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 EXPERIENCE

대나무 숲으로 떠나는 여행, 부산 아홉산 숲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 등장한 아홉산 숲으로 산책을 떠났다. 사시사철 푸른 대나무 숲을 볼 수 있는 이곳은 지금 늦가을 여행의 정취가 가득하다. 부산 기장의 바다, 롯데월드 부산과 함께 다녀오기 좋은 여행코스다.
동북아시아인의 대나무 사랑은 유전자에 박혀 있는 듯하다. 양반들은 대나무를 사군자와 세한삼우로 칭송했고, 서민들은 대나무를 각종 생활 도구 소재로 사용하는 것은 물론 죽순까지 식재료로 활용해왔다. 대나무 숲에는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고유의 정취가 있다. 영화 <군도: 민란의 시대>, <협녀, 칼의 기억> 등 다양한 미디어에 등장하는 대나무 숲은 작품의 내용만큼이나 인상적으로 뇌리에 각인되어 있다.

늦은 가을, 화면 속이 아니라 진짜 대나무 숲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군도: 민란의 시대> 등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수려한 풍광을 뽐낸 아홉산 숲 속 대나무 숲은 사시사철 언제 찾아도 감탄을 자아낸다. 대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 소리에 취하고, 대한민국 대표 나무인 금강소나무, 편백나무, 삼나무, 참나무 숲의 피톤치드까지 흠뻑 마실 수 있는 아홉산 숲으로 안내한다.

400년 비경을 품은 아홉산 숲
아홉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졌다고 해서 아홉산이라 부르지만 가장 높은 봉우리의 고도가 361m에 불과하다. 아홉산은 멀리 금정산 주능선과 회동 수원지를 보며 한두 시간 동안 숲길을 걸을 수 있어 가을 하이킹 코스로 제격이다. 아홉산의 한쪽에는 2004년 산림청에서 아름다운 숲으로 지정한 아홉산 숲이 있다. 이곳은 유원지나 관광지가 아니다. 조용히 산책하며 힐링하고, 머문 흔적 없이 떠나야 하는 사유지다. 아홉산 숲의 산주(山主)는 임진왜란 직후인 약 400년 전에 이주해 온 남평 문씨 일가다. 기장에 정착한 남평 문씨 가문은 숲을 공개하지 않고 가꿔왔는데, 2015년부터 소수 인원에게 공개했다. 오랜 기간 이 지역에서 뿌리를 내려 이제는 남평 문씨 일족인 미동 문씨 집안으로도 불린다. 미동 문씨의 9대 장손인 문백섭 씨는 오랜 기간 잠겨 있던 가문의 영산 빗장을 풀었다.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을 독점해선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종택에 일본군이 들이닥치자 놋그릇을 숨기는 척하다 일부러 들켜서 일본군의 관심을 돌린 일화가 전해 내려온다. 놋그릇을 챙긴 일본군은 신이 나서 소나무를 놔두고 자리를 떴다고 한다. 해방 후 문백섭 씨의 할아버지는 미군에게 불도저를 빌려 사유림 최초로 임도를 냈다. 체계적인 조림의 기틀을 잡기 위해서였다. 1960~1970년대에는 동래 지역 식당에서 잔반을 얻어오고, 분뇨차를 불러와 숲의 비료로 사용하기도 했다. 이렇게 정성껏 가꾼 숲은 사람의 손을 타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했다.

2002년에서 2003년 말까지 아홉산 숲에 대한 식생 조사가 이루어졌는데, 멸종위기종인 대흥란을 비롯한 529종의 식물이 이곳에 서식하고 있었다. 식물의 천국은 동물의 낙원이기도 하다. 금개구리, 남생이, 자라, 새홀리기, 까치살모사 등 멸종위기 및 보호 야생동물 5종이 발견되었고, 새홀리기, 새매, 붉은배새매, 소쩍새 등 4종의 천연기념물 서식도 확인되었다. 쉽게 만나진 못하지만 산토끼, 고라니, 꿩, 딱따구리, 족제비, 오소리, 반딧불이가 아홉산 숲에서 자연 그대로의 생태 환경을 즐기고 있다. 현재 아홉산 숲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방제도 하지 않는다.
숲을 자연 원형 그대로 유지하기 위한 노력은 지금도 상상 이상이다. 누군가 낙서한 대나무는 즉시 뽑아내어 사람의 흔적을 지운다. 아홉산 숲을 방문했다면, 머무는 시간 동안 한껏 즐기되 흔적을 남기지 말고 떠나야 한다. 아홉산 숲에서의 한 걸음 한 걸음은 자연 안에서의 겸손이 얼마나 소중하며, 이를 통해 우리가 얼마나 치유되는지를 새삼 깨닫게 한다.
아홉산 숲의 총면적은 52만㎡나 되지만 모든 지역을 둘러볼 수는 없고 제한된 구역만 통행 가능하다. 숲에 들어가려면 입장료 5,000원을 지불해야 한다. 남녀노소 동일하다.

