 1811~1817년까지 머물며 궁전부속기숙학교에서 공부한 역사를 러시아가 그냥 놔둘 리 없다. 1937년, 국민 시인의 사망 100주년 되는 해를 기념해 도시 이름은 ‘황제의 마을’에서 ‘푸시킨’으로 바뀌었다. 푸시킨시로 불리지만, 수많은 여행자가 이곳을 찾는 이유는 사실 푸시킨의 흔적이 아닌 예카테리나 궁전 때문이다.
예카테리나 궁전

예카테리나 궁전 전경 © Shutterstock

황제의 마을이 되기까지
푸시킨시의 원래 이름은 ‘황제의 마을’이었다. 황제와 마을이라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조합된 과정이 있다. 17세기까지 스웨덴의 영토였던 이곳은 표트르 대제(Peter the Great, 1672~1725)가 18세기 초 스웨덴과의 북방전쟁에서 승리한 후에야 러시아 영토로 편입되었다. 이곳에는 고지대 저택(Saris Hoff)이라 불리는 농장이 있었다. 1710년에 표트르 대제가 이 지역을 왕실 영지로 편입함에 따라 왕궁 및 시종들을 위한 정착지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곧바로 고지대 저택은 고지대 마을(Sarskoye Selo)이라는 러시아식 이름으로 바뀌었다. 이후 본격적으로 궁전이 건립되기 시작하면서 황제의 마을(Tsarskoye Selo)로 불리게 된다. 공교롭게도 러시아어로 ‘Sar’와 ‘Tsar’의 발음이 비슷했던 것이다.
표트르 대제는 이곳에 궁전을 지어 자신의 두 번째 아내가 될 예카테리나(Catherine, 1684~1727)에게 선물했다. 그리고 예카테리나 궁전이라 이름 지었다(예카테리나는 리가의 농노 출신으로 표트르 대제의 눈에 들어 그의 아내가 되었으며, 표트르 대제 사후에는 예카테리나 1세로 황제의 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예카테리나 궁전

궁전 공원의 가을 © Shutterstock

예카테리나 궁전

예카테리나 궁전의 화려한 황금대문 © Shutterstock

푸시킨

마을 입구에 있는 시인 푸시킨의 동상 © Shutterstock

이후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난 옐리자베타(Elizabeth, 1709~1762)가 즉위하면서 황제의 마을은 대대적인 변화를 맞는다. 여왕은 러시아를 서구화한 아버지의 영광을 드높이고, 유럽의 강자로 부상한 러시아를 자랑하고 싶었다. 곧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을 모델로 겨울 궁전, 여름 궁전 그리고 예카테리나 궁전을 동시에 짓는 대규모 건축 공사에 착수한다. 당시 유럽은 바로크 양식이 유행하고 있었다. 역동적 조각과 넝쿨 장식이 절대군주의 뻗어나가는 힘을 과시하는 데 제격이었기 때문이다. 옐리자베타 여왕은 바로크의 대가였던 프란체스코 라스트렐리(Francesco Bartolomeo Rastrelli, 1700~1771)를 기용해 건축을 맡긴다. 306m 길이의 웅장한 궁전 건축은 1744~1756년 동안 지속되었다. 이로써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북방의 베네치아’라는 별명에 이어, ‘북방의 베르사유’라 일컫는 궁전을 얻게 된 것이다.
기록에 따르면 옐리자베타 여왕은 정치와 민생은 등한시하고 화려한 궁정 생활에 빠져 산 것으로 유명하다. 많은 애인을 두어 쾌락을 탐닉했으며, 지나친 건축 공사로 국가 재정을 거덜내고 외국에도 큰 빚을 졌다. 옐리자베타 여왕이 죽고 난 후 방을 정리했을 때, 왕복이 무려 3만 벌이나 나왔다는 소문이 날 정도로 사치스러웠다. 그 삶을 지탱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백성이 고초를 겪었을까. 하지만 그렇게 조성한 예카테리나 궁전이 현재는 세계적 관광자원이 되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다.
예카테리나 궁전

궁전 내부의 대연회홀 © The Tsarskoe Selo State Museum

예카테리나 궁전의 내부
예카테리나 궁전을 방문하면 크게 궁전 내부와 정원으로 나눠 관람하게 된다. 궁전에 입장해 중앙 계단실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우아하고 역동적인 바로크-로코코 장식이다. 대부분 18세기 귀족 이야기를 다룬 유럽 영화에 나올 법한 화려한 계단이다. 계단실 양쪽 벽면에는 중국과 일본 도자기가 장식하고 있다. 서양식 궁전과 동양의 장식물이라고 하면 다소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렇게 된 연유가 있다. 18세기 유럽에서는 바로크에 이어 로코코 양식이 유행했다. 로코코 양식은 세련되고 이국적인 중국풍을 선호했다. 표트르 대제뿐 아니라 옐리자베타 여왕 역시 이 유행을 따라 중국풍 장식물을 수집하게 된다. 중국풍으로 궁전 내부의 일부를 꾸미는 것은 물론, 후정에 중국 마을까지 두었을 정도다.
중앙 계단실을 올라 작은 전시실을 지나면 금빛 찬란한 대연회홀(Great Hall)이 기다리고 있다. 800㎡ 넓이의 이 방은 무도회나 대연회가 펼쳐지던 곳이다. 연회홀 바닥에 한 발 내딛는 순간 머릿속에서는 자연스럽게 쇼스타코비치 왈츠가 떠오르며, 그 박자에 맞춰 춤을 추고 싶어진다. 천장에는 이탈리아 화가 주세페 발레리아니(‪Giuseppe Valeriani, 1708~1762)가 그린 러시아, 승리, 평화 알레고리의 천장화가 있다. 사방 벽면은 황금 나뭇가지와 넝쿨 장식으로 치장했으며, 2단의 커다란 창들과 창 사이를 꽉 채운 거울들은 마치 베르사유 궁전 ‘거울의 방’을 연상케 하지만, 화려함 면에서는 예카테리나 궁전이 베르사유 궁전을 능가한다. 창밖으로 사시사철 변하는 풍경을 감상하며 무도회와 연회를 즐겼을 귀족들의 화려한 삶을 지탱해준 수많은 백성의 노고를 생각하면 씁쓸한 마음이 든다. 그만큼 이 방은 평범한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궁극의 화려함을 보여준다.
예카테리나 궁전

궁전예배당 © The Tsarskoe Selo State Museum

궁전 내부의 화려한 실내 인테리어 © Shutterstock

대궁전에는 방이 총 55개다. 그중 리옹 방(Lyons Hall), 아라베스크 방(Arabesque Hall), 대기실들(Antechambers), 기사의 방(Chevalier Dining Room), 붉은 기둥 방과 녹색 기둥 방(Crimson and Green Pilaster Rooms), 호박방(Amber Room), 갤러리홀(Picture Hall), 녹색응접실(Green Dining Room), 청색중국응접실(Chinese Blue Drawing Room), 궁전예배당(Palace Chapel) 등이 중요한 방이다. 원래 바로크풍으로 지은 예카테리나 궁전은 예카테리나 2세(Catherine the Great, 1729~1796) 때 일부 실내 공간이 고전주의 양식으로 바뀌었다. 그 대표적인 방이 아라베스크방과 녹색응접실이다. 녹색응접실은 바로크의 화려한 양식과 고전주의의 단아함이 공존해 스타일의 차이를 명확히 구분할 수 있다.
예카테리나 궁전

터키탕 파빌리온과 연못이 어우러진 예카테리나 궁전 공원 © Shutterstock

예카테리나 궁전

고전주의 양식의 캐머런 갤러리와 정원 © The Tsarskoe Selo State Museum

예카테리나 궁전

공원과 이어진 중국 마을 © Shutterstock

다양한 양식이 혼재된 정원
궁전 내부 관람을 마치고 나오면 예카테리나 정원으로 이어진다. 고전주의 양식의 후정은 자로 잰 듯, 질서정연한 정원수와 좌우대칭형 배치가 인상적이다. 궁전을 따라 오른쪽으로 걷다 보면 울창한 가로수 길을 만나는데 길 좌우로 다양한 테마의 정원이 등장한다. 고대 느낌을 강조한 개인 정원(Private Garden), 중국풍을 반영한 중국 마을(Chinese Village), 고전 시대의 수많은 조각상을 배치한 화강암 테라스(Granite Terrace), 르네상스를 연상케 하는 팔라디오류의 대리석 다리(Marble Bridge), 이슬람 양식을 따른 터키탕(Turkish Bath) 그리고 중세의 성을 떠올리게 하는 해군성(Admiralty) 등이 기다린다. 청둥오리 떼가 자맥질하는 한적한 호수에 느닷없이 곤돌라가 등장해 유유히 물살을 가를 때는 마치 베네치아에 와 있는 듯해 어리둥절해지기도 한다.
예카테리나 궁전의 서쪽 날개 부분에는 인상적인 그리스 신전 형태의 건축물이 직각으로 붙어 있다. 캐머런 갤러리다. 계몽 군주를 자처한 예카테리나 2세는 고전주의에 대한 자신의 취향을 반영한 건축물을 찰스 캐머런(Charles Cameron, 1745~1812)에게 의뢰한다. 여제는 호수를 바라보며 사유할 수 있는 공간을 주문했고, 그 결과 그리스 신전 및 로지아 형태의 갤러리가 등장하게 되었다. 캐머런은 갤러리에 그리스와 로마의 철학자 및 정치가들의 흉상을 배치해 여제의 주문에 완벽하게 대응했다. 이렇게 예카테리나 정원은 다양한 문명을 아우르는 풍경을 갖추었다.
예카테리나 궁전