다채로운 숲의 향연
입장하면 곧장 대나무 숲길이 나온다. 좌측 아래쪽으로 눈을 돌리면 잘라놓은 나무들이 차곡차곡 누워 있다. 노지 표고버섯 재배지다. 잠시 걸으면 두 갈래 길이 나오는데, 우측은 경사가 약간 있는 지름길이고 좌측은 완만한 길이다. 완만한 길가의 습지에는 다양한 야생화가 미모를 뽐낸다.
지름길과 완만한 길이 다시 만나는 지점에서 울창한 금강소나무 숲이 나타난다. 2015년 나이테 조사 결과 소나무의 수령은 400년을 훌쩍 넘어섰다. 수령 400년 이상 된 소나무가 이렇게 잘 보존된 곳은 영남 일원에서 찾기 어렵다. 금강소나무들은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아홉산 숲에선 116그루의 보호수가 400여 년의 세월 동안 긴 호흡을 내뿜고 있다.

금강소나무 숲 맞은편에는 맹종죽 숲이 있다. 중국 원산인 맹종죽은 죽순을 식용으로 먹기 때문에 식용죽이라고도 부른다. 대나무 가운데 직경이 가장 넓어 위용이 대단하다. 군락을 이룬 맹종죽 숲은 높이를 가늠할 수 없이 자랐고, 여름에도 서늘한 그늘을 제공한다. 대나무 사이사이를 비추는 햇살은 가뭄 속 빗줄기처럼 피로를 훑고 간다. 200년 전 아홉산 숲에 맹종죽을 가장 먼저 심은 곳도 이 자리라고 한다. 신기하게도 숲 가운데에는 동그랗게 대나무가 자라지 않는 자리가 있다. 조선 시대의 마을 사람들은 산신령의 영기가 서려 있기 때문이라고 여겨 이곳을 굿터와 마을 모임 장소로 삼았다.

맹종죽 숲을 지나면 개잎갈나무와 맹종죽이 마주보는 산책로가 나온다. 선선한 바람이 끊이지 않아 아홉산 숲에서 가장 시원한 곳으로 꼽힌다. 아홉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좌측은 참나무 군락지다. 직진하면 편백나무 숲과 삼나무 조림지가 차례로 나타난다. 정면으로 뻗은 길은 U자를 그리고 길게 돌아가기 때문에 우측 산책로와 만난다. 다시 이어지는 소나무와 대나무 숲길. 건너편에서 두 번째 맹종죽 숲을 대면한다. 드라마 <달의 연인-보보경심 여>와 영화 <협녀, 칼의 노래>가 이곳의 풍경을 담았다. 아홉산 숲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맹종죽 서식지다. 두 번째 맹종죽 숲을 돌면 제법 긴 산책로가 이어진다. 대나무들이 겹겹이 늘어서서 방문객을 배웅해준다.

숲속 여정을 마치고 출구에 다다르면 한옥이 보인다. 이곳의 이름은 관미헌. 고사리도 귀하게 본다는 뜻을 담은 관미헌은 60여 년 동안 문씨 일가가 거주하던 집이다. 전통 한옥답게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아홉산 숲의 나무로만 지었다. 지금도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이지만 문백섭 씨 일가는 다른 곳으로 이사했다. 숲을 정비하는 등 일하는 사람들이 오면 숙소로 내어주기도 하는데, 일반에 집 내부를 공개하진 않고 있다. 출구로 나와도 대나무 숲의 향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거북이 등껍질처럼 기묘한 형태를 갖춘 구갑죽 정원이 마지막 인사를 건네기 때문이다. 그 옆으로 금빛 황금죽과 검은 자죽도 구경할 수 있다.