알렉산드르 공원의 크로스 브리지와 전망대 © Shutterstock

궁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호박방
예카테리나 궁전이 여행자에게 인기를 끄는 이유는 단연 ‘호박방’에 있다. 호박 보석으로 치장한 이 방은 전 세계 유일의 럭셔리 보석방이다. 당시 러시아 제국의 사치와 향락을 대표한다. 원래 호박방은 러시아 것이 아니었다. 표트르 대제를 존경했던 프로이센 공국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Frederick William I, 1688~1740)가 러시아와 동맹의 대가로 표트르 대제의 서재를 장식할 호박 보석 패널을 선물했다. 이 호박 서재는 원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겨울 궁전에 존재했다.
이후 옐리자베타 여왕은 아버지의 호박 서재를 예카테리나 궁전으로 옮겨 호박방으로 재탄생시킨다. 호박방의 경이로움은 단순히 벽에 호박 보석을 대량으로 부착한 것에 있지 않다. 호박 보석의 색상과 투명도가 다양하다는 점을 넘어 호박방에는 정교한 호박 세공품과 호박 조각품이 패널을 이뤄 빈틈없이 구성되었다. 이때부터 호박방은 당시 유럽 귀족들이 즐기던 장기 유럽 여행인 그랑 투르(Grand Tour)의 필수 코스로 자리 잡으며 화제를 모았다.
예카테리나 궁전

예카테리나 궁전의 백미인 호박방 실내 © The Tsarskoe Selo State Museum

파괴와 복원의 역사
호박방은 제2차 세계대전 때 큰 화를 입는다. 1941년 독일이 소련을 침공해 레닌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의 소련 시절 이름) 외곽의 예카테리나 궁전을 비롯한 다른 궁전들을 점령했다. 이 기간 황제의 마을 궁전과 공원은 파괴됐고, 많은 유물이 약탈당했다. 그 약탈물 중에는 호박방이 포함되었다. 호박방은 그 옛날 처음 세워진 장소인 쾨니히스베르크로 옮겨졌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소련은 잃어버린 유물을 찾기 위해 독일과 협상을 벌였다. 그러나 많은 유물을 되찾지 못했으며, 호박방도 같은 운명이었다. 어디론가 사라진 것이다. 결국 소련은 호박방을 되찾는 것을 포기하고 복원을 결정했다.
25년에 걸친 작업 끝에 2003년 상트페테르부르크 도시 탄생 300주년을 맞이하여 마침내 호박방을 복원하는 데 성공하고 대중에게 공개했다. 그 옛날 왕가와 귀족의 전유물이던 호박방을 일반인도 즐기며 로마노프 왕조 당시의 문화를 엿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로마노프 왕조의 전성기를 누리던 황제와 귀족들은 모두 떠나갔지만, 그들이 남긴 유산은 후손들의 손에 온전히 보존, 관리되고 있다. 절대왕정이 누리던 사치와 향락도, 그속에서 억압받던 백성들의 고난과 눈물도 모두 흘러간 역사가 되었다. 지나간 역사의 뛰어난 유산을 바라보는 러시아인들은 때로는 놀라움으로, 때로는 안타까움으로 과거를 그리워하고 있다. 푸시킨의 시처럼 눈물과 땀으로 이뤄낸 로마노프 왕조의 유산은 후손들로 하여금 기쁨을 안겨주고 있다. 각고의 노력으로 복원된 황제의 마을은 오늘날 전 세계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관광 명소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황제의 마을 가는 방법
비텝스키역(Vitevskiy Station)에서 교외선 열차를 타고 황제의 마을(Tsarskoye Selo)에서 하차한다. 30분 정도 소요되며, 30분 간격으로 열차가 운행된다. 기차역 앞 버스정류장에서 예카테리나 궁전행 버스로 갈아탄다. 궁전까지는 10~15분 정도 소요된다.
예카테리나 궁전

예카테리나 궁전
주소 Garden St., 7, Saint-Petersburg
연락처 +7-812-415-7667
홈페이지 www.tzar.ru

© THE TSARSKOE SELO STATE MUSEUM

롯데호텔 상트페테르부르크

롯데호텔 상트페테르부르크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머물 곳: 롯데호텔 상트페테르부르크
롯데호텔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가장 유명한 곳인 성 이삭 광장 맞은편에 자리 잡고 있다. 호텔은 1851년에 지은 역사 깊은 건물을 리모델링해 사용하고 있으며, 인근에는 넵스키 프로스펙트 주요 거리와 예르미타시미술관, 마린스키 극장 등이 자리한다. 지하 1층, 지상 6층 규모로 총 10개 타입의 객실 150실을 갖춘 호텔 내부에는 다양한 레스토랑과 시설이 들어서 있다.

주소 2, Antonenko Lane, Saint-Petersburg
전화 +7-812-336-10-00
홈페이지 롯데호텔 상트페테르부르크
2021. 3 에디터:정재욱
글: 이현희
자료제공: 예카테리나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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