주소 부산시 기장군 철마면 미동길 37-1
문의 +82-51-721-9183
운영시간 09:00~17:00
웹사이트 www.ahopsan.com 
아홉산 숲을 나선 후 기장을 떠나기 아쉽다면
오랑대 공원
기장의 일출 명소. 아홉산 숲은 아침 9시에 문을 연다. 이른 아침, 기장의 또 다른 모습을 보고 싶다면 오랑대 공원의 일출을 추천한다. 공원이라고 하지만 오랑대 앞 산책로라고 표현하는 게 알맞을 듯하다. 규모가 크진 않지만 산책로로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상쾌하다. 오랑대는 기장으로 유배 온 친구를 포함한 다섯 명의 선비가 술을 마셨다는 설화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바다 저편으로 보이는 곳은 해광사의 용왕단으로, 용왕을 모신 우리나라 유일의 해상 법당이다. 잘 정비된 산책로 중간에는 그네형 벤치도 마련되어 있다.
주소 부산시 기장군 기장읍 연화리 산 78

해동용궁사
반드시 들러야 할 명소. 사찰이라면 깊은 산속을 떠올리는 게 보통이지만 해동용궁사는 철렁이는 파도 위에 자리한다. 자비의 화신인 관세음보살은 바닷가 외로운 곳에 머물다가 용을 타고 화현한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 관음신앙은 바닷가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해동용궁사는 양양 낙산사, 남해 보리암과 함께 우리나라 3대 관음 성지로 꼽힌다. 바다를 품은 해동용궁사는 절경 그 자체다.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주는 사찰로도 유명하니 득남, 장수, 학업 등 어떤 소원을 빌지 미리 생각해두고 방문해도 좋겠다.
주소 부산시 기장군 기장읍 용궁길 86 

용소 웰빙공원
기장 옛길과 기장읍성 사이 저수지 주변에 꾸며놓은 공원. 덱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다. 산책로 중간에는 산성산 임도로 빠지는 길도 있다. 이쪽으로 30여 분쯤 올라가면 산성산 정상에 올라 기장 앞바다도 볼 수 있다. 저수지에는 사진 촬영용으로 작은 배를 띄워두었다. 섬세한 배려가 돋보인다. 이곳은 넓진 않아도 잘 관리된 습지라 다양한 식물이 분포하고 있다. 아홉산 숲을 돌고 나와 식사를 하러 이동하는 도중이나 식후에 산책 코스로 추천한다. SNS에 올릴 사진이 잘 나오기로도 유명하다.
주소 부산시 기장군 기장읍 서부리 산 7-2

죽성리 왜성과 해송, 죽성성당 드림세트장
죽성리 왜성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구릉에 방어용 성으로 쌓은 유적지다. 온전한 형태를 갖추진 않았지만 조선과 다른 왜군의 축성 양식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왜성 진입로 초입에는 계단이 있는데 어이없게도 왜성까지 이어지지 않고 중간에 끊어진다. 왜성 역시 철조망으로 가로막혀 관람이 어려운 상태다. 하지만 계단 저편으로 아름다운 해송이 보인다. 한 그루처럼 보이지만 300~400년 된 소나무 다섯 그루가 묘하게 얽혀 기가 막힌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나무 한 세트를 보는 게 전부인가 싶겠지만 그럼에도 찾아볼 가치가 있다. 죽성성당은 드라마 세트장으로 인기 좋은 촬영 스폿이다. 근처에 위치하니 추억 한 장 남기러 들러도 좋을 것이다.
주소 부산시 기장군 기장읍 죽성리 601(왜성), 죽성리 249(해송), 죽성리 134-7(죽성성당)

부산에서 머물 곳: 롯데호텔 부산과 시그니엘 부산
부산 서면 근처에 위치해 화려한 시티 뷰를 선사하는 롯데호텔 부산은 현대적 감각과 디자인으로 프라이빗한 휴식과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여행 목적에 따라 선택 가능한 650여 개의 객실과 다양한 레스토랑에서 부산 여행의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보자.
시그니엘 부산은 시그니엘 서울에 이은 시그니엘의 두 번째 호텔로, 해운대의 랜드마크인 엘시티(LCT) 타워에 자리한다. 총 260실 규모이며, 광안대교가 보이는 해운대의 환상적 오션 뷰를 자랑한다. 세계적 수준의 미식을 선보이는 시그니엘 부산에서는 미쉐린 3스타 셰프 브루노 메나드(Bruno Menard)가 컨설팅한 다양한 메뉴를 즐길 수 있다.

홈페이지 롯데호텔 부산, 시그니엘 부산
2022. 11 에디터:정재욱
글: 이중한
포토그래퍼:김준

Where to stay?

LOTTE HOTELS & RESORTS
  • 2022. 11
  • 에디터: 정재욱
    글: 이중한
  • 포토그래퍼: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